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30화 (130/175)

130.

이선호와 조춘영이 테마 파크에 잠입한 첩자들을 생포하고 있을 무렵.

“이걸로 대충 다 잡은 건가?”

“예.”

“도와줘서 고마워요, 선화 씨. 이런 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선화 씨가 아니었으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거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수호 공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하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닙니다.”

환술을 주특기로 하는 선화였지만 선술 전반에 두루 능통한 실력을 자랑하는 그녀였다.

그에 반해 윤수호는 선기가 그녀와 차원이 다르다고 해도 선술에는 그다지 조예가 없었으니…….

‘애초에 천부공은 선술이 아닌 선공이니까.’

굳이 비교하자면 마법과 무공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러시아에서 이 정도로 선물을 보내 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죠.”

윤수호는 눈앞에 붙잡힌 러시아의 첩자들을 훑어보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들은 모두 눈이 반쯤 풀린 상태로 멍하니 쓰러져 있었다. 이미 그들에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은 모두 알아낸 상태.

제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거쳐 자백제조차 거의 소용없다 해도 선화의 환술 앞에서는 그저 알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겠죠.”

선화는 문득 러시아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윤수호가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그녀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가족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인물들이 집과 희망동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윤수호의 미소 속에 감춰진 차가움에 그녀조차 심장이 싸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선화 씨에게 가족들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 바로 가시게요?”

“이벤트 마지막 날은 편한 마음으로 보내야죠.”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자신이 따라가서 도울 일은 없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삼켰다.

윤수호가 가족의 안위를 부탁했다. 세상에 그것보다 중요한 임무는 없다는 걸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팟!

어느새 구름이 지나다니는 하늘로 몸을 날린 윤수호.

쏟아질 것 같은 별들과 밝은 달빛 아래에서 윤수호는 선우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님 접니다. 예, 오늘 러시아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아서요. 아무래도 답례를 해야 할 것 같더군요. 우리나라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 상태를 최고 레벨로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방금 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그저 위원장께서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라고 할 것도 없지요. 위원장께서는 누구보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저 같아도 참지 못했을 겁니다. 이참에 아주 러시아에게 본때를 보여 주시죠. 하하하!

대통령의 응원을 받으며 기분 좋게 전화를 끊은 윤수호는 다음으로 박여진에게 연락을 취했다.

“박 팀장. 늦게까지 일하고 미안하게 됐어.”

-그런 말씀 마세요. 정보부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위원장님을 서포트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파이팅입니다, 위원장님.

그렇게 모두의 응원을 한 몸에 안은 채, 윤수호의 신형이 빠르게 러시아를 향해서 날아갔다.

* * *

조금씩 싸늘해진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울 때쯤,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 윤수호의 시선 아래로 붉은 광장이 펼쳐졌다.

평소에는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오늘은 관광객 대신 군인들로 광장이 가득했다.

그곳에 윤수호가 보란 듯이 착지했다.

“어?”

“침입자다!”

대담하게 정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침입자를 애워싼 러시아 군인들이 총구와 오러가 깃든 무기를 들이댔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혼자 온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어디 매복이라도 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주변 정찰은 10분 간격으로 꼼꼼히 하고 있었는데…….”

군인들 중 몇몇은 눈동자만 굴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매복이나 적군이 숨어 있을 만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즉, 눈앞의 복면인 혼자서 이곳을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소속과 정체를 밝히고 순순히 투항하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이 자리의 책임자인 고바노프 중장이 소리쳐 경고하자 윤수호는 고개만 돌려 모여 있는 군인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능력자와 비능력자를 포함하여 총 군인 5천여 명 정도가 자신을 포위한 채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정확히 10초의 시간을 주지. 그 안에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놈들은 살려 준다.”

“뭐?”

“10.”

윤수호가 능숙한 러시아어를 구사하여 경고한 뒤 정말로 카운트를 세기 시작하자 군인들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것인지…….

“하는 수 없지.”

탕탕탕탕탕!

고바노프 중장이 손을 들어 올리자 대기하고 있던 스나이퍼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러나 윤수호의 머리와 심장을 노리고 쏜 총알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강기막에 막혀 튕겨 나갈 뿐,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전군 사격!”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저격이 실패하자 러시아군의 총구가 불을 뿜으면서 폭우와도 같은 총탄 세례가 윤수호에게 쏟아졌다.

하나 그 많은 총알 중에서 단 한 발도 윤수호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1…… 0.”

카운트가 끝나고 윤수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사격 중지!”

빗발치는 총알 세례에 상대방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고바노프가 사격 중지를 외치자 손을 들어 올린 윤수호의 모습이 보였다.

“알터 부대는 전방으로!”

“놈이 움직인다!”

그 순간, 기감이 예민한 알터 부대가 미증유의 위기감을 느끼고는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전력을 다해 오러를 끌어 올렸다.

이미 공격하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그들은 방패를 붙여 세우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벽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하나 그것은 평범한 벽이 아니었다. 방패 하나하나가 오러로 무장된 벽이었던 것이다.

윤수호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휘둘렀다. 마치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그 결과를 지켜보던 스나이퍼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콰우우우우우우우우!

윤수호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폭풍이 방사형으로 전방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벽은 무너지고, 대응이 빨랐던 능력자들은 무기나 방패를 땅에 박아 가까스로 버텨 냈지만 일반 군인들은 달랐다.

“아, 안 돼!”

“떨어진다!”

“사, 살려……!”

퍽! 퍽! 퍽! 콰득! 우지직! 콰작! 으드득!

폭풍에 휩쓸려 하늘 높이 올라간 병사들.

최소 건물 4층 높이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져 죽거나 운이 좋아도 병신이 되어 울부짖는 등, 끔찍한 광경이 여기저기서 연출되었다.

윤수호는 그들을 무감정하게 바라보며 고저가 없는 말투로 이죽였다.

“고작 손짓 한 번에 이 지경이 됐으면서 대체 뭘 막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일반병들은 빠져!”

“여기서부턴 우리가 나선다!”

비능력자 병사들의 화력으로는 윤수호에게 피해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만 피해가 늘어날 거라 판단한 알터 부대가 전면으로 나섰다.

그들도 이제 윤수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들로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여기는 러시아의 중심,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이었고 자신들은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군인들이었으니까.

“결국 목숨을 버리겠다는 뜻이군.”

“가자!”

알터 부대가 가지고 있던 병기에 오러를 불어 넣으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오러 부대가 형형색색의 오러를 번뜩이며 한 명의 적을 향해 쇄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 누구라도 그들을 마주 보았다면 바지를 적시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겠지.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윤수호였다.

스윽…….

윤수호가 말아 쥔 주먹에서 검지와 중지를 펼쳐 검결지를 휘둘렀다.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온 100여 미터에 이르는 검기가 출렁이며 굶주린 뱀처럼 사납게 전방을 휘갈겼다.

윤수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뱀의 춤도 전혀 달라졌다. 문제는 그들이 윤수호의 내공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크아악!”

“조, 조심해!”

“뭔가가 있다!”

누군가의 경고처럼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감지하겠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사이에도 공포는 점점 더 깊어졌다.

특히 윤수호의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아군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누군가는 갑자기 몸통이 반으로 갈려 피와 내장을 쏟아 냈고…….

누군가는 잘려 나간 머리가 동료의 눈앞에 떨어지는가 하면, 누군가는 다리가 양쪽 다 잘려나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기도 했다.

전력을 다한 오러로 방어해 봤자 오러와 함께 몸뚱이가 썰려 나갈 뿐, 피하려고 해도 당최 어떤 공격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아야 피할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낫으로 잡초를 베는 모양새와 같았다.

윤수호가 대충 손가락을 휘적거리기만 해도 알터 부대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대신 붉은 광장을 이름처럼 붉게 물들여 가는 군인들의 시신과 핏물은 빠르게 넘쳐 났다.

천여 명에 달하던 알터 부대가 전멸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괴, 괴물……!”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고바노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저도 모르게 괴물이란 단어를 중얼거렸다.

1천여 명의 알터 부대를 단번에 도륙하고 서서히 접근하는 윤수호의 모습은 사신 그 자체였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나 자신들을 핍박하는 것일까? 러시아에 더 이상 희망은 없는가? 그런 생각이 점차 머릿속에 퍼져 나갈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슈웅!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거한의 존재감에 윤수호가 머리 위로 검결지를 휘둘렀다.

그러자 예의 검기가 출렁이더니 모자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빠른 속도로 허공을 향해서 찔러 들어갔다.

그런데!

“흐읍!”

콰아아앙!

떨어져 내리던 거한은 등 뒤에 빗겨 맨 쌍도끼를 꺼내 들더니 그대로 검기를 후려갈겼다.

알터들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던 검기를 그 순간에 반응하여 후려친 것이다.

그 결과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큰 폭발과 함께 거한의 몸뚱이가 정신없이 날아가 땅으로 추락했다.

쾅!

굉음과 함께 땅에 처박힌 거한. 그러나 먼지구름이 걷힌 그의 모습은 여전히 멀쩡해 보였고, 그를 확인한 군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알렉산드로다!”

“알렉산드로가 이곳에 왔다!”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머리, 2m가 넘는 거대한 체구, 바위를 압축시켜 넣어 놓은 듯한 단단한 근육, 그리고 곰도 일격에 쪼개 버릴 듯한 두 개의 쌍부까지…….

그 위용은 러시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쟁의 신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러시아의 국민들에게 그는 전쟁의 신 그 자체였다.

그야말로 러시아의 톱텐, 알렉산드로 모호르비치였으니까.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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