168.
윤수호는 기나긴 접전 끝에 천마를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투에서 승리한 건 결코 아니었다.
“놈이 교주님을 쓰러트렸다!”
“교주님의 원수를 갚아라!”
“천마신교에 무궁한 영광을……!”
윤수호와 천마의 경천동지할 전투를 보고도 마교의 무인들은 전의를 상실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더욱 전의와 복수심을 불태웠다.
그들은 몇 명이 죽어 나가든 윤수호에게 귀신처럼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천마와의 격전으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과 체력, 내공의 고갈을 겪고 있는 윤수호였지만 쉴 시간 따윈 1초도 허락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공격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삼류 마인들의 초식조차 경우에 따라서는 감당하기 버겁기도 하였다.
그러나 윤수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크아아아아아아!”
윤수호는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고, 정신을 차렸을 땐 더 이상 그의 앞에 선 마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윤수호는 무림맹으로 돌아갔고 거기서부터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예상했었던 무림맹의 배신, 그리고 처단…….
절망과 허탈감에 몸부림치던 그의 눈앞에 윤수호를 이곳으로 날려 보냈던 검은 회오리가 또 다시 출현하여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윤수호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천마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
그런데…….
지금 윤수호의 꿈은 그 자신이 아닌 천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천마의 두 눈은…….
‘이게 대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검은 회오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는 피를 토하면서도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그렇게 천마와 마교의 무리들은 검은 회오리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잠에서 깨 조용히 눈을 뜬 윤수호는 일어나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더니 마당으로 나왔다.
달조차 뜨지 않은 새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날의 전투를 떠올리는 윤수호.
5년째 같은 꿈을 꾸고 있었지만 매일 다른 꿈을 꾸는 것처럼 꿈을 꿀 때마다 새로웠다.
그때 당시에는 운 좋게 자신이 이겼지만 사실 자신이 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천마와 자신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라…….’
아니, 살아 있을 것이다. 사실 윤수호는 오늘 이와 같은 꿈을 꾸기 전부터 천마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정확히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랬던 것이 오늘 이 꿈으로 확실해졌다.
천마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의 존재가 점점 더 자신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그러고 보니 형님께서 폐관 수련에 들어가신 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났네요.”
파팟!
조춘영은 직선으로 빠르게 윤수호를 향해서 뛰어들며 주먹을 뻗었다.
크허엉!
이제는 강맹한 기운이 넘쳐흐르는 그의 주먹은 단순히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맹호의 포효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그렇게 됐나?”
윤수호는 목검으로 조춘영의 강권을 방어하며 대꾸했다. 내지른 그의 반대 주먹이 어느새 조춘영의 방어를 더 강한 강권으로 부딪혀 날려 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윤수호는 눈앞에 있는데 형님이 폐관 수련에 들어간 지 벌써 5년이 지났다니…… 그럼 눈앞의 윤수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성과는 있으십니까? 솔직히 제 머리로는 형님께서 지금 이상으로 강해지는 모습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아서요.”
이번에는 이선호가 빠르게 접근하게 질문했다.
폭풍과도 같은 조춘영과 달리, 흐르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신속하게 접근한 이선호의 장법이 물 흐르듯이 전개됐다.
그에 맞춰 윤수호 역시 검을 휘둘러 이선호의 장법을 흘려 버렸다.
힘의 흐름을 조율하는 이선호의 무공은 절정의 경지를 가뿐히 넘어선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선호조차 윤수호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격류에 휩쓸린 조각배일 뿐이었다.
“아니, 솔직히 나도 본체가 지금 어떤 지경인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 지금의 나는 이양공으로 움직이는 분신체에 불과하니까.”
분심법에는 두 가지 공능이 존재한다.
하나는 마음을 나누어 동시에 다스리는 공양공이고 다른 하나가 마음을 나누어 독자적으로 개성을 부여한 이양공이었다.
물론 이양공을 부여받은 분신이 죽더라도 본체에는 타격이 없으며 본체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합일할 수 있었으니 크게 위험하거나 까다로운 분심법은 아니었다.
다만 동시에 다스리는 공양공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이양공은 분신이 해제된 후에 분신이 얻은 정보와 경험을 얻을 수 있었으니…….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현재, 이양공으로 움직이는 윤수호의 분신이 본체의 사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분신이라면 좀 약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양심적으로다가.”
“응? 그래서 지금 충분히 약하잖아. 내 입장에선 한숨이 나올 지경인데, 이거.”
“…….”
“하여간 저 멍청이, 지 혼자 상처 입을 말을 왜 스스로 골라서 하는 건지…….”
나름 수호문의 장로라는 양반 둘이 합공을 하고도 분신체 한 명을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는 상황에 조춘영이 눈물을 흘리자 이선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대련이 끝나고, 윤수호는 두 사람에게 물통을 던져주자 이선호가 받아 들며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형님.”
“왜?”
“지금의 형님께서 폐관 수련을 해야 할 정도로 정말 큰 일이 생기는 겁니까? 그 정도면…….”
“세계 종말급이지. 아니, 우주 종말급인가?”
“뭐가 됐든 인류는 확실하게 쫑나겠지.”
조춘영의 대꾸에 이선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얘기하자 윤수호가 물을 마시며 대답했다.
“글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확증은 없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냐. 그때 가서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후회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그래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형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일이…….”
“그러게나 말이다.”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석양이 저물어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파지직, 파직!
“게이트 발생 확인! 현장 대원들, 전투 포지션으로 이행 바랍니다!”
탐지국에서 발견한 에너지 유동을 확인하고 현장에 출동해 있던 특무대 섬멸팀.
그들은 게이트가 출현하자 섬멸팀에게 전투 준비를 지시했고 강지한을 포함한 신입 대원들이 후방에서 대기했다.
“스읍…… 후우…….”
“긴장하지 마. 우리는 후방 지원 역할이잖아. 그냥 선배들이 도와달라는 부분만 도와주면 되니까.”
긴장하던 서은송의 어깨를 다독이며 독려하는 지울림. 그런 그에게 서은송이 무거운 표정으로 사과를 건넸다.
“미, 미안…….”
자신과 지울림, 그리고 강지한은 섬멸팀 104조의 신입 조원으로 입대하게 되었고 현재 그들의 임무는 선배 104조의 서포트 및 후방 지원 임무였다.
선배들이 하는 일을 견학하면서 천천히 경험을 쌓아가는 게 그들이 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은송은 지울림과 강지한에게 항상 미안했다.
입대 시험 이후, 엘리트 중에 엘리트로 평판이 자자한 두 사람과 달리 자신의 능력은 두 사람에 비해서 크게 뒤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뭐야, 지울림. 너 또 은송이 울렸냐? 크크큭!”
“내가 울린 거 아니거든?”
“애, 애초에 나 안 울었는데…….”
강지한이 농담으로 동기들의 긴장을 풀어 주는 사이,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선배들이 슬쩍 뒤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가볍게 주의를 주었다.
“어이, 사랑스러운 후배님들, 아무리 3급 게이트라고 해도 충분히 위험한 놈들이니까 조금은 긴장 좀 탑시다.”
“예! 선배님, 죄송합니다!”
강지한이 다소 과장되게 기합이 들어간 경례로 대답하자 선배들이 고개를 저었다.
“나 참…….”
“장난은 여기까지. 온다.”
드디어 3급 게이트가 개방되고, 그 안에서 재앙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허리까지 이르는 크기를 가진 거대한 곤충형 재앙종들은 일반인들에겐 말 그대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샷건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바주카나 수류탄으로도 몇 분의 시간 벌기밖에 할 수 없을 만큼 3급 재앙종의 전투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대비를 철저히 했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상대하면 3급 재앙종 한 마리만으로도 하룻밤 사이에 마을 하나가 사라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뒤에 엘리트 후배님들 지켜보고 있는 거 알지?”
“실수하면 그놈이 오늘 술값 내기다.”
“좋지!”
“미친놈들. 방금 후배님들한테 뭐라고 충고하셨는지 기억들은 하니?”
104팀의 태세는 완벽함에도 자연스럽고 긴장감이 없었다. 아니, 긴장감이 없다기보다는 익숙하다는 표현이 더 맞았을 것이다.
“온다!”
“오랜만에 대형대로 가자고!”
후배 교육차원에서 대형을 갖추고 몰려드는 3급 재앙종들을 사냥하는 104팀의 전력을 대단했다.
“우와……. 3급 재앙종들이 썰려 나가네?”
“그야 뭐, 104팀이면 섬멸팀 중에서도 상위 티어의 대원들만 모였으니까.”
서은송이 눈을 반짝이며 선배들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샷건도, 바주카도 통하지 않는 3급 재앙종들이 선배들의 오러에는 무참히 썰리고 부서져 나갔다.
일반인들은 눈으로 쫓는 것조차 버거운 놈들의 움직임도 104팀원들의 앞에서는 굼벵이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넌 표정이 왜 그러냐? 선배들의 활약이 아니꼬운 건 아닐 테고…….”
그러던 와중에 지울림은 게이트를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 강지한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들의 활약은 예상했던 것보다 대단했고 이대로 간다면 전원 무리 없이 사냥을 성공할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자신들의 임무라고 해봐야 선배들이 팔다리 전부 잘라 놓은 재앙종들 몇몇을 처리하거나 아니면 한두 마리 정도 남은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전부겠지.
지울림 자신이나 강지한이 나설 것도 없이 서은송만 해도 충분한 거저먹는 임무였다.
‘그런데도 뭐지, 이 녀석의 표정은? 대체 뭘 보고 저렇게 인상을…….’
“온다.”
“응?”
그때였다.
게이트 너머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듯, 마지막으로 재앙종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상했다.
“뭐야, 저건?”
“인간형?”
대충 앞서 나왔던 재앙종들을 거의 다 정리한 선배들도 마지막에 걸어 나온 재앙종을 확인하고는 의문을 가졌다.
물론 재앙종 중에 인간형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빈번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습이 인간형이라고 해서 놈이 인간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재앙종은 다 같은 재앙종일 뿐.
하지만 지금처럼 곤충형 재앙종들이 튀어나온 게이트에서 다른 형태의 재앙종이 튀어나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었다.
“뭐, 드물긴 해도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니까.”
“저 녀석이 마지막인 것 같은데 일단 팔다리 잘라 놓은 놈들은 후배님들 실습용으로 맡겨 두고 우린 저거나…….”
팟.
쩌어엉!
“……!”
“뭐, 뭐야!”
누구도 인간형 재앙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단 한 사람, 강지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망쳐요!”
그 순간, 강지한의 절박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