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55화 (155/175)

155.

권좌에 앉아 즐겁게 쇼를 관람하던 왕은 한 노인의 출현에 눈살을 찌푸렸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존재. 무엇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왕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결국 그 존재에 의해 쇼가 엉망이 되자 왕은 혀를 차며 권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켰다고 생각한 순간…….

쿵!

그는 어느새 하이데른의 눈앞에 서 있었다.

“시체 썩는 역겨운 냄새 뒤에 마족의 냄새가 섞여 있구나.”

“그러는 네놈도 파충류 비린내가 만만치 않으니. 그런 부분은 서로 적당히 넘어가는 게 어떻겠는고?”

왕은 아홉 개의 머리를 내려 하이데른을 살펴보았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저렇듯 주둥이를 함부로 나불거릴 수 있는 존재는 참으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왜 과인을 방해하는 것이냐? 네 녀석 정도의 존재라면 충분히 다른 땅을 네 마음대로 다스릴 수도 있을 터. 굳이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이런 불경한 것을 보았나. 마스터의 명령을 어리석은 선택이라 치부하다니…… 이것 참 살려둘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더욱 더 살려 놔선 안 될 놈이로다.”

“마스터? 설마 네놈…….”

살짝 놀란 왕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하이데른을 노려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마스터라고 칭하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제약이 심한 던전 안에서 이만한 언데드 마족을 굴복시킬 수 있는 존재가 있었던가? 이건 이것대로 귀찮게 됐군…….’

하나 그 존재에 대한 걱정을 나중 일이었다. 일단은 눈앞의 언데드를 치우고 자신의 왕국을 재정비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런데…….

“네놈…… 뭘 믿고 그렇게 여유 만만인 것이냐? 설마 마스터라는 놈을 믿고 그렇게 당당한 건가?”

“마스터께서 직접 나서셨다면 네놈은 지금 하찮게 나불거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기다리는 건 다른 녀석이지.”

“다른 녀석?”

“내 후배 말이다.”

“……!”

그 순간, 왕의 아홉 머리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며 머리를 하늘로 들었다.

번쩍!

그와 동시에 뇌전처럼 내리 꽂히는 무언가.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꿀꺽…….

여동진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하이데른이 자신들을 보호막으로 지켜 주면서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채석장의 절반을 날려 버린 거대한 크레이터에 자신들도 일부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모두 피난이 끝난 상태였고 남은 언데드들이 완파되긴 했지만 빠르게 복구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물론 남아 있던 래서 드래고니안들은 그 끔찍한 참극에 몰살을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왕은 몰살당한 자신의 부하들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쓰러진 자신을 밟고 서 있는 존재의 오만한 눈빛 때문이었다.

“너는…….”

“오랜만이야, 히드라. 설마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반갑긴 하네. 안 그래?”

“이카루스!”

후웅…… 콰콰콰콰콰콰콰콰!

이카루스의 이름을 씹어 뱉으며 히드라가 반쯤 움켜쥔 손톱을 휘두르자 거친 광풍이 주변 일대를 순식간에 찢어발겼다.

하나 이카루스는 어느새 히드라와의 거리를 벌리며 공중에서 여유롭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히드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이카루스를 노려보았다.

팔콘의 머리와 머리카락 대신 발까지 길게 자란 풍성한 깃털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과 매혹적인 육신, 그리고 날카롭고 단단한 맹금류의 발.

무엇보다 인간의 팔 대신 자란 것 같은 여섯 장의 갈색 날개까지…….

‘틀림없다. 녀석은…….’

자신과 함께 같은 신마의 시대를 살았으며 하늘의 여왕이라 불리던 하피 엠프레스, 이카루스가 틀림없었다.

‘녀석과는 영역이 전혀 달라서 어지간하면 충돌할 일이 없었지. 그런데 갑자기 여긴 왜…….’

“설마 이카루스 네년도 저 마족 놈과 같은 녀석을 섬기는 건가?”

“녀석이라……. 궁금하네. 네가 그분을 눈앞에 두고도 똑같이 지껄일 수 있을지.”

“그러는 후배님도 던전에서 내게 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어떻게 됐더라?”

“산통 좀 깨지 말아 주실래요? 선. 배. 님?”

“크흠!”

조소를 그리며 히드라를 조롱하던 이카루스는 뒤에서 들려오는 하이데른의 참견에 억지로 미소를 그리며 딱딱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에 하이데른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리자 이카루스는 다시 히드라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무튼 이쪽은 마스터께 내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히드라,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부탁을 하긴 좀 미안한데…… 얌전히 죽어 주면 안 될까?”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군. 내가 신마의 시대를 살아갈 때 네년을 살려 둔 건 네년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그저 하늘이 내겐 필요치 않았을 뿐이지.”

팟.

말을 마친 히드라가 거리를 지우더니 한 순간에 이카루스의 눈앞까지 접근했다.

그의 등 뒤로 펼쳐진 거대한 한 쌍의 날개는 마치 용의 그것을 연상케 했고, 심지어 히드라의 덩치는 이카루스보다 두 배나 더 거대했지만…….

“호오~ 설마 나랑 공중전으로 싸울 생각?”

이카루스는 오히려 히드라를 비웃었다.

그에 대한 히드라의 대답은 주먹이었다.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내구력을 지닌 암센보다 족히 스무 배 이상은 단단한 비늘을 가진 히드라의 주먹이 정면을 꿰뚫었다.

그에 대해 이카루스는 화려한 돌려차기로 히드라의 주먹을 쳐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쩌엉! 콰아아아아앙!

정권과 돌려차기가 충돌하며 발생한 여파가 튕겨져 날아가 지면에 충돌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지상에 직경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은 1초가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도 수십 합이 넘는 공방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노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히드라였다.

“고작 그 정도로 나한테 공중전을 시도한 거야? 이거 너무 기분 상하는데?”

신묘한 발차기만으로 히드라와 대등한 싸움을 벌이던 이카루스가 본격적으로 날개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완전히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

콰우우우우우우우!

그녀의 날갯짓 한 번에 거대한 토네이도가 생성되면서 히드라를 집어삼켰다.

심지어 이카루스는 토네이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지 움직임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히드라는 달랐다.

“크윽!”

강한 토네이도의 바람에 균형이 자꾸만 어긋나고 심지어 토네이토의 날카로운 칼바람에 날개도 크게 손상을 입었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공중전이었기에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이카루스의 공세를 감당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쩌엉! 콰아앙!

결국 그녀에게 제대로 걷어차이고 지상으로 추락한 히드라가 날개를 접었다.

그 순간, 그의 발밑이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녹색의 액체가 빠르게 주변 지대를 침식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채석장은 순식간에 맹독을 가득 품은 늪지대가 되었다.

집채만한 바위조차 연기를 뿜으며 삽시간에 녹아 버리는 모습에 오마르와 여동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게다가 이카루스의 맹공을 받고 부서졌던 머리들과 육체의 부상도 순식간에 회복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모습을 보고 이카루스가 조소를 금치 못했다.

“뭐야, 하늘에 관심이 없어서 나를 봐줬네, 마네 하더니 결국 꼬리 말고 집으로 숨어 들어간 강아지 꼴이 돼 버렸네?”

“멋대로 떠들어라. 네년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순간, 그 깃털부터 뼛조각 하나까지 남김없이 녹여 줄 테니까.”

확실히 히드라가 저렇게 자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히드라의 맹독은 신조차 위협하는 극독 중에 극독이었다.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자칫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때문에 이카루스조차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맹독의 늪에서 피어오르는 독무조차 살아 있는 생명체는 물론이고 무생물조차 녹여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카루스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 만만이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그때까지 지켜만 보고 있던 하이데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이데른 선배, 슬슬 선배도 나서야 할 것 같은데요?”

“도움을 구하는 것 치곤 상당히 뻔뻔한 태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느냐?”

“마스터의 명령을 이행하는데 뻔뻔이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요. 그럼 그냥 저대로 두고 가게요?”

“하여간…….”

말 한마디 지지 않는 후배의 모습에 고개를 젓던 하이데른이 히드라를 바라보며 두 손을 펼쳤다.

“그럼 어디 한 번 놀아 보자꾸나. 도마뱀들의 왕이여.”

끼아아아아아아악!

크어어어어어어어어……!

하이데른이 두 손을 펼치는 순간,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난 마법진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며 수많은 망령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림없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히드라가 울부짖으며 번쩍 두 손을 들어 올리자 채석장을 뒤덮은 맹독의 늪이 출렁거리더니 순식간에 일어나며 거대한 해일이 되었다.

맹독의 해일은 집어삼키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녹이겠지. 그게 하피의 여왕이 됐든, 언데드 마족이 되었던 가리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누가 할 소리!”

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이카루스가 날개를 강하게 펄럭이자 해일의 경로 앞에 거대한 토네이도가 생성되어 지상에 뿌리를 박았다.

직경 1km짜리 초대형 토네이도는 그야말로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기세로 거칠게 회전하며 다가오는 맹독의 해일과 충돌하였다.

토네이도는 해일을 빨아들이며 독무와 맹독을 그대로 봉인했지만 아직 해일의 위력을 막아서기에는 부족했다.

그 순간, 토네이도 다발이 지상에 내려오면서 거대한 토네이도의 벽이 형성되었다.

“세상에…….”

“지금 우리가 뭘 보고 있는 거지?”

하나하나가 도시를 집어 삼킬 규모의 토네이도들이 늘어서 벽을 이루고,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솟구친 거대한 맹독의 해일이 그것들과 충돌하며 먹혀 가는 모습은 장관이란 말로도 표현이 부족했다.

그랬기 때문에 여동진과 오마르도 입을 벌린 채 천재지변 같은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이카루스와 히드라, 양쪽 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쪽 다 최선을 다해 권능을 사용 중이라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히드라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독무는 토네이도 속에 갇혀 있을 뿐, 소멸한 것이 아니었다.

이카루스의 힘이 다해 토네이도가 소멸하는 순간, 압축되어 있던 맹독이 퍼지며 놈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리겠지.

그 사이에 다소 공격을 허용하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이 몸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이데른에게서 끔찍하리만치 흉흉한 열기가 느껴지기 전까지는…….

“끌끌끌, 그럼 단숨에 끝장을 내도록 하지.”

어느새 불타오르는 육신으로 미소를 짓던 하이데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망령이 작고 검은 태양 하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검은 태양의 이름은 아마게돈. 하이데른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흑마법이었다.

“잘 가게, 도마뱀 친구.”

작별 인사와 함께 하이데른이 불타는 손가락을 들어 히드라를 가리키자 망령이 그쪽으로 검은 태양을 던졌다.

이카루스가 토네이도들을 조작하여 길을 열자 그 틈 사이로 지나가는 검은 태양.

그것은 맹독의 늪으로 녹아 엉망이 된 대지를 다시 한 번 용암으로 만들어 버리며 빠르게 히드라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저건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낀 히드라가 아홉 개의 머리에 달린 열여덟 개의 눈동자를 부릅떴다.

정면으로 저것을 감당해서는 안 된다고 본능이 소리쳤다.

히드라가 검은 태양을 피하기 위해 권능을 해제하자 독무도 같이 사라졌지만 대신 자유를 손에 넣었다.

태양이 접근하는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자신이 피하지 못할 속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다급히 도망치려는데…….

퓻.

“어딜 가려고?”

“이카루스, 네년이……!”

쩌엉!

마치 히드라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어느새 그의 뒤를 점한 이카루스가 늘씬한 다리를 휘둘러 히드라를 걷어찼다.

히드라의 권능이 해제되는 순간, 그녀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권능을 풀고 히드라의 뒤로 빠르게 접근한 것이다.

게다가 이카루스의 각력이다.

히드라는 그녀의 기습적인 발차기를 어렵게나마 막아 냈고 크게 피해도 없었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걷어차인 몸뚱이가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검은 태양을 향해 날아갔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결국 검은 태양에 삼켜진 히드라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크게 울부짖어도 검은 태양에 갇힌 수천, 수만 마리 악령들의 비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목표를 집어삼킨 아마게돈이 그 자리에 멈춰 서자 어느새 하이데른의 곁으로 돌아온 이카루스가 물었다.

“그런데 저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뭘 하긴. 흑마법사가 쓸 만한 소재를 얻었으면 할 일이 하나밖에 더 있나?”

“설마…… 히드라도 언데드로 만들 생각이에요?”

“권능을 유지한 채 신마의 괴물을 언데드로 만들 수 있는 흑마법사가 나 말고 달리 또 있을까? 그러니까 관심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하게. 그 모습 그대로 예쁘게 언데드로 만들어 줄 테니.”

“마음만 받을게요.”

“그렇게 정색할 것까지야. 큭큭큭……!”

그렇게 킥킥거린 하이데른이 흉흉한 시선을 들어 윤수호의 또 다른 종이 될 새로운 히드라의 탄생을 기쁘게 기다렸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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