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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158화 (158/175)

158.

지금 이 상황에 놀란 사람은 쟝, 안나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

촤악!

독일 프렌체르 호숫가에 위치한 어느 고성.

젊은 여성들의 피를 욕조에 받아 목욕을 즐기고 있던 바토리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탓에 붉게 흐르는 핏물 안쪽으로 예술가가 빚은 듯 아름답지만 도자기처럼 창백한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마담?”

“무슨 문제라도? 여인의 피가 모자라시다면 서둘러 공수해 오겠습니다.”

바토리는 그딴 것에 신경 쓸 여유도, 권속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지도 않았다.

“너희들은 느끼지 못했느냐?”

“느끼다니요? 대체 무엇을…….”

영문을 모르는 권속들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바토리가 욕조에서 뛰쳐나왔다. 그러자 수많은 박쥐 떼가 그녀를 에워싸더니 순식간에 붉은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벌컥!

바토리가 손짓하자 창문이 열리며 그녀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마치 박쥐로 만들어진 양탄자처럼 박쥐 떼가 모여 그녀를 태운 뒤 날았다.

“이게 대체…….”

바토리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었다. 독일 전역에서 권속들의 죽은 영혼이 한곳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곳을 향해 박쥐 떼를 움직였다. 뒤늦게 그녀를 따라나선 측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서둘러 뒤를 쫓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독일 어느 마을의 상공.

한 남자가 손바닥 위에 하얀 구체를 둥둥 띄우고 있었는데 권속들의 영혼이 바로 그 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바토리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표독스럽게 윤수호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에 윤수호는 입꼬리를 가볍게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보면 모르나? 내 권속 중에 영혼 수집이 취미인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 이 악령들을 이대로 성불시켜 주는 건 너무 자비로운 처사라 대신 선물 좀 해 주려고.”

“주제도 모르고 불손한 놈이구나. 마담, 제가 가서 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산 채로 데려와라. 놈의 얼굴 가죽부터 천천히 벗겨 내면서 고통을 음미할 것이다.”

허락을 구한 바토리의 측근 페론이 박쥐의 날개를 활짝 펼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력한 흡혈귀들 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하이 뱀파이어들만이 바토리를 측근에서 받들 수 있었다.

당연히 페론이라면 흡혈귀 중에서도 강자 축에 속하는 서른 마리의 흡혈귀 정도는 가뿐하게 상대가 가능한…….

콱!

“커헉……!”

빠각.

윤수호는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그 끝에 모습을 드러낸 페론의 모가지가 잡혀 있었다.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는 순간 페론의 모가지가 꺾이며 그의 몸뚱이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불과 0.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페론의 동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막말로 페론이 일부러 자살하기 위해서 적과 합을 맞춘 게 아니라면 이런 상황은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이, 페론. 너 지금 장난치는 거지?”

“뭐 하는 거냐? 재미없으니까 그만둬.”

동료들이 말을 건넸지만 페론은 미동도 없었다. 페론 정도의 하이 뱀파이어가 고작 목뼈 좀 부러진 것 가지고 목숨을 잃는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순수 미스릴제 무기로 심장을 관통당하든가, 태양빛에 반나절은 노출시켜야 죽을까 말까 한 존재가 바로 하이 뱀파이어였으니까.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페론의 몸에서 끔찍한 비명과 함께 영혼이 추출되더니 윤수호가 들고 있던 하얀 구체에 빨려 들어갔다.

영혼이 빨려 나간 페론은 윤수호가 모가지를 놓아주는 순간, 힘없이 지상으로 자유낙하할 뿐이었다.

“평범한 망령도 거스를 수 없는 게 천부의 율령인데, 죄 많은 악령 따위가 천부의 율령을 거스른다? 재미있겠네.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 봐. 나도 궁금하니까.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 대신 실패하면 이 구슬 속에서 지옥 불에 타는 것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될 테니까 각오는 하고.”

순간 바토리의 측근들은 움찔했다.

방금 전까지 자세히 보지 않아서 간과했는데, 지금 보니 저 구슬 속에서 타오르는 건 새하얀 불길이었다.

그 불길 속에서 아우성치고 몸부림치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망령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윤수호는 그들을 보며 씨익 비웃었다.

“이건 무섭고 너희들 주인은 별로 안 두려운가 봐?”

흠칫!

그제야 바토리의 표정을 확인한 측근들이 현실을 자각했다.

지금 바토리의 표정은 보면 1초 뒤에 자신들의 목이 날아가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놈을 잡아!”

“겁먹지 마라! 죽기 전에 죽이면 그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숫자를 믿었다.

이곳에 모인 하이 뱀파이어들의 숫자는 열.

물론 한 마리가 죽어서 아홉 마리가 되긴 했지만 하이 뱀파이어 아홉 마리면 어지간한 왕국은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가자!”

마력을 잔뜩 끌어 올린 그들이 포문을 열었다.

누군가는 안개가 되어, 누군가는 칼날을 품은 흑풍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는 거대한 맹금류가 되거나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시키며 윤수호에게 쇄도하였다.

콰르릉! 콰쾅!

사방에서 쇄도하는 그들의 공세를 그저 접근하는 것만으로 먹구름이 벼락을 쏟아 내고 일대에 폭풍을 일으킬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러나!

번쩍!

윤수호는 어느새 설을 들고 있던 왼손으로 전방을 베었다.

곡선을 이루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빛의 궤적은 이내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에서 셋이 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윤수호의 주변을 구체처럼 뒤덮기 시작했다.

퍼엉!

그렇게 오직 곡선만으로 이루진 완벽한 구체가 탄생하는 순간, 구체가 폭발하며 수많은 실선들이 천지로 뻗어 나갔다.

“뭐, 뭐야?”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이런 미친……!”

하이 뱀파이어들은 경악했다. 그 수많은 실선들은 하나하나가 검기였다. 문제는 검기의 위력과 성질이었다.

안개로 변한 뱀파이어들에게 통상적인 오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오러가 위력적인들 안개를 베거나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검은 바람으로 변한 뱀파이어들 역시 안심하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촤악!

“크아아아악!”

분명 자신은 바람으로 변했다. 그런데 어떻게 검에 베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들은 되레 면적이 넓어진 탓에 사지가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며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이는 다름 아닌 심검(心劍)의 능력이었다.

안개로 변하건, 바람으로 변하건, 그 주체는 자아를 가진 뱀파이어다. 8등급 귀수산 재앙종처럼 지성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심검이 벨 수 없는 것은 없었다. 그것이 하급 뱀파이어가 됐든, 하이 뱀파이어가 됐든 벨 수 있었다.

다만 첫 심검에서 윤수호가 이들을 살려 둔 이유는 더 큰 공포를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바로 지금 놈들이 보여 주고 있는 표정처럼 말이다.

“끄아아악!”

“실드까지 베어 버린다고?”

“무슨 검기의 위력이……!”

전력을 다해서 마력 보호막을 펼쳤지만 윤수호의 검기는 그런 하이 뱀파이어들의 실드를 두부마냥 베어 버리며 놈들의 사지를 찢어 발겼다.

그렇게 단 한 순간에 아홉 마리의 하이 뱀파이어들이 검기에 찢겨 나가며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천부의 율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래도 예외는 없었던 것 같군. 어때? 그쪽도 시험해볼래?”

“…….”

바토리는 아무 대꾸 없이 차가운 눈동자로 윤수호를 노려보았다.

방금 전까지 보여 주었던 활화산 같은 분노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지금의 바토리는 냉정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묻지 않았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윤수호.”

“네가 원한다면 늙지 않는 육신과 영원한 생명을 줄 수도 있다. 그래, 네가 나의 일족이 된다면 수백 년째 비어 있는 나의 반려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겠지. 너는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바토리는 윤수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아찔한 향기가 뇌를 마비시킨다.

손으로 훑으면 묻어 나올까? 붉은 드래스 사이로, 백옥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피부가 시선을 사로잡고…….

굴곡진 몸매와, 매끄럽게 뻗은 다리는 평생을 수행만 해 온 수도사들의 이성조차 단숨에 날려 버리기 충분했다.

매혹.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유혹의 힘이야말로 바토리의 가장 큰 권능이었다.

“어때?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구나 원하는 거잖아. 늙지 않는 육체와 영원한 생명. 그리고 이 몸. 이 손을 잡기만 하면 그 모든 게 네 것이 되느니라.”

바토리는 확신했다.

여성을 상대로도 절대적인 효과를 자랑하는 자신의 권능이었지만, 상대가 남성이라면 그 효력은 절대적이라는 말조차 우습게 뛰어넘는다.

오죽했으면 남신들조차 그녀의 매혹이 두려워 그녀를 피해 다녔을까?

그녀의 만행을 참다못한 여신들이 모여 그녀를 소멸시키지 않았다면 아마 세상은 진즉에 바토리의 지배를 받고 있었겠지.

아니나 다를까,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윤수호의 모습에 바토리가 오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그렇지. 자, 내 손을 잡거라. 그리고 나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너 정도 되는 권속이라면 이 세상을 내 발아래에 두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 벌써부터 흥분돼 참을 수가 없구나!’

당연히 바토리는 윤수호에게 자신의 반려 자리를 내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충실하고 강한 노예일 뿐. 그런 의미에서 윤수호는 자신에게 딱 맞는 노예가 아닐 수 없었다.

덥석.

어느새 접근한 윤수호가 자신의 손을 잡자 바토리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권능을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육체적 접촉이 이루어졌으니 사실상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흐음…… 늙지 않는 육체라더니,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

“가까이에서 보니까 얼굴에도 주름이 장난 아니군.”

“어, 어떻게……!”

바토리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권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육체적 접촉이 있었음에도 세뇌당하지 않은 남자는 윤수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내 손을 잡고도 매혹에 걸리지 않아? 그건 남신이라도 불가능……!”

“내가 너한테? 확실히 요즘 따라 부모님의 결혼 압박이 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이 미상의 할매한테 빠질 만큼 급하지는 않은데 말이지.”

윤수호가 뒷머리를 긁으며 보란 듯이 난처해하자 바토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콰르릉, 콰쾅!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빛 마력 두 줄기가 그녀를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단지 마력을 끌어 올렸을 뿐인데 하늘과 땅이 진동했고, 먹구름은 비명 대신 천둥 벼락을 토했다.

“멍청한 놈이로구나. 내게 속했다면 세상의 모든 영광과 쾌락이 전부 너의 것이었을 텐데.”

“그건 그쪽 쓰러트리고 내가 알아서 챙겨 갈게.”

“그 오만한 얼굴…… 마음에 안 들어.”

딱.

바토리가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붉은 마법진이 지상에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다름 아닌 철권, 아이젠 슈비츠와 독일의 특무대였다.

여전히 세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들은 바토리에 대한 충성심과 윤수호에 대한 끝없는 적의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내가 네놈의 살점을 물어뜯고 피를 취하는 동안, 저들의 손에 죽어 나갈 인간들의 비명을 함께 즐겨 보려무나.”

조소를 그리며 윤수호를 조롱하는 바토리의 모습에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뭐?”

윤수호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갯짓으로 지상 어딘가를 가리켰다. 바토리의 시선이 고갯짓을 따라가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저것들은…….’

대로를 따라 이곳까지 군사들을 끌고 온 이들은 다름 아닌 란슬롯과 알베르토였던 것이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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