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군용 수송기를 타고 사이타마 공항에 도착한 윤수호와 일행들을 일본의 국방 장관 및 장성들이 환대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윤수호 씨. 일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기쁜 마음으로 찾아왔을 텐데 마음이 무겁군요.”
“이것 참 놀랐습니다. 우리말을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시는군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는 게 취미라서요.”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윤수호의 모습에 장관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공승환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윤수호를 바라보는 일본 장성들의 표정이 불신과 못미더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오수영도 눈치챘는지 슬쩍 공승환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저기 팀장님, 위원장님을 보는 여기 군 장성들의 표정이 왠지 좀 띠껍지 않아요? 웬 사기꾼이냐 하고 지켜보는 것 같은데…….”
“그럴 만도 하지. 저들은 위원장님이 누군지, 어떤 분이신지 전혀 알지 못하니까.”
그러자 김세민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것 참 기대되네요. 잠시 후 저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말이죠.”
김세민의 말에 치우팀도, 환수족도 모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라면 성대하게 환영식이라도 준비했어야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렵게 말을 꺼내는 장관에게 윤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대접받으려 이곳에 온 것도 아니라서요. 지금 바로 의뢰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마당에 굳이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면 바로 헬기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여 수락하자 일행을 태운 군용 헬기가 빠르게 던전이 위치한 목적지까지 그들을 수송하였다.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군.”
하늘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던 치우팀이 인상을 찌푸렸다.
땅이 보이지 않았다. 땅을 뒤덮은 수많은 사체들 때문이었다.
그 사체는 몬스터들의 사체도 있었지만 절반은 인간…… 특무 자위대원들의 시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체온이 채 식지 않은 사체의 융단 위로, 또 다른 사체가 쌓여가며 차갑게 식어갔다.
그럼에도 던전의 근원에서 꾸역꾸역 튀어 나오는 몬스터들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그에 반해서 대원들은 한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병들조차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몬스터들을 막다 죽어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팔이 날아가면, 다리로, 다리가 뭉개지면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런 처절하고 비참한 광경에 일행은 국정을 떠나 숭고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일본 특무대도…….”
“나라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야 어딘들 다를까. 그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거겠지.”
오수영의 솔직한 감탄에 윤수호가 대꾸했다.
격추를 피해서 헬기가 안전한 장소에 착륙하자 윤수호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치우 팀은 산개해서 흩어진 몬스터들을 쫓는다. 모두 쫓을 필요는 없어. 일본의 협조를 받아서 민간인의 도주로 쪽으로 이동하는 놈들만 골라 섬멸한다.”
“무적!”
“환수족 전사들은 현재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대원들의 지원을 부탁하지. 더 이상 그들의 희생이 늘어나는 걸 지켜볼 수는 없으니까.”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모든 대원들이 각자 위치로 이동하자 윤수호의 시선이 던전의 근원지로 향했다.
* * *
“나는 이쪽 A포인트로 곧장 가겠다. 세민이 너는 B포인트로, 수영이는 C포인트로 가라.”
“무적!”
공승환의 지시를 받아 빠르게 산개한 두 사람이 자신의 위치로 향하자 공승환 역시 A포인트로 몸을 날렸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엘도라드에게 특훈을 받은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확실한 건 특훈을 통해서 자신을 비롯한 대원들의 수준이 몰라볼 정도로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옥 같은 특훈 강도 때문에 목숨 걸고 특훈을 빠지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성장의 기쁨을 맛보고 난 뒤에는 엘도라드가 없어도 특훈을 빼먹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공승환은 피난 행렬을 습격한 몬스터 무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꺄아아악!”
“아빠!”
“얼른 도망쳐! 어서!”
주차장처럼 정체된 도로, 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습격하여 잡아먹는 몬스터들까지…….
피난길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하반신이 씹어 먹히는 와중에도 자식과 부인을 살리려고 피를 토하며 외치는 가장이 있는가 하면, 형제를 버리고 도망치는 가족들도 있는 등,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
“내 다리야, 제발 좀 움직여라!”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건 상관없이 그들을 지키는 게 자신들의 임무였다. 대원들은 피를 토하고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도 어떻게든 움직여 싸우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무리였다.
정신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육체의 한계치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오죽했으면 현장에서 몬스터가 아닌 과로사로 죽는 대원들마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만해!”
“멈춰! 멈추라고, 이 괴물 새끼야!”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 나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며 비명에 찬 절규를 내지르는 것뿐이었다.
공승환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아…….”
촤악!
넘어진 소녀에게 입맛을 다시며 피가 번들거리는 발톱을 내밀던 몬스터 하나가 그대로 반으로 쪼개져 죽었다.
쏟아지는 피와 내장 너머로 공승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촤촤촤촤촤촤촤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검기를 머금고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검기를 품은 바람은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피와 내장을 흩뿌렸다. 동료들의 피 냄새가 갑자기 증가하자 몬스터들의 경각심도 한층 더 높아졌다.
크르르르르르……!
“위험한 놈이다!”
“저놈을 죽여라!”
공승환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몬스터들이 하던 일도 멈추고 전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숫자만 어림잡아 삼백!
지쳐서 도주를 포기한 피난민들도, 부상과 피로 때문에 발이 멈춘 일본 대원들의 시선도 모두 공승환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큰 걱정과 중간 정도의 불안, 그리고 아주 작은 기대감이었다.
공승환은 그 수많은 감정들을 검에 담았다.
“따로 잡으러 갈 걱정을 덜어서 좋군.”
우우웅!
‘퍼펙트 오러?’
‘퍼펙트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대원치고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순간, 그의 검에 피어오른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퍼펙트 오러였다. 퍼펙트 오러를 알아본 대원들 몇몇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저거…….’
‘진짜 퍼펙트 오러가 맞아?’
그와 동시에 가지는 의문.
사실 공승환의 퍼펙트 오러는 단순한 퍼펙트 오러가 아니었다.
결정화된 빛이 안정적으로 무기나 육신을 무장하는 퍼펙트 오러와는 다르게 안정화된 퍼펙트 오러 주변으로 마치 오러 시머처럼 아지랑이가 옅게 피어올랐으니까.
힘의 균형이 완전해야 이룰 수 있는 퍼펙트 오러와 힘의 균형이 불안정하기에 발생하는 오러 시머가 공존한다?
이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해 못 해도 상관없었다.
씨익~!
문득 공승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엘도라드식 폭검(爆劍).
쾅!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공승환이 검으로 자신을 덮치던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해 배를 가르자 난데없이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검상은 얕았다.
다른 쪽에서 들어오는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좀 더 일찍 반응하여 베어 버린 탓이다.
본래라면 가죽에 흠집 좀 나고, 피 좀 흘리고 말았을 작은 상처였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폭발이 검상 안쪽에서 터져 나오며 본래 작았어야 할 상처가 넓게 찢어지고 거기서 부서진 내장 조각들이 피에 섞여 밖으로 흘러 넘쳤다.
당연히 내장을 쏟아 낸 몬스터는 그 자리에서 절명. 단순한 찰과상 정도로 끝났을 일격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연이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공승환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그것도 주로 검상의 내부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대부분 내장이나 목이 터져 죽었지만 운이 좋은 녀석들은 살아남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몰골은 처참했다.
팔에 스쳐도 팔이 날아가고, 다리에 스쳐도 다리가 터져 나간다.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 그렇게 되면 대기하고 있던 일본 대원들의 손으로도 충분히 마무리가 가능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오러가 폭발하다니…… 우리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들의 상식으로 오러는 저렇게 폭발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아니, 폭발 자체는 가능했다.
다만 그들의 상식으로 오러가 폭발할 경우엔 무기가 박살 나는 것은 물론이고 무기를 사용하는 사용자 역시 크게 다치거나 죽는 게 보통이었다.
지금처럼 무기도, 사용자도 멀쩡한데 적만 말살할 수 있도록 연쇄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힘이 아닌 것이다.
콰콰콰쾅!
결국 피난민들을 덮쳤던 몬스터들은 공승환의 손에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우, 우리 살아남은 거야?”
“진짜로?”
“와아아아아아!”
“사, 살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가족들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어디 소속이신지…….”
이 자리의 책임자였던 후쿠로다가 공승환에게 접근하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물론 일본어로.
하지만 일본어를 할 줄 몰랐던 공승환은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되물었다.
“혹시 한국어를 할 수 있으신 분 계십니까?”
‘이건 한국어잖아? 설마 한국의 능력자가 여길?’
“아, 제가 재일교포 3세라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압니다.”
재일교포 대원이 다가와 통역하자 공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요. 지금 바로 사람들의 피난을 유도해 주십시오. 저는 던전을 공략하러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더, 던전을 공략하신다고요? 자, 잠시만요!”
놀란 재일교포 대원이 공승환을 붙잡았지만 공승환을 개의치 않고 던전의 근원지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팀장님!”
“오수영, 김세민. 설마 혹시라도 다친 곳은 없겠지?”
“그럴 리가요. 팀장님도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고작 이 정도로 흠집이라도 났다간 스승님께 죽도록 혼이 날 테니까.”
비슷한 시각, 임무를 마친 치우팀 대원들과 합류한 세 사람이 곧장 윤수호가 있는 지역으로 돌아왔다.
* * *
파르토와 풍태술의 참전으로 금이 가던 방어선이 다시 굳건해졌음을 확인한 윤수호가 던전의 근원지로 향했다.
“일단은 허리부터 끊어놔야겠군.”
포털이 존재하는 곳은 사이타마현의 어느 폐공장 내부였다. 덕분에 폐공장 부지 전체가 현재 몬스터로 가득찬 상황이었다.
그렇게 바글바글 뭉쳐 있는 몬스터들을 상댕로 윤수호 손을 쓰려던 그때.
번쩍!
촤악!
난데없는 섬광과 함께 등장한 한 남자가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남자가 뚫고 지나간 자리엔 검풍에 휩쓸려 찢겨 나간 몬스터들의 잔해만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릴 뿐이었다.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었던 공장 부지 내에 텅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검을 쥐고 꼿꼿이 서 있던 남자…… 검귀 아사쿠라 텐겐이 윤수호를 마주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대입니까? 한국에서 왔다는 한국 최강의 능력자가.”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