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너희들 그거 아냐?”
달달한 휴식을 즐기며 치우팀 전용 휴게관에서 쭈쭈바를 빨고 있던 강세찬이 화두를 던졌다.
“또, 뭐가? 쓰잘머리 없는 거면 죽는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너튜브를 보며 심드렁하게 대꾸하다는 오수영. 오랜만에 출동 없이 한적한 오전을 즐기는 건 그녀에게 있어 얼마 안 되는 행복 중 하나였다.
“지한이 이번 특무대 입대 시험에 지원했다?”
벌떡!
“그게 정말이야? 지한이가 올해 특무대 시험에 지원했다고?”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건데?”
“뒈질래?”
생각지도 못 했던 빅뉴스에게 휴게실에 모여 있던 치우팀 전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연히 수호문에 입문할 거라고 생각했던 강지한이 설마 특무대에 입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나라고 감추고 싶었겠냐? 위원장님께서 시험 당일까지는 절대로 함구하라 말씀하셨으니까 그렇지.”
“근데 넌 어떻게 알고 있는데?”
“이번 입대 시험 총감독관이 내 특무대 입대 동기잖아. 동기 좋다는 게 뭐겠냐?”
강세찬이 대답하자 오수영이 의문을 드러냈다.
“그런데 왜 수호문이 아니라 특무대지? 아, 당연히 나야 좋지만 여기 있는 다들 지한이가 모두 수호문으로 갈 거라 생각했잖아. 안 그래?”
“지한이가 위원장님께 무공을 배우긴 했어도 근본은 오러를 사용하는 알터잖아. 수호문의 필수 입문 조건은 알터가 아닌 일반인이고.”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거겠지. 대단한 사람들이야, 하여간.”
“잠깐, 시험 시작 된지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잖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야, 김세민! 어디 가는데!”
“당연한 걸 뭘 물어? 지한이 시험 치르는 거 구경 가야지!”
“야, 인마! 너 치우팀이라는 놈이 공정성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특정 후보생을 응원하러 가겠다고?”
“그럼 넌 여기 있든가.”
“에이, 씨! 나도 몰라! 야, 같이 가!”
그렇게 김세민을 따라 오수영이 달려 나가자 다른 치우팀 대원들도 빠르게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 * *
“응? 헉……!”
“치, 치우팀 분들이 여긴 어떻게…….”
실내에서만 대련장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평가실.
그곳에서 후보생들의 대련을 관전하며 평가하던 감독관들을 갑자기 우르르 모습을 드러낸 치우팀에 깜짝 놀라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강지한 후보생의 대련 시험은 끝났습니까?”
“가, 강지한 후보생이라면…… 113번 후보생 말씀이시죠? 다다음 차례입니다만…….”
“다행이네. 아,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마저 일하세요. 괜히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 네…….”
감독관들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좀처럼 진정시키지 못했다.
‘113번 후보생이 신경 쓰여서 치우팀 멤버 다섯 명이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대체 누구길래…….’
감독관은 태블릿 PC로 강지한의 응시 접수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특이 사항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지한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의 외삼촌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국가 기밀 사항으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감독관은 그의 대련 상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양 알터 아카데미 3년 연속 수석에 학생회장 출신! 이거 또 대단한 거물이 납셨구먼.’
알터 아카데미는 평균 나이 15세에 각성하는 알터 청소년들을 상대로 맞춤형 교육 및 훈련을 제공하는 국가 기관이었다.
아카데미는 전국에 고루 분포해 있고 서울에도 세 곳이 존재했지만, 그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한양 아카데미를 꼽을 수 있었다.
그런 엘리트 중에 엘리트만이 모이는 곳에서 3년 연속 수석이라니…….
‘잘하면 5년 안으로 우리나라에 또 다른 오버 알터가 탄생할 수도 있겠어.’
감독관은 기대에 찬 마음을 감추면서 동시에 그의 상대인 강지한에 대해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왔다!”
“지한이다!”
그렇게 차례가 찾아오고 호명받은 두 사람이 대련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치우팀 대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4번 후보생 지울림. 준비됐나?”
“예!”
“113번 후보생 강지한. 준비는?”
“언제든지 상관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몸을 푸는 강지한과 달리 강지한을 노려보는 지울림의 표정은 신중 그 자체였다.
‘저 녀석…… 대체 뭐지?’
함께 시험을 치르는 동안 지울림은 강지한을 눈여겨보았다. 물론 사실 지울림이 처음부터 강지한을 지켜봤던 건 아니었다.
그저 함께 시험을 치르다 보니 다른 후보생들은 접근하지도 못할 자신의 최선을 어렵지 않게 따라붙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을 뿐이었다.
자신조차 힘이 부치다 싶을 정도의 전력을…… 상대는 오히려 적당히 하는 느낌으로 따라붙으니 어떤 의미로는 부아가 치밀기도 했던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 알게 되겠지. 네 녀석이 숨기고 있는 저력을……!’
지울림이 긴장을 끌어 올리며 태세를 갖추는 모습에 관전하던 오수영이 그를 알아보았다.
“아! 이번에 한양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는 그 녀석이네. 3년 연속 수석만 차지했다고 하던가?”
“아는 녀석이야?”
“한양 아카데미 교관 중에 내 친구가 있거든. 술만 마시면 저 녀석이 자기 제자라고 어찌나 자랑을 늘어놓던지……. 이름이 지울림이라고 했었지, 아마?”
“한양 아카데미 올 수석은 확실히 대단하네. 10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5초에 10만 원.”
“3초 안에 끝난다는 데에 20건다. 쫄리면 뒈지시든지.”
뒤에서 오가는 대화에 감독관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울림이 누군지 모른다면 이해하겠으나 알면서도 저러한 태도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때였다.
“제17 대련 시험. 시작.”
대련 시험이 시작되었다.
먼저 공격의 포문을 연 사람은 지울림이었다.
‘간다!’
파앗!
한양 아카데미 수석 졸업답게 땅을 박차며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모습은 비호 그 자체였다.
“수석 도련님이라 그런지 꽤나 빠른데?”
“저 정도면 또래의 어지간한 알터들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조차 쉽지 않겠어.”
“상대가 다른 녀석이었다면 쉽게 결판이 났겠지만…….”
자신이 순식간의 코앞으로 접근했음에도 담담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강지한의 모습에 지울림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 움직임을 훤히 보고 있었다는 뜻이군. 그럼 이건 어때?’
촤악!
지울림의 손끝에서 대련용 가검이 춤을 추었다.
순식간에 피어난 검영이 사방을 점하며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강지한의 정면을 압박했다.
전후좌우, 어디로도 도망칠 구석이 없는 완벽한 공격에 치우팀 대원들조차 살짝 감탄할 정도였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 봐!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될 테니까.’
지울림의 검술은 첫 초식의 위력이 약한 대신 흐름을 끊기가 힘들고, 흐름이 이어질수록 강력해지는 유(流)의 검술이었다.
파훼법은 강한 위력의 일격으로 단숨에 흐름을 끊어 내는 것이었지만 지울림은 그조차도 만반의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상대가 강한 위력의 공세로 밀고 들어온다면 그 즉시 카운터를 먹여 줄 생각이었던 지울림은…….
휘릭!
강지한이 부드럽게 손목을 당겨 돌리자 균형이 무너지며 기세가 헝크러지더니 몸이 크게 돌았다.
“……!”
그렇게 붕 떠오른 몸이 바닥으로 강하게 떨어져 내렸다.
쿵!
“커헉!”
지울림은 갑자기 천장과 바닥이 반전되는 것 같더니 등짝에서 둔중한 통증을 느끼며 답답한 숨을 토해 냈다.
“뭐, 뭐야……. 크윽!”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은 지울림이 자리에서 일어나 태세를 갖췄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는 게 늦어졌어도 후속타를 허용, 자칫하면 허무하게 대련을 내줄 수…….
“이제 정신이 드냐?”
“……?”
지울림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지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들것을 가져오는 의료팀과 감독관의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 이게 왜……?”
“깜빡이가 완전히 꺼진 모양이군. 진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나?”
“혹시 제가 기절해 있었던 겁니까?”
“1분이 넘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일어날 정도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의료 센터에서 정밀 검사는 꼭 받아 보도록. 후보생은 공짜거든. 자, 다음 시험을 위해 자리 좀 비켜 주겠나?”
터덜터덜 걸어 나가면서도, 지울림은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분명 자신은 상대를 절대로 얕보지 않았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대련에 임했다.
그런데…….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고? 어떻게 이런…….’
씨익~!
그러나 좌절할 줄 알았던 지울림의 입꼬리는 묘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그에게는 패배의 충격보다 올라갈 나무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권성하와 더불어 강지한의 절친이자 자칭 라이벌 지울림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 *
“그래서 시험은 잘 치렀고?”
파파파파파팟!
“그렇게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요. 결과는 봐야 알겠지만.”
타타타타타타타탓!
“지금 네 수준에서 입대 시험이 어렵다고 느낄 정도면 다른 친구들은 입대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삼촌과 조카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손발을 쉬지 않았다.
강지한의 속도는 이젠 바람을 넘어서 자신의 그림자조차 떼어놓고 다닐 정도였다. 그의 단검은 한 순간에 수백 줄기에 달하는 스산한 궤적을 윤수호의 몸 위로 그렸다.
대부분 윤수호가 제자리에서 조카를 받아 주고 강지한이 기회를 봐서 삼촌에게 맹공을 퍼붓는 형태였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네 누나가 콘서트 티켓 두 장을 주더라. 이번 주말에 홍대에서 미니 콘서트를 한다고 하던데 같이 갈 생각 있어?”
“뭐, 상관없긴 한데…… 아마 누나는 삼촌이 저랑 같이 오라고 티켓을 두 장 챙겨 준 게 아닐걸요.”
“그럼?”
“삼촌, 진짜 여자 친구 없어요? 아니면 썸 타는 사람이라도…….”
채채챙!
윤수호는 검결지로 강지한의 단검을 튕겨 내며 한숨을 쉬었다.
“부모님이랑 수아가 재촉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이젠 지연이도 모자라 지한이 너까지…….”
“아, 오해 마세요. 저야 삼촌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 거라 믿지만…….”
어느새 윤수호의 뒤로 돌아간 강지한이 밤보다 은밀하게 접근해선 검으로 윤수호의 목을 그었다.
카카카칵!
설령 오버 알터라 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기습이었으나 윤수호의 검결지에 막혀 불똥만 튀길 뿐이었다.
강지한은 기습이 실패하자 곧바로 어둠속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먼저 윤수호의 딱밤이 작렬했고…….
쩌엉! 쾅쾅쾅!
강지한은 오러를 끌어 올리며 수비 초식을 전력으로 전개했지만 나무 세 개를 부러트리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아이고, 늦었다. 암튼 요새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렇고 다른 가족들도 삼촌 덕분에 모두 행복하니까 이제 남은 소원이 하나밖에 없는 거죠.”
“그게 내 결혼이라고?”
“아뇨. 삼촌의 행복요.”
“……!”
강지한의 대답에 윤수호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지한은 아이스박스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윤수호에게 던져 주었다.
“삼촌은 가족들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곧잘 얘기하셨잖아요. 물론 그걸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가족들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가족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삼촌이 자신만의 가족을 꾸리길 바라시는 걸 수도 있고요.”
“나만의 가족이라…….”
“정 잔소리가 부담스러우시면 그냥 콱 며칠 동안 잠수 타 버려요.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무 말 못 하시지 않을까요? 저는 약속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그렇게 조카를 보낸 윤수호는 벤치에 홀로 앉아 녀석이 건네준 물을 마시며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곤란하네. 나도 부모님에게 손주를 안겨 드리고 싶긴 한데…….”
윤수호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말려 올라갔다.
천부공을 익힌 이후로 큰 재앙이 생기기 전에는 항상 예지몽에 가까운 악몽을 꾼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꿈은 선명하게 기억되며 그런 꿈은 보통 색깔로 표현된다.
주황색 꿈만 해도 꽤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붉은색 꿈은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강해진 이후로는 그러한 꿈을 꿀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5년 전.
불행하게도 예지몽은 다시 윤수호의 꿈속으로 찾아왔다.
사방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모습으로…….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