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열심히 노력할 거야. 그래서 진짜 세계적인 무대에서도 노래하고, 내가 삼촌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그때는 내 노래로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거야, 꼭.”
당찬 조카의 포부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려면 일단 세상이 평화로워져야겠네.”
윤수호의 대꾸에 은지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라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꼭 가야 되는 거지? 삼촌.”
“가야지. 아무래도 나밖에 못 할 일 같으니까.”
“무섭고 힘들면 포기해도 돼. 삼촌도 사람이잖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 은지연이 조심스럽게 윤수호에게 다가가 그를 꼬옥 안아 주었다.
아무리 삼촌이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에게 삼촌은 한 명뿐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삼촌 말이다.
그런 삼촌이 다치는 건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싫었다. 하물며 죽는다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자신의 끔찍한 상상이 상상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삼촌이 걱정됐다.
그런 조카의 기특한 마음을 알았기에 윤수호는 따뜻한 미소를 그리며 곁에 있던 은지한을 불렀다. 그리고 두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 마. 삼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올 거니까. 아 요즘에는 이런 거 플래그 세운다고 이런 말 잘 안 하던가?”
“잘 아네. 그래도 꼭 돌아와, 삼촌, 다치지 말고 무사히.”
“수호야…….”
“오빠…….”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미증유의 재난은 윤수호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욱 더 말리고 싶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윤수호가 그걸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오너라.”
그렇게 윤수호는 가족들과의 짧은 행복을 내려놓고 다시 전장으로 복귀했다.
* * *
“위원장님!”
“상황은 오면서 전해 들었습니다.”
윤수호가 천호진과 함께 청와대를 찾아오자 초조하게 시간만 체크하던 선우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수호를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큰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분께 또 이런 부담스러운 부탁을 드리게 돼서…….”
선우진은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윤수호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었지만 근래 들어서 그에 대한 의존도가 부쩍 늘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이제는 대한민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의 힘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되었으니…….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니 고개를 들어 주세요, 대통령님.”
그런 상황에서도 윤수호는 오히려 웃으며 선우진을 다독였다.
이 세상에 돌아와 세상에 이변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오게 될 거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일본의 2차 던전에서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된 이후로 예상은 확신이 되었다.
윤수호는 생각했다. 이 이변의 끝에 그 존재를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럼 바로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천호진이 직접 주관하여 브리핑을 시작하자 윤수호와 선우진도 집중해서 천호진의 브리핑을 새겨들었다.
“현재 2차 던전의 발생 관측 국가는 일본, 독일, 수단, 미국, 칠레, 아랍에미리트로 총 여섯 개 국가입니다. 일본은 위원장님께서 공략하셨으니 제외하고, 그중에서 1차 웨이브를 감당하고 있는 국가가 가장 늦게 던전이 관측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입니다. 칠레와 미국은 현재 던전 공략 중이며 수단과 독일은 던전에서 몬스터가 출몰한 상황입니다.”
“현재 독일과 수단의 상황은요?”
윤수호의 질문에 천호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최악입니다. 독일이 던전 공략에 실패한 후,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출몰했다는 상황을 포착하자마자 교민들을 대피시키려 했지만…….”
“놈들의 장악력이 너무 빨랐습니다. 현재는 독일과 근접한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고요.”
천호진은 벨기에에서 실시간 촬영, 자동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다.
불과 세 시간 전에 업로드된 당시의 벨기에 영상으로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박쥐 떼들이 흡혈귀로 변해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촬영자 역시 비명과 함께 카메라를 떨어트리는 것으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수단의 상황도 비슷합니까?”
윤수호의 질문에 선우진이 먼저 대답했다.
“정보원도 침투할 수 없고 내부 상황도 아직 밝혀진 바가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상황은 독일보다 끔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을 천호진이 답했다.
“수단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전이 이어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알터들의 출현으로 인해 반정부군과 정부군의 피해는 더욱 심각해졌지요.”
“결국 3년 전에 정부군이 승리하며 지난 3년 동안 나라를 복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적지 않게 수단의 복지 사업에 투자했지만 큰 손해를 봤죠.”
수단뿐만이 아니다.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 아프리카는 현재도 내전 상태이거나 내전이 종식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들이 대다수였다.
“그 결과, 현재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의 국방력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집트는 좀 예외이긴 하지만요.”
“이집트에 뭐가 있는 겁니까?”
“톱텐 오마르 아브라힘이 있습니다. 라의 화신이라는 이명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서는 수호신으로 대접받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오마르의 힘만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심지어 이집트가 수단을 돕기 위해 오마르를 파견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죠.”
“그렇군요.”
윤수호는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유럽 쪽은 어떻습니까?”
“현재 무슨 이유에서인지 독일의 톱텐인 철권, 아이젠 슈비츠가 적의 선봉에 서 있는 상태입니다. 전문가들은 아이젠이 강한 최면에 걸려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고요. 유럽에 창궐한 흡혈귀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유럽 전역의 전력들이 집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검성, 란슬롯 글로리아와 이탈리아의 붉은 투사, 알베르토 살라니가 연합군의 선봉에 선다더군요.”
“칠레와 미국은 아직 던전 공략 중이라고요?”
윤수호의 질문에 천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톱텐을 두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데다 숨겨 둔 저력이 미지수인 미국과 달리 칠레의 공략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모든 상황을 전해 들은 윤수호는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가장 시급한 쪽은 아프리카 대륙이지만 먼저 두바이로 가겠습니다.”
“두바이를요?”
“예. 아직 공략이 진행되지 않은 던전이라면 상황에 따라 아군을 늘릴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저는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바이 정부에 연락을 취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하도록 하지요.”
선우진이 비서진들을 다급히 소집하여 두바이 정부와의 외교를 추진하자 윤수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청와대를 나섰다.
“하이데른.”
청와대의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 윤수호는 하이데른을 호출했다. 그러자 소울 트럼프가 아닌,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 하이데른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나이까. 나의 위대한 주인이시여…….”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쉽지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없거든.”
“저의 모든 것은 마스터의 뜻대로…….”
“두바이로 간다.”
윤수호는 두바이의 좌표를 하이데른의 머릿속으로 전송했고 하이데른은 좌표에 따라 그 자리에서 곧장 텔레포트 게이트를 열었다.
대마법사들조차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는데 족히 한 나절은 필요했지만 하이데른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검은 구멍을 통해 윤수호와 하이데른이 모습을 감추었다.
* * *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국가, 수단.
전쟁의 아픔을 회복할 겨를도 없이, 재앙종의 침공과 거듭된 던전의 출현은 수단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응애! 응애!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가…….”
쿵!
“후욱, 후욱! 난 더 이상은 무리야. 난 됐으니까 당신이라도 살아. 응?”
“조금만 더 힘을 내! 다 왔으니까 제발…… 헉!”
키에에에엑!
콰작!
우는 아기를 꼭 끌어안으며 눈물과 함께 몬스터의 발에 밟혀 죽는 부모들, 애인과 함께 도망치다 사냥을 당하는 연인들. 친구들, 가족들, 형제, 이웃 가릴 것 없이 모두 죽어 나갔다.
그러나 지옥에서도 밑바닥은 존재했다.
“여기 있는 놈들 전부 잡아서 끌고 가! 이런 연놈들이라도 팔면 돈이 될 테니까.”
“살고 싶으면 가진 거 몽땅 털어 놓고 땅에 대가리 박아!”
두두두두두두두!
허공에 총을 갈기며 피난민들을 위협하는 무장 강도들. 그들은 던전 몬스터들의 출현 때문에 집과 고향을 잃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간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수단 정부군에 더 이상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정부군이 아직 남아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지옥을 떠나려는 피난민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수단 주변의 국가들은 국경을 철저하게 봉쇄하며 그들을 거부했다.
자국민들도 감당하기 힘든 판국에 피난민들을 받아들일 여력이 그들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언제 수단에서 출현한 몬스터들이 나타날지 몰라 더더욱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제발 문 좀 열어 주세요!”
“아기, 아기만이라도……!”
사람들은 절망했다. 오죽했으면 일가족 전원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장들마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을까?
“우리 상품들께서 여기 있었구나!”
“뭐 해? 전부 쓸어 담아. 반항하는 놈들은 전부 죽여 버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수단의 어린 소년, 무하마드는 눈앞에 나타난 무장 강도들을 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역시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밖에 없다고…….
그런 소년의 눈앞에…….
번쩍!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려왔다.
“괜찮니? 다친 곳은 없고?”
자신의 안부를 묻는 사내의 등 뒤로 무장 강도들의 몸뚱이가 쩌억쩌억 갈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장 강도들의 죽음은 이미 소년의 관심 밖이었다.
“라의 화신?”
소년은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옆 나라라고는 하지만 아프리카에 단 한 명밖에 없는 톱텐, 라의 화신 오마르 아브라힘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이었으니까.
“호, 혹시 이게 꿈인가요?”
오마르는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꿈이 아니니까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마라. 기회와 희망은 반드시 찾아온다. 네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오마르는 소년의 가슴을 주먹으로 살짝 가져다 대면서 그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소년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전원에게 해 주는 응원과도 같았다.
“어, 어떻게 라의 화신이 이곳에…….”
“신들께서는 결코 이 땅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힘들고 괴롭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맞서 싸웁시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하겠소!”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짧지만 힘이 담긴 오마르의 연설에 사람들이 벅찬 환호성으로 보답했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나누었고, 아픈 환자들을 보살피기 시작했으며 힘이 있는 남성들은 무기를 쥐어 들고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오마르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오마르를 모시는 부관, 핫산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정부가 결사반대하던 일을 이렇게 독단적으로 진행해도 되는 걸까요? 만약 돌아가서 문초라도 받으신다면…….”
“그까짓 거 백 번이든 천 번이든 기쁘게 받지.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위험한 곳을…….”
부관의 의문에 오마르는 눈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이번에 나타난 던전의 위험성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던전이나 재앙종들과 격이 다른 레벨이네. 나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전사들이 힘을 하나로 뭉치지 않는다면 결코 이겨 낼 수 없겠지.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하네. 그러니 발버둥이라도 쳐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의무의자 책임이니까.”
“대장…….”
“가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그 괴물 놈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을 테니.”
그렇게 오마르와 이집트 특무대는 원흉이 존재하는 수단의 더욱 깊숙한 내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