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테마 파크를 찾아온 요원들의 임무는 윤수호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그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대상의 성향, 성격, 말투, 행동거지 등을 파악하는 것도 대상의 목적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이 파고들지 않고 그저 손님인 척 위장해 대상을 관찰한 후, 폐장 시간에 맞춰 조용히 테마 파크를 나섰다.
그런데…….
콰앙!
한적한 도로 위.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차량이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와 충돌하며 굉음과 함께 뒤집어졌다.
차가 뒤집어 지기 전에 재빨리 창문을 부수고 탈출에 성공한 두 사람은 차와 충돌한 원인을 확인하고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디서 꼬리를 밟힌 거지? 꽤나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글쎄. 그래도 뭐…… 그곳 자체가 괴물 천지였으니 언제 밟히더라도 이상할 건 없지.”
커플로 위장한 두 요원. 엘리나와 니콜라스는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이선호와 조춘영을 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말이 있다.
오가네 주막 대부분의 능력자들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본 만큼, 두 사람 역시 오가네 주막이 다른 의미로 요괴촌이란 사실을 대충은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선호와 조춘영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았음에도 크게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용히 따라오면 예쁘게 대접해 줄 생각인데…… 혹시 생각 있는 사람? 아니면 영어를 못 알아듣나?”
이선호가 영어로 얘기했음에도 두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설령 말을 못 알아 처먹어도 눈치는 대충 느낄 텐데…… 이건 확실히 거절이라고 봐야겠지?”
“그럼 나는……!”
조춘영은 눈을 빛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가 노린 상대는 다름 아닌 엘리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봤다면 조춘영의 저의를 의심했겠지만 이선호는 피식 웃었다.
이곳이 클럽이었다면 남들이 생각하는 그게 맞았겠지만 전장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조춘영이 전장에서 바라는 건 오로지 하나.
가장 강한 상대뿐이었으니까.
“알아서 정리하고 빠져. 합류 지점은 B포인트다.”
“알았다.”
엘리나가 합류 지점을 정하고 몸을 날려 이동했다. 그러자 조춘영도 그녀를 따라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하여간 그런 쪽 후각은 기가 막힌다니까. 그럼 우리도 시작해 볼까?”
“지금이라도 못 본 척 조용히 돌아가면 곱게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지.”
니콜라스가 상의를 벗으며 마지막으로 경고했으나 이선호는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이거 어쩌냐. 난 곱게는 못 보내 줄 것 같은데.”
“그럼 죽어라.”
니콜라스는 오러를 끌어 올리더니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이선호에게 접근했다. 보디빌더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이었다.
‘아직도 오러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곧 주먹을 뻗으면 이선호의 머리를 푸딩처럼 으깨 버릴 수 있었음에도 이선호의 몸에서는 그 어떤 오러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오러를 끌어 올려도 늦는다. 니콜라스는 김빠지는 승리를 어렵지 않게 상상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푸른빛의 최상급 오러로 무장된 주먹이다. 탱크 정도는 일격에 부술 수 있었으니 사람의 머리 따위는 감촉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콰아앙!
순간, 니콜라스의 시야가 점멸했다.
‘무슨……!’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등에서는 차가운 도로의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고 주변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충격의 강도를 말해 주고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1~2초 사이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확신했다. 그 사이에 상대가 마음먹었으면 자신은 열 번도 넘게 죽었을 거란 걸…….
“제법 따끔하지? 이게 환환수청공의 풍자결이란 초식인데 나도 처음 당했을 때는 정신이 없더라고. 아주 사람이 미칠 것 같더란 말이지.”
니콜라스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위력을 줄이는 대신 속도와 정확도에 더 집중했다. 방금 전과 같은 꼴불견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소용없었다.
휘릭, 스윽, 팟!
이선호는 쏟아져 들어오는 펀치들을 간결한 손짓만으로 자연스럽게 흘려 버렸다. 니콜라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치 형상은 있지만 실체는 없는 허깨비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주먹이 이선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그 순간에도 이선호의 몸에선 그 어떤 오러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상대의 신체 조건은 평범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아무리 단련했다고 해도 오러 유저에게 일반인은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한데도 결과는 자신의 주먹이 이선호의 털끝조차 스치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누가 봤다면 마치 한 편의 액션 영화처럼 합을 짰다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이선호는 그런 니콜라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말했잖아. 이게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라고. 그래도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 내가 아니라 조춘영이었다면 정면에서 널 개박살 냈을 거거든.”
‘분하지만 현재 그 녀석의 내공 총량과 내공을 활용한 신체 강화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그 순간, 그때까지 니콜라스의 공격을 흘리기만 하던 이선호가 그의 공격을 부드럽게 피하며 되레 한 걸음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그의 일장이 자연스럽게 니콜라스의 명치에 닫는 순간.
쩌엉!
“커헉……!”
동심원을 가진 충격파가 터지면서 니콜라스가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이선호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자 니콜라스의 무릎이 자연스럽게 땅으로 떨어졌다.
“우웩……!”
철푸덕!
결국 토사물과 피를 함께 토해 낸 니콜라스가 자신의 토사물에 얼굴을 묻은 채 기절해 버렸다.
이선호는 그런 니콜라스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뒈질 때까지 처맞다 보면 살기 위해서 보이게 되더라고. 상대의 공격이 말이야.”
환환수청공 통자결.
최상급 알터인 니콜라스를 단 일격에 보내 버린 초식의 이름이었다.
* * *
고속도로를 벗어난 인근의 이름 없는 야산으로 자리를 옮긴 조춘영과 엘리나.
“역시 당첨 제비가 맞았네.”
조춘영은 엘리나의 쌍단검을 물들인 오러를 확인하고는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오러에서 아지랑이처럼 기운이 피어오르는 오러 시머는 페퍽트 오러의 전 단계이자 오버 알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팟!
경고 따위는 없었다. 정체를 들킨 이상 상대의 입을 죽음으로 막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엘리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녀의 스피드는 니콜라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눈으로 보고 반응하면 늦다!’
눈도, 귀도 의지할 수 없다. 소리조차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소리 없이 접근한 엘리나의 검이 조춘영의 목에 틀어박혔다.
반응할 틈도, 대응할 여지도 주지 않는 완벽한 기습이었다.
엘리나의 눈에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조춘영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하나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빠캉!
“……!”
일반적인 오러는 종잇장인 양 뚫어 버리는 오러 시머가 조춘영의 목을 뚫지 못했다.
그의 목이 방어구로 보호받거나 오러로 무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대로 드러난 맨살에는 아무런 오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러 시머가 불똥을 튀기며 막힌 것이다.
하나 막힌 공격에 연연할 수도 없었다.
후웅!
‘이런……!’
조춘영이 기습을 막아 내며 몸을 돌리는 동시에 주먹을 내뻗었다.
여전히 주먹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스피드였다.
게다가 방금 전의 기묘한 상황까지…….
엘리나는 자신의 감을 믿고 그의 주먹을 막기보다 피하는 걸 선택했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콰아아앙!
빗나간 주먹 끝에서 폭발한 기운이 폭탄처럼 전방을 쓸었다.
충격파에 휩쓸린 나무들이 부서지며 어지럽게 흩어지고 땅이 부서져 커다란 흔적이 남았다.
엘리나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미친……! 어떻게 인간이 오러도 없는 맨몸으로 이런 짓을?’
니콜라스도, 엘리나도 오해하고 있었지만 이선호와 조춘영이 사용하는 건 오러가 아니라 내공이었다.
단지 기운이 전혀 달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 뿐.
물론 산소 농도가 매우 높으면 사람도 산소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윤수호같이 규격 외의 내공이라면 그들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선호나 조춘영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기에 이들이 내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엘리나에게 있어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공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인 즉, 상대방의 실력을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아, 젠장…… 선호 그 자식이었다면 분명 사전에 느끼고 피했겠지?”
‘기감도 그렇고 기의 수반도 그렇고, 그 자식은 숨 쉬는 것처럼 쉽게 하는 걸 왜 난 안 되는 거냐고?’
조춘영은 분했다.
기를 통해 상대방의 존재와 행동을 감지하고 자신의 기를 컨트롤하는 능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선호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더 기를 쓰며 갈고닦았다.
쿠구구구구궁!
내공을 통한 육체의 강화를, 그리고…….
콰아앙!
강화된 육체를 활용한 최적의 전투를!
“꺄아악!”
단 일격.
조춘영이 압축시킨 내공을 폭발시키자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일대에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하면서 엘리나를 집어삼켰다.
설마 이런 방법으로 공격할 줄은 몰랐기에 대처할 사이도 없이 충격파에 휩쓸린 엘리나가 자리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쓰러진 엘리나에게 다가간 조춘영은 그녀가 기절한 사실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그녀를 포박했다.
오러를 억제하는 수갑을 착용시켰으니 설령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그녀의 능력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이건 뭐…… 굳이 따라올 필요도 없었네요.”
“지한이 너……?”
그때 마침 산의 그림자 너머에서 은지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조춘영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삼촌이 걱정된다고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따라가 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역시 기우에 불과했네요.”
“형님은?”
“여기뿐만 아니라 우리 집 주변도 그렇고, 삼촌의 정보를 캐내려고 여기저기서 스파이들이 기웃거리고 있나 봐요. 그놈들 정리하러 가셨어요.”
은지한의 대답에 조춘영은 엘리나를 깊이 관찰하다가 입을 열었다.
“딱 봐도 러시아 쪽에서 온 것 같은데…….”
“삼촌이 북한에서 벌인 일들 때문에 그런 걸까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북한과 러시아는 동맹국이고 현재 김정언은 러시아에서 체류 중이니까. 문제는 러시아에서 형님에 관해 냄새를 맡았다는 건데…….”
아무리 국가 기밀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윤수호의 업적과 존재감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낭중지추라고 했으니 결국 시간이 지나면 윤수호의 존재를 세상도 알게 될 터였다.
“러시아가 삼촌을 적대하지는 않겠죠?”
“평범한 사람이야 똥인지 된장인지 냄새만 맡아도 구분한다지만 욕심 많은 권력자일수록 멍청한 법이라서 말이야.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똥인지 알아도 숟가락으로 퍼먹게 되는 법이지.”
“흐음…….”
“왜? 형님이 걱정되냐?”
“아뇨, 그 반대요. 춘영이 삼촌은요?”
“나야 당연히…… 러시아지. 볼기예프 그 양반이야 당해도 싸다지만 그 양반 때문에 고통받을 러시아 국민들은 무슨 죄겠냐? 그나저나…….”
조춘영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은지한에게 물었다.
“선호 그 자식은?”
“지금쯤 끝나지 않았을까요?”
“선호를 놔두고 삼촌을 더 걱정해서 달려왔단 말이지? 역시 지한이! 이 삼촌한텐 너밖에 없다. 크흐흑!”
“그게…… 당연히 그렇죠! 하하하…….”
사실은 이선호보다 조춘영이 더 불안해서 따라붙은 것이었지만…….
그걸 차마 사실대로 밝힐 수 없었던 은지한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