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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161화 (161/175)

161.

미국 애리조나주 북부에 위치한 그랜드캐니언.

위대한 자연의 웅장함과 시간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이곳에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현재 던전 공략팀의 진입 후 경과 시간은?”

“49시간 54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걸리는 모양이네. 그만큼 이번 던전은 난이도가 높다는 뜻인가?”

경과 시간을 확인한 미국의 톱텐, 레이첼 죠한슨이 애써 담담하게 감상을 표현했다.

미국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1차 던전 출현 당시, 던전 안으로 탐사대만 보내 조사를 실시한 나라 중에 한 곳이었다.

당연히 탐사대는 전멸하였고 그 탓에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출현하긴 했지만 큰 피해는 입지 않고 토벌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 자체 개발 중인 무기에 더해 톱텐 중 무려 두 명이 미국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톱텐과 막강한 화력을 겸비한 덕분에 큰 피해 없이 토벌에 성공한 미국이었지만 오히려 아쉬움이 남았다.

그 이유는 러시아에 있었다.

알렉산드로가 던전을 공략. 던전에서 획득한 수많은 아이템들을 보고받은 미국 정부는 뒤늦게 자신들도 던전을 들어가서 공략하지 않은 걸 후회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2차 던전이 출현했다.

미국 입장에서 이번 2차 던전은 큰 위기였지만 동시에 큰 기회이기도 하였다.

이번만큼은 허무하게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어차피 토벌해야 할 던전이라면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 먹겠다는 게 미국 정부의 확고한 판단이었다.

다만 톱텐 두 명을 모두 던전 안으로 투입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여당은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톱텐 중 한 명은 대기시키자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으나, 야당은 던전의 공략 성공률을 높이고 피해는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당의 의견이 채택되었고 회의를 마친 끝에 레이첼이 남게 되었지만 미국 정부는 자신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피해를 극심하게 입었다지만 미국은 여력이 꽤나 남아 있었고 심지어 지금의 전력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또 다른 톱텐, 제럴드 F. 바이퍼를 필두로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 던전에 투입되었다.

투입된 전력은 1차 던전에서 출현한 몬스터들을 토벌하고도 남을 만큼 막강한 전력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산출한 예상 공략 시간은 대략 최소 18시간에서 최장 30시간 사이였다.

그런데 현재…… 48시간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공략이 끝나지 않았으니 대기 중인 병력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솔직히 이틀이나 지났으면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지 않나?”

“설마 공략팀이 실패한 건…….”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뒈지기 싫으면.”

대기 중인 대원들 사이에서도 분위기가 술렁거리며 안 좋은 얘기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휘관들은 군법을 운운하며 안 좋은 분위기를 애써 가라앉히려 노력했으나…….

“병사들 사이에 분위기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어찌어찌 수습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공략팀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세 시간만 더 기다려 보도록 하지. 세 시간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공략팀은 전멸한 것으로 판단하고 대기 상황 종료 선언 후 전시 태세로 돌입하겠다.”

“예!”

현장 책임을 맡은 총사령관, 마크 맥아담스 중장은 명령을 내려 둔 후에 포털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대기 중인 레이첼을 찾았다.

“여기 계셨군요, 미스 마벨러스.”

“위험한 데 여기까진 뭐 하러 오셨어요, 장군.”

마크는 미국 국민들이 그녀를 부르는 애칭을 사용하여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하하하! 이 전장에서 위험하지 않은 곳이 있긴 하답니까. 그나저나 마벨러스가 보기엔 어떻습니까? 단순히 공략이 길어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병사들이 그 일로 동요가 심한 모양이더군요.”

“부정은 않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요?”

레이첼이 묻자 마크는 무거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면 지금 당장 전투를 준비했을 거예요. 공략팀의 전력은 강하지만 그 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20시간이 최대니까요. 최장 공략 시간을 30시간까지 계산하긴 했지만 그건 만의 하나 심각한 변수가 생겼을 때를 포함한 시간이고. 솔직히 지금까지 공략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레이첼이 눈을 반개하자 마크는 대충 그녀의 뒷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의견 감사합니다.”

레이첼은 여전히 변화 없는 포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멍청이 제럴드! 얼른 나오란 말이야. 한나와 키티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아! 알면 지금이라도 당장 튀어나오라고!’

그런데!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이런……!”

팟!

포털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며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

번쩍!

당황하는 마크를 레이첼이 안아 몸을 날림과 동시에 포털에서 엄청난 광량이 터져 나왔다.

“후퇴하라! 전원 후퇴해!”

“크악!”

“너무 눈부셔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거리가 몇 km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던전에서 터져 나온 빛은 집결해 있던 미국군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빛에 삼켜졌던 절반의 병력들도 함께 증발하였다.

“오, 올리버!”

“빌리! 어디 있어! 들리면 대답해!”

“니콜! 젠장, 제발 좀 대답하라고!”

한 순간에 동료들을 잃은 병사들은 좀처럼 정신 차리지 못하고 동료들의 이름을 애타게 외쳐 불렀지만 죽은 동료들이 대답할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살아남은 그들에게는 아직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정신 차려! 적들이 출현했다! 언제까지 애송이들처럼 울고만 있을 건가!”

지휘관들의 호통으로 간신히 정신을 차린 병사들. 하나 슬픔 뒤에 그들을 찾아온 감정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뭐, 뭐야, 저것들은!”

“신이시여……!”

첫 감상은 일단 다른 걸 제쳐 두고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모르고 봤다면 그랜드캐니언에 별안간 벽이 생겼다고 착각했을 만큼 그것들은 거대했다.

그리고 단단해 보였다.

생물이라고 보기 힘든 녀석들의 모습은 하나의 거대한 조각상 같았다. 물론 그 소재는 바위부터 철, 심지어 꿀렁거리는 액체까지 다양했다.

그 가운데 가장 레이첼의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가 있었으니…….

거상들의 최후방에 있으면서도 그것들 중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형체를 가진 석상이었다.

레이첼은 어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조카가 보던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저런 걸 본 것 같긴 한데…….”

설마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거대 로봇과 직접 싸우게 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드디어…… 드디어 이 몸이…… 천재 골렘 마이스터 알카라트 님께서 부활하셨도다! 크하하하하!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학회 놈들. 언젠가 반드시 찾아가 네놈들의 머리통을 부숴 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이 세계의 지식들을 남김없이 흡수해야겠지만 말이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친놈이란 것 하나는 확실하네.”

가장 후미에 위치한 거대 로봇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언어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레이첼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목소리에 담겨 협곡에 울려 퍼지는 광기만 보더라도 굉장히 위험한 놈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어디 현세에서도 제대로 기능을 다 발휘하는지 성능 테스트부터 해 봐야겠군. 가거라, 나의 골렘들아. 저 연약한 피육을 가진 벌레들을 짓밟아 뭉개 주어라.

주인의 명령을 받은 골렘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벽이 움직이는 것처럼, 일렬로 늘어선 수백 대의 거대 골렘들과 그보다 작은 수천 대의 소형 골렘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공격!”

“적을 섬멸하라!”

그에 맞서 미군 특무대도 지지 않고 공격을 개시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특히 세팅된 좌표를 따라 현대 화력을 퍼붓는 융단 폭격 세례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거리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 위력에 제대로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재앙종들이나 던전 몬스터들과는 달리 표적이 거대하고 움직임이 굼뜨다는 사실도 크게 한몫했다.

“이 정도면……!”

병사들은 무려 5분 가까이 쏟아진 폭격에 희망을 가지며 정면을 주시하였다.

이 정도 화력이라면 아무리 못 해도 적들의 1/3은 충분히 쓰러트렸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화르륵…… 화륵!

화마의 벽을 뚫고 나온 골렘 부대의 모습에 병사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1/3은커녕 대다수의 골렘들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들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조금 파손된 소형 골렘들조차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빠르게 수복되는 모습은 병사들을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때였다.

팟.

“처음부터 이럴 거라고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잖아. 설마 유서도 안 쓰고 여기 있는 멍청이들은 없겠지?”

전군의 선두에 내려 선 레이첼이 등에 빗겨 메고 있던 투 핸드 소드를 꺼내 들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흔들림 없는 그녀의 강한 외침은 두려움에 빠져 있던 병사들에게 약간이나마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가자! 여기가 오늘 우리가 죽을 전장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레이첼이 선두로 튀어나가자 다른 병사들 역시 무기를 꼬나 쥐며 그녀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갔다.

곧, 한 지점에서 충돌을 코앞에 둔 레이첼이 블레이드에 오러를 압축한 후 강하게 횡으로 휘둘렀다.

“타압!”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과연 톱텐이라고 해야 할까?

미스틱 오러를 발출하며 정면을 긋자 궤적을 따라 일어난 폭발이 골렘들을 집어 삼켰다.

융단 폭격의 화력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위력에 소형 골렘들이 박살 나고 중형 골렘들조차 파손되며 조금 뒤로 물러날 정도였으니…….

뒤따르던 병사들의 기세가 오르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레이첼의 표정은 딱딱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다!’

처음부터 진심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고 골렘들을 완전히 부숴 버릴 생각으로 오러를 발출했다.

그러나 부서진 건 소형 골렘 수십 체가 전부. 그마저도 빠르게 자가 수복을 시작했고 파손이 덜한 중형 골렘 중에는 벌써 완전 수복을 마친 개체들마저 있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방어력과 재생력!

“간다!”

“빌어먹을 로봇들을 깨부숴 버려!”

그때쯤 뒤따라 온 병사들 역시 골렘들에게 부딪혔다.

콰콰콰콰콰쾅……!

첫 충돌에서는 병사들이 의외로 골렘들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파워 슈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워 슈트란 미국에서 자체 개발한 대(對)재앙종 섬멸용 서포트 키트였다.

가볍고 단단한 특수 합금에 에너지 전도율이 높은 재앙종의 소체를 사용하여 재앙종의 핵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파워 슈트.

일반인도 초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최강의 무기를 특무대원들이 사용하자 하급 알터들조차 중급 알터에 필적하는 전투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파워 슈트가 보급되고 난 이후로 미국 특무대의 사상자 숫자가 급격하게 감소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만큼 처음에는 파워 슈트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하던 자들도 이제는 파워 슈트에 믿고 자신의 목숨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호오~ 꽤 재미있는 장난감을 쓰는구나?

그러나 알카라트는 미군 특무대가 착용한 파워 슈트에 묘한 흥미를 보였을지언정 크게 당황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크윽……!”

“무슨 힘이……!”

“뭐야, 이것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잖아! 이건 반칙이라고!”

파워 슈트로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아주 잠깐뿐. 골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파워 슈트로 강화된 알터들의 힘과 스피드를 골렘들은 아주 가볍게 농락하며 그들을 짓밟았던 것이다.

‘젠장! 이럴 때 제럴드만 옆에 있었어도……!’

레이첼은 제럴드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이럴 때 함께 있었다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두렵고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으아아아아아아!”

쓰러져 가는 동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레이첼의 입에서 악에 받친 악다구니가 터져 나왔다.

‘신이시여, 제발 이 나라를…… 이 세상을 굽어살피소서!’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번쩍!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빛이 전장으로 내리꽂혔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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