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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160화 (160/175)

160.

“후회하지 않아요? 애초에 처음 계획했던 대로 동부 전선으로 이동했다면 이런 비참한 결말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어디로 가면 저걸 피할 수 있는데요?”

란슬롯의 질문에 알베르토는 피식 웃으며 하늘에 떠 있는 붉은 창을 가리켰다.

악전고투 끝에 란슬롯과 함께 아이젠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붉은 창.

원근감의 법칙을 무시하듯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거대한 창의 진짜 무서움은 바로 그 기운에 있었다.

주변 하늘을 붉게 물들인 붉은 창 주변으로 넘쳐흐르는 마력이 붉은 뇌전이 되어 세차게 방류되었다.

란슬롯의 시선도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 덜덜 떨리는 손은 각오와 함께 주먹을 굳게 틀어쥐어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것이 지상으로 떨어지는 순간, 자신들의 운명도 그걸로 끝이겠지.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괴물이 이 땅에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디로 도망간들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떠는 시간만 길어질 뿐.”

“그건 저랑 비슷한 생각이네요. 차라리 그 사람의 말처럼 여기서 후회 없이 싸우다 죽었다는 사실에 전 만족합니다. 그 결과, 우리 조국과 이 땅을 지킬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란슬롯이 말한 그 사람이란 대명사에 알베르토도 윤수호를 떠올리며 작은 희망을 품고 말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 사람이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렇게 되길 바라야죠.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역시 그 사람이 지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는 거고요.”

그 순간, 창이 하늘에서 섬전처럼 떨어져 내렸다.

* * *

소리가 사라졌다. 빛도 사라졌다. 한 줄기 붉은 창이 하늘을 꿰뚫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 바토리는 이 나라와 함께 윤수호도 사라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야…….”

그럼 대체 저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럴 순 없어…….”

바토리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얼굴을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고 새하얀 얼굴은 파랗게 질려 현실을 부정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비명을 토하듯 울부짖는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대국가 소멸용 흑마법, 디스인티그레이션은 완벽하게 윤수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절망적인 힘 앞에 존재할 수 있는 건 설령 신이라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바토리는 굳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파지직, 파직!

윤수호의 손에 잡힌 재앙의 창은 미친 듯이 마력의 분류를 쏟아 내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윤수호의 손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윤수호는 자신이 잡고 있는 창을 가만히 쳐다보다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이 정도면 쓸 만하겠군.”

“무, 무슨…….”

그 뒤에 윤수호가 보여 준 행동은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했다.

디스인티그레이션을 오히려 잡아당기더니 거대한 창대를 한 손으로 쥐고는 역으로 바토리를 향해 겨누는 것이 아니겠는가?

“돌려주지.”

“……!”

콰릉!

윤수호는 짧은 인사와 함께 쥐고 있던 창을 투척했다.

기존에 흘러넘치던 마력에 선기를 둘러 더욱 더 강화시킨 재앙의 창은 천지를 찢어발길 듯 우렁찬 벽력을 터트리며 공간을 꿰뚫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창도…… 그리고 바토리의 모습도…….

대신 남아 있는 건 창이 날아간 궤적을 따라 미친 듯이 방전하고 있는 마력의 뇌전과 뻥 뚫린 구름 너머로 맑게 갠 밤하늘뿐이었다.

“이건 뭐,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구먼. 아쉽구먼, 아쉬워. 위대한 마스터의 손에 걸린 이상 당연한 결과라곤 해도 시체가 남아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선배 말은 마스터께서 크게 잘못했다는 소리지? 당장 말씀드려야지!”

“허허허! 거듭 얘기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관심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게. 내 후배님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윤수호가 소멸한 바토리의 영혼을 천부의 율령으로 회수하는 사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혼을 회수한 윤수호가 고개를 돌려 두 존재를 바라보자 하이데른과 이카루스가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고 주인에게 부복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아프라키 수단에 출현한 몬스터들을 완전히 퇴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스터께 도움이 될 만한 재미있는 인형도 건질 수 있었지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히드라를 이용해 자신이 만든 새로운 언데드를 윤수호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고생했다. 인형은 다음에 보도록 하지.”

그러나 돌아온 대답에 이내 시무룩해진 하이데른의 고개가 축 처지자 옆에 있던 이카루스가 소리 죽여 키득거렸다.

윤수호는 두 권속과 함께 연합군이 싸우던 장소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부상당한 연합군이 쉬고 있었다.

그들은 돌아온 윤수호와 두 권속을 바라보며 극도의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이런 미친……! 저 괴물만으로도 답이 안 나오는데 다른 두 녀석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같이 있는 둘도 방금 저자가 싸웠던 괴물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존재감이다.’

하이데른은 체격만 이질적일 뿐 겉모습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카루스는 그렇지 않다.

하나 폴리모프 마법으로 변신한 이카루스의 모습은 블랙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인간 여성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알베르토와 란슬롯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윤수호의 뒤를 따르는 저 두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란슬롯과 알베르토는 마른침을 삼키며 윤수호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 모두 그가 마음만 먹으면 연합군 정도는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윤수호입니다.”

알베르토가 이름을 몰라 머뭇거리자 윤수호가 짧게 대답했다. 그에 란슬롯이 놀라 물었다.

“윤수호? 혹시 한국인이십니까?”

“제가 한국인이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아,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 이만한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 정도의 능력자라면 싫어도 전 세계가 알게 될 테니까요.”

“거기까지 사정을 설명할 의무는 없을 것 같군요.”

윤수호의 딱딱한 대꾸에 두 사람의 분위기가 조금 침체되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상대의 눈 밖에 난 자신들이 아닌가? 상대방의 능력을 생각하면 솔직히 과장 좀 보태서 거슬린다고 죽이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천만다행이었다.

이곳은 전장. 죽은 이유보다 살아남은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운 곳이었으니까.

“하이데른.”

“예, 마스터.”

윤수호의 의중을 눈치챈 하이데른이 값싼 회복 포션들을 바닥에 쏟아 냈다.

값이 싼 대신 수량이 많았기에 아주 조금만 풀어놨다고 해도 쌓아 놓고 보니 그 양이 컨테이너 네다섯 개는 가볍게 채울 수 있는 분량이었다.

“이, 이건…….”

“회복 포션입니다. 부상자들에게 복용시키면 부상을 회복하는 데 꽤나 도움이 될 겁니다.”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세상에……!”

러시아를 통해 알게 된 아이템의 존재는 세상을 뒤흔들었다.

일반 사람들도 아이템만 사용하면 경우에 따라 알터 이상의 능력을 쓸 수 있었고, 포션 같은 경우는 현대 의학으로 흉내조차 불가능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가치는 그야말로 측정불가.

‘러시아 암시장에서 도는 최하급 회복 포션만 해도 그 가격이 100만 원을 가볍게 웃도는데…… 그럼 지금 내 눈앞에 쌓인 포션들은 대체……?’

“혹시 던전을 공략하신 겁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여러분이 제게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했단 사실입니다.”

딱.

윤수호가 손가락을 튀기자 하이데른은 쓰러진 독일군에게 걸려 있던 세뇌를 단숨에 풀어 버렸다.

아무리 바토리의 세뇌가 강력한 흑마법이라 하더라도 흑마법사들의 최정점인 하이데른이 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으윽……! 여기가 대체……?”

“아이젠!”

“알베르토? 란슬롯? 두 사람이 왜 여기에…….”

정신을 차린 톱텐 동료의 모습에 알베르토와 란슬롯은 진심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내가 어떻게 된 겁니까? 전 분명 포털에서 출현한 흡혈귀들과 싸우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얘기하자면 길어요. 그보다 당신이 먼저 인사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인사해야 할 사람?”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젠에게 알베르토는 윤수호를 소개해 주려다 당황했다.

“어라? 어디 가셨지?”

“회복과 복구에 집중하라는 말씀만 남기시고는 방금 전에 하늘로 날아가셨어요.”

“네? 그게 진짭니까?”

“……?”

알베르토는 영문을 모르는 아이젠에게 그가 세뇌당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특히 그는 윤수호에 관련된 일들에 관해서는 좀처럼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 설마요…….”

“그럼 저와 검성이 여기서 당신과 얘기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하고요? 윤수호 경, 그분이 아니셨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독일이 아니라 저승이었을 겁니다.”

“아니 그 정도로 강하신 분이 한국에 있었다면서 왜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던 겁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란슬롯이 했다.

“이제부터 그걸 알아봐야죠. 아무튼 그분의 등장으로 세계의 정세가 변할 겁니다. 지금부터는 더더욱 한 명, 한 명의 강한 능력자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 그런 세상에서 윤수호라는 인지를 초월한 강함을 가진 존재의 출현은 분명 큰 영향력을 미칠 테니까요.”

“게다가 윤수호 경뿐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따르던 다른 두 명의 존재. 인간이 아닌 건 확실해 보였지만 윤수호 경에게 절대 복종하는 그 존재들의 능력도 결코 흡혈귀들의 여왕 못지않았으니까요.”

“그만한 전력이 한국에 집약되어 있는 겁니까?”

“그렇게 되겠죠.”

“…….”

세 명의 톱텐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한 전력이 인류의 편이라는 사실은 가슴이 벅차도록 든든했다. 하지만 이 사태가 진정되고 그만한 전력이 칼끝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면?

자신들은 그 칼끝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다.

“지금 다들 하는 생각은 비슷한 것 같은데 지금은 일단 쓸데없는 생각을 접어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베르토 경의 말씀에 찬성입니다. 여기서 고민하고 있는 것만으론 답이 안 나오니까요.”

“그나마 윤수호 경이 남기고 간 포션 덕분에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의 위기를 넘긴 대원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고요.”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 포션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인간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능력도, 기부도.”

그때였다. 세 사람의 분위기가 정리되는 듯 보이자 옆에서 망설이고 있던 지휘관 한 명이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기…….”

“무슨 일이죠?”

“윤수호 경께서 이걸 세 분께 잊어버리지 말고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

세 사람이 받아 든 것은 포션의 대금 청구서였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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