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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153화 (153/175)

153.

윤수호와 얘기를 마치고 연구소를 떠난 여동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모님의 묘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분명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눈에 보이는 가옥들은 전부 무너지거나 반쯤 무너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

그렇게 고향을 둘러보던 여동진은 작은 묘 두 개와 하나의 추모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묘에는 부모님의 성함이 각각 쓰여 있었고, 추모비에는 이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하, 씨발…….”

솔직히 말해서 여동진은 걱정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어버리면서 자신에 대한 기억은 물론이고, 부모님에 대한 기억까지 말끔하게 잃어버린 그였다.

혹시라도 부모님을 다시 찾아왔을 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자신은 무엇 하나 남지 않은 천애의 고아가 될 테니까.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묘에 새겨진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어린 자신을 안아들고 카메라를 보면서 미소 짓는 부모님의 젊은 모습을 보는 순간, 얼굴도 잊어버렸던 두 사람의 모습에서 그리움이 울컥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꽈악……!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심장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서 어쩔 줄 몰랐기 때문이다.

“크으윽…….”

결국 여동진은 그날 밤.

밤이 새도록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오열했다.

* * *

“그렇게 된 것이군요…….”

“죄송합니다. 아픈 얘기를 들추게 해서…….”

전투가 끝나고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된 A8팀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여동진의 과거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아, 전혀 신경 쓰지 마십쇼. 이제는 그게 제 타고난 팔자려니 대충 납득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보기보다 대범하신 분이시군요.”

“대범하다기보다는 그냥 생각이 없는 거죠. 하하하…….”

여동진은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떻게……?”

“아, 그냥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까 그때부터 앞날이 막막하더라고요. 딱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먹고 살긴 살아야 하는데 중국 정부를 위해 일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프리카로 넘어왔죠.”

“아무 생각 없이 이곳으로요?”

“네, 저도 도움을 받았으니 이런 저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어 온 거죠.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요.”

살라트는 여동진의 말이 이해가 됐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은 알터 전력이 매우 부족했다. 인구수가 문제가 아니라 알터를 육성할 자금과 기술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알터들은 모두 해외로 입양을 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귀화를 선택했다.

이렇게 악순환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지옥 못지않은 아프리카가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동진 정도의 전력이 찾아왔다? 사람들에게 말도 못 할 도움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여동진은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그들은 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기뻐했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건 저였습니다. 저를 필요로 해 주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으니까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여동진 님, 당신은 진정한 의인이시군요.”

“그런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고 의인이라 부른다죠.”

“그런가요?”

피식 웃은 여동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여러분은 여기서 조금 더 쉬고 계십쇼. 지금 상태에서 섣불리 전장을 옮겨 봐야 아까운 목숨만 잃게 될 테니까.”

“설마 다른 전장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죠. 그래야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여동진의 대답을 듣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살라트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그렇다면…….”

* * *

수단의 중심부.

포털이 발생했던 위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무거운 돌덩이를 어깨에 걸머지고는 비척거리는 걸음을 위태롭게 옮기고 있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저녁도 굶고 싶은 놈들이 있나?”

촤악! 촤악!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의 등짝에 가죽 채찍과 날카로운 손톱이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살점이 튀고 피가 낭자했다.

아무리 철인일지언정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몇날며칠을 노역에 시달리다 보면 결국 지쳐 쓰러진다.

그런데 나이 많은 노인이나 나이 어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털썩!

“뭐야, 벌써 고장 난 건가?”

“자, 잠깐만요! 저는 아직 더 일 할 수 있어요!”

쓰러진 아이가 몸서리를 치며 필사적으로 놓친 바위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무리였다. 이미 지친 아이의 체력으로는 바위를 들썩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니까.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간수가 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고장 난 게 확실한 것 같군. 그럼 어쩔 수 없지.”

“사, 살려 주세요. 제발…….”

두 손을 싹싹 비는 아이에게 간수는 입을 쩍 벌리며 다가갔다. 아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은 당연했다.

어제 어떤 아이가 저런 식으로 한입에 꿀꺽 삼켜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는데 설마 오늘 자신의 차례가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결국 소년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죽음을 억지로 받아들인 순간.

서걱!

기적이 찾아왔다.

툭…….

“적이다!”

“적습이다!”

몬스터들이 요란하게 외치며 적의 출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도 침입자에게 집중되었다.

아름다운 초승달 형태의 곡도를 양손에 꼬나 쥔 이집트의 수호신, 라의 화신이라 일컬어지는 오마르 아브라힘을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의 화신이다!”

“오마르 아브라힘이 우리를 구하러 왔다!”

간수의 목을 단숨에 베어 아이를 구한 오마르는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에 소년과 사람들이 얼마나 큰 구원을 얻었을까? 오마르는 곧이어 굳은 얼굴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A3부터 5팀까지는 사람들의 피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라. 나머지는 나를 따라오도록!”

“예!”

그렇게 업무를 분담한 오마르는 인질을 구출하는 팀원들을 제외한 병력을 이끌고 곧장 몸을 날렸다.

목적지는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신전이었다. 아직 제작 중이긴 했지만 그 신전의 주인이 누구인지 오마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만들어 준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돼!’

동료들의 목숨으로 아낀 힘과 체력인 만큼 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목적을 완수해야만 했다.

신전의 주인 역시 자신의 권좌에 앉아 멀리서 이편을 향해 달려오는 오마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그의 어떤 얼굴에서도 약간의 근심 걱정조차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약간의 짜증과 다소 큰 흥미뿐.

“저 인간은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는구나.”

“그래 봤자 미물일 뿐입니다. 왕이시여…….”

“그 미물의 상대를 누가 해 보겠느냐?”

“저에게 맡겨 주신다면 조금이나마 왕의 권태를 달래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붉은 몸뚱이에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작은 불길을 내뿜는 레서 드래고니안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허락을 구했다.

그에 왕이 가운데에 금빛 머리를 끄덕이자 래서 드래고니안의 모습이 불길과 함께 사라졌다.

콰아앙!

오마르는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는 적의에 놀라 급하게 쌍도를 전방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화염이 휘몰아치며 그가 뒤로 물러섰다.

“네놈……!”

“나는 위대한 드래고니안의 왕을 섬기는 기사, 켈레푸스라고 한다. 침략자여, 겁도 없이 왕의 어전까지 그 흙발을 들이민 죄, 죽음으로 용서를 구하라.”

“멋대로 이 땅을 침략해 피를 뿌린 침략자는 다름 아닌 네놈들이다!”

오마르는 분노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켈레푸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분노와 살의가 오러에 깃들어 넘실거렸다.

촤촤촤촤촤촤!

오마르의 쾌도는 확실히 대단했다. 그가 쌍도를 휘두를 때면 도는 그림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면서 대신 벌떼 우는 소리가 주변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들리면 이미 승부는 끝. 사방에서 덮쳐 오는 도기의 폭풍이 적을 무참히 난자할 뿐이었다.

하지만 켈레푸스는 달랐다.

“제법 쓸 만한 재주지만…….”

화르륵!

“이 정도로 왕의 목숨을 노리고 찾아왔다니…… 오만에도 정도가 있다, 인간.”

그는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는 손톱을 휘둘러 사방에서 덮쳐오는 도기들을 모조리 살라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기의 폭풍을 뚫고 정면으로 쏘아져 나간 켈레푸스의 주먹이 화염과 함께 작렬했다.

콰아앙!

“크윽……!”

가까스로 도를 교차하여 막아 낸 오마르였지만 식은땀 한 방울이 등허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검게 그을린 구멍이 배와 등을 시원하게 관통했을 테니까.

‘결코 내 아래가 아니다!’

오마르는 현실을 자각하고 분노를 다스렸다. 분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윽고 수많은 도기와 화염이 격돌하면서 두 사람은 백중지세의 싸움을 펼쳤다.

오마르의 도기는 폭풍처럼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켈레푸스를 압박했다.

하나하나가 바위를 두부처럼 썰 수 있는 도기가 천 개에 가깝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만으로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무쇠도 녹여 버릴 켈레푸스의 화력 앞에서 도기는 대부분의 위력을 잃어버렸다. 위력을 잃은 도기로 켈레푸스의 비늘을 뚫는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켈레푸스의 무쇠도 녹여 버릴 화력은 확실히 위험한 능력임이 틀림없었다. 상대가 어지간한 능력자였다면 그가 별다른 공격하기도 전에 불에 타 죽었겠지.

하지만 그의 강렬한 불꽃도 오마르가 만들어 내는 도기의 폭풍에 휩쓸려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오마르의 도술과 켈레푸스의 체술이 격돌하면서 직접적으로 상대방의 목숨을 노렸지만 누가 우세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젠장……!’

오마르는 다급했다. 자신의 목적은 이들의 왕이었는데 고작 왕의 수호 기사에게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더 큰 문제는 켈레푸스를 쓰러트린다 하더라도 남은 힘이 얼마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슉슉슉슉!

“왕께서 흥미를 잃으셨다. 그만 그 장난감을 치우시라더군.”

어느새 켈레푸스의 등 뒤에 나타난 네 마리의 레서 드래고니안들.

하나하나가 켈레푸스와 비슷한 힘을 은은히 내보이는 존재들의 등장에 오마르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분하게도 이 녀석의 능력이 제법 괜찮아서 말이야. 나 혼자서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하아…… 하는 수 없지.”

켈레푸스의 말을 듣고 네 마리의 래서 드래고니안이 참전하려던 그 순간.

콰앙!

“……!”

“침입자가 아직 남아 있었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여동진이 네 마리 래서 드래고니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네 마리의 수호 기사들을 무시한 채 시선만 살짝 돌려 오마르에게 외쳤다.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희망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분은…… 윤 대인께서는 반드시 오실 테니까요.”

‘저 남자는 누구지? 게다가 윤 대인이라니……?’

“기대하세요. 그때는 지고 싶어도 질 수 없을 테니까.”

입꼬리를 말아 올린 여동진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며 장담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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