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괜찮습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빛줄기만으로도 놀라서 까무러칠 지경인데, 그 안에서 나타난 남자가 자신에게 괜찮으냐고 묻자, 레이첼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 네 그런데…….”
레이첼은 놀란 시선으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그가 손을 뻗어 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중형 골렘의 주먹이었다.
골렘들 중에 크기를 비교하자면 중형에 속한다는 것이지, 중형 골렘들조차 아파트 4층 높이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푸식, 푸시식!
그러나 골렘이 아무리 증기를 뿜으며 동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도 윤수호의 손바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누구시죠?”
“자기소개는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지금은 치워야 할 쓰레기들이 많은 것 같으니까.”
콰아아앙!
윤수호가 손바닥을 통해 골렘의 몸속으로 공력을 침투시켰다.
침투한 공력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더니 이내 급격하게 폭발하며 골렘을 내부에서 터트려 버렸다.
그러자 골렘 내부에 존재하던 핵이 망가지면서 골렘은 더 이상 재생하지 못했다.
윤수호가 크게 외쳤다.
“골렘의 약점은 핵입니다! 핵을 부수면 골렘은 재생할 수 없을 겁니다!”
“핵을 어떻게 찾죠?”
“골렘의 핵은 에너지 융합체입니다. 에너지가 응축된 기관이라 항상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쏟아 내죠. 그러니 기감에 민감한 자들은 집중하면 핵의 위치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설령 기감에 둔감한 자들이라도 핵에 접근하면 눈치챌 가능성이 높고요.”
“다들 들었지!”
우오오오오오오오!
레이첼이 외쳐 묻자 대원들이 함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원들은 곧장 포지션을 재편했다. 기감이 뛰어난 대원들을 보호하는 포지션으로 배치를 변경하고 기감이 뛰어난 자들은 오로지 핵의 위치를 찾는 일에만 집중했다.
‘제발, 제발 어디 있냐……!’
우우우웅……!
“차, 찾았다! 왼쪽 가슴! 왼쪽 가슴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왼쪽 가슴이다! 거기를 집중 공략해!”
난전에서는 기감을 파악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불가능했지만, 이렇듯 동료들을 믿고 오로지 핵의 위치만 파악하기 위해 기감을 집중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성공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핵의 위치를 찾고 나면 남은 대원들은 오로지 핵을 부수기 위해 힘을 집중했다.
몇 명이 골렘의 주의를 끌어 공격을 흘리고 나면, 오러의 위력이 뛰어난 나머지 대원들이 몸을 날려 공격했다.
콰아아앙!
“크윽! 뭐야? 다른 부위보다 유난히 더 단단한데!”
“그러니까 정답이란 뜻이지?”
“쉬지 말고 공격해!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폭음과 함께 왼쪽 가슴을 뒤덮은 바위 덩어리가 부서지긴 했지만 크게 타격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부위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다 보니 어느새 가슴을 뒤덮고 있던 바위가 부서지면서 내부가 드러났다.
“저, 저건!”
“핵이다!”
“타압!”
콰아아앙!
기합과 함께 오러를 잔뜩 머금은 창을 내질러 핵을 꿰뚫자 골렘의 안광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놈의 육중한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처음으로 중형 골렘을 쓰러트린 것이다!
“돼, 됐다……!”
“골렘을 쓰러트렸다!”
골렘을 쓰러트리는 팀원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자 한풀 꺾였던 대원들의 사기가 다시 가파르게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숙련도가 오르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 기감에 둔감한 대원들조차 대충 핵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역기 여기 있었구나!”
콰작!
처음에는 열 명이 한 기의 중형 골렘을 상대해야 했다면, 지금은 일곱 명만 있어도 여유롭게 골렘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이들에게 유리해졌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중형 골렘들은 차고 넘쳤고, 그보다 많은 3m 크기의 소형 골렘들이 군세를 이뤄 북미 연합군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러서지 마! 공략법을 알아냈으니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소형 골렘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중형 골렘들을 집중해서 쓰러트려!”
전장 한복판에서 레이첼이 사자처럼 소리쳤다.
그녀는 홀로 소형 골렘의 군세를 감당하면서 다른 대원들이 중형 골렘을 안전하게 공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소형 골렘 역시 핵을 부수면 중형 골렘처럼 작동을 멈추고 쓰러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위력적인 면에서는 중형 골렘보다 약했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가볍게 1천 기가 넘어가는 소형 골렘들을 상대로 혼자서 핵을 감지하고, 혼자서 그것을 깨부수며 전장을 빠르게 이동한다는 건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첼은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 사명을 이행하고 있었다. 과도한 오러 사용에 내상을 입고 핏물이 역류해도 억지로 삼키며 둔해지는 다리를 채찍질했다.
사실 그녀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소형 골렘들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그녀의 시선이 슬쩍 중형 골렘 무리의 너머로 향했다.
건물 8층 높이를 자랑하는 대형 골렘들은 아직까지 움직이지도 않은 상황이고, 무엇보다 놈들을 통솔하는 알카라트의 대장기가 여전히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는?’
순간, 레이첼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윤수호의 존재를 눈치채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 * *
레이첼이 윤수호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윤수호는 중형 골렘과 소형 골렘 무리들을 가볍게 뛰어넘어 본대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싸우고 있군.’
윤수호는 안도의 미소를 그렸다. 처음 걱정과 달리 북미 연합군은 자신이 가르쳐 준 공략법을 제대로 실천하며 중형 골렘들을 쓰러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구심점을 레이첼이 잡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다. 그 말인즉, 레이첼이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저 상황은 크게 악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그가 중형 이하의 골렘들을 북미 연합군에 맡기고 이곳을 찾은 건 대형 골렘 이상부터는 연합군들이 용을 써도 쓰러트리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레이첼까지 가담한다면 어찌어찌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대형 골렘들의 숫자도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아마 레이첼이 필사적으로 세 기 정도를 쓰러트린다고 해도…… 그땐 이미 북미 연합군은 전멸한 상황이겠지.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알카라트도 공연을 즐기는 것인 양 여유롭게 관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인간 한 명이 주제도 모르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 알카라트의 입장에선 기가 찰 수밖에.
-뭐냐, 네놈은? 신종 자살 희망자인가?
“자아를 가진 골렘도 있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고. 설마 안에 누가 탑승하고 있는 건가?”
-허허, 참…….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구나.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죽으러 온 게냐? 그 정성을 갸륵히 여겨 죽기 전에 가르쳐 주도록 하마. 이 몸은 고금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골렘 마이스터, 알카라트 님이시다. 그런데 방금 전에 전장에 떨어진 수상한 빛줄기가 혹시 네놈과 관련이 있는 것이더냐?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네.”
-뭐라? 크크크큭!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받아치는 윤수호의 대꾸에 알카라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 웃음은 기쁨이나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불쾌함과 짜증이 잔뜩 섞여 있는 웃음이었다.
-재미있는 놈이로구나. 골렘의 발밑에서 몸뚱이가 으깨져 가는 와중에도 그딴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한 번 볼까?
명령이 내려지자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대형 골렘이 안광을 번뜩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쌍한 네놈에게 미리 경고해 주마. 혹시라도 이놈들이 앞에 있는 장난감 병정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착각한다면 네놈은 1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대형 골렘들은 알카라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들이었다.
소형 골렘이 축소된 핵 하나, 중형 골렘이 일반 핵 하나를 사용한다면 대형 골렘은 일반 핵을 무려 다섯 개나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만큼 출력 면에서 중형 골렘들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출력을 완벽하게 감당할 수 있는 골렘의 소재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중형 이하의 골렘들이 금속과 석재를 가공하여 만든 강화 석재들이었으면 대형 골렘 이상은 금속과 미스릴 등을 섞어 만든 마법 합금이었던 것이다.
그 강도는 중형 골렘의 무려 30배.
이론상 대형 골렘의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중형 골렘이 얼마나 있든 대형 골렘 한 기로 감당이 가능할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콰앙!
땅을 박찬 16m 크기의 골렘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윤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쒜엑!
떨어져 내리는 주먹은 말 그대로 바위 그 자체였다. 주먹 하나로 윤수호의 몸을 흔적도 없이 뭉개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위압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알카라트는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설령 운이 하늘에 닿아 그 공격을 피하고 핵을 찾아 반격해도 소용없느니라. 대형 골렘들은 핵이 하나만 남아 있어도 다른 핵들을 순식간에 복구시키니까. 사실상 네놈 같은 미물들이 내 최강의 골렘들을 쓰러트릴 가능성은 만에 하나라도 존재하지…….’
콰아아아아아앙!
-……!
알카라트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선에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는 대형 골렘 한 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굳이 귀찮게 뭐 하러 핵을 찾아. 그냥 박살 내면 그만인데.”
마치 알카라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중얼거린 윤수호가 이번에도 자신을 향해 들어 올린 발을 내려찍는 골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앙!
8층짜리 건물에 비견되는 골렘의 진각과 골렘에 비하면 벌레보다 작은 사람의 주먹.
겉보기에는 당연히 사람이 흔적도 없이 짓밟힐 것 같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먹보다 작은 조각이 되어 우수수 떨어져 내린 쪽은 다름 아닌 대형 골렘이었다.
퓻.
대형 골렘은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지만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윤수호를 발견하기 위해 탐색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그렇게 발견한 윤수호의 위치는 바로 자신의 가슴팍 앞이었다.
쩌엉!
이번엔 권이 아닌 장을 지른 윤수호.
그러자 골렘의 내부에서 충격파가 방사형으로 퍼졌다. 충격파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바위를 던진 것 같은 파문이 겹겹이 발생시켜 골렘을 완전히 분해하였다.
충격파에 그대로 노출된 핵들이 전부 완파된 것은 말 할 것도 없었다.
-이이……!
알카라트는 노기 가득한 두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본래라면 골렘들이 윤수호를 가지고 놀다 처참히 죽여야 정상이었는데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콰아앙!
윤수호의 일 권이, 일 장이, 일 각이 작렬할 때마다 알카라트의 역작들이 우르를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피해도 주지 못하고 전멸해 버린 대형 골렘들의 잔해가 윤수호의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하아…….
알카라트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마음을 다스리더니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대형 골렘들이 전멸한 건 뼈아픈 손실이긴 했으나 만회가 불가능한 손실은 아니었다. 부서지고 고장 난 것들은 얼마든지 이 세계에서 충당하면 그뿐이다.
게다가 이 세계의 지식과 과학력을 이용하면 이전보다 훨씬 강한 골렘들을 창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 치워야 할 걸림돌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네놈은 지금 큰 실수를 한 게야. 차라리 숨 죽여 숨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 알량한 재주만 믿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이 그 운명을 앞당겨…….
“시끄럽네.”
푸욱.
-……어?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