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알카라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이게 대체…….”
그는 자신의 심장에 박혀 있는 한 자루의 검을 보고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차 고통조차 느끼질 못했다.
이곳은 자신의 평생을 바쳐 만든 최고의 역작. 타이탄의 콕핏 내부다.
완전 물리 내성 처리는 물론이고, 완전 마법 내성 처리까지 되어 있어 밖에 운석이 떨어지건, 대륙 결전용 마법을 쏟아붓건 타이탄만 무사하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당연히 좌표를 이용한 공간 이동 마법도 무효화되어서 이런 식으로 공간을 뛰어넘어 검을 자신의 심장에 꽂아 넣는 행위도 절대로 불가능했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뭐, 뭐지? 계산이 잘못된 건가? 아니면 술식에 내가 예상치 못한 오류가…….’
쿨럭!
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숨이 답답해지자 알카라트는 거칠게 기침을 터트렸고 이내 옷이 붉게 물들었다.
폐부를 가득 채운 핏물이 기침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이다.
푸확!
“허억, 허억…….”
알카라트는 가슴에 박힌 검을 쥐어 뽑았다. 점점 시야가 멍하니 흐려지고 숨은 거칠어지며 몸에 오한이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답답했다. 분명 콕핏 내부는 신선한 공기가 끊임없이 정화되어 공급될 텐데도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푸슉……! 철컥!
알카라트가 무언가를 조작하자 콕핏이 열리면서 바깥 공기가 차갑게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 순간, 어느새 콕핏의 정면으로 둥실 떠오른 윤수호의 모습이 그의 흐린 시야에 들어왔다.
“너……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허억, 허억……! 콕핏 내부로는 그 어떤 물리력도, 마법력도 행사할 수 없을 텐데!”
윤수호는 그런 알카라트의 모습에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궁금한 건 못 참는다 이건가? 진짜 징글징글한 녀석이네.”
“빠, 빨리 대답을 해라! 내겐 더 이상 시간이…….”
윤수호는 씨익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절망한 알카라트.
“젠장……!”
이내 숨을 거둔 아카트의 고개가 허무하게 앞으로 처박혔다.
자칫 북미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위대한 골렘 마이스터치고는 실로 허무한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칠레에서는…….
* * *
-드디어 현신했구나! 내 이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이 세상을 나의 불꽃으로 물들여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안락한 둥지로……!
“하암~ 드디어 기어 나왔네. 그런데 나오자마자 뭐가 이렇게 쓸데없이 말이 많아?”
“허허허! 그러는 후배님도 현신했다면 저 새보다 더 촐랑거렸으면 촐랑거렸지, 얌전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러는 선배는 마치 현신해 보신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하여간 현신도 못 해 본 것들이 제일 시끄럽게 떠드는군. 하기야, 선배들이 그 황홀한 기분을 설명한다고 알까.”
-……!
전신이 불타오르는 거대한 괴조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시선으로 눈앞을 바라보았다.
몸통이 우락부락한 노인에,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진 하피에,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레서 드래고니안까지…….
도대체 무슨 조합이 이런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사이, 히드라가 괴조를 올려다보며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거기 후배, 조용히 따라올래? 아니면 맞고 따라올래?
* * *
“그래서 말을 안 듣길래 팼다? 그래서 애가 이 지경 이 꼴이 된 거고?”
“생각보다 반항이 심하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허허허~!”
윤수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하이데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인간형으로 변한 괴조가 잔뜩 퉁퉁 부은 몰골로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화조들의 군주, 피닉스 데이쟈르 하만 굴라이 준 크로이카드라고 합니다! 편하게 닉스라고 불러 주십쇼!”
아무리 화조들의 군주, 피닉스라 해도 동급의 강자 세 명을 상대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지금의 몰골이 될 때까지 맞은 후에 윤수호의 앞으로 끌려 온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스터? 석연치 않으면 처분하셔도 물론 상관없습니다만…….”
“흐음…….”
자신을 훑어보며 침음을 흘리는 윤수호의 모습에 닉스는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뭐, 뭐야 이 괴물은? 진짜로 인간 맞아?’
윤수호가 은근슬쩍 흘리는 기세를, 닉스는 놓치지 않고 알아보았다.
본능적으로 마른침을 삼키는 닉스. 어째서 하이데른이나 이카루스, 히드라 같은 괴물 중의 괴물들이 윤수호를 섬기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설령 자신을 포함한 넷이 덤빈다 하더라도 이 인간에게 상대가 될까 싶은 공포감이 먼저 앞섰던 것이다.
“닉스라고 했나?”
“예? 아, 예! 마스터.”
“살고 싶나?”
“……!
닉스는 근본적인 윤수호의 질문에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세상 어느 누가 감히 화조들의 군주 피닉스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존재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만으로 재가 되어 사라질 수 있었다.
그만한 존재가 이제는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닉스는 지금의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이미 간접적으로 느꼈으니까.
“그, 그야 기왕 이렇게 현신했으니 물론 살고 싶죠…….”
“말썽 피우지 말고 말 잘 들어. 그것만 지키면 내가 네 녀석에게 얼굴 붉힐 일은 없을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이데른을 통해서 주인에게 거스를 수 없는 영혼의 계약을 마친 끝에 닉스까지 권속으로 거둬들인 윤수호.
그는 직후 하이데른에게 타이탄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하이데른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건……!”
“이게 뭔지 알아보겠나? 내가 보기에도 평범한 골렘은 아닌 것 같더군.”
“흐음……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하이데른은 윤수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타이탄을 요모조모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윤수호의 곁으로 돌아온 하이데른이 답을 꺼냈다.
“틀림없습니다. 이건 타이탄을 개조한 생체 골렘이 확실합니다, 마스터.”
“타이탄?”
“예, 타이탄은 기간테스라는 거신족과 인간 사이에서 탄생한 반인반신의 존재들입니다. 당연히 그 능력은 인간들을 아득히 초월했고 신마대전에서도 크게 활약했을 만큼 전투력이 뛰어난 종족이었지요.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한 마족들의 합공에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설마 저도 타이탄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인즉, 쓸 만하다는 얘기지?”
하이데른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마스터! 신장 50m에 이만한 체구라면 타이탄 중에서도 성체의 뛰어난 전사들과 체격이 비슷한 수준입니다. 분하지만 생체 개조 부분에 관해서는 저조자 혀를 내두를 수준에, 타이탄의 무장도 모두 하이 드워프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조한 특급품으로 추정됩니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이 생체 골렘의 동력입니다.”
“그건 나도 궁금하군. 꽤나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거든. 저만한 에너지를 압축시켜서 보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텐데…….”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물질이 바로 드래곤 하트지요.”
“드래곤 하트? 그걸 타이탄의 동력으로 사용했다고?”
하이데른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하나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을 이렇게…… 그것도 자칫 잘못하면 양쪽 다 반발력으로 수백 km의 대지와 함께 소멸해 버릴 수도 있는 미친 짓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완성시키다니…… 솔직히 육체 개조에 관해서는 너무 대단한 나머지 질투조차 나질 않는군요. 도대체 누굽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병기를 만들어 낸 미치광이가?”
“그건 녀석이랑 직접 얘기해 봐. 거기 있으니까.”
윤수호는 타이탄의 발 근처에 널브러진 알카라트의 시신을 눈짓으로 가리키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마법사의 탐구심은 자신의 관심 밖이었으니까.
알카라트의 시신을 발견한 하이데른의 눈이 반짝였다.
죽음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골렘들을 정리한 뒤, 윤수호가 나눠 준 포션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북미 연합군.
휴식을 취하면서도 경계심을 놓지 않고 있던 군인들은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자 잔뜩 긴장하다 상대가 윤수호인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했다.
“수고가 많습니다.”
“덕분에 살아서 수고도 할 수 있는 거죠. 따라오십쇼. 총사령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윤수호가 지나가자 쉬고 있던 군인들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자꾸 말리는데도 소용없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감사는 통제하기 힘든 법이었으니까.
“사령관님. 윤수호 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 어서 드시라 하게.”
윤수호가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마크와 레이첼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윤수호 씨. 확인하신다던 일은 잘 마무리되셨나요?”
“덕분에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휴, 감사라뇨. 그런 말씀 마세요. 당신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만 몇 명인데……. 저희야말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레이첼은 한국식으로 깊이 허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고 마크와 막사 안에 있던 다른 지휘관들도 그녀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윤수호는 그들에게 있어 단순히 생명의 은인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람이 와 주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군인들은 물론이고 미국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겠지. 어쩌면 이 나라가 사라졌을 수도…….’
생명이 아니라 구국의 영웅…… 지금 그게 이들이 생각하는 윤수호의 입지였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포션은 넉넉하던가요? 더 필요하면 말씀하십쇼. 재고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 그런가요? 사실 나중을 생각해서 좀 더 여유 분량을 구비하고 싶은데 말씀드리기가 힘들어서……. 귀한 물건이잖아요.”
“상관없습니다. 저야 돈 받고 파는 상품이니까요.”
‘애초에 엘릭서 같은 중요한 포션들은 따로 빼 두기도 했고.’
하이데른의 아공간 창고에 바닷가의 모래알인 양 굴러다니는 것들이 하급 포션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하급 포션조차 개당 100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으니…….
그야말로 돈을 쓸어담는 걸 넘어서 쏟아붓는 지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물어보십쇼.”
“요 근래 중국에서 있었던 십회의 난이나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기예프 암살 사건 등, 저희는 이 사건들의 흑막이 어쩌면 급변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요. 그런데 오늘, 윤수호 씨를 만나게 되었고 저희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저희가 비약한 걸까요?”
“아뇨, 잘 찾아오셨습니다.”
“……!”
사람들의 표정이 벙벙해지자 윤수호는 오히려 고개를 슬쩍 갸웃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는데 반응들이 왜 그러시죠?”
“아, 아뇨. 정말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실 줄은 몰라서…….”
“딱히 숨길 일은 아니니까요. 이제 와서 숨길 이유도 없고.”
윤수호의 미소에 레이첼의 심장이 차게 식었다.
‘이 사람…….’
눈앞의 남자는 자신의 발언이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만큼 순진한 사람인가?
레이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세계가 뒤집어질 만한 사실을 인정하고도 태연하게 미소를 그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몰랐다면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겠지. 전 세계를 적으로 두고 싶지 않은 이상, 그런 짓을 순순히 시인할 인간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윤수호의 전투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고, 그를 따르는 권속들 역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나하나가 천재지변에 가까운 존재들이 그를 향해 무릎 꿇는 모습을…….
그는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세우더라도 괜찮기 때문에 미소를 그린 게 아니었다.
‘전 세계가 미치지 않은 이상, 자신을 적으로 판단할 리 없다는 확신이 있는 거지.’
세계가 종말을 바라지 않는 이상…….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