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도쿄 특무 자위대 의료센터 VVIP 병실.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부상 치료를 받고 있던 아사쿠라 텐겐은 오늘도 명상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가 머릿속에서 재현하는 전투는 던전에서 출몰한 몬스터들과의 사투였다.
특히 금빛 가죽에 붉은 손톱, 초록색의 번들거리는 눈을 가진 리자드맨의 무용은 아마 죽기 직전까지도 잊을 수 없겠지.
녀석의 능력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이 조금 더 뛰어났지만 신체 능력과 감각에 있어서는 녀석이 한 수…… 아니, 두 수는 더 위였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자 검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서 놈을 쓰러트린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제자들의 거룩한 희생과, 큰 부상을 대가로 겨우 놈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면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눈을 감고 있던 텐겐의 얼굴에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머릿속에서 치열한 격돌이 일어날 때마다 그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텐겐이 눈을 떴다.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의 눈동자는 바다보다 잠잠했지만 바닥없는 늪처럼 끈적거리는 아쉬움이 깊게 배어 있기도 했다.
“후우…….”
텐겐의 한숨이 깊어졌다. 언젠가는 이기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는 그 녀석은 저 높은 산 정상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텐겐이 재활 훈련에 들어갔다.
요즘 그의 일과는 명상과 재활이 전부였다.
완벽히 부상을 회복할 때까지는 어떠한 임무도 맡지 않고 오로지 회복에만 전념하라는 것이 정부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했다.
집중 재활 기간이라는 이유를 핑계로 외부와의 교류나 TV, 인터넷, 핸드폰 같은 미디어 매체도 완전히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활에 집중하여 더 빠른 회복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깐깐하게 통제를 한 적은 없었다.
특히 상대는 일본의 톱텐인 아사쿠라 텐겐이다.
아무리 회복을 위해서라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텐겐을 독방 죄수처럼 취급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텐겐은 정부를 믿었고, 의료진들을 믿었다. 그래서 의심 없이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재활에 집중하였다.
바깥에 신경 쓸 시간을 줄이고 자신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하다 보니 육체에 대한 이해도와 오러에 대한 활용 방법의 성장이 가파르게 이루어졌다.
이미 검과 육신에 대해서는 끝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깨닫고 보니 출발선에서 이제 막 뛰쳐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덕분에 오러를 이용하여 망가진 세포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세포들의 성장과 회복을 돕는 일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다.
육체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요령을 깨달을수록 육체와 오러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게 성장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텐겐은 확신했다.
이 정도라면 전력의 100%까진 무리더라도 90%는 충분히 가능했다.
이제는 더 이상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대원들의 목숨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게 중요했다.
던전 사태 이후로 너무나도 많은 피가 흘렀고, 많은 힘이 소실되었다. 더 이상의 희생은 감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90%가 이전의 100%를 훨씬 뛰어넘는다!’
오랜만에 정복을 갖춰 입고 검을 쥐었다.
애병, 카미키리마루가 주인의 온기를 느끼자 부르르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자, 출근이다.
그런데…….
“검귀 공께서는 조금 더 회복에 집중하시라는 정부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100% 회복될 때까지 의료 센터를 떠나실 수 없습니다.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
텐겐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대원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들도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조직의 구성원들일 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회복은 충분히 이뤄졌다. 현장으로 갈 것이다. 길을 비켜라.”
“그럴 수…… 없습니다.”
“…….”
무표정하게 그들을 쳐다보던 텐겐이 칼자루에 손을 올리자 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무, 무슨 기세가……!’
‘숨 막혀 죽을 것 같다!’
그저 칼자루에 손만 올렸을 뿐인데, 대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목에 칼날이 닿아 있는 것 같은 섬뜩함과 위압감을 느꼈다.
그들은 확신했다.
지금의 텐겐은 이전의 그보다 더욱 강해졌을 거라고, 그가 마음만 먹으면 검을 뽑지 않더라도 자신들은 죽은 목숨일 거라고…….
‘그렇기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 일본의 마지막 희망을 여기서 잃은 수는 없었으니까.
굳이 말을 맞춘 것도 아니고 사전에 상의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대원들은 더욱 굳은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텐겐의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가…….”
그들의 각오가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확인한 텐겐이 순순히 물러났다.
아무리 정부로부터 살인 면허를 허가받은 자신이라고 해도 죄 없는 동료들을 죽이는 건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알았다. 그대들의 체면을 봐서 여기는 내가 물러나도록 하지. 수고하게.”
그렇게 문을 닫고 순순히 병실로 돌아선 텐겐의 모습에 대원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 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저게 톱텐 검귀 공의 살기인가? 진짜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멍청아, 저게 진짜 검귀 공이 진심으로 뿜어낸 살기 같냐? 만약 저분이 마음만 먹었으면 우린 여기서 살기만으로 사체가 됐을 거다.”
다리가 풀린 대원들은 체면도 불사하고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뭐, 뭐야! 병실 안에서 뭔가 터진 것 같은데?”
“서, 설마……!”
드르륵!
대원들은 부리나케 일어나 병실 문을 열었고 이내 허탈함에 탄식을 뱉어 냈다.
“허…….”
“우린 죽었다…….”
시원하게 뻥 뚫린 벽 너머로 보이는 의료 센터의 정원을 바라보며 대원들은 암울한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했다.
* * *
똑똑똑.
“총리, 저 아사쿠라입니다.”
“들어오게.”
허락을 구한 검귀가 집무실에 입장하여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건넸다.
“결국 올 사람이 왔구먼.”
“상황은 모두 전해 들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실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이보게, 검귀 공…….”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대원들의 고귀한 목숨이 빠르게 스러지고 있습니다. 총리의 결단이 늦어질수록 그들의 목숨만 헛되이 사라질 뿐입니다. 그들마저 죽어 사라지고 나면 도쿄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어서 명령을!”
사이타마현은 물론이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현재도 도쿄에서는 긴급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때문에 현재도 도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는 중이었지만 사이타마의 방어선이 뚫린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터였다.
“그래서 한국의 조건을 수용하려는 것일세. 자네는 우리 일본의 희망이야. 자네가 쓰러진다는 것의 무게가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크고 위험한 문제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한국의…… 그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기시다니요? 제정신으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닙니다!”
당장 일본에서 총리를 면전에 두고 소리칠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텐겐은 그게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 모든 게 그가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그에 걸맞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리는 더욱 더 텐겐의 고집을 들어줄 수 없었다.
‘나야 죽어도 얼마든지 죽어도 대체자가 존재하네. 하지만 일본의 검은 달라. 이 나라의 검은 자네가 유일하다는 말일세.’
“이미 내려진 결정 사항이야.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한국 정부 측에 공식 서한을 보냈네.”
“철회해 주십시오.”
“불가하네.”
“…….”
단호한 총리의 대답에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직감한 텐겐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다시 눈을 떴다.
“좋습니다. 그럼 저는 저대로 이 나라를 지키도록 하지요.”
“그게 무슨…….”
“애초부터 한국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될 일. 총리님이 저를 믿지 못하셔도 좋습니다. 애초에 총리님을 위해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요. 저는 그저 이 나라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제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검귀!”
총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만…….
“막는 자들은 벨 것입니다.”
텐겐은 나지막이 할 말만 남기고 그대로 떠나 버렸다.
“사이타마로 가자.”
“예.”
그렇게 검귀를 태운 헬기는 피난 행렬을 거슬러 빠르게 사이타마로 향했다.
* * *
“일본이 우리 측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도…….”
자리에서 일어난 윤수호가 기지개를 켰다.
“밥값 하러 가 봐야겠네요.”
“필요한 전력이 있으시다면 뭐든 말씀만 해 주십쇼. 전력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마음만으로도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윤수호는 던전의 위험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제약과 한계가 뚜렷한 던전에서는 강한 동료들이 많을수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즉, 믿을 만한 동료는 필수불가결이었던 것이다.
“도움 좀 받겠습니다.”
“도움이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그렇게 선우진에게 인사권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윤수호는 곧장 필요한 사람들을 소집했다.
* * *
“후우……. 미치겠네.”
“왜? 긴장되냐?”
“그럼 너는?”
“나? 나는 별로.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레 긴장은…….”
“…….”
빈말이 아니었다. 오수영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세민이었으니까.
세상 태평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던 김세민이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듣고 보니 그러네. 살아서 돌아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걸.”
“그걸 이제 알았냐, 멍청아.”
그렇게 긴장을 덜어 낸 김세민은 뒤늦게 도착한 팀장, 공승환을 향해서 오수영과 함께 경례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그래, 컨디션은?”
“최곱니다. 다치면 억울할 정도로요.”
“마찬가지다.”
그렇게 공승환과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해소하던 이들은 속속 도착하는 다른 선별 인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 이내 윤수호가 자리에 도착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여러분. 무슨 목적으로 여러분이 이곳에 집결했는지는 이미 잘 알고 계시겠죠.”
화성 공군 기지의 공항 앞에 집결한 선별 인원들을 향해 윤수호가 말했다.
그곳에 모인 면면들은 먼저 치우팀의 팀장, 공승환과 치우팀의 김세민, 오수영이 있었고, 환수족에서도 윤수호의 부름을 받아 파르토와 풍태술이 함께했다.
다만 이선호와 조춘영은 함께하지 못했는데 엘도라드의 빈자리를 그들이 대신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임무의 성공도 물론 중요하지만 최선은 여러분들의 안전입니다. 잊지 마십쇼. 여러분들의 목숨은 여러분들의 것이자 대한민국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앞으로 명령을 내릴 때는 편하게 말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무적!”
척!
치우팀은 거수경례를 올렸고 환수족은 가슴에 손을 올려 경의를 표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원정팀이 비행기에 탑승했고…….
부웅!
이내 하늘을 넘어 일본에 도착하였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