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56화 (156/175)

156.

독일 슈이비첸.

이곳은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과 인접한 독일의 서쪽 국경 지역이었다.

사실상 이곳이 돌파당하면 인접한 나라들은 물론이고 물 건너 영국까지 결코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연합군도 이곳을 마지노선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 연합군은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것도 적이 아닌 내부의 사정 때문에…….

“전선을 옮기는 건 불가합니다.”

“크흠……!”

영국의 검성 란슬롯 글로리아의 단호한 확답에 회의에 참여한 절반의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절반의 사람들은 독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동유럽에 위치한 나라들의 인사들이었고 그들의 중심에 붉은 투사, 알베르토 살라니가 있었다.

알베르토는 동유럽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한 몸에 받으며 란슬롯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 슈이비첸은 적들에 맞서 싸우기 좋은 지형도 아닐뿐더러 적들에게 위치도 노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언제 기습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선을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섣불리 군을 움직인다면 그거야말로 적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행군으로 지친 군대를 기습하는 것만큼 효율 좋은 작전은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여기서 전열을 재정비 후, 빠르게 역습을 감행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승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알베르토에 이견에 란슬롯이 고개를 젓더니 지지 않고 반박했다.

“현재 병사들은 거듭된 전투에 지나치게 지친 상황입니다. 무리한 역습을 꾀하려다 오히려 전멸을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 전선을 동남부로 옮겨 동유럽과 함께 싸우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듭된 연전으로 지친 병사들을 동부 전선까지 행군시키자? 이거야말로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판단이 아닙니까? 놈들이 그걸 지켜보고만 있을까요?”

“전설속의 흡혈귀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놈들은 다행히 해가 떠 있는 낮에는 크게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이용한다면…….”

“그게 함정일 가능성은 고려해 보지 않으신 겁니까? 아니면, 50 : 50의 확률에 병사들의 운명을 시험해 보자고요?”

“…….”

란슬롯의 강한 반발에 알베르토는 결국 참다 참다 본심을 꺼내고 말았다.

“그래서……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으면 동유럽은 포기해도 영국은 지킬 수 있는 겁니까?”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죠?”

순간, 란슬롯의 분위기가 차게 식었다.

그녀의 얼음장 같은 눈빛은 알베르토를 가만히 직시했다. 심지어 알베르토 측 인사들조차 그녀의 시선이 두려워 눈을 피했지만 알베르토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여왕에게 란슬롯의 칭호까지 하사받은 기사가 영국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걸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역시 당신이 영국을 사랑하는 만큼 조국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씀은 제가 지금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을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인가요?”

“아닙니까? 아니면 여기서 다 같이 죽자는 의도가 도대체 뭡니까? 재정비요? 경의 말처럼 병사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때까지 놈들이 기다려 준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조차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란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그러는 알베르토 경이야말로 동부 전선으로 군사를 이동하자는 목적이 뭐죠? 동부 전선이야말로 이탈리아를 지키기 더 수월하기 때문 아닌가요? 그걸 위해서 병사들을 혹사시켜 행군해 봤자 남는 게 뭐가 있죠?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정도로 지친 군사들? 확실한 패배?”

쿠구구구구구구구……!

두 사람의 감정이 고조되며 막사가 흔들리고 땅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절대로 이럴 일이 없을 두 사람이었지만 아무래도 나라의 국운이 걸린 만큼 서로가 감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 자, 두 사람 모두 진정들 하시오. 승리를 위해 모인 회합에서 감정싸움을 벌인들 누구한테 이로울 것이 있겠소?”

두 사람을 중재하며 중립적으로 다독인 인물은 연합군의 의장인 알만 루자르였다.

알만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충분한 실전 경험과 뛰어난 전술 지휘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연합군의 의장이 된 사람이었다.

알만이 중재하자 란슬롯과 알베르토는 감정을 추스르며 못 이기는 척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의 말대로 자신들끼리 충돌해봤자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직접 확인한 적들의 전력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아니, 그 이상으로 막강했소. 1차 던전이야 각국의 힘으로 저지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2차 던전에서 출몰한 몬스터들을 우리 전원이 힘을 모아도 이길 수 있다 장담하기 어려운 난적이오. 실제로 우리는 적들의 중심부에조차 다가가지 못하고 패퇴하여 이곳에 있는 것이니…….”

“크흠……!”

“흐음…….”

기껏 외면했던 불편한 현실을 알만이 직시시켜 주자 사람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만은 할 말을 이어 나갔지만 말이다.

“정신들 차리시오. 지금 내 나라, 남의 나라가 중요한 게 아니오. 놈들을 막지 못하면 멸망은 순서일 뿐. 그러니 지금 놈들을 이길 수 있는 단 0.1%의 가능성에 모든 생각과 의지를 집중합시다.”

“오합지졸들만 모인 줄 알았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도 계셨군요. 안심했습니다.”

“누구냐!”

그때였다.

난데없이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히 란슬롯과 알베르토 두 사람은 티를 내지 않았을지언정 다른 사람들보다 속으로 크게 경악하고 있었다.

‘분명 목소리가 들렸는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곳에 모인 인사들은 능력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각 나라의 군을 담당하는 평범한 지휘관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달랐다.

자만할 생각이 없다고는 하나 명색이 톱텐이라는 자리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검증받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지 않던가?

란슬롯과 알베르토는 슬쩍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상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목소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마른침을 삼켰다. 턱 선에는 어느새 식은땀 한 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톡.

그렇게 식은땀이 바닥에 닿은 순간, 한 남자의 모습이 모두의 앞에 드러났다.

“이렇게 열심히 자국의 수호에 힘을 쓰는 와중에도 적들은 착실하게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던데, 꽤나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요, 여러분은.”

“헉……!”

알만은 기겁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옆에 버젓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쉭, 쒜엑!

그렇게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란슬롯과 알베르토가 검을 뽑아 그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톱텐 두 사람이 작정하고 기습한 것이다. 남들의 눈에는 남자의 등장과 동시에 두 사람의 칼이 남자의 목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디 보자, 제가 확인한 바로는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곳에서 세 무리로 나뉘어 접근하는 것 같더군요. 퇴로는 당연히 막아 놨고 이런 상태라면…….”

“……!”

“……!”

란슬롯과 알베르토는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분명 진심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최단 거리의 투로를 선정하여 검을 뽑았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검 끝에 목은 온데간데없었고 남자는 검을 지나쳐 여유로운 모습으로 탁상에 놓인 지도에 점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황당한 상황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 밖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크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적이다! 적습이다!”

그에 맞춰 막사를 뛰어 들어오는 병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밖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란슬롯과 알베르토가 병사를 밀치며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푸드득, 푸득……!

“이런…….”

두 사람은 하늘을 뒤덮은 박쥐 떼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그 숫자가 어찌나 많던지 슈퍼문이 가려져 빛만 미세하게 새어 들어올 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지휘관 몇 명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차라리 달이 뜨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저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고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살려 주세요!”

“크아아악!”

“이,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하늘을 비행하던 박쥐는 병사들을 낚아채 하늘로 끌고 올라갔다. 그렇게 끌려 올라간 병사는 일단 죽은 목숨이었다.

푹푹푹푹푹푹푹푹……!

근처를 비행하던 수많은 박쥐 떼들이 병사에게 달라붙어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를 빨았기 때문이었다.

콰직!

결국 가죽만 남은 병사의 시신이 바닥에 볼품없이 떨어져 끔찍한 몰골로 부서졌다. 그렇게 쏟아져 내리는 깡마른 병사들의 시신이 마치 비처럼 쏟아졌다.

“전군! 전투태세를 갖추고 대항하라! 휴식은 끝이다!”

“진형을 갖춰라! 혼자서 대응하지 말고 세 명 이상이 뭉쳐서 대항하라!”

“포기하지 마라! 너희가 포기하면 유럽이 멸망한다!”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박쥐 떼에 맞서 싸웠지만 무리였다.

애초에 평범한 박쥐들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바토리의 권속들이었으니까.

놈들에게 평범한 오러는 큰 부상을 입힐 수 없었다. 설령 운 좋게 부상을 입힌다 하더라도 어지간한 부상은 인간의 피를 마시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에 반해서 놈들의 송곳니는 오러가 실린 검을 부수고, 오러로 강화된 육체를 꿰뚫었다.

한 마리가 100kg이 넘는 장정을 가볍게 발톱으로 집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고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노리고 검을 휘둘러도 맞추는 경우가 드물었다.

총기류와 현대 화력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관총이 불을 뿜어봤자 놈들의 가죽을 뚫지 못했으니 그 이하의 화력으로는 의미가 없었고 바주카나 대전차용 병기들조차 거의 쓸모가 없다시피 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제, 제발 저리 꺼져! 좀 사라지라고!”

“싫은데?”

“……!”

콰직!

한 박쥐가 인간형으로 모습을 바꾸더니 총을 난사하며 울부짖던 병사 앞에 서 싸늘한 미소를 그렸다.

이내 병사의 모가지에 흡혈귀의 송곳니가 박혀들자 병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 녀석을 놔줘!”

병사들은 붙잡혀 죽어가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지만…….

“크크큭! 후식까지 알아서 찾아와 주는구나!”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족족 한 끼 식사가 될 뿐이었다.

눈앞의 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사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망설였다.

란슬롯과 알베르토 모두 전장에 서기를 꺼렸다.

‘젠장,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내 나라는 누가 지킨단 말이냐!? 지금이라도 동부 연합군만 이끌고 전선을 이탈할까? 동부 전선에 새로 연합군을 결성하여 저지선을 구축하면 조금이나마 승산이…….’

‘알베르토 이자…… 보아하니 도망칠 생각밖에 없는 것 같군. 분하지만 이자의 도움 없이 나 혼자만 나서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오히려 개죽음만 당할 뿐. 차라리 본국으로 돌아가 후일을 대비하는 게…….’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의 애타는 간절한 시선들이 계속해서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에게는 검성과 붉은 투사가 전장에 나서 주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엿 같은 상황을 보다 못한 남자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 순간, 뒤에서 터져 나온 한숨에 두 사람이 움찔하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한숨의 주인은 바로 자신들이 가장 경계하던 그 남자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얼음도 얼어 버릴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너희 두 사람은 짐 싸서 그냥 본국으로 돌아가라. 어차피 여기 있어 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라. 너희 같은 놈들을 보면 살심이 제어가 안 되거든.”

“그게 무슨…….”

“당신이 뭔데 우리한테……!”

그 순간!

스핏.

오른손을 횡으로 휘두른 윤수호의 손끝에 어느새 순백의 검이 들려 들었다.

검 끝이 그린 새하얀 실선이 허공을 수놓더니 이내 수많은 실선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후드득…… 후득…….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 나간 흡혈귀들의 피와 내장, 그리고 조각난 살점의 소나기였다.

“……!”

“……!”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얼어붙은 두 사람에게 남자…… 윤수호는 고개를 슬쩍 돌리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 너희 둘 정도는 씹어 먹을 수 있는 사람.”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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