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두바이 상공.
던전 포털과 인접한 방어선의 상공에 도착한 윤수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비규환이군.”
던전이 출몰한 곳들이 전반적으로 그렇지만 이곳도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토후국들이 지원을 보내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두바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정리하겠습니다, 마스터.”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이데른의 손바닥이 아래로 향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퓻!
“뭐, 뭐야?”
“으아아악!”
모래 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뼈 꼬챙이에 두바이의 특무대원들이 경악하며 자리에 주저앉거나 놀라서 기함을 삼켰다.
그러나 우후죽순 솟아오르는 뼈 꼬챙이들은 오로지 포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만을 살육했으니…….
그들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는 힘을 내어 다시금 몬스터들을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조금 부족한 것 같군.”
딱.
쿠아아아아아아!
하이데른이 이번에는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죽은 몬스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납게 포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으아아악!”
“주, 죽은 몬스터들이 부활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기겁하며 되살아난 언데드들을 피해 거리를 벌렸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콰작! 콰드득!
오히려 되살아난 언데드들은 방금 전까지 같은 편이었던 몬스터들을 물고 뜯으며 동족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반격을 시도했지만 의미 없었다.
같이 서로의 모가지에 이빨을 박아 넣었어도, 살아 있는 몬스터들은 피를 질펀하게 흘리며 죽어 버렸다.
하지만 언데드는 모가지에서 검은 피를 흘리고 가죽이 뜯겨 뼈가 보이는데도 여전히 다른 먹잇감을 찾아 번들거리는 이빨을 들이밀었다.
심지어 그렇게 죽은 몬스터들은 다시 언데드가 되어 끊임없이 부활했으니…….
굳이 사람의 시신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보다 강력하고 쓸 만한 몬스터들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었으니까.
그렇게 쉴 새 없이 솟구쳐 오르는 뼈 꼬챙이와 부활하는 언데드만으로 상황을 정리하기엔 충분했다.
“쓸 만하군. 잘했다, 하이데른.”
“당치도 않으신 칭찬이십니다. 종은 그저 마스터의 뜻을 실현할 뿐…….”
아랍에미리트 연합군이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상황은 고착화 되었다.
포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만큼 언데드로 부활하는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며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기……!”
“하늘에 사람이 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은 이 신기한 일의 이유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하늘에 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수호와 하이데른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조용히 지상으로 착지하였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크흠……!”
두바이 특무대측 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윤수호에게 정체를 물었다. 그러자 하이데른이 불편한 기색을 띄며 아주 약간의 노기를 드러냈다.
“무엄하구나. 감이 어느 안전이라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이데른.”
“예, 마스터.”
“닥치고 가만히 있어.”
“…….”
그저 고개를 조아린 하이데른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덜덜덜덜……!
대장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주면에 있던 사람들 모두 치아를 부딪치며 오한이 들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방금 전 하이데른이 발산한 아주 미약한 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화아악……!
윤수호가 앞으로 나서는 순간, 그들을 침식했던 두려움이 씻은 듯 사라지고 어느새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 어?”
“괜찮으십니까?”
“아, 예…….”
윤수호의 물음에 대장은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들은 눈앞의 두 사람이 더 이상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저는 한국에서 온 윤수호, 저쪽은 제 권속인 하이데른이라고 합니다.”
“아! 보고는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조력자가 올 수도 있다고…….”
물론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톱텐을 보유한 나라들도 멸망이 코앞에 다가온 판국이다. 톱텐조차 보유하지 않은 동방의 작은 소국이 도움을 준다고 해 봤자 그게 얼마나 되겠는가?
당연히 그 마음은 고마웠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은 한국에서 지원이 온다는 얘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정보부는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저 거대한 덩치의 근육질 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만으로도 결코 톱텐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런 괴물을 권속으로 두고 있다는 눈앞의 젊은 남자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 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부디 우리 도시를 지켜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특무대원들은 눈물을 삼키며 윤수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남들에게는 그저 화려한 관광 도시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두바이는 태어나 자라며 가족을 이루고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였다.
결코 포기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닌 것이다.
“걱정 말고 방어선을 잘 유지하십시오. 던전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대장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인 윤수호가 그를 지나쳐 앞으로 나가자 하이데른이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시선이 그들의 뒤를 좇았다.
앞을 꽉 막고 있던 몬스터들을 치우며 어느새 포털 앞에 선 윤수호가 말했다.
“최단 시간 안에 빠르게 공략하고 나온다. 알겠지?”
“마스터의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포털 속으로 가볍게 몸을 던졌다.
* * *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연쇄 폭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지를 달린다.
드넓은 초원은 상공으로 솟구치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렸고, 군데군데 푸르렀던 녹음은 화마에 삼켜져 죽은 사람들과 동물들의 사체를 태웠다.
“여기는 A8 구역! 여기는 A8구역! 병력 지원을 바란다! 반복한다! 여기는 A8구역! 병력 지원을 바란다! 이러다 다 죽는다고 썅!”
빠각!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응답 없는 무전기를 거칠게 땅에 내동댕이친 A8팀의 무전병이 입술을 깨물며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틀렸어. 지원군은 없을 것 같다. 미안하다…….”
“우리만 이렇겠냐? 아마 다른 쪽도 비슷한 상황이겠지. 그러니까 네가 사과하지 마.”
“그래, 어차피 죽을 각오하고 온 거잖아. 유서도 남겨 뒀고. 이제 남은 건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마리라도 더 끌고 가는 거겠지.”
각오를 다진 A8팀은 남은 오러를 모두 끌어 올리며 태세를 갖췄다.
이미 수단 내륙 지방으로 들어오면서 이틀 간 잠도 못 자고, 휴식이나 식사도 제대로 못 한 채 연전 중인 그들이다.
체력은 바닥난 지 오래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그마저도 위태로웠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오러 역시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가자!”
A8팀의 팀장, 살라트가 억지로 목소리에 힘을 불어 넣어 동료들을 격려했다.
그가 앞장서서 달려가자 팀원들 역시 다리에 힘을 주어 땅을 박찼다. 곧, 그들과 마주 달려오던 몬스터들이 한 지점에서 충돌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오러가 난무하고, 끊임없는 폭발이 터져 나왔다.
땅거죽이 갈라지고, 폭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전장은 그야말로 도시 규모 하나의 면적을 초토화하기에 충분한 화력이었다.
이것은 그만큼 A8팀의 저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집트 특무대의 A팀이라면 이집트에서도 손꼽히는 최강의 전력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느새 한계에 다다랐다.
깡!
“크윽!”
오러가 실린 도끼로 적의 머리를 내려친 살라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느새 그의 손아귀에서는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전력으로 도끼를 내려친 몬스터는 여전히 멀쩡했다.
마치 인간과 파충류를 반쯤 섞어 놓은 듯한 외형을 가졌지만 몬스터들은 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를 들어 적을 쳐다보았다.
‘젠장! 비늘이 뭐가 이렇게 단단해?’
전력을 다한 오러 시머로도 놈들의 비늘을 부수고 피해를 주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피로와 부족한 오러 때문에 오러 시머가 풀리기라도 하면 평범한 오러로는 오히려 비늘의 반발력 때문에 자신의 손이 다칠 정도였다.
“팀장님!”
그 순간, 무기가 튕겨져 올라간 살라트를 노리고 그의 상대였던 몬스터가 손톱을 휘둘렀다.
탱크도 휴지조각처럼 찢어발기는 손톱이다. 인간의 육신 따윈 걸리면 죽는 건 확정이었다.
그러나 살라트가 대응할 시간은 부족했다. 그의 모습을 우연히 확인한 팀원은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들 때문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살라트를 목 놓아 외치며 그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밖에…….
팀원의 외침에 다른 몇몇 대원들이 살라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부는 팀장이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는지 눈을 감고 고개를 다시 돌리기도 하였다.
‘아…….’
살라트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머릿속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돌연 주마등이 끊겼다.
더 이상 기억할 과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죽음이 그를 비껴 나간 탓이다.
쩌엉!
몬스터의 손톱이 단단한 갑각으로 만든 것 같은 방패에 막혀 굉음을 냈다. 그러나 몬스터의 손톱은 방패에 작은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몬스터도 놀라고, 살라트도 놀랐다.
그를 구한 사람은 양쪽 모두 처음 보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니……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살라트가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몬스터의 손톱을 막은 왼팔은 방패 같은 갑각이었고, 오른팔은 마치 문어 다리를 연상케 하는 촉수의 다발이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촤악!
남자는 자신을 구했고, 무엇보다 정말로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후두둑…….
“괜찮으세요?”
촉수 다발을 휘둘러 단 한 방에 몬스터를 고기 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남자, 그가 고개를 돌려 어색한 영어로 살라트의 안위를 물었다.
“당신은…….”
“모습은 이렇지만 걱정하지 마십쇼. 저는 평범한 자원봉사자일 뿐이니까요.”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1701…… 아니, 이제는 여동진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그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살라트 외에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던 그가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팟!
순식간에 몬스터들과의 거리를 좁힌 여동진.
홀몸으로 열댓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을 감당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푸푸푸푸푸푸푸푸푹!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촉수의 다발이 빠르게 쏘아져 날아갔다. 끝이 꼬챙이처럼 뾰족하게 변한 촉수는 순식간에 열댓 마리의 몬스터들을 꿰뚫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퓨퓨퓨퓨퓨퓨퓨퓨퓻……!
몬스터들이 입에서 쏘아 내는 독침도 여동진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장갑차도 꿰뚫는 독침이라지만 여동진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독침을 맞지 않고 허용했다. 그러자 수많은 독침들이 그의 몸에 박히면서 순식간에 고슴도치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당연히 여동진이 죽은 줄 알았지만 더욱 경악할 일은 따로 있었다.
독침이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면서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용한 선물을 받았군. 답례로 고통 없이 보내 줄게.”
이번에는 끝부분이 낫처럼 변한 촉수를 사방으로 휘두르는 여동진.
순식간에 칼날의 폭풍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며 몬스터들의 조각난 내장과 살점들이 처참하게 분해되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