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하이데른은 진심으로 윤수호라는 존재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꼈다.
자신이 알기로 망령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사령술뿐. 신성력으로도 망령을 정화시킬 수 있을 뿐, 방금 본 것처럼 망령을 소멸시키는 방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러나 윤수호는 녀석의 질문에 대답해 줄 마음이 없었는지 곧바로 움직였다.
슉.
다시 한 번 눈앞에서 사라지는 윤수호의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는 하이데른.
“멍청한 놈.”
윤수호의 스피드는 충분히 경험했다. 제약이 걸려 있었을 때는 보고도 반응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방금 전에는 힘 조절을 잘 못했지만 이번엔 확실히 뼈와 내장을 으깨주지!’
일격에 죽일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자신에게 준 수치만큼 하이데른도 윤수호를 철저하게 가지고 놀다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오른쪽!’
그 순간, 자신의 오른편에서 윤수호의 기척이 느껴지자 반사적으로 하이데른의 주먹이 오른쪽을 내질렀다.
콰앙!
단순한 주먹질에서 파생된 권풍에 땅이 부서지고 먼지 구름과 파편들이 튀어 올랐다.
그의 주먹은 확실히 윤수호의 몸통을 관통했다. 하지만 그건…….
‘환영?’
촤악!
왼쪽에서 날아든 검격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검격을 피한 하이데른이었지만 살짝 늦었던 모양이다.
회피한 하이데른의 오른팔이 깔끔하게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윤수호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무심한 표정으로 하이데른을 쳐다보았다.
“벌레 따위가……!”
자신을 멸시하는 것 같은 윤수호의 무심한 표정에 얼굴을 잔뜩 구긴 하이데른이 그대로 윤수호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어디서 따로 권법을 익힌 것은 아니었다. 휘두르는 건 그저 무식한 주먹질일 뿐.
그러나 그의 강대한 육체가 뒷받침된 무식한 주먹질은 그 자체로 어떤 절세의 권법보다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수백 개의 권영이 윤수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하나 하나의 위력은 능히 산을 부수고, 땅을 쪼갤 수 있었으니…….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먹구름 낀 하늘에서 소나기마냥 쏟아지는 망령들.
그 수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엄청난 수의 망령들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얼핏 세상의 종말은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흐익……!”
“걱정 마. 아무리 저것들이라도 여긴 못 들어오니까.”
쏟아져 내리는 망령들은 산 자의 냄새가 느껴지는 엘도라드 일행을 먼저 급습했다. 하지만 성역에 막히자 다른 살아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맡아 빠르게 이동했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윤수호였다.
“위원장님! 조심하세요!”
오수영은 필사적으로 소리쳐 윤수호에게 알렸지만 그녀의 외침과는 별개로 악령들은 윤수호의 몸속으로 빠르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제법 버텼을지 몰라도 이제부턴 지옥이 시작될 게다. 놈!’
하이데른은 자신했다.
방금 전에는 망령이 침투하기 전에 붙잡혀서 실패했지만 망령에게 침식당한 이후로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망령은 다루기가 힘든 만큼 매우 위험하고 강력한 존재였다.
아주 약한 망령 하나라도 건강한 남자를 하룻밤 사이에 끔찍한 몰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악몽을 꾼다거나, 지독한 환상을 본다거나,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되면서 사람의 몸이 빠르게 피폐해진다.
그뿐인가?
오한, 어지러움, 발열, 구토, 분노, 절망, 우울 등의 감정 기복이 급변하면서 정신적으로도 빠르게 무너져 버린다.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미쳐서 광란에 빠지는 등, 최악의 결말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윤수호의 몸속을 침투한 망령은 하나도 아니고 수백…… 아니, 수천 마리에 가까웠다.
지금당장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미처 죽는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숫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촤촤촤촤촤촤!
“……!”
윤수호의 검기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로워졌다. 쏟아져 나온 검기는 수많은 권영들과 충돌하며 충격파를 끊임없이 터트렸다.
무쇠도 푸딩처럼 으깰 수 있는 자신의 주먹이 넝마가 된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더 놀랄 일은 따로 있었으니까.
“무슨……!”
윤수호의 몸을 침투했던 망령들이 그의 몸을 빠져나와 오히려 윤수호에게 달려드는 망령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력에 침식당해 보랏빛으로 물든 하이데른의 망령과는 달리 은은하게 푸른빛으로 빛나는 망령들은 매우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왜? 망령을 다루는 게 네 전매 특기라고 생각했나 보지?”
“……!”
하이데른은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사실 윤수호에게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천부공은 선계의 왕이자 제사장인 천부의 무공이다.
선조들의 영(靈)에 제를 드리고, 악귀를 쫓고, 망령을 진정시키며 음양의 조화를 다스리는 건 천부공의 본래 기능이었다.
즉, 하이데른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 싸움은 반딧불이가 태양에게 빛으로 싸움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촤악! 콰아앙!
“커헉!”
윤수호가 쏘아 낸 초승달 형태의 검기에 당한 하이데른이 수백 미터를 날아가더니 자신이 융기시킨 돌기둥에 부딪쳐 추락하였다.
콰아아앙!
“네놈……!”
무너진 돌기둥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며 모습을 드러낸 하이데른이 한층 더 구겨진 얼굴로 하늘에 떠 있는 윤수호를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팍을 그러쥐었다. 고통이 느껴질 리 없는 언데드의 육신이건만 그의 검기에 당한 흉터가 불에 덴 것처럼 끔찍하게 아파 왔다.
이는 천부공이 악귀에 대한 정화의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하이데른으로서는 그저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지만…….
무지는 공포를 낳는다. 하이데른에게 있어 이 공포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고 이내 공포는 분노로 승화되었다.
“먼저 네놈의 그 잘난 얼굴을 태워 주마!”
하늘에 수많은 마법진이 생성되고, 그 속에서 흑마법의 포격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눈에 보이는 대지가 불타고, 얼어붙고, 녹고, 부서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 순간.
번쩍!
윤수호의 검 끝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수천 가닥에 이르는 빛은 그 한 줄기, 한 줄기가 전부 검기였다.
빛과 함께 쏟아져 나온 검기는 윤수호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리고 충돌하는 모든 것들은 남김없이 베어 소멸시켰다.
그것이 흑마법이든, 마법진이든, 언데드든 상관없이…….
“크아아아아아!”
마법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하이데른이 비명과 같은 괴성을 지르며 윤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콰콰쾅! 쿠르릉…… 쩌정!
두 사람은 하늘이 좁다하고 전장을 누비며 충돌했지만 그때마다 사지가 찢겨 날아가는 건 하이데른이었다.
하지만 하이데른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찢겨져 나가도 순식간에 회복하는 재생력을 믿고 그에게 달려든 것이다. 곧이어 수많은 주먹의 그림자와 흑마법이 윤수호에게 집중되었다.
윤수호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반달 형태의 거대한 검기가 무서운 속도로 하이데른을 향해 날아갔다.
검기는 마치 블랙홀처럼 윤수호에게 쏟아지던 흑마법들과 권영을 빨아들이며 무서운 기세로 질주했다.
퓻!
하이데른은 블링크를 사용하여 공간을 뛰어넘는 회피술을 선보였지만…….
촤악!
‘어째서……?’
콰콰콰콰콰쾅!
이미 그곳에 한발 먼저 도착한 윤수호가 검을 휘둘러 녀석의 몸뚱이를 갈라 버렸다.
남은 여력이 지상에 거대한 검흔을 남겼지만 라이프 베슬에서 막힌 윤수호의 검은 하이데른의 몸통을 반쯤 가로지르다 막혀 버렸다.
하이데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놈의 움직임을 전혀 읽을 수 없는데 어떻게 놈은 자신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것인지…….
‘단단하군.’
한편, 윤수호도 하이데른의 품속에 있는 라이프 베슬의 내구력에 상당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그 일격은 하이데른을 끝장낼 각오로 휘두른 일격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검은 하이데른의 라이프 베슬을 베지 못했다. 전력은 아니라고 해도 진심을 담아 휘둘렀는데 꽤나 충격적인 결과였다.
‘확실히 끝장을 내려면 하는 수 없지.’
“이럴 순 없다……. 이럴 순 없다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하이데른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의 머리 위로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복잡하고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전장과 함께 네놈을 날려 버려 주마! 나는 재생하겠지만…… 네놈은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마법진 위로 거대한 망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이데른이 권위를 찬탈한 마계 공작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하이데른의 꼭두각시 인형이 된 망령이 두 팔을 하늘 높이 들고 팔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마주 본 손바닥 사이로 엄청난 양의 마력이 압축되었다.
마력이 압축된 덩어리는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더니 탑보다 더 거대한 구체가 되어 마치 검은 태양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열기에 검은 태양 주변의 대기가 타올라 붉게 물들고, 대지는 녹아내려 어느새 용암의 강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검은 태양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끔찍한 비명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파지직, 파직!
‘마력이 전부는 아니군.’
그 구체의 에너지로 쓰인 것은 마력뿐만 아니라 망령이 가진 영혼의 에너지였다.
영혼 에너지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영혼 에너지가 모두 뽑혀 나간 망령은 그대로 소멸하게 되는데…….
“설마 네놈이 가진 망령들을 전부 재물로 바칠 생각인가?”
“아무렴! 네놈만 없애 버릴 수 있다면 망령 따위 얼마든지 내주지. 어차피 망령들이야 얼마든지 다시 수급할 수 있으니까! 자, 유언은 그게 전부더냐!”
기분 나쁘게 히죽 웃던 하이데른의 몸이 타올랐다.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의 방류에 시전자인 그조차 무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아라! 이것이 나의 최고 걸작, 9서클 흑마법, 아마게돈이니라!”
이윽고 완성된 검은 태양…… 아마게돈을 공작의 망령이 집어 던졌다.
아마게돈은 지상을 스쳐지나가면서 지나온 땅과 언데드들을 무참히 녹이고 살랐다. 검은 태양이 지나온 길은 전부 녹아 마그마의 강이 찰랑거렸으니까.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힌다. 마법의 이름처럼 종말이 형태를 이룬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정면에서 날아오는 검은 태양을 상대로 윤수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저 자세를 낮추고, 칼자루를 다잡은 뒤, 맑은 눈을 들어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검은 태양을 직시할 뿐이었다.
“후우…….”
그의 입에서 나직한 숨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번쩍!
검끝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천부공(天夫功) 지식(地式) 지평선(地平線).
검끝에서 터져 나온 빛은 하늘과 땅을 나누는 지평선을 따라 순백의 실선을 그었다.
스핏.
그리고 빛을 잃어 가며 소멸하는 실선을 따라 실선에 걸린 검은 태양도 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뒤늦게 불어닥친 상상을 초월하는 검풍.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마치 대지를 쓸어버릴 기세로 몰아치는 폭풍이었다. 윤수호가 만들어 낸 검풍 앞에서 하이데른의 아마게돈은 그저 태풍 앞에 놓인 촛불에 지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검은 태양이 폭풍에 휘말려 사그라들고…….
“내가 지금 싸우고 있는 존재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쨍그랑!
그 광경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하이데른은 육체가 사그라드는 와중에 드러난 라이프 베슬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결국 그 운을 다하고 말았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