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50화 (150/175)

150.

윤수호 일행이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그날 저녁.

독일에서도 2차 던전의 포털을 빠져나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스읍…… 하아……. 그래, 이 신선한 피의 향기. 죽은 자의 썩은 내 나는 혈향이 아닌, 갓 태어난 새끼 사슴의 그것처럼 달콤한 인간의 피 냄새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축하드립니다, 마담.”

“분부만 내리소서. 마담께 바칠 갓 태어난 아기의 피를 지금 당장 모아서 바치겠나이다.”

포털을 빠져나온 무리는 한 여인을 향해 부복하며 경의와 두려움을 표했다.

창백한 안색과 붉은 눈동자, 그리고 은백발의 머리를 가진 무리의 경의를 받는 여인 또한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들 일족이 남녀 구분 없이 전부 미남, 미녀이긴 했지만 경외를 받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그들과도 차원을 달리했다.

오죽했으면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모인 독일의 특무대들도 넋을 놓고 쳐다봤을까.

“정신 차려라, 제군!”

“……!”

그 순간, 군대의 선두에 있던 한 사내의 일갈에 일부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단순한 일갈이 아닌, 오러를 내포한 사자후는 매혹당한 동료들의 정신을 물리적으로 자극시켜 강제로 각성시킨 것이다.

이것도 그가 독일의 톱텐, 철권(鐵拳) 아이젠 슈비츠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자후에 정신을 차린 대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아직도 매혹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너.”

그 순간, 창백한 존재들의 경외를 받던 여인이 아이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아이젠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가 다급하게 눈을 돌렸다.

몇 초라도 더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간 자신조차 매혹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히 내 눈을 피하다니, 좋은 배짱이구나. 본래라면 이 자리에서 찢어 죽여야 마땅하나, 오늘은 내 기분이 매우 좋구나. 어떠냐, 보아하니 인간들 중에서도 제법 쓸 만한 실력자 같은데 나의 일족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이?”

“내가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괴물을 사냥하는 것뿐. 다른 뜻은 없다.”

“그래? 그럼 어디 뜻대로 해 보거라. 나는 여기서 네 녀석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

여인이 손을 내밀자 그의 권속들이 주인의 뜻을 알아채고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곧 새까만 밤하늘을 창백한 붉은 눈의 일족이 뒤덮기 시작했다.

“전원, 전투 준비!”

아이젠의 외침에도 반응하는 사람은 몇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와중에 실수로 여인을 쳐다봤다가 다시 벗어나지 못할 매혹에 걸리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어디 한 번 나를 즐겁게 해 보거라, 나의 노예들아.”

딱.

여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현실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인님을 위해서…….”

“주인님을 위해서!”

푸욱! 촤악! 서걱! 콰앙!

“뭐, 뭐야?”

“이 미친놈들아! 정신 안 차려?”

“최면에 빠진 놈들이 아군을 공격한다!”

“아이젠 님!”

이미 최면에 깊이 빠진 군대는 그야말로 여인의 꼭두각시였다.

그들은 여인의 만족을 위해서 방금 전까지 아군이었던 동료들의 목에 검을 꼽고 맨손으로 심장을 뽑아 들었다.

이윽고 독일군의 진영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며 비릿한 피와 노릿한 내장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여인은 피와 내장, 그리고 사람들의 절규를 감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당장 최면을 풀 방법은 없다! 최면에 걸린 녀석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사살한다!”

아이젠은 피눈물을 머금고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아군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면 목숨을 빼앗는 대신 기절을 시키거나 정신을 잃게 만드는 수단을 썼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둘 다 해당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동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사살 명령을 내린 것이다.

물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의 피구나! 히히히~!”

“맛있어! 너무 달콤하고 향기롭다!”

“도대체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인간의 피인지…….”

전장을 기습한 붉은 눈의 일족이 그나마 온전히 정신이 남아 있는 독일군을 기습하여 모가지에 송곳니를 박아 넣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더욱더 요사스럽게 붉은 안광을 뿌렸다.

“그, 그만……!”

“사, 살려 줘…….”

송곳니가 박힌 인간들은 별다른 저항도 못 해보고 그저 눈물만 흘리다 빠르게 말라갔다. 마치 흡혈귀에게 몸 안에 존재하는 피와 수분을 모두 착취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마른 고목마냥 죽은 동료들의 모습에 기겁한 독일군이 더 필사적으로 적들에게 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까앙!

“간지럽구나. 이것도 공격이라고 하는 것이냐?”

빠지직!

“크크큭! 우리 일족의 세 살배기 애새끼도 네놈들보단 장사일 것이다.”

흡혈귀들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오러가 서린 검을 일격에 깨부수는가 하면, 오러가 서린 전투 망치를 주먹으로 깨부수는 등, 상식을 초월한 괴력을 보여 주었다.

심지어 스피드는 또 얼마나 빠른지, 어지간한 알터 능력자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결국 피해는 빠르게 불어나고, 전력의 숫자는 급감하고 있었으니, 독일군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악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콰앙!

“크윽!”

“인간 주제에……!”

콰아앙!

“크악!”

그중에서 단 한 명. 아이젠만큼은 달랐다.

톱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양손에 특수 제작한 건틀릿을 착용한 아이젠이 주먹을 휘둘러 흡혈귀들을 되레 몰아붙였다.

상식을 초월하는 흡혈귀들의 속도를 더 빠른 스피드로 따라잡아, 놈들의 괴력을 뛰어넘는 철권으로 그 머리통을 박살 냈다.

결코 화려하진 않지만 군더더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격필살.

최단 거리의 투로를 공략하여 단 일격으로 적을 격살하는 아이젠의 주먹은 흡혈귀들조차 함부로 볼 수 없었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가만히 있거라.”

그 꼴을 보다 못한 여인의 측근들이 나서려하자 여인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마담?”

“볼수록 재미있는 장난감이구나. 녀석의 피 맛이 궁금하긴 하지만…… 이대로 죽여 버리기엔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냐?”

말을 하면서 여인이 일어나 앞으로 나가자 그녀의 측근들이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모든 일은 마담의 뜻대로…….”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이던 여인의 모습이 어느새 아이젠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참으로 열심히 하는구나. 이런다고 결과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느냐?”

“……!”

아이젠은 경악했다. 그녀가 다가올 때까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인이 딱히 기척을 숨기고 온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만약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은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을 거란 생각에 식은땀 한 방울이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린 아이젠은 그의 별명인 철권처럼 강철 같은 의지를 그 주먹에 다지며 그녀와의 전투를 준비했다.

‘차라리 잘 됐다. 이 괴물만 죽이면 나머지 녀석들도 뿔뿔이 흩어지든가 숨겠지. 다음 일은 그 이후에 생각하자.’

흡혈귀들을 상대하느라 적당히 몸도 데워진 참이다. 본래 전사들은 최고의 컨디션에서 싸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이보다 컨디션이 좋을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일까?

퓻.

풋워크를 밟으며 빛살처럼 날리는 육신이 평소보다 배는 가볍게 느껴졌다.

‘된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오러가 주먹 끝에서 끝없이 응축되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오러가 안정적으로 응축되자 없던 자신감도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파지직, 파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위력을 품은 미스틱 오러가 약간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적을 위협했다.

아이젠은 확신했다. 이 주먹이라면…… 지금의 이 일격이라면 태산이라도 부숴 버릴 수 있다고.

하나 아이젠은 방심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여유 만만인 상대방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예의 주시하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최강의 일격을 내뻗었다.

콰아앙!

주먹이 공기의 벽을 꿰뚫고는 그대로…….

쿵!

여인의 손바닥에 막혀 버렸다.

“역시 내가 선택한 장난감답도다. 두 손가락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랬다간 손톱이 망가질 것 같더구나. 참으로 훌륭해.”

“……!”

있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여인의 섬섬옥수에 잡힌 자신의 주먹이 마치 무쇠 덩어리에 박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쳐다보는 아이젠의 눈동자가 태풍에 휘말린 조각배마냥 거칠게 흔들렸다. 두려움, 공포, 절망, 후회, 회한, 불안 등의 감정이 미친 듯이 정신을 뒤흔들었다.

그런 아이젠의 심리 상태를 들여다본 것일까? 여인의 입꼬리가 스산하게 말려 올라갔다.

‘고, 고개를 돌려야…….’

“너는 내 것이다, 인간.”

그 순간, 여인의 붉은 눈이 옅게 빛나자 그녀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던 아이젠의 동공이 멍하니 풀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아이젠의 주먹을 놓아주니 아이젠은 그 자리에 부복하여 그녀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가서 일족의 양식이 될 만한 인간들을 구해 오렴.”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아이젠은 최면에 걸린 동료들을 이끌고 가장 가까운 마을로 빠르게 이동했다.

독일의 조용한 마을이, 독일의 수호신으로 인해서 지옥이 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참으로 달콤하구나. 어찌 이 맛을 참고 살았을까…….”

인간의 피를 마시며 여인은…… 흡혈귀의 여왕, 바토리 블라디메어는 그렇게 시체로 만들어진 왕좌 위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 * *

짧은 휴가를 마치고 일본에서 돌아온 윤수호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예상치 못했던 은지연의 깜짝 발표에 윤수호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게 정말이야?”

“그럼. 속고만 사셨나. 이게 전부 삼촌 덕분이야. 고마워, 삼촌. 수현이도 삼촌을 직접 만나서 꼭 감사를 드리고 싶데.”

지난 테마파크 이벤트 마지막 날 뒤풀이에서 윤수호는 은지연의 노래 실력과 임수현의 작곡 실력에 꽤나 높은 재능을 엿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틀 뒤, 의사를 결정한 두 사람이 윤수호를 찾아왔고 윤수호는 유명한 보컬 트레이너와 작곡 교사를 섭외해서 두 사람을 맡겼다.

그렇게 노래와 작곡을 배운 두 사람이 얼마 전에 노래 하나를 만들어 너튜브에 올렸는데 그게 무려 1천만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이다.

“지금은 1,100만이네.”

“축하한다, 은지연.”

“이게 다 삼촌 덕분이지. 삼촌이 아니었으면 노래를 하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을 테니까.”

“한번 들어 볼 수 있을까?”

“당연하지!”

은지연은 준비해 두었던 MR을 틀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가 통통 튀는 멜로디, 사춘기의 고민이 담긴 가사와 함께 마치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잘 맞아 떨어졌다.

“어때?”

노래가 끝나자 은지연은 떨리는 눈빛으로 삼촌에게 감상을 물었다. 그에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던 윤수호는 눈을 뜨더니…….

“쩌는데?”

엄지를 척하니 치켜세우며 미소를 그렸고 그에 은지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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