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일본의 수도,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파지직…….
“응?”
“왜 그래? 사카모토 씨,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아니, 그게 아니라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이상하다? 분명 전기 튀는 것 같은 소리를 들린 것 같았는데…….”
사카모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저수지 낚시에 집중했다.
사이타마 도심지에서도 제법 거리가 떨어진 이곳은 재앙종 출현 문제 때문에 민간인의 입장이 통제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만 있던가?
경찰들의 눈을 몰래 피해 낚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부지런히 느껴지는 손맛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파지직!
“어? 또 들렸다?”
“엇차! 이번에도 대어구나!”
“이보게들, 방금 진짜로 무슨 소리가 들렸다니까?”
“바람 소리겠지. 재앙종이 출현하면 경보기가 울릴 거고, 그런 쓸데없는 거 신경 쓸 시간에 낚시에 좀 더 집중하는 게 어때, 사카모토 씨. 지금 그쪽이 꼴등인 건 알고 있지?”
“에이 씨, 나도 모르겠다!”
결국 사카모토도 자신이 잘못 들었다 판단하고는 이내 낚시에 집중했다. 다른 사람들의 어망에는 물고기가 가득한데 자신은 반도 못 미친다는 것 역시 크게 한몫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사카모토는 좀 더 자신의 귀와 감각을 믿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파지직직…… 파직! 파지직!
끔찍한 참변은 피할 수 있었을 테니까.
“어? 정말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바람 소리는 아닌 것 같고…….”
“무슨 전기 튀는 소리가…….
와드득!
“……응?”
사카모토는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낚시를 즐기던 친구가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의 아가리 속에 반쯤 먹힌 상태였기 때문이다.
콰드득, 아작!
힘없이 덜렁거리는 하체와 입 주변으로 쏟아져 흐르는 피와 내장,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번들거리는 괴물의 눈까지…….
“…….”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는 사카모토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두려움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이성이 생각하길 포기한 것이다.
“뭐, 뭐야? 이 괴물들은……!”
“왜 경보기가 울리지 않은 거냐고!”
“도, 도망쳐!”
“비, 비상 호출을 불러! 빨리 비상 호출을 부르라고!”
사카모토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동료들은 이미 난데없이 출몰한 괴물들의 한 끼 식사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
사카모토는 자신을 덮치는 괴물의 거대한 아가리를 바라보며 죽음을 떠올렸다.
그 직후…….
콰직!
더 이상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 * *
낚시꾼들에 대한 일본 누리꾼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나뉘었다.
일부는 그들이 허가도 없이 통제 구역에 기어 들어가 참변을 당했다는 사실에 손가락질을 하며 규탄하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로 극히 일부였다.
대다수의 일본 누리꾼들은 그들을 영웅시 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그들이 마지막에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던전의 출현을 누구도 알 수 없었을 테니까.
특히 사이타마현 주민들은 물론이고 사이타마와 붙어 있는 일본의 수도, 도쿄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만을 피했을 뿐,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지.”
일본 군부의 장성들은 똥 씹은 표정으로 상황을 비관했다. 하나 그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째 던전인가?”
“다른 나라에 두 번째 던전이 출현했다는 소식은?”
“현재까지는 없었습니다.”
“왜 하필 우리나라만……!”
부관의 대답에 한 장성이 이마를 감싸 쥐며 탄식했다.
그랬다. 지금 일본에 발생한 던전은 최초가 아니었다. 두 번째였다.
“최초의 던전 사태에서 입은 피해가 아직도 채 아물지 않았건만 벌써…….”
“특무 자위대는 지금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다만 상황이 매우 심각한 편입니다.”
“그렇겠지.”
장성들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라를 지키려면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을…….
하지만 일본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었다.
* * *
“끝났다……!”
“차라리 수련을 시켜 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벤트 사흘째.
마지막 영업이 끝나고 모든 정리를 마친 후에야 오가네 주막 직원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쓰러질 수 있었다.
“형님도 진짜 대단하십니다. 간밤에 그만한 일을 치르시고 새벽 일찍 돌아와 장사까지…….
“응? 삼촌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
눈치 없이 존경심을 표하는 조춘영의 말에 이선호가 다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그에 은지연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려니 윤수호가 조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아냐. 지연이 너도 고생 많았다.”
“전 괜찮아요. 찐으로 재밌었으니까요. 오히려 오늘이 마지막인 게 아쉬울 정도랄까…….”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은지연의 모습에 조춘영과 이선호는 다른 의미로 대단함을 느끼며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너희 삼촌이 간밤에 나라를 구하고 돌아오셨단다.’
“젊은 사람들이 이 정도로 축 처져 있으면 어떡해? 뒤풀이 안 할 거야?”
“할머니!”
마치 역전의 용사처럼 주방을 나선 오혜연이 머리에 묶고 있던 두건을 풀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두건이 펄럭이며 그 모습이 마치 승전보를 알리는 깃발과 승리의 여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초주검이 되어 가는데 어째 기운이 넘치시네요, 어머니?”
“그럼! 아직 한 타임은 더 뛸 수 있겠구먼.”
“이렇게 보면 엄마 완전 장사 체질인 거 아냐?”
윤수호도 동생의 의견에 동감했다. 어머니를 도와 함께 주방을 책임진 윤수아였지만 훨씬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보다 훨씬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장사 체질은 무슨…… 어차피 이 짓도 오늘로 끝이라면서? 그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집안일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해서 곤란했는데 잘됐네.”
“집안일이라면 걱정 마요. 당신 없는 동안 내가 또 나름 열심히 해 봤거든. 당신 마음에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말이에요. 하하하…….”
“여보~!”
눈을 하트 빛으로 물들이며 두 손을 꼭 잡는 오혜연과 윤지석의 모습에 윤수아가 코끝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수십 년을 함께 사셔도 신혼이라니까, 저 두 분은. 혹시 오늘 밤에 우리 동생 생기는 건 아니겠지, 오빠?”
“글쎄.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오빠!”
피식 웃으며 대답한 윤수호는 오혜연에게 아직 알려 주지 않는 사실을 전했다.
“어머니만 좋으시면 이 주막…… 앞으로도 계속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수호야.”
“이번 이벤트에 참가한 주막 중에서 매출 상위 5위까지는 해당 주막을 운영하던 운영자들의 의견에 따라 주막의 존속을 결정하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오늘자 매출 공식 집계는 아직 안 나왔지만 지금까지 누적된 매출만 하더라도 우리 주막은 5위 안으로 확정이고요.”
“그 말은…….”
“어머니만 좋다면 오가네 주막은 이대로 계속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오가네 주막을 계속할 수 있다. 이 말에 반색하는 건 오히려 오혜연보다 주변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계속해서 오혜연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벤트는 사흘이 전부였고 정말로 레귤러 입점을 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돕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아마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뻐할지언정 오혜연을 설득하거나 재촉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결정하고 책임질 사람은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막을 스윽 둘러보았다.
새벽 일찍 와서 청소하던 마루나 마당부터 가장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던 주방까지…….
고작 사흘이란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함축된 곳이었다.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이달 말까지만 말씀해 주시면 돼요.”
“내가 하지 않으면 이 주막은 어떻게 되는 거니?”
“다음 순위로 양도돼요. 양도는 10위까지 가능하고 그 이상으로 넘어갈 경우에는 전문 경영인을 초빙할 생각이었죠.”
“그렇구나…….”
생각에 잠긴 오혜연을 뒤로 한 채 윤수호가 주막 식량 창고에서 꺼내온 것은 다름 아닌…….
“바비큐?”
“아직 그만큼이나 남아 있었어요? 난 분명 다 팔렸다고 들은 것 같은데.”
“손님한테 팔 건 다 팔았고. 이건 우리가 먹을 거다.”
“진짜요?”
사람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윤수호표 통돼지 바비큐를 서빙하면서 냄새만 맡는 것도 고문에 가까웠는데 결국 한 번을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뒤풀이 시작한다!”
“가즈아!”
화아아아아아!
아래에서 솟구치는 장작불과 손바닥에서 쏟아지는 화염에 휩싸여 통돼지가 미친 냄새를 뿜어내는 사이, 주방에서도 쉴 새 없이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자~ 사양 말고 많이들 먹어요.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이, 이게 시작이라고?”
“이러다 상다리가 부러지겠는데?”
“무슨 소리야? 아직 부러지려면 멀었어.”
오혜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음식이 담긴 접시 위로 접시가 쌓여 가는 모습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윤 씨 가족에게 이건 일상이었다.
“키야, 주막에서 먹는 막걸리라 그런지 맛이 더 살아 있네.”
“어쩜~ 고기 육질 좀 봐. 입에서 녹는 것 같아…….”
영업이 끝난 후, 고즈넉한 테마 파크 안에서 오로지 오가네 주막에서만이 웃고 떠들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흥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음식에 취했다.
물론 미성년자 아이들은 술에 취하진 못했지만 그만큼 흥과 음식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박 팀장 노래를 그렇게 잘 불렀어?”
“근데 왜 이제까지 숨기고 있었대?”
“숨긴 게 아니라 부를 이유가 없었던 거죠. 크흠!”
소화도 시킬 겸 노래 장기자랑이 이어지자 오가네 주막 사람들의 노래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첫 스타트를 끊은 사람은 선화였다.
선화는 쥬신의 노래를 불렀는데 민요에 가까운 노래를 생각보다 잘 불렀다.
뒤를 이어 숟가락을 잡은 미르가 특유의 귀여움으로 분위기를 업 시켰다.
중간에 흥이 넘친 조춘영이 특유의 음정박자를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창법으로 분위기가 싸해질 법도 했지만 다행히 박여진이 잘 수습했다.
“다시 한 번 분위기를 띄워 주신 박 팀장님에게 무궁한 감사를 드리면서, 이어지는 순서는…….”
사회를 맡은 은지한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은지연이 묵언으로 도리질을 쳤다. 하지만 이내 은지한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말려 올라갔다.
“은지연 양입니다! 여러분의 함성과 박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 자식이 진짜……!’
“와아아아아아!”
“은지연! 은지연! 우유빛깔 은지연!”
사람들의 환호와 성원이 쏟아지고…….
“힘 내. 파이팅. 우승 상품이 상금 10만 원인 거 알고 있지?”
“수현이 너까지……!”
임수현마저 눈동자를 돈 모양으로 반짝이며 등을 떠밀자 은지연은 하는 수 없이 무대로 나갔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