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57화 (157/175)

157.

던전을 공략하고 다시 세상으로 빠져나온 윤수호는 가장 먼저 하이데른에게 명령했다.

“하이데른, 너는 즉시 이카루스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라. 둘이 함께 싸운다면 상대가 같은 등급이라 해도 머릿수로 밀어붙일 수 있겠지.”

“저 혼자서도 충분하다 사료되옵니다만…… 마스터의 배려는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봐요, 마스터!”

그렇게 하이데른과 이카루스는 검은 연기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까지 공간을 뛰어넘었다.

윤수호는 마지막에 보여 준 이카루스의 윙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보스 몬스터였을 때는 그래도 카리스마가 꽤 있었는데…… 권속이 돼서 성격이 변한 건가?’

엘도라드의 경우에는 몬스터였을 때와 권속으로 거듭났을 때의 차이점을 거의 찾을 수 없었고, 하이데른도 자신에게 매우 순종적으로 변했다는 것 외에는 여전히 오만함 그 자체였다.

그에 반해 북풍한설 같은 성격이었던 이카루스는 권속으로 거듭난 이후에는 갑자기 애교 많은 막내 여동생 같은 느낌으로 돌변해서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뭐, 시키는 일만 잘해 주면 크게 상관은 없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윤수호도 하늘을 접어 비행하며 빠르게 독일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 독일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전력은 아프리카 쪽이 훨씬 뒤떨어지는데 적들의 확장세는 아프리카와 크게 차이점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새 국경까지 밀려 버린 연합군.

그게 너무 의아해서 윤수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연합군이라고 모여 가지고는 적들을 눈앞에 둔 채 자기들끼리 알력다툼을 하지 않나, 고통받는 독일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아군끼리도 마음이 맞질 않으니 전장에서는 연전연패…….

“뭐 하자는 거지, 저것들은?”

같은 시각 텔레파시를 통해 하이데른에게 보고받은 이집트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상황이었다.

엄밀히 따져서 전력과 문명은 분명 이쪽이 더 뛰어난데, 하는 꼴을 보면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이들은 독일의 마지막 국경까지 몰리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들과 자국의 안위가 가장 소중했으며 타협은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윤수호는 과감하게 그들을 전력 외로 상정한 뒤 전면으로 나섰다.

* * *

그 숫자가 어찌나 많았는지 1분이 지나도록 쏟아지는 흡혈귀들의 시신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런 광경을 단 일검에 만들어 낸 윤수호의 신위에 질려 버린 란슬롯과 알베르토는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 두려움이 혼재하는 시선으로 윤수호를 바라보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아니면 눈에 띄지 말라는 내 말이 우스웠던 건가?”

쿠구구구구구구구……!

‘무, 무슨 기세가……!’

‘크윽! 마치 산이 위에서 짓누르는 것 같아……!’

시야가 흔들렸다. 윤수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를 감당하느라 숨조차 쉬기 버거웠다.

아니, 사실 그들이 오롯이 감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윤수호가 적당히 그들을 봐주고 있을 뿐. 그의 기세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두 사람은 얼마든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닌 톱텐 둘을…… 저 남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쿵!

쿨럭! 우웩!

“알베르토 경!”

“라, 란슬롯 경?”

“머, 멈춰라! 뭣들 하는가? 당장 저 정체불명의 적을 포위하지 않고!”

란슬롯과 알베르토가 자리에 꿇어앉아 피까지 토하자 보다 못한 지휘관들이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윤수호를 지목했다.

그에 병사들이 무기를 겨누며 그를 포위하긴 했으나 아무런 의미는 없었다.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한 병사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움에 질려 있었으며, 무기의 끝은 심하게 떨렸고, 심신의 안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오러도 발현되지 않았다.

그들은 포위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서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자신들이 포위한 상대는 그저 기세만으로 톱텐 두 사람을 무릎 꿇린 것도 모자라 내상까지 입힌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자신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조용히 물러가 주면 그게 최고의 결말인 것을…….

윤수호는 자신을 포위한 병사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릎 꿇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도,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분명 적들과 한패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왜 우리를 핍박하시는 거죠?”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두 사람의 억울한 표정에 윤수호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들에 비하면 수단까지 찾아가 혼자 히드라에게 달려들었다던 오마르라는 남자가 백만 배는 더 낫겠군.”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그들의 눈이 더욱 커졌지만 두 사람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윤수호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그들은 더욱 커진 기세에 진땀을 흘리며 그저 윤수호의 얘기를 들을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독일을 구하러 왔다. 그런데 분란을 조장하는 너희는 없느니만 못한 인간들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너희는 꺼지라는 말귀를 알아먹지 못했고 내 마지막 경고에도 아직 내 눈앞에 있다. 더 이상 대답이 필요한가?”

“우리는 그저……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윤수호가 기세를 조금 풀어 주자 알베르토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변명하려 했다.

그에 윤수호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래서 연합군 놀이를 하고 있었던가? 그 잘난 조국을 지키려고?”

“여, 연합군 놀이?”

“그게 무슨……!”

기가 차서 대꾸하려는 사람들에게 윤수호는 사자후를 외쳤다.

“연합군은 군체다!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란 뜻이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타인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희생과 각오가 없으면 연합군이란 건 그저 떨어지면 깨질 눈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모두를 지키는 것이 군체이자 연합군이라는 말이다!”

윤수호는 자신이 상대했던 가장 막강하고 거대한 군체가 떠올랐다.

마교(魔敎)였다.

마도 문파들이 연합한 그들은 세상에 다시없을 최강의 군체였다.

동료를 돕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릴 수 있었고, 동료를 구하기 위해 그 심장을 스스럼없이 바쳤다.

그랬기에 마교는 강했다. 마교의 이름 아래에서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말단 무인들조차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마교였다.

그것은 심지어 급이 높은 장로들조차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일군 단전에 칼이 꼽히는 와중에도 웃으며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다. 다른 동료의 일검이 자신에게 생채기라도 낼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의지만으로.

그런 마교의 무인들은 세상 무엇보다 두려웠다.

마교는 집단이면서 그 자체가 한 명의 무인이었던 것이다.

하나 무림맹은 달랐다. 그들은 군체가 아니라 개체였다. 마교처럼 다양한 문파가 모여 무리를 이뤘음에도 각자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그랬기에 윤수호는 무림맹이 두렵지 않았다. 몸집은 마교보다 거대했지만 자신이 입김만 불어도 모래알처럼 흩어질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윤수호가 무림에 나타났을 때, 자신들보다 세력이 작은 마교의 깃발 아래 무너져 간 무림맹이 변방까지 내몰린 것도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었겠지.

그런데 지금 이들의 모습은 그런 무림맹보다 훨씬 심각했다.

“너희들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자 모인 병사들이 아니다. 그저 남의 목숨을 걸어서 자신을 지키려는 이리 떼일 뿐이지. 그런 놈들은 이 전장에 있을 자격이 없다. 꺼져라,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지 말고.”

“…….”

윤수호는 말을 마치고 등을 돌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세가 사라지자 란슬롯과 알베르토는 멍한 얼굴로 윤수호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과 27세의 나이로 톱텐의 자리에 올라 여왕에게 직접 기사 작위와 함께 란슬롯 글로리아라는 별칭까지 하사받았다.

알베르토는 40살의 나이에 톱텐에 자리에 올랐지만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이탈리아의 영웅이자 붉은 투사였으니까.

그렇게 불세출의 천재라는 자긍심도, 이탈리아의 영웅이라는 자존심도 모두 박살이 났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정체불명의 남자를 믿고 어떻게 전장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란슬롯과 알베르토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같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저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나?

진심으로 자신에게 물은 질문에 돌아오는 건 부정적인 도리질이었다.

아쉽게도…… 자신이 목숨을 바쳐 지킬 조국보다 란슬롯과 영국이, 알베르토와 이탈리아가 더 소중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연합군은 여기까지인 듯싶군요.”

“제 생각도 그래요.”

“건승을 기원합니다.”

“알베르토 경도요.”

결국 연합군은 와해되었고 서로가 원하는 전장으로 향했다.

그것이 설령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결과가 될지언정, 눈뭉치보다는 계란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 *

스읍…… 하아…….

‘역시 바깥세상의 공기가 좋긴 하네. 조금 이물감이 많이 섞여 있긴 하지만.’

하늘 높이 날아오른 윤수호는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발밑으로 펼쳐진 독일은 침묵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처럼 암흑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예민해진 귓가에 사람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피를 빨려 죽어 가는 사람들, 흡혈귀들에게 최면이 걸려 가족을 죽이는 사람들, 피가 빨려 죽었음에도 죽지 못하고 구울이 되어 부활하는 사람들까지…….

지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 그 자체였다.

‘일단은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구해야겠지.’

죽거나 죽어서 구울이 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어쩌면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정확히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윤수호는 그럼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가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쳤다. 곧 끝없이 팽창하던 그의 기감이 독일 전체를 뒤덮고도 남았다.

그의 기감은 흡혈귀들과 죽은 자들, 죽어서 부활한 자들, 최면에 걸린 자들, 그리고 아직 살아남은 자들을 모두 구분했다.

순간 윤수호는 손을 들어 허공을 쥐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지만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윤수호의 파지 끝에서 검을 봤을 게 틀림없었다.

그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부드럽게 팔을 들었다. 그리고…….

쉭.

군더더기 없이 팔을 휘둘러 허공을 베었다.

* * *

“오빠…….”

“걱정 마! 오빠 뒤에 꼭 붙어 있어! 절대로 고개 내밀면 안 돼! 알았지?”

동생 안나는 대답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울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빠도, 엄마도, 눈앞의 흡혈귀에게 죽임당했다. 이제 믿을 사람은 오빠, 쟝뿐이었다. 쟝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동생을 목숨 걸고 지킬 생각이었다.

“호오~ 눈빛이 제법 사나운 꼬맹이구나. 그런데 어쩌나? 그렇게 울기만 해서는 나를 죽일 수 없을 텐데? 죽이고 싶은 거지? 네 부모를 눈앞에서 죽여 버린 날 말이야.”

흡혈귀는 비웃으며 남매를 조롱했다. 그에게 어린 남매는 자신의 재미를 위한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다.

솔직히 피도 너무 많이 마셔서 배도 부르니 더 이상의 사냥은 의미 없었지만…….

“나는 보고 싶구나. 네가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며 여동생을 스스로 바치는 모습을…… 그렇게 한다면 네 목숨만은 살려 주도록 하지. 어때? 꽤 괜찮은 제안 같지 않아?”

“꺼져, 이 괴물아! 죽어도 내 동생은 못 건드려!”

쟝은 돌멩이를 들었지만 쉽게 던지지 못했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쟝의 두려움을 느낀 것일까?

흡혈귀는 더욱 섬뜩한 미소를 그리며 남매에게 다가갔다. 그가 미소를 그리자 입가를 흠뻑 적신 부모님의 피가 더욱 더 도드라졌다.

“그걸로 뭘 어쩌려고? 설마 그딴 돌멩이로 날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오지 말라고!”

쟝은 용기를 냈다. 여기서 동생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정확히 흡혈귀의 머리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콩.

이걸로 흡혈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는 건 더욱 싫었다.

그런데…….

털썩……!

“어……?”

돌멩이를 머리에 맞은 흡혈귀가 눈을 까뒤집으며 자리에 쓰러지더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쟝에게 흡혈귀가 죽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도망치자, 안나!”

쟝은 안나의 손을 잡고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뛰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는데, 지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오빠, 흡혈귀들이……!”

남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을을 습격한 흡혈귀들이 전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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