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42화 (142/175)

142.

첫 번째로 포털을 빠져나온 윤수호가 일행들을 기다리는 사이, 다른 포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앙! 위원장님!”

“얼씨구?”

와락!

두 번째 포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엘도라드 일행이었다.

포털에서 나오자마자 윤수호를 발견한 오수영이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윤수호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군.”

오수영도 그렇고, 김세민도 그렇고,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아 보였지만 다행히 치명상이나 심각한 부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위원장님께서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고생했다.”

“고생은 저보다 엘도라드님과 고블린 마스터 여러분께서 더 하셨죠.”

공승환의 부상은 오수영이나 김세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다소 자신보다 실력이 부족한 두 사람을 커버 하며 싸웠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는 자신의 공을 모두 엘도라드에게 돌렸고 엘도라드는 짐짓 근엄하게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윤수호의 앞으로 다가왔다.

“애썼다.”

“크흠! 과인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라. 그보다 그대는 나보다 더 멀쩡한 것 같군. 어째 땀 한 방울도 안 흘린 느낌이랄까?”

“킁킁! 농담이 아니라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뿌리셨던 향수 향기도 아직 안 사라진 것 같은데요?”

윤수호의 품에 아직도 와락 안겨 있던 오수영이 코를 킁킁거리며 놀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윤수호에게서는 전투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름 애먹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름 애먹었다는 건 저런 녀석을 말 하는 거지. 마스터 자네같은 뽀송뽀송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닐세.”

“응? 저요?”

엘도라드가 어느새 바닥에 퍼질러 누워 젖병처럼 포션을 입에 물고 있는 김세민을 가리키자 윤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사이, 마지막 포털이 생성되며 텐겐과 환수족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무사하셨군요.”

“뭐 하느라 이렇게 늦은 게야. 혹시 몰래 아이템이라도 꿍쳐 둔 건 아니겠지?”

“하하하, 설마요. 계약은 반드시 지킵니다.”

엘도라드의 추궁에 텐겐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그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비롯해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환수족의 두 전사들이 함께했음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전장이었다.

때문에 윤수호가 다치지 않은 건 그렇다 쳐도 엘도라드 일행…… 특히 치우팀 중에서는 죽거나 최소한 큰 중상을 입은 사람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당연할 정도의 전장이었다. 자신들이 선택한 전장이 유독 강한 게 아니었으니.

그런데 죽은 사람은커녕 단 한 사람의 중상자도 없었으니…….

‘무시무시하군. 이제는 이들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텐겐이 속으로 일행의 저력에 경악하는 사이, 3스테이지를 눈앞에 두고 일행은 자신들이 겪은 전장을 미주알고주알 떠들며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보아하니 특성만 다를 뿐, 모두 최악의 전장이었던 것 같군.”

“싸우면 싸울수록 위원장님의 대단함을 몸소 느꼈다니까요. 어떻게 이런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하신 거예요?”

오수영이 감탄하면서 묻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윤수호에게 집중되었다. 그들도 사실 굉장히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윤수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엘도라드에게 향했다.

“크흠!”

아무래도 윤수호가 공략한 던전의 주인이 자신이었으니 그의 무용담을 듣는 게 영 껄끄러울 수밖에.

그런 엘도라드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윤수호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가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공략했던 엘도라드의 던전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고요?”

“그게 무슨…….”

“정말인가요?”

모두의 시선이 이번에는 엘도라드에게 향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첫 던전의 주인이 그였으니까.

“뭐, 부정은 하지 않겠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난 몬스터들은 나조차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신화시대의 괴물들뿐이었으니까.”

“시, 신화시대의 괴물요? 대체 어떤 신화이길래…….”

거기에 대해서 엘도라드는 아주 짤막하게 자신이 살던 대륙과 시대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었다.

“언데드 몬스터의 제작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실제로 내가 활동하던 당시의 고위급 흑마법사들조차 겨우 듀라한을 제작하는 정도였지. 물론 듀라한 한 마리만으로도 도시 하나 정도는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지만 그래도 데스 나이트 같은 특급 언데드는 꿈도 못 꿨다. 그런 게 활개 치던 시대는…….”

엘도라드의 시선이 아득히 먼 옛날로 돌아갔다.

“신마가 자유롭게 중간계를 넘나들고, 더불어 마왕과 흑마법사의 계약조차 자유로웠던 신마시대뿐이겠지.”

“헉! 그럼 설마 이 던전의 주인이…….”

“야! 불안하게 헛소리 할래?”

김세민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름 돋은 팔을 문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오수영이 찝찝하다는 듯,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에 엘도라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마왕이 이 던전의 주인이었다면 1스테이지에서부터 스켈레톤 솔저가 아니라 데스 나이트가 우르르 튀어나왔을 거다.”

“내 생각도 엘도라드와 같다.”

윤수호가 엘도라드의 의견에 편승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첫 번째 던전의 난이도는 톱텐급 능력자를 중심으로 다수의 강자들이 협력하면 공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역시 공략에 성공했고. 하지만 두 번째 던전부터는 아무래도 상황이 달라졌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말씀은…….”

“이 정도 난이도라면 적어도 2~3개국은 힘을 협력해야 공략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이는군. 실제로 첫 번째 던전은 각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지만 두 번째 던전은 일본에 발생한 이후로 우리나라나 중국, 인도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지.”

“그렇다는 건 던전을 발생시킨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각국이 힘을 합치도록 던전의 난이도를 설계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만약 두 번째 힘을 합치지 않고 던전을 무리하게 공략하다 실패한다면…….”

“첫 번째 던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대재앙이 일어나겠지. 심지어 던전 밖으로 출현하는 녀석들은 아무런 구속도 걸리지 않은 본신의 능력을 가지고 나오게 될 테니까.”

“…….”

좌중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윤수호는 첫 번째 던전과 두 번째 던전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의 증언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을 터.

하지만 일행의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각국이 힘을 모아 두 번째 던전을 공략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소위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은 이미 첫 번째 던전으로 자국 알터 전력의 막대한 전력 손실을 입은 상황이라, 그런 나라들이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자국의 중요 전력을 파견할까? 동맹국이라도 그건 힘든 일이지.”

공승환의 넋두리 같은 혼잣말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말을 오수영이 받았다.

“첫 번째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이 세상에 출현하게 될 거고 그게 출현한 지역에서만 재앙을 뿌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겠죠. 결국 어디서 어떤 몬스터들이 출현하든 그건 세계적인 재앙이라는 뜻이고요.”

사람들은 오수영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인 즉, 일본에 출현한 2차 던전을 막는다고 해도 결국 다른 나라에서 출현한 2차 던전의 재앙이 전 세계에 미칠 거라는 뜻이었으니까.

“휴식은 이쯤하면 충분한 것 같고.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일행이 지금처럼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허허벌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 번째 스테이지로 향하는 게이트가 하나 존재하긴 했지만 게이트를 타라고 강제하는 요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얼마나 빡센 곳이기에 일부러 이런 휴게실까지 준비해 주는 건지…….”

“그거야 들어가 보면 알겠지.”

오수영의 탄식에 김세민이 각오를 다지며 게이트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윤수호를 필두로 일행 전원이 게이트를 넘어갔다.

* * *

“……누가 이거 악몽이라고 좀 말 해줄래?”

“정신 차려, 오수영. 뒈지고 싶지 않으면.”

게이트를 넘은 일행이 서 있던 곳은 어두운 숲이었는데 숲 자체는 그렇게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 정말로 특별한 곳은 숲을 지난 다음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광활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이 절벽 위라서 그런지 평원의 지평선 너머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꽉꽉 들어차 있는 언데드들이 너무 잘 보였다.

“아무래도 이 언데드들을 뚫고 저곳까지 가야할 것 같은데요?”

“농담이지?”

김세민이 가리킨 곳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웅장하게 서 있는 거대한 탑이었다.

문제는 거리였다.

“적어도 3km는 가야할 것 같은데…….”

“저, 저것들을 뚫고요?”

공승환의 말에 오수영이 질린 얼굴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지금도 바다의 모래알처럼 깔린 언데드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벌써 생자의 기척을 느낀 것이다.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팟!

“가, 같이 가요, 위원장님!”

윤수호가 먼저 절벽에서 뛰어내리자 환수족을 시작으로 일행이 빠르게 그의 뒤를 쫓았다.

쒜엑!

지상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때, 윤수호는 곧장 지상을 향해 설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칼날을 타고 대기를 찢으며 출현한 검풍이 지상을 휩쓸며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언데드들을 날려 버렸다.

덕분에 일행이 지상에 착지할 곳은 깔끔해졌지만 언데드들은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 파도처럼 일행을 덮치기 시작했다.

“한눈팔지 말고 내 뒤에 바짝 붙어. 일직선으로 뚫고 갈 테니까.”

“예!”

윤수호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무시한 채 정면으로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검극을 통해서 뿜어져 나온 광풍이 투우처럼 정면을 무자비하게 부수며 돌진했다.

팟!

그는 망설임 없이 길이 뚫린 정면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일행들도 빠르게 윤수호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언데드의 수준은 1스테이지에서 봤던 녀석들보다 약한 것 같군.’

2스테이지에서 상대한 상급 언데드들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1스테이지에서 상대한 언데드들과 비교해도 수준이 매우 낮았다.

재생도 안 되고 내구력도 약한데다 행동도 굼뜨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상대하는 건 하급 알터에게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숫자인가.’

수가 많아도 빌어먹게 많았다. 바닷가의 모래알같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닌 사실이었다.

언데드는 아무리 약해도 언데드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팔이 잘리든, 다리가 잘리든 산 자를 증오하며 생을 취한다.

일격에 침묵시키지 못하면 곧바로 수많은 언데드들의 파도에 삼켜져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어지간한 강자의 경우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언데드의 바다에 고속도로를 뚫어버리는 윤수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

“도착했다.”

윤수호의 뒤를 따라 달린 끝에 일행은 마지막 3스테이지, ‘흑마법사의 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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