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우와아악!”
“뭐야,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 으아아악!”
“무슨 소란들이야?”
“저, 저기……!”
첫 시작은 김세민이었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자 그의 시선을 따라간 오수영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에 공승환이 무슨 일인지 물었다. 오수영은 손가락으로 윤수호가 있는 쪽을 가리켰고 이내 공승환의 표정도 눈에 띄게 굳어 들었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하이데른이 부활해 있었던 것이다.
“전원 전투태세!”
공승환이 크게 외치며 부하들의 두려움을 날려 주었다. 그에 김세민과 오수영도 빠르게 반응하며 공승환을 보조했다.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윤수호의 발목은 잡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텐겐도, 다른 환수족도 마찬가지였는지 긴장을 잔뜩 끌어 올린 채 몸속의 오러를 잔뜩 끌어 올렸다.
그 순간.
“푸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터져 나온 대소에 사람들의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어지며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웃음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스승님?”
“엘도라드 공?”
“아, 미안하네. 설명해 주려다가 자네들 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너무 재미있어서……. 크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엘도라드가 말을 이었다.
“안심하게. 저 언데드 늙다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니까.”
“적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과인을 보면 모르겠는가?”
“스승님요? 스승님이 왜……. 아!”
그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치우팀과 다르게 아직도 의문이 가득한 텐겐이 환수족을 대신해서 물었다.
“무슨 상황입니까?”
공승환이 대답했다.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시기로 던전에서 특정 조건…… 그러니까 던전 보스를 제약이 걸리지 않은 상태로 사냥하는 데 성공하면 소울 트럼프라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울 트럼프?”
이어지는 말은 오수영이 답했다.
“한마디로 소유자에게 복종하는 보스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이죠. 스승님께서도 그런 식으로 함께하게 되신 거고요.”
“그,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이니까 스승님께서 저희와 함께 있는 거겠죠?”
꿀꺽…….
텐겐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함께 싸워 봤기에 엘도라드의 능력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엘도라드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잘 맞는다는 가정하에 적어도 톱텐급 실력자가 둘 이상은 필요했다. 호흡이 잘 안 맞는다면 셋 이상은 무조건이었다.
텐겐은 도대체 이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항상 궁금했다.
윤수호가 무언가를 사용하여 그를 소환하는 것은 봤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물어볼 타이밍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호기심이 해결됐다. 그런데 호기심이 해결됐어도 개운하기는커녕 경악과 두려움만 커질 뿐이었다.
‘하이데른을 손에 넣은 검신이 만약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자타공인 세계 최강대국 미국. 만약 윤수호가 하이데른에게 미국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면?
미국은 하이데른을 막을 수 있을까? 제약을 받지 않는 100%의 하이데른을?
텐겐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윤수호가 손쓸 필요도 없었다.
하이데른과 엘도라드. 두 괴물만 이용해도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윤수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
텐겐은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윤수호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고.
설령 일본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지면을 혀로 핥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어떤 굴욕도 일본의 멸망보다 나쁜 상황은 없을 테니까.
* * *
“나를 알아보겠나? 하이데른.”
윤수호는 소환된 하이데른에게 자신이 누군지 물었다.
하이데른은 그 특유의 근육질 거구를 웅크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더니 손을 가볍게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이는 나의 지식은 당신의 것이라는 마법사의 수언으로 마법사가 상대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 복종의 표시였다.
“저의 위대한 마스터를 뵙습니다. 감히 곁에 설 자가 없는 지고의 존재를 이렇게 모시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마스터.”
소울 트럼프의 효과로 강제적 복종치가 최고 수준에 달한 하이데른이었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굳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 보였다.
강함을 숭상하는 마족. 그중에서도 공작급 마족을 흡수한 그였기에 그에게도 마족의 성향이 강하게 엿보였다.
즉,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닌 윤수호에게 본능적으로 복종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곧바로 일부터 시작하자. 지금 여기 흩어져 있는 아이템들. 전부 수거 가능하지?”
“마스터의 명령을 받듭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이데른이 손을 머리 위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엄청난 흡입력으로 주위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이템이 전부 저 마법진 속으로 빨려들어 가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멀쩡한 거지?”
마치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아이템의 종류와 수량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마법진.
그럼에도 윤수호나 일행에게는 그 효과가 전혀 없었는데 그저 산들바람이 조금 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마스터.”
“좋아. 잘했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인 하이데른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볍게 치하한 윤수호.
하이데른 덕분에 지평선까지 뒤덮고 있던 아이템들을 남김없이 수거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집으로 돌아가 볼까?”
* * *
윤수호 일행이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지 며칠 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약속했던 모든 조건들을 차질 없이 이행하였다.
특히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교과서나 공문서에서도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대한민국으로 올바르게 표시했다.
사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얼굴이 다른 일본 정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행정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조건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변경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군말 없이 조약을 이행한 이유는 다름 아닌 텐겐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 아니, 검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시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와 본국의 모든 전력이 필사적으로 싸운다 해도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할 테니까.”
“무, 무슨 그런 험한 농담을…….”
“농담인 줄 용케 눈치채셨구려?”
“그치요? 그럴 줄 알았…….”
“한 시간은 무슨, 일 분이나 버티면 오래 버틴 거지.”
“…….”
“아, 참고로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봐 미리 얘기하는데 미국이나 UN의 도움은 꿈도 꾸지 마시오. 검신이 직접 나설 것도 없이 그의 수하들만 나서도 전 세계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농담이 아니오. 내가 던전에서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이지. 그야말로 악몽 같은…….”
총리와 일본의 고위 관료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텐겐이 직접 한 얘기였다.
사람들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일본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텐겐이었기에 쉽게 흘려들을 수도 없는 얘기였다.
“명심하시오. 만약 쓸데없는 의견을 발의하거나 혹여라도 검신을 적으로 돌릴 의지가 있는 안건을 상정한다면 내 손으로 그자의 목을 벨 것이오. 다름 아닌 이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엄포를 놓은 텐겐이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정부로부터 살인 면허권을 허가받은 텐겐이다.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살인을 저질러도 어차피 처벌할 수 없으니 책임감이라도 짊어지라고 준 것이다.
그렇다보니 텐겐이 정말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이들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찍 소리도 못 하고 한국 정부의 요구를 100% 발 빠르게 수용한 것이다.
* * *
“오셨습니까, 가주님. 식사는…….”
“됐네. 그것보다 귀빈분들은?”
“지금 야외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계십니다.”
“모시는데 불편함은 없겠지?”
“사용인들 전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텐겐은 하코네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을 찾았다.
아름다운 산악과 온천이 일품인 지역으로 그가 별장을 지은 곳 역시 특별히 좋은 온천수를 쓸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물은 좀 맞으십니까, 여러분?”
“오셨어요?”
“덕분에 호강 중입니다. 이야~ 진짜 온천물 좋네요. 여기가 극락이지, 극락이야.”
노천욕을 즐기고 있는 귀빈들은 전원 수영복을 갖춰 입은 던전 공략팀이었다.
그들 모두 텐겐의 초대로 이곳에서 전투의 피로를 풀며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정부와 특무대에서도 고생한 이들을 위해 흔쾌히 최장 한 달의 휴가와 함께 막대한 성과금을 내렸다.
물 좋은 온천에 통장에 찍힌 수백억 대의 돈을 보고 치우팀 팀원들의 기분이 최고조인 것은 물론, 엘도라드와 환수족 전사들 역시 오랜만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이 맞으시다니 다행이군요.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함께 가실까요?”
따뜻한 온천욕에 맛있는 밥, 싱그러운 휴양지에서 즐기는 힐링 휴가에 대원들은 던전에서 찌들었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휴양을 질긴지 고작 사흘째, 일행은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벌써 가신다고요?”
“그래, 아무래도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입장인지라. 그동안의 대접은 고마웠다. 진심이야, 가주.”
윤수호는 일행을 대표해서 텐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텐겐이 자신들에게 느끼는 전우애가 진심인 것처럼, 윤수호도 텐겐의 마음씀씀이를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말인데, 가주에게 선물이나 하나 주려고.”
“선물이라면…….”
“따라와.”
윤수호가 텐겐을 이끌고 찾아간 곳은 별장 후원에 마련된 작은 연무장이었다.
“지금부터 뭘 하나 보여 줄 생각인데 여기서 뭘 얼마나 얻어갈지는 가주의 재량에 달렸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
텐겐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검을 곧추 잡고 기세를 끝까지 끌어 올렸다. 윤수호와 싸우려는 게 아니라 이 정도라도 하지 않으면 끝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
윤수호는 준비를 마친 그의 모습에 미소를 그리며 검결지를 들어 올렸다.
“그럼…….”
윤수호의 발이 수면을 차듯 가볍게 지면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서 손가락 끝이 허공을 그렸다.
“……!”
그 순간, 텐겐이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앞에 핀 꽃들은 아사쿠라식 환검류의 정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 가문의 비전 검술과 비슷하지만 달라!’
검무가 끝나고, 꽃잎이 모두 흩날리자 몽롱하게 검무를 지켜보던 텐겐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던전에서 내가 봤던 가주의 검식을 내 식대로 재현해 보았다. 훌륭한 검술임은 분명하지만 환검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법한 검식들을 전부 쳐 냈더군. 쾌검은 그게 옳지만 환검은 달라. 품은 가지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많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법. 내가 보기에 아사쿠라식 환검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피우냐가 아닌, 얼마나 피우냐였다. 마치 봄날에 흐드러지는 벚꽃처럼 말이지.”
“……!”
충격을 받은 듯한 텐겐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눈을 감고 명상에 빠졌다.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절대로 깨우지 마십시오.”
“예.”
사용인에게 주의를 당부한 윤수호는 깨달음을 얻은 텐겐을 슬쩍 보고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그리며 조용히 별장을 떠났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