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탑의 정문을 이루고 있는 건 거대한 뼈의 복합체였다.
거대하고, 날카롭고, 두꺼운 뼈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 어지간한 강철 문 이상의 강도를 자랑…….
콰앙!
……했으나 윤수호의 일검 앞에서 맥없이 부서지며 수많은 파편을 흩뿌렸다.
“후우~”
“사, 살았다…….”
“다행이 여기까지 쫓아오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박살 난 문을 통해 탑으로 들어오자 더 이상 일행을 덮쳐오는 언데드는 없었다. 아무래도 추격에 제한 구역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방심하지 마.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니까.”
윤수호의 경고에 일행은 기세를 가다듬으며 호흡을 골랐다. 곧 어지러웠던 그들의 눈이 맑아지며 갈무리된 기운이 고요하게 흘렀다.
윤수호가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고 마탑 안으로 들어갔다.
흑마법사의 탑은 중앙 문을 지나자마자 만날 수 있는 중앙의 거대한 광장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의 타워가 광장을 감싸고 있었다.
오수영은 고대 중세 유럽 건축 기술의 정수를 담아 놓은 것 같은 타워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이런 상황에 할 말이 아닌 건 알지만 진짜 탑은 더럽게 멋있네. 무슨 중세 유럽에 성당 같기도 하고…….”
“야, 인마. 넌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속 편한 소리가…….”
슥.
갑자기 윤수호가 멈춰 서서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자 뒤따르던 일행이 멈춰 서서 사방을 경계였다.
그때였다.
“허허허, 누가 감히 내 탑을 나의 허락도 없이 침범했는지 궁금했는데 귀여운 벌레들이 찾아왔구나.”
[탑의 주인, 흑마법사 하이데른이 출현했습니다.]
꿀꺽…….
옆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를 내뱉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를 보고 일행이 마른침을 삼켰다.
“야, 김세민.”
“응? 왜? 아…….”
나직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오수영의 목소리에 김세민은 그제야 창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밤을 떼어 만든 것 같은 칠흑의 로브에 스스로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금빛 자수가 어지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로브를 두른 존재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었다.
길고 풍성한 흰 수염은 가슴을 지나 배까지 닿아 있었고 마찬가지로 길게 자란 하얀 눈썹이 강아지처럼 축 처져 있어 언뜻 보기에 순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김새일 뿐이었다.
노인에게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기운…… 그것은 살기 따위의 상냥한 기세가 아니었다.
죽음.
그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깊고 끔찍한 무언가가 마치 노인의 그림자처럼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수영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긴장했냐?”
“사돈 남 말 하네.”
김세민뿐만이 아니었다. 오수영도, 공승환도, 심지어 톱텐인 검귀 텐겐까지도 애써 떨리는 손을 감춰야만 했다.
‘명색이 톱텐이라는 자가 오늘 이들을 만나서 못 볼 꼴을 많이 보이는군.’
텐겐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과 비슷한 강자들인 환수족마저도 본능적으로 반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단 두 사람.
“저러고서 밟히면 많이 쪽팔릴 텐데…….”
“그것도 자기 복이지, 뭐. 놔두게, 마스터.”
저 불길한 존재를 눈앞에 두고도 농담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윤수호와 엘도라드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하이데른도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손을 덮고 있던 소매 자락이 흘러내리며 나뭇가지처럼 깡마른 그의 손가락이 드러났다.
그가 오므린 손가락 안으로 검은 기운이 압축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까만 구체 하나가 만들어졌다.
“어디, 주둥이만큼 실력도 쓸 만한지 구경해 보자꾸나.”
주인의 손을 떠난 까만 구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그에 맞서 윤수호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풍이 사나운 기세로 쇄도했다. 이윽고 한 공간에서 검은 구체와 검풍이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어린아이의 주먹만 하던 검은 구체는 검풍과 충돌하는 순간, 집채만큼 커지며 무서운 기세로 검풍을 먹어치웠다.
하나 검은 구체도 한계가 있었는지 검풍을 흡수함과 동시에 한계가 찾아왔고 이내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꺄악!”
“크윽!”
그 눈부신 빛에 일행이 눈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시야를 되찾았을 때, 그들의 눈에는 경악이 서렸다.
윤수호의 뒤에 서 있던 그들은 멀쩡했지만 그 외에는 지면이 전부 박살 나 엉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법 쓸 만한 재주를 가진 벌레로구나. 하나 이게 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건 아직 시작조차 아니니라.”
“우연이네. 나도 그렇거든.”
“……!”
하이데른이 주름진 눈을 부릅떴다.
분명 시선 하나, 손가락 끝 마디의 움직임조차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대답하는 윤수호의 목소리를 뒤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서걱!
뒤늦게 파육음이 울려 퍼지더니…….
촤촤촤촤촤촤촤촤!……!
수많은 실선들이 하이데른을 중심으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촤아악!
실선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하이데른의 몸뚱이가 수백 조각으로 분해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윤수호가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허허…….”
수백 조각으로 잘린 하이데른의 잘려 나간 입에서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조각난 그의 눈은 무감정한 시선으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놀랍구나. 천지만물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마나가 반응하고 내가 마나의 반응을 놓칠 리가 없거늘, 방금 그 움직임은 나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대체 어찌한 것이냐?”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알지 못한 윤수호의 움직임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하이데른.
그의 육신이 순식간에 수복되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치 그림자를 베는 기분이었다.’
윤수호도 검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적을 베었건만…… 마치 연못에 뜬 달을 벤 것처럼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엘도라드, 아무래도 이 녀석…….
-그래, 리치 같구나.
리치.
신마시대에 자주 언급되는 괴물로 마법사가 힘과 지식을 탐해 마족과 계약하여 타락한 모습이었다.
영원한 생명과 마족의 지식을 손에 넣는 대신 주인의 꼭두각시로 살게 되는 흑마법사들이었지만 그 존재는 인간들에게 있어 가히 재앙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다.
일단 리치 한 마리가 어지간한 소국 정도는 일주일 안으로 멸망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하하! 섭섭하구나. 나를 한낱 리치 따위로 착각한다는 것이 매우 아쉬워.”
“설마 텔레파시를 엿들은 게냐?”
엘도라드가 놀라자 하이데른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답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감응하지 못하는 마나의 움직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저 인간의 움직임이 더 신기하다만…… 그러야 차차 알아 가면 될 일이지. 내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니. 그 전에 필요 없는 것들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겠구나.”
딱.
하이데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연못에 비가 내릴 때 생기는 파문처럼 수많은 마법진들이 순식간에 형성되었다.
“크게 걱정하지 말거라. 죽더라도 언데드 노예로 만들어 유용하게 부려 줄 테니.”
“……!”
콰우우우우우!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기둥의 세례가 순식간에 일행을 집어 삼켰다.
일행이 반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텐겐조차 움찔하는 것이 전부, 심지어 엘도라드 역시 검막을 펼치며 대응했지만 그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렀다.
저 검은 빛기둥을 온전히 막아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촤아악!
“허허……!”
하이데른의 입에서 또 다시 감탄 섞인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윤수호의 움직임을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윤수호가 검을 그어 검막을 펼쳐 내자 검은 기둥은 검막에 부딪혀 부서졌다.
그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주변 일대가 굉음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녀석은 내가 맡고 있겠다. 너희들은 라이프 베슬을 찾아서 부숴 버려. 엘도라드, 맡겨도 되겠지?”
“알겠다.”
엘도라드는 자신조차 이곳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랬기 때문에 일행을 데리고 마탑으로 향했다. 라이프 베슬이 숨겨져 있다면 마탑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다!”
“어리석구나. 순순히 보내 줄 거라 생각했나?”
하이데른이 기회를 봐서 마탑으로 전력질주하는 일행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땅이 들썩이면서 수십 자루에 이르는 날카로운 뼈 쐐기들이 지면을 뚫고나와 일행을 공격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보내 줄 수밖에 없을 걸?”
스핏!
촤촤촤촤촤촤!……!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윤수호의 일검에 뼈 쐐기들은 지면을 뚫고 나오는 순간 조각나 흩어졌다. 그리고 하이데른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순간…….
촤악!
다시 한 번 윤수호의 검이 하이데른의 몸통을 수십 갈래로 찢어 놓았다.
“그 실력으로 한눈을 팔다니, 놀랍군. 죽지 않는 언데드의 몸뚱이라 부릴 수 있는 만용인가?”
‘흐음…….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으니 대응하기가 매우 까다롭구나.’
하이데른은 다른 일행에 대한 관심을 접고 윤수호에게 집중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마탑 안으로 뛰어 들어간 상황이었다. 어차피 마탑 내부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으니 신경을 끄고 윤수호만 상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늦었구나. 반갑다. 내 이름은 하이데른. 조잡한 리치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엘더 리치라고 하지.”
“엘더 리치?”
“주인의 자리를 찬탈한 종이라고나 할까? 내 주인이었던 마계의 공작, 할라가스를 죽여 그 힘을 빼앗고 자리를 취했지. 쉽게 말해서 이몸이 마계의 공작이 되었다는 뜻일세.”
“생각했던 것보다 말이 많은 녀석이군.”
“원래 마법사라는 종족이 그러하지. 생각보다 떠드는 걸 좋아하거든. 특히 마음에 든 실험체에게는 더 더욱 말일세. 걱정 말게. 그대는 내가 창조한 그 어떤 언데드보다 강력하고 훌륭한 언데드로 거듭날 테니. 흐흐흐…….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군.”
하이데른의 광기에 윤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재생할 때마다 일단 그 쓸데없는 주둥이부터 찢어 놔야겠군.”
“그래그래, 어디 얼마나 재롱을 피울 수 있는지 한번 보자꾸나.”
하이데른이 두 손을 펼치며 비웃음을 그렸다.
그의 손 아래로 죽음의 마나가 흘러넘치더니 머리 위로 방금 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수많은 마법진들이 전개되었다.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전개된 마법진 위로 언데드 몬스터들이 출현했다.
세 마리의 데스 나이트들을 필두로 모습을 드러낸 건 2스테이지에서 상대했던, 바로 그 고위급 언데드들이었다.
“자, 보여 다오. 네 녀석의 능력을!”
윤수호의 머리 위로 수많은 흑마법이 쏟아지면서 동시에 언데드 군세가 쇄도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