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32화 (132/175)

132.

“무슨 일이야?”

-러시아 측에서 정체불명의 발사체들이 다수 관측되었습니다. 궤도 계산 결과, 정확히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을 노리고 있습니다! 높은 확률로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아…….”

‘그런 거였나.’

박여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윤수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볼기예프가 죽임을 당하면서도 비틀어 올렸던 입꼬리, 그 섬뜩한 광기의 정체가 아무래도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팟!

사라진 윤수호의 모습이 크렘린 궁 상공에 나타났다.

다행히 미국에 높은 값을 지불하고 구매한 군용 위성은 제 기능을 톡톡히 발휘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몫.

눈을 감은 윤수호가 빠르게 선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몸에서 퍼져 나온 기감이 빛에 가까운 속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천부공(天夫功) 천식(天式) 천안(天眼).

하늘의 눈을 피해 숨거나 도망칠 수 있는 것은 없듯이 천안을 펼치자 윤수호의 눈에 위성 궤도까지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는 미사일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보인다.’

그리고 일단 한 번 포착했으면 나머지는 간단했다.

스핏.

눈을 감고 있던 윤수호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천부공 인식(人式) 공단(空斷).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변화도 없었지만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콰아앙!

위성 궤도를 향해서 가파르게 상승하던 미사일 중 하나가 난데없이 폭발한 것이다.

핵탄두가 터지기 전에 미사일 자체가 터진 것이라 폭발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폭발이 윤수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연달아 일어났다.

이것은 공단의 능력이었다. 공간을 뛰어넘어 베는 검술인 만큼 사용자가 한 번 인식한 적이나 사물은 거리를 뛰어넘어 일격에 벨 수 있었다.

때문에 천안과 공단은 매우 궁합이 좋은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하늘로 쏘아졌던 열두 발의 미사일 전부가 채 곡선을 그려보지도 못하고 드높은 하늘에서 그대로 격추되었다.

-미사일 추정체 열두 발 모두 격추를 확인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위원장님. 그런데 정말 어떻게 하신 거예요? 레이더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박여진이 놀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윤수호에게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으리라 믿었건만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놀랄 것투성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군사력으로 떨어지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열두 발을 한꺼번에 격추할 능력은 없었다.

만약 윤수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에 어떤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을지…….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

“고생했어, 박 팀장. 돌아가서 보지. 나는 마무리를 짓고 갈 테니까.”

-네, 고생하셨습니다. 위원장님, 돌아와서 뵐게요.

교신을 종료한 이후, 윤수호의 시선이 어느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천안을 발동해 차를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김정언의 모습을 포착하였다.

* * *

“이런 썅간나! 뭐하네? 더 밟으라우! 잡히면 임자나 나나 다 죽는 기야!”

뒷좌석에 타고 있던 김정언은 잔뜩 겁에 질린 기색으로 운전수를 닦달했다. 윤수호의 손에 붙잡히면 목숨이 위험했으니 그야 그럴 수밖에…….

‘어떻게든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유럽이든 동남아든 불씨가 잠잠해질 때까지 숨죽여 살다 보면 놈들도 나를 잊겠지비.’

이제 더 이상 북한의 복원 같은 건 관심 없었다.

챙겨 온 재산도 꽤나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스위스 비밀 계좌에 자신의 명의로 은닉한 재산이 수천억에 달했다.

그 정도면 이전처럼 한 나라의 왕은 될 수 없어도, 남부럽지 않게 편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도 도망치는 데 성공해야 실현될 수 있는 꿈이었다.

만약 여기서 붙잡힌다면 그가 갈 곳은 화려한 파라다이스의 흔들의자가 아니라 차갑고 축축한 고문실의 전기의자가 되겠지.

‘놈이 볼기예프에게 정신이 집중돼 있을 때 빠져나가야 한다!’

지금처럼만 도망칠 수 있다면 파라다이스의 여생도 꿈은 아니었다.

그런데…….

콰우우우!

“으아아악!

돌연 나타나 도로를 점령한 재앙종의 출현에 기겁한 운전기사가 다급히 핸들을 틀었다. 그러자 차는 좌우로 크게 요동치더니 그대로 몇 바퀴를 굴러 전복되었다.

본래라면 러시아의 수도에서 이런 식으로 재앙종이 출현한다 해도 미리 대기 중이던 알터 부대가 빠르게 처리했을 테지만…….

볼기예프가 윤수호를 상대하기 위해서 알터 부대를 모두 소집한 탓에 수도 방위에 구멍이 생긴 것이었다.

“뭐, 뭐이간?”

김정언은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땅과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전 손잡이를 잡고 눈을 질끈 감는 것뿐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운전기사는 크게 다쳐 정신을 잃었지만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김정언은 머리만 조금 까졌을 뿐,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크윽……!”

하지만 이내 안전벨트를 다급히 풀고 차에서 내린 그는 오히려 운전기사가 운이 좋고 자신의 운이 나빴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허억……!”

인간의 피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린 재앙종의 번들거리는 노란 눈동자를 보는 순간, 김정언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맹수와 파충류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생김새를 가진 재앙종은 그 크기만 해도 아파트 4층 건물 높이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즉, 눈앞의 재앙종은 최소 6등급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6등급 재앙종으로부터 평범한 인간이 혼자서 살아남을 가능성? 솔직히 말해 없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김정언의 사타구니가 축축하게 젖어 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도, 도망쳐야…….’

딴에는 다리를 열심히 놀린다고 놀려 봤지만 도저히 하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김정언의 다리가 맥없이 허우적거리는 사이, 어느새 접근한 재앙종이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물어뜯었다.

그것은 차였다.

콰드득! 콰직!

재앙종의 아가리 속에서 무참하게 부서지는 차량 파편 가운데 기름과 핏물이 한데 섞여 흘려 내렸다.

그 사이사이에 뒤섞인 내장 찌꺼기들의 주인이 누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김정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기절은커녕 곤두선 털끝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꿀꺽…….

사람과 차를 같이 씹어 삼킨 재앙종은 그럼에도 허기를 채우지 못했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김정언을 쳐다보았다.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비린내가 유난히도 코끝을 찔렀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재앙종에게 참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콰우우우!

“……!”

너무 숨을 삼킨 나머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선명한 죽음.

크게 벌어진 녀석의 아가리와 뚝뚝 흘러내리는 침을 보며 김정언은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자신의 죽음을 억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바로 그 순간!

콰아앙!

“흐읍……!”

김정언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눈앞에서 굉음과 함께 대가리가 땅에 처박힌 재앙종의 모습 때문이었다.

“여기 있었군.”

“너, 너는……!”

6급 재앙종을 단순히 대가리를 밟아 죽여 버린 윤수호가 머리에서 내려와 자신에게 다가오자 김정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살할 깜냥이라도 있었으면 귀찮았겠지만…… 그럴 녀석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군.”

“……!”

윤수호의 평가에 김정언은 수치심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손에 붙들린 김정언은 북한으로 넘겨졌다. 그곳에서 재판을 받으면 남은 인생이 결정되겠지.

* * *

“다시 마주보니 반갑긴 하다만, 이런 식으로 다시 봐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소. 혹시라도 다시 싸울 생각이면 그냥 내 목을 가져가시오. 그 꼴을 보고도 그쪽과 다시 싸울 생각은 없으니.”

알렉산드로는 윤수호의 잔에 보드카를 채워 주었다. 그러자 윤수호 역시 그에게서 술병을 넘겨받아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짠.

맑은 소리와 함께 건배한 두 사람이 보드카를 들이켰다. 화끈한 불이 식도를 타고 흘러 내려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뱃속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윤수호는 잔을 비운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설산과 그 앞으로 펼쳐진 침엽수림, 그리고 눈앞의 고즈넉한 통나무집까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제법 운치 있는 곳에서 사는군. 러시아의 톱텐이라는 자가 이런 곳에서 살면 불편하지 않은가? 충분히 좋은 곳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을 텐데.”

“일없수. 그냥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게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오.”

“아빠……?”

그때였다.

아빠를 닮은 붉은 머리카락에 호수를 두 눈에 담은 것 같은 파란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쪼르르 걸어와 알렉산드로에게 안겼다.

“어이쿠, 우리 공주님! 자다 깬 거야?”

“응……. 근데 아빠 있지.”

거대한 덩치의 아빠에게 안기자 소녀의 모습이 마치 작은 인형처럼 느껴졌다.

소녀는 꿈속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아빠에게 떠들었고 알렉산드로는 작고 소중한 딸의 이야기를 웃으며 들었다.

“어머, 손님이 계셨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윤수호라고 합니다. 남편분의 초대를 받아 잠시 실례하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중에 실례가 많습니다.”

“아니에요. 이이가 친구를 좀처럼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저희 남편을 잘 부탁드립니다.”

뒤이어 절세가인이란 말이 무척 잘 어울리는 알렉산드로의 아내까지 귀가하자 윤수호가 그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내는 두 사람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서둘러 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이런 행복이라면 포기하기 쉽지 않겠군.”

“이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소. 그게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을 지키는 이유요.”

“알 만하군. 그대가 왜 나에게 길을 터 주었는지 말이야.”

알렉산드로는 윤수호와 두 번째 잔을 나누며 대답했다.

“내가 충성을 바치는 대상은 내 가족과 조국이오, 볼기예프 따위가 아니라. 그자의 능력이 조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 지켜왔지만, 그자의 행위가 조국을 조금이라도 위협한다면 그자는 내 적이오.”

“그 탓에 그쪽 입장도 꽤나 곤란해지지 않았나? 이유야 어찌 되었건 적에게 나라의 수장을 팔아먹은 건 똑같은 일이니까.”

“본래라면 그렇게 되었어야 했지만…….”

그날, 그 광경을 보고 상부에 신고한 군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나 보군,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한 사람은 볼기예프가 아닌 그대라는 사실을.”

“그저 부끄럽고 고마울 따름이오. 게다가 아직 우리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소.”

“그러게. 그런데 어떻게 미사일이 발사된 거지?”

윤수호의 질문에 알렉산드로는 무거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부검 결과, 자신의 심박수에 발사 장치를 무선으로 연결해 놓았더구려. 심장이 멈추면 자동으로 발사가 되게끔 미리 손을 써 둔 모양이었소.”

“죽을 때 죽더라도 혼자 가진 않겠다는 건가?”

“그런 사람이었소, 볼기예프는. 이익을 적게 볼지언정 결코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그 덕분에 러시아가 국제 사회에서 매우 곤란한 입장이 되지 않았나?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니까.”

“자신이 죽은 뒤의 일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던 거겠지. 참으로 그다운 죽음이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알렉산드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수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볼기예프를 대신해 사과드리겠소. 그의 목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내 목도 가져가시오. 진심이오.”

“그랬다간 이렇게 맛있는 보드카를 함께 마실 친구를 잃게 될 텐데 내가 왜?”

“…….”

씨익 미소를 그리며 술잔을 내미는 윤수호의 모습에 알렉산드로는 말없이 술병을 들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갔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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