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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146화 (146/175)

146.

하이데른의 손가락을 따라 검은 광선이 기관총처럼 윤수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에 윤수호는 설을 휘둘러 눈앞에 검막을 펼쳐 냈다. 수백, 수천 가닥의 검기가 응축된 검막은 단 한 발의 광선도 허용하지 않고 모든 광선을 주변으로 튕겨 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지상에 난데없이 불꽃놀이가 펼쳐지며 대지가 흔들리고, 화마가 충천했다.

한 발, 한 발이 능히 빌딩 하나는 날려 버릴 수 있는 광선 수백 발의 위력은 그야말로 땅과 하늘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 윤수호의 모습이 또다시 사라졌다.

하이데른같은 괴물에게 어지간한 수는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같은 수를 또다시 성공시킨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스핏. 촤악……!

“이런…….”

하이데른은 찢겨 나가는 자신의 몸을 보고 끌끌 혀를 찼다.

윤수호의 반격에 대비해 수십 중첩으로 함정과 대비를 깔아 놨건만…… 그의 검은 그 모든 것을 깡그리 베어 버리며 자신의 몸뚱이까지 토막 낸 것이다.

슉!

다시 모습을 드러낸 윤수호를 향해 빠른 속도로 재생하던 하이데른이 안타까움 섞인 비아냥을 건넸다.

“애석하구나. 네 녀석이 다른 벌레들과 결이 다른 존재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결국 네놈은 내 손에 쓰러질 것이다. 벌레들 대신 네놈이 탑으로 향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니지, 그렇게 되면 벌레들이 1초도 버티지 못했겠구나. 결국 처음부터 네놈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란 말이렷다. 절망밖에 남지 않은 운명 말이지.”

“하아…….”

윤수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실력으로 안 되니 이제는 말로 싸우자는 건가? 걱정은 고맙지만 착각하지 마라. 난 의미 없이 시간이나 벌자고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

“농담이 심하구나. 그 벌레들이 탑 안으로 들어간다 한들 무엇이 변할까? 고작 반도 올라가지 못해서 목숨을 잃고 끝내 나의 장난감이 될 것이다. 나의 장난감이 된 네놈의 동료들과 너를 재회시키는 것도 꽤나 볼만하겠…….”

콰아아앙!

그 순간, 탑의 정상에서 칠흑의 본 드래곤 브레스가 터져 나오더니 이윽고 얼마 안 있어 하이데른의 표정이 굳어 갔다.

그 모습에 윤수호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이죽거렸다.

“아무래도 벌레는 내 동료가 아니라 네 녀석이었던 것 같군, 하이데른.”

“이 벌레 놈들이……!”

순식간에 일그러진 하이데른의 얼굴이 강한 노기를 띠었다. 그 순간, 하이데른의 몸을 보랏빛 구체가 감싸며 보호했다.

그와 동시에 엘도라드의 텔레파시가 윤수호의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마스터, 놈의 라이프 베슬로 추정되는 핵까지는 접근하는데 성공했느니라. 그런데 정말 처음 계획대로 할 생각인가?

-그래야지. 성격은 쓰레기지만 놈의 능력만큼은 진짜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후회할 수도 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핵을 파괴하는 게…….

-엘도라드.

그리고 아주 잠깐 흐르는 침묵.

-고생했다. 그러니까 쉬고 있어.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고.

주저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엘도라드는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굳은 각오도, 강철 같은 의지를 표명한 것도 아닌데 윤수호의 나직한 권유는 그 어떤 말보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알았다. 그럼 나머지는 모두 맡기도록 하지.

-성역의 인장은?

-3개 있다.

-충분하겠네.

성역의 인장은 이 던전에 들어와서 획득한 아이템이었다.

일정 공간을 성역으로 선포하여 그 안에서는 언데드 타입 몬스터의 그 어떤 공격이나 효과도 전부 무시하고 보호받을 수 있었다.

또한 언데드의 접근도 불가능해서 먼저 공격하거나 성역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언데드 무리 한가운데에서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성역의 지속 시간은 10분. 그 안에 하이데른을 쓰러트린다.’

아마 여기서 하이데른을 강화시키지 않고 쓰러트리는 방법…… 아마도 놈의 핵이 되는 라이프 베슬을 파괴하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윤수호는 그런 식으로 하이데른을 쓰러트릴 생각이 없었다.

쉬운 방법은 재미가 없다거나 그런 취향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의 저력을 100% 끌어 올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아이템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슈웅!

결국 탑의 정상을 벗어난 구슬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 하이데른을 감싸고 있던 보랏빛 구슬 속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쿠쿠쿠쿠쿠쿠쿠쿠……!

우르릉…… 콰쾅! 콰콰쾅!

갑자기 보랏빛 구체 안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폭주하듯 터져 나오더니 천지만물을 뒤흔들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는가?

먹구름을 품은 하늘은 벼락과 뇌성을 토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쳤고 죽음의 대지도 두려움에 몸을 떨듯 작지 않은 지진이 땅을 뒤흔들었다.

그 속에서 탑 밖에 존재하는 모든 언데드들이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들을 창조한 죽음의 군주가 이 자리에 강림한 탓이다.

이내 보랏빛 구슬이 사라지고 베일에 감춰졌던 하이데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정갈한 마법사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배꼽까지 늘어진 하얀 수염과 긴 흰 눈썹은 비슷할지언정 깡마른 나뭇가지 같은 몸 대신, 백전연마의 전사와 같은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육체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몸을 감싸고 있던 로브는 마력에 흩날리며 망토처럼 펄럭였고 후드 아래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에서는 마력이 흐르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크크큭…… 크하하하!”

콰르릉! 콰콰콰쾅!

그저 앙천광소를 터트렸을 뿐이다. 하늘을 보고 크게 웃은 게 전부라는 말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폭발한 마력이 주변을 휩쓸었다. 하늘에서는 뇌우가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땅이 갈라져 침식과 융기를 반복했다.

그 탓에 수많은 언데드들이 박살 나고 부서졌지만 언데드들은 여전히 하이데른을 향해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탑의 정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은 불안감이 커져갔다.

“저, 저기 진짜 우리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서둘러 내려가서 당장 위원장님을 돕는 게…….”

“가서 뭘 할 수 있는데?”

“뭐?”

“우리가 가서 뭘 할 수 있냐고. 기껏해야 위원장님의 발목이나 잡든가 죽는 게 전부겠지.”

“야! 김세민! 너 말을 무슨 그딴 식으로…….”

김세민의 대답에 발끈해서 대꾸하던 오수영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얼마나 세게 틀어쥐었는지 김세민의 주먹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누구보다 분노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던 것이다.

“세민이 말이 맞다. 우리가 지금 위원장님을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서 꼼짝 않고 가만히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뿐이니까.”

“팀장님…….”

“분하군요. 명색이 톱텐이라는 자가 동료와 함께 같은 전장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오늘만큼 제 자신이 혐오스러운 적이 없었습니다.”

텐겐의 자조 섞인 넋두리에 오수영은 그만 입을 닫고 자리에 조용히 착석하였다. 그런 오수영의 어깨를 엘도라드가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

“너무 분해하지 마라. 너는 너대로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마스터의 기대에 부응했느니라. 지금은 그저 마스터를 믿고 응원해 주자꾸나.”

“네, 스승님!”

그렇게 기운을 되찾은 오수영은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윤수호를 응원하였다.

한편 엘도라드는 시선을 돌려 하이데른을 쳐다보았다.

‘내가 우르키엘의 권능을 사용한다면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후하게 생각해도 7 : 3. 냉정하게 생각하면 8 : 2에 더 가깝겠지.

물론 승률이 낮은 쪽이 자신이었다. 게다가 승패와 상관없이 너무 많은 권능을 몸에 담은 탓에 자신은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조심하게, 마스터. 놈은 평범한 괴물이 아닐세.’

그렇게 엘도라드도 조용히 속으로 윤수호의 승리를 기원하였다.

* * *

“드디어 빌어먹을 악신의 주박으로부터 해방되었도다. 하지만 참으로 어리석구나. 나를 쓰러트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두 눈 뜨고 놓치다니……. 설마 본신의 힘을 되찾은 나를 아까처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시끄러운 건 여전하군.”

슉.

그 순간, 윤수호의 모습이 또다시 사라졌다. 하이데른의 육신을 수십 번이나 찢어발긴 바로 그 검격이었다.

방금 전까지의 하이데른은 알면서도 이 공격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쾅!

윤수호의 검이 하이데른의 마법진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하이데른은 그런 윤수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

“네놈의 그 기고만장한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꼴도 참으로 재미있겠구나.”

슈욱!

그 순간, 놀랍게도 하이데른이 사용한 건 마법이 아닌 주먹이었다. 흑마법사 하이데른이 다름 아닌 주먹을 뻗어 윤수호를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더욱 더 놀라웠다.

콰앙!

엘도라드조차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일권이 윤수호에게 적중하였다. 그에 유성처럼 꼬리를 그리며 음속의 몇 배로 날아간 윤수호가 탑에 충돌하였다.

콰콰콰쾅!

탑의 일각이 무너지며 그 잔해가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하이데른은 자신이 만들어 낸 광경에 불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쥐락펴락했다.

“오랜만에 내 육신과 힘을 되찾아서 그런가? 위력이 반도 나오질 않는군. 뭐, 저 녀석이라면 감을 되찾을 때까지 적당한 훈련 상대 정도는 되겠지.”

딱.

하이데른이 손가락을 튀겼다.

고오오오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는 수많은 망령들.

하이데른의 주특기는 사실 언데드 제작보다 사령술에 있었다. 망령들을 조종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그의 진짜 능력이었던 것이다.

“가라. 가서 혼백까지 물어뜯어 내 앞으로 데려와라.”

명령을 받은 망령들이 윤수호가 묻힌 파편 더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하이데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일반 사람이 망령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강약의 문제가 아니었다. 걷기조차 힘든 노인이든, 건물을 두부처럼 썰어 재끼는 오버 알터나 망령 앞에서는 평범한 한 인간의 영혼일 뿐.

‘네놈도 결국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내 앞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끼에에에에엑!

망령들이 건물 잔해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순간,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하이데른의 얼굴에서 점점 미소가 사라지다가 결국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비명이 터져 나오긴 했지만 그것은 윤수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아앙!

건물의 잔해가 터져 나가면서 우수수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에도 고막을 찢어발길 기세로 터져 나오는 끔찍한 비명들. 한두 명의 비명이 아니었다. 족히 수십, 수백 마리 망령들의 고통에 찬 비명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흙먼지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그 속에서 멀쩡히 걸어 나온 윤수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향해 달려들었던 망령들은 모두 그의 오른손 바닥위에 붙잡혀 압축된 상태였다.

그 모습에 하이데른은 눈살을 찌푸렸고, 반대로 윤수호는 피식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하이데른에게 경고했다.

“사령술로 날 죽이고 싶다면 이따위 조잡한 망령이 아니라 적어도 마왕의 망령 정도는 가지고 오라고.”

콰직!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윤수호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압축되어 도망가지도 못하고 비명만 지르던 망령들이 끔찍한 절규와 함께 소멸하였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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