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27화 (127/175)

127.

“여봐라! 개 아무도 없느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힘차게 외치는 소녀의 익숙한 목소리에 주막 안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어?”

“공주님?”

“꺄악~! 말도 안 돼! 찐으로?”

미르와 선화를 발견한 은지연이 제일 먼저 달려가 미르를 안아 들고는 말랑말랑한 그녀의 뺨에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문질렀다.

“어쩜! 그동안 더 귀여워진 것 봐. 볼 살도 미쳤어. 너무 부드럽잖아, 이건!”

“으으…… 지연 양도 건강한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쁘구나. 그러니 이제 그만 내려 주면…… 귀, 귀는 물지 말거라! 흐엥~!”

윤씨네 가족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미르와 선화를 무척이나 반겼고, 미르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이내 미르의 귀여움에 푹 빠져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선화 씨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선화는 차분히 허리 숙여 윤수호에게 인사를 건넸고 윤수호도 따뜻하게 그녀를 반겨 주었다.

한편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선호와 조춘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선화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조춘영이 홀린 듯이 말을 꺼냈다.

“뭐냐, 저 여배우 포스 물씬 풍기는 미친 비주얼의 여성은?”

“너 지금 그 표정 찍어서 네 애인한테 보내 주면 참 좋아하겠다. 그치?”

“너야말로 침이나 닦고 말해, 이 자식아.”

“그나저나…….”

이선호는 윤수호와 선화가 함께 있는 모습을 멍하니 관찰하였다.

미친 비주얼의 남녀가 서로 웃으며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봐도 심상찮은데 말이지…….”

“뭐가?”

이선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느낌을 얘기하자 이해하지 못한 조춘영이 물었다.

“형님이랑 저 선화라는 분 말이야. 분위기가 음…… 약간 핑크빛 기류가 흐른다고 해야 되나?”

“그래? 내가 보기엔 평소 보던 매너 좋은 형님의 모습 그대론데?”

“어휴…… 내가 너 같은 둔치랑 무슨 말을 하겠다고.”

“그래서 님, 여친 있음?”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먹이는 조춘영에게 이선호가 주먹을 말아 올리던 찰나.

“선배들…… 장난은 그쯤하고 얼른 저녁 준비나 하시죠? 이제 세 시간 뒤면 저녁 타임인 거 아시죠?”

“어? 어. 그, 그렇지…….”

“금방 갈게!”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조용히 지나가는 박여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선호가 말했다.

“쟤는 또 왜 난데없이 주변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냐?”

“몰라, 그날인가 보지.”

“그날? 아…….”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두 사람은 다급하게 저녁 준비를 서둘렀다.

그렇게 주막 식구들 전부가 저녁 장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윤수호는 미르, 선화와 함께 조용한 곳에서 따로 자리를 가졌다.

“그래서, 어젯밤에 러시아 측 침투 요원을 생포했다는 얘기지?”

“엣헴!”

허리춤에 팔을 올리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은근쓸적 머리를 윤수호 쪽으로 내미는 미르.

의중이 너무나도 뻔히 보였기에 피식 실소가 나오기도 했지만 윤수호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미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잘했다. 다친 곳은 없고?”

“고생은 선화가 전부 했느니라. 난 뒤에서 응원만 했으니 멀쩡하다.”

“으이그, 자랑이다. 선화 씨는 다친 곳 없죠?”

“수호 공께서 걱정해 주실 만큼 대단한 적들은 아니었어요?”

선화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대충 예상은 가지만 녀석들이 찾아온 이유가 뭐래?”

“이번 북한의 새 정부를 일으킨 배후…… 즉, 수호 공 그대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새 정부의 의장과 의원들을 습격한 거고?”

“그렇다.”

미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윤수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놈들의 말로는 러시아의 군대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군대가?”

이어진 설명은 선화가 맡았다.

“현재 러시아는 북한의 새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해요. 북한의 통수권자는 자국에서 보호 중이니까요. 새 정부를 반군이라 규정하고 동맹을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군까지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반군으로부터 동맹국을 탈환한다는 목표이다 보니 미국도 거기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못할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는 게 분명했다.

“군대가 공짜로 움직이는 것도 아닐 테고……. 러시아를 이용해 나라를 되찾아 봤자 나라를 거덜 내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텐데?”

나라를 되찾는다고 해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러시아는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들을 약탈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이 감당하게 되겠지. 하지만 김정언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러시아는 자기를 챙겨 줄 테니까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건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 손봐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설마 러시아와 전쟁을 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미르가 걱정하며 물었다.

아직 세상물정이 어두운 미르였지만 적어도 북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공부한 미르였다. 그런 그녀가 러시아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윤수호가 지거나 다친다는 상상은 되지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저 이번 일로 윤수호가 또 다시 손에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묻힐까 그게 걱정될 뿐이었다.

“아니.”

“그럼?”

“본래 사람은 무슨 일을 했을 때 득보다 실이 많으면 손을 거두는 법이거든. 그러니까 따끔하게 가르쳐 줘야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윤수호의 눈동자에 스산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 * *

“그나저나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게냐?”

다시 주막으로 돌아온 미르는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윤수호가 가족들을 쳐다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야, 그렇게 오래 붙어있었으면서 아무도 설명을 안 해 줬던 거야?”

“그게, 삼촌…… 하하하…….”

“하아…….”

미르를 물고 빨다 보니 설명할 기회를 놓쳤던 게 뻔했다. 결국 윤수호가 주막에 대해 설명하자 미르가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오, 그것 참 재미있겠구나! 혹시 나도 도울 일이 있겠느냐?”

“괜찮아. 좀 이따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줄 테니까 두 사람은 근처 구경이라도 하다 오면 돼.”

“맛있는 것도 좋지만 나도 그대들과 같이 일하고 싶구나아…….”

미르의 눈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다 함께 일하는 것이 아무래도 부러웠던 모양이다.

“근데 누나는 아까부터 왜 그렇게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봐?”

“음…….”

은지한의 질문에도 말없이 미르와 선화를 주시하던 은지연이 돌연 눈을 크게 뜨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톡 찍었다.

“아……!”

“……?”

“잠깐만요. 두 사람! 잠시만 따라와 주실까요?”

은지연은 다급하게 미르와 선화를 끌어 방으로 향했다.

당사자들을 물론이고 구경하던 사람들 역시 의문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차에 은지연은 문을 닫기 전 사람들에게 윙크를 날렸다.

“잠시 후를 기대하시라!”

그리고 15분 정도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짜잔~!”

“헉!”

“미친…….”

“세상에!”

“어쩜!”

어느새 방으로 들어간 세 사람의 존재를 잊고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던 사람들.

그들은 문을 열고 등장한 미르와 선화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관객들의 반응에 만족한 디자이너 은지연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어때? 괜찮지, 삼촌?”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

원래부터 굉장한 미모를 자랑하던 선화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을 독차지할 만큼 귀엽던 미르였다.

당연히 한복 차림도 우아하고 기품 있을 수밖에…….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화아아…….

선화의 뒤로 흐드러지는 아홉 개의 꼬리와 머리 위에 쫑긋 선 여우 귀, 그리고 미르의 머리 위로 돋은 귀엽고 앙증맞은 사슴뿔까지…….

의태를 풀었음에도 두 사람의 모습이 어색하긴커녕 더욱 신비롭게 다가왔다.

‘지연이 저 녀석…… 테마 파크의 장점을 제대로 살렸군.’

윤수호는 은지연의 아이디어에 감탄을 금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 사람처럼 코스튬을 입고, 심지어 주막마저 코스튬 덩어리인 이곳에서 미르와 선화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터였다.

“그런 이유로 오늘 저녁 주막의 콘셉트를 살짝 조정할까 하는데…… 할머니 생각은 어때요?”

“나만 안 시키면 상관없다.”

“그럼 정해졌네. 오늘 저녁 오가네 주막 콘셉트는 요괴 주막입니다!”

“자, 잠깐만! 지연 양! 본인은 요괴가 아니라 환수니라!”

“소용없을 것 같아요, 공주님. 지연 양의 눈이 이미 돌아 버린 것 같거든요.”

“흐흐흐, 자~ 누가 먼저 요괴가 돼 볼래?”

그렇게 모두가 요괴 분장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나, 난 안 한다고 했잖아!”

“그만 포기하시죠. 할머니, 이제 그만 다 같이 요괴가 되는 겁니다. 흐흐흐~!”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던 오혜연마저 삼신 할매 콘셉트의 분장을 마친 후에야 저녁 장사를 시작했다.

노을 지는 테마 파크의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들어와 운치를 더하고, 저물어 가는 땅거미 위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내 오가네 주막 앞을 지나가는 순간 일제히 멈춰 섰다.

“오가네 요괴 주막에 어서 오세요!”

“와…….”

“미친, 전부 요괴 코스튬 한 건가? 퀄리티 대박!”

“특히 구미호 코스튬이랑 사슴뿔 여자애는 퀄리티가 미쳤는데?”

“세상에…… 꼬리 움직이는 거 봐. 너무 자연스럽잖아?”

저녁 메뉴는 점심과 달리 가벼운 차와 다과를 중점으로 했다.

테마 파크와 연동된 호텔에서 묵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을 배려해 간단히 즐기고 돌아갈 수 있는 메뉴로 구성한 것이다.

그만큼 음식보다는 부가적인 메뉴가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코스튬한 직원들과 사진을 찍는다거나, 성하의 그림도 여전히 막강한 인기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 요소를 꼽으라면 당연히…….

“미쳤어! 대박 졸귀! 어쩔 거야!”

“꺄악, 그냥 데려가서 동생 삼으면 안 될까?”

“어쩜! 볼도 찹쌀떡처럼 쫀득쫀득한 게 너무 귀여워~!”

“나는 인형이 아니니라아…….”

여성 손님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귀여움으로 어질어질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르와…….

“저, 저기 사진 한 번만…….”

“한 컷에 한 냥(1만 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백 컷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롤의 아미 성대모사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부가 서비스는 다섯 냥인데…….”

“그냥 제 지갑을 가져가십쇼!”

남성 손님들을 상대로 거의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선화를 꼽을 수 있었다.

“와~ 진짜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형님.”

“근데 우리는 뭐 한다고 코스튬 한 겁니까? 어차피 봐 주는 사람도 없는데…….”

“저 두 사람도 즐거운 것 같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그리고 걱정마라. 너희 둘도 썩 잘 어울리니까.”

“형님!”

감격에 벅차 우는 동생 도깨비들을 달걀귀신이 위로해 주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