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64화 (164/175)

164.

미국 2차 던전 발생 일주일 후 백악관.

백악관의 허가를 받고 정문 앞에 모여든 수많은 기자들이 날 선 긴장감으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무대에게는 재앙종이 있는 현장이 전장이겠지만 기자들에게는 특종이 있는 곳이야말로 전장이었기 때문이다.

“온다!”

그때였다.

멀리서 백악관을 향해 다가오는 특급 리무진과 호위단의 행렬을 발견한 기자가 소리치자 기자들을 곧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꿀꺽…….

마른 침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식은땀이 턱 선을 따라 떨어져 내렸다.

한층 더 날이 선 긴장감으로 다가오는 리무진을 주시하던 기자들은 리무진 앞자리에서 이내 비서 역을 겸하고 있는 박여진이 내리자 셔터 위에 손을 올렸다.

딸깍.

뒷좌석으로 향한 박여진은 문을 열었고. 한 남자가 하차하는 순간,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찰칵찰칵찰칵찰칵……!

“윤수호 씨! 여기 한 번만 봐 주십쇼!”

“미국을…… 아니, 전 세계를 구하신 소감을 짧게라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행적이 묘연하다고 하던데, 그동안 어디 계셨는지 짧게라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은 윤수호에게 한마디라도 말을 걸어 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윤수호는 조용히, 그리고 당당하게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서라도 인터뷰를 따고 싶었지만…….

백악관이 정한 라인을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아웃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삼키며 윤수호의 뒷모습이라도 촬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자들이 훨씬 많네.”

백악관 입구 앞에 선 윤수호의 감상에 박여진이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저것도 메이저 포스트만 추리고 추린 거랍니다. 아니었다면 몰려든 기자들로 백악관 주변에 발 디딜 틈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모름지기 세계를 구한 영웅의 취재라고 한다면 기자들이 목숨 걸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런 건가?”

“당연하죠. 지금 위원장님의 영향력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십니다. 설령 이곳의 주인과 비교한다 해도 말이죠.”

문이 열리고 마침 상하원 의원들과 함께 윤수호를 기다리고 있던 미국 대통령, 딜런 블레이져가 반갑게 미소를 그리며 윤수호에게 다가가 그를 환영했다.

“어서 오십시오. 더 원의 백악관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 원이라니……. 그게 무슨?”

“설마 모르고 계셨습니까? 세간에서 요즘 미스터 윤을 그렇게 부른다고 하더군요. 톱텐 위에 우뚝 올라선 단 하나의 존재라는 의미라고요. 불편하시다면 호칭을 바꾸도록 하죠.”

“부탁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조금 겸연쩍어서요.”

윤수호는 딜런과 악수를 통해 인사를 나눈 후, 곁에 있던 익숙한 얼굴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미스 마벨러스.”

“본인은 호칭으로 불리기 싫다면서 저는 호칭으로 불러 주시네요? 더 원.”

“아, 제가 실수했군요. 레이첼. 지금도 많이 바쁘다고 들어서 오늘은 못 뵐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수호 씨를 볼 수 있는 자리인데 제가 빠질 순 없죠.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그렇게 레이첼과도 인사를 나눈 윤수호는 딜런이 소개해 주는 미국 고위급 의원들과도 간략하게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옮겼다.

* * *

“엄마, 엄마! 오빠 나왔다! 빨리~!”

“어디, 어디?”

주방에서 과일을 씻어 온 오혜연은 거실로 과일을 가져와 가족들과 함께 과일을 먹으면서 TV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백악관에서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방송이었기에 가족들도 거실에서 윤수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백악관 정문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입장한 그가 미국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본 가족들은 혀를 내둘렀다.

“참…… 내 아들이지만 정말 대단해.”

“하여간 애가 어릴 때부터 하는 짓이 어찌나 날 꼭 빼닮았는지, 크면 뭔 일을 해도 큰일을 해낼 줄 알았다니까. 안 그래요, 여보?”

“크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수호가 당신보다는 나를 쪼~금 더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윤수호가 서로 자신을 닮았다고 투닥거리는 부모님의 모습에 윤수아가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와~ 미국 대통령 출세했네. 우리 삼촌이랑 악수도 다 해 보고.”

“그러게. 근데 이렇게 되면 우리도 삼촌 얼굴 많이 못 보게 되는 거 아니야? 지금도 바쁜 분이셨지만 앞으로는 진짜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된 거잖아.”

“…….”

은지한의 걱정에 가족들 모두 조금 분위기가 다운되었다.

윤수호가 출세하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된 건 당연히 축하할 일이고 진심으로 기쁜 게 사실이었다.

그만큼 누구보다 고생하고 아파했던 사람이 바로 윤수호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윤수호를 사랑하는 만큼, 앞으로 그가 바빠질수록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 거란 생각에 많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누구 얼굴을 못 본다고?”

“……응?”

“아…….”

“엥?”

갑작스럽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던 가족들의 얼굴이 전원 의문으로 물들었다.

가족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왜, 왜들 그래? 내가 우리 집으로 돌아온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이것 좀 섭섭한데…….”

윤수호가 시무룩해하자 윤수아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 떨리는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아, 아니, 그게 오빠, 저거 생방송……! 근데 어떻게 오빠는 여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니, 수호야?”

오혜연에 물음에 윤수호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옆자리를 차지하면서 그녀가 깎은 사과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착한 아들 노릇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음, 사과 맛있다. 역시 엄마가 깎아 준 사과는 다르구나.”

“얘도 참~ 사과가 맛있으니까 맛있는 거지, 뭘.”

“아, 오빠 장난치지 말고. 진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저거 생방송 아니었어? 그럼 저기 있는 오빠는 대체 누군데?”

윤수아는 물론이고 가족들 역시 진심으로 의아해하며 자신을 쳐다보자 윤수호는 배 한 조각을 베어 물면서 대답했다.

“지한아, 너 혹시 아바타라고 아냐?”

“아바타라면 게임 속 캐릭터 같은 거요?”

“그래, 지금 저 화면 속의 내가 그거랑 비슷한 거거든.”

“저 화면 속의 삼촌이 아바타라고요? 대체 어떻게요?”

“방법은 간단해. 알카라트가 내 형태를 본떠서 빚은 흙 골렘에, 하이데른이 망령을 불어넣어 육체를 움직이게 하고, 내가 뇌 대신 실시간으로 조종하는 거니까.”

이것은 천부공 중에 ‘분심법(分心法)’이라는 무리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분심법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나누는 무공이었다.

덕분에 윤수호는 실제 자신의 몸도 평소처럼 행동하면서 실시간으로 아바타를 조종, 아바타가 보고 겪는 모든 경험들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진짜 1도 모르겠는데요.”

은지한의 대답에 가족들 전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해서 저것도 나고 여기 있는 사람도 나라는 뜻이야. 차이점이 있다면 저기 있는 나는 가짜, 여기 있는 나는 진짜라는 것 정도겠지. 어머니, 근데 혹시 집에 찬밥 남은 거 있어요? 오혜연표 된장찌개랑 찬 밥 한 공기만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밥은 없지만 쌀 씻어서 앉히면 30분이면 되고. 된장찌개는 없어도 수아가 해 놓은 소갈비찜 해 놓은 게 있는데 그거라도 먹을래?”

“수아가 했다고요? 그럼 오랜만에 즉석 밥에다 라면 말아서…….”

“오빠!”

* * *

“여기 계셨군요.”

“레이첼 씨?”

백악관의 공식적인 초대 행사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뒤풀이 파티에 참석한 윤수호.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주고받은 탓에 기분을 조금 환기하려 후원으로 나왔더니 레이첼이 따라 나왔다.

“생수로 하실래요? 아니면 샴페인?”

“생수로 부탁드립니다.”

레이첼은 윤수호에게 생수를 건네준 후, 자신은 샴페인 잔을 들고 그의 옆에 앉았다.

“전장에서는 무적 그 자체이신 분이 아까 파티장에서는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시는 것 같아 당황했어요. 이런 자리가 많지 않으셨나 봐요?”

“아무래도 싸움 외에는 연이 없는 삶을 살았으니까요. 그에 반해 레이첼 씨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꽤나 능숙하시던데요? 중간에 레이첼 씨가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더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전장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도움이 돼서 정말 다행이네요.”

레이첼의 대답에 윤수호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장에서 누구보다 활약한 사람 역시 당신입니다. 당신이 솔선해서 병사들을 이끌지 않았다면 제가 도착했을 땐 아마 병사들의 시신만 남아 있었겠죠. 당신은 충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임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

윤수호의 위로에 레이첼은 서글픈 미소로 잔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제럴드와 그 가족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라요.”

‘제럴드라면……. 제럴드 F. 바이퍼?’

윤수호도 들은 적이 있었다. 레이첼 말고 미국에 또 다른 톱텐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럴드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직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딸이 있거든요. 그래서 던전 공략팀을 구상할 때도 제럴드가 아닌 제가 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제럴드는 가족을 사랑했지만 저는 가족을 버렸으니까요.”

“…….”

그녀는 담담히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나 범죄라면 살인 빼곤 전부 저지르며 악착같이 살아왔다.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는 그런 자신을 착취하며 매일같이 때리고, 술로 하루를 지내며 폐인처럼 숨만 붙어 있을 뿐이었다.

“열다섯 살이 된 저는 각성을 통해서 알터가 되었어요. 범죄 길드들은 제 힘을 탐냈고, 저는 스스럼없이 그들에게 소속돼 수많은 범죄들을 저지르기 시작했죠. 그러나 만난 사람이 바로 제럴드였고요.”

당시의 제럴드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과 바른 인성, 그리고 한계를 넘어선 노력 덕분에 미국 특무대 중에서도 발군의 엘리트로 손꼽히는 인재였다.

“저는 제럴드의 손에 잡혀 결국 감옥에 갇혔어요. 처음에는 출소만 하면 제럴드를 찾아가 죽일 거라고 다짐할 정도로 그를 증오했지만……. 그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저를 찾아왔죠. 그리고 쓸데없이 많은 얘기를 혼자 떠들다 가 버리더군요.”

레이첼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럴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는 제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던 빛이었어요. 처음에는 이게 사랑이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지만…….”

“아니었군요.”

“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었어요. 제럴드가 내 애인이 아니라, 제럴드 같은 사람이 내 아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출소하고 난 이후에는 미친 듯이 노력해서 미국 특무대에 입대했고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제럴드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그러니까 제럴드가 아니라 제가 죽었어야 했어요. 제럴드가 아니라 제가……!”

“…….”

입을 틀어막고 흐느껴 우는 레이첼을 윤수호는 묵묵히 곁에서 지켜 주었다.

윤수호는 전장에서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 형제를 잃는 사람들을 무수히 봐 왔다. 그들의 마음 속 짐과 고통이 얼마나 클지…… 그로서는 상상도, 섣불리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곁을 지켜보며 묵묵히 얘기를 들어 주는 것밖에…….

윤수호는 언젠가 이 끔찍한 고통의 연쇄를 자신의 손으로 끊어 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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