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26화 (126/175)

126.

평안남도 사개항.

과거 60~70년대만 하더라도 북한 교역의 중심지이자 수많은 사람들로 밤낮없이 붐볐던 이 곳이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었다.

출렁…….

잔잔한 밤바다를 넘어 사개항에 도착한 한 척의 밀항선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적막한 어둠과 별빛 뿐. 인기척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밀항선에서 무리들이 하선했다. 검은 옷으로 정체를 가려 신원 미상인 인물의 숫자는 총 여덟 명.

“작전대로 지금부터 평양으로 침투.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끄덕.

벽안의 무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움직였다.

땅을 내달리는 그들의 속도는 맨몸으로도 가히 바람과 같았다. 아니, 바람조차 그들의 그림자를 따라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낮에는 숨어서 오러와 체력을 회복하고, 밤에는 이동하면서 단 이틀 만에 평양 시내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찬찬히 살피는 무리.

‘확실히…… 예전에 왔을 때보다 분위기가 많이 변하긴 했군.’

무리의 조장인 조세프는 이전에 왔을 때와 완전히 달라진 북한의 일상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본래 북한의 통금 시간은 오후 10시. 이후에는 당의 허락을 받은 주민 이외에 누구도 거리를 배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주민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며 술을 마시거나 유흥을 즐기는 등,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알 바는 아니지.’

북한 주민들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건 그들의 임무는 정해져 있었다.

“각자 위치로. 만일 발각됐을 경우에는 매뉴얼대로 대처한다.”

끄덕.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부하들이 빠르게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조세프 역시 자신을 따르는 부관, 세르게이와 함께 목적지를 향해서 빠르게 이동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받은 지령을 머릿속에서 정리하였다.

-현 북한 새 정부의 배후를 알아낼 것.

재앙종의 출현으로 급속하게 몰락하던 북한은 던전이 출현한 이후로 완전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야말로 중국도, 러시아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북한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 정부가 출범할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라면 필시 다른 나라나 국가에 버금가는 세력일 터.

가장 의심되는 부분은 역시나 남한 정부와 미국이었다.

그러나 세계 3차 대전을 바라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두 나라가 북한을 도와줬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렇다면 두 정부의 지원을 받는 배후 세력이 있거나, 만에 하나 정말로 두 정부가 직접적으로 이 사태에 개입했다면…….

자신들은 거기에 대한 증거를 반드시 확보해 돌아가야만 했다.

-도착했습니다, 조장.

목적지였던 강찬휘 의장의 저택을 목전에 둔 두 사람이 야간 투시경으로 집안 내부를 살폈다.

강찬휘는 북한 대중 매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김정언의 실각과 북한 새 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한 새 정부의 대표자였다.

당연히 그만큼 아는 것도 많을 터.

-가자.

수화로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이 은밀하게 저택 쪽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최선의 경우는 타깃과 타깃의 가족을 각각 한 명씩 납치해서 도주하는 것.

고문을 이용한 자백을 받아낼 때, 본인을 고문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이 가족을 이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한 명이 시간을 버는 사이, 다른 한 명이 타깃을 납치하여 도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세프가 보기에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저택 주변에는 그 흔한 경비원조차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경비원 한 명 없이 저택이 너무 조용합니다. 혹시 함정인 건…….

-타깃이 자고 있는 걸 확인했다. 게다가 면밀히 살펴봤지만 매복의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지. 안 그런가?

-그건 그렇지만…….

세르게이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지만 조장의 말처럼 불안만 가지고 임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빠르고 은밀하게 담을 넘었다.

두 사람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담을 넘은 직후부터 강찬휘 부부가 잠든 방까지 10초면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런…… 초대하지도 않은 밤손님이 찾아왔구나. 보아하니 좋은 뜻을 품은 객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용무로 이 땅을 찾아왔는고, 이방의 침입자여?”

“……!”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의문의 소녀를 보고 두 사람이 눈을 부릅떴다.

분명 누군가가 접근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건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이었다.

아니, 무엇보다 소녀가 나타나는 모양새가 이상했다.

마치 유령처럼 난데없이 소녀가 짠, 하고 그곳에 나타난 것처럼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람은 짧고 대응은 신속했다.

-제거한다.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행동을 정하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들의 데이터베이스에는 포함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행동 강령은 단순했다.

바로 목격자의 제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가 됐든 목격자는 제거한다. 설령 그게 눈앞의 어린 소녀라고 해도 말이다.

“흐음……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는구나.”

살기를 풍기며 빠르게 쇄도하는 두 사람을 보고 미르는 침음을 흘렸다.

‘잡았다!’

이윽고 사정거리 안까지 접근한 두 사람의 품에서 날카로운 단검이 빠져나왔다.

단검은 미르의 목과 심장을 향해서 빠르게 직선을 그었다. 그들이 소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자비는 고통 없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쩌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퍼지면서 두 사람이 포탄처럼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균형을 다잡은 두 사람이 끓어오르는 오장육부를 애써 진정시키며 정면을 노려보았다.

‘방금 그건…….’

막말로 눈앞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해도 믿을 만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자신들은 거칠게 튕겨 날아갔는데 정작 미르는 멀쩡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엄한 놈들이구나. 감히 어느 안전에 불순한 흉기를 들이대느냐?”

“……!”

도세프와 세르게이는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눈앞에 새롭게 나타난 여성.

하얀 셔츠를 감싼 블랙 슈트와 볼륨감 있는 몸매, 경국지색이란 말이 무색한 외모 등, 뭐하나 나무랄 것 없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등 뒤로 부채꼴처럼 펼쳐진 아홉 개의 새하얗고 풍성한 여우 꼬리와 여우 귀였다.

설마 이 자리에 코스튬을 하고 나타난 것일까 싶었지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꼬리와 귀는 그것들이 진짜라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대, 대체 저건…….”

혼란스러웠다.

상대방의 정체도, 소녀나 귀신처럼 또다시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여성의 존재도…….

이 상황 자체가 두 사람에게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미지의 사태였다.

그러나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최근 우리 조국에서도 예티나 순록 인간 등, 재앙종이 아닌 전설 속에나 전해지던 존재들의 출현을 목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저 여성과 소녀 역시 그와 비슷한 존재일 터…….’

작전은 실패다.

상대의 능력을 모르는 이상, 함부로 덤볐다가 붙잡히는 우를 범할 수는 없었다.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두 사람은 전속력으로 몸을 돌려 땅을 박찼다. 저택을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들어올 땐 너희들 마음이었지만 나가는 건 내 마음에 달려 있단다.”

쿠구구구구구궁!

콰앙!

“……!”

담장 위로 뛰어넘었던 두 사람은 별안간 담장이 솟구치며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자 담장에 막히며 그대로 추락하였다.

하나 두 사람은 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담장의 높이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그 어떤 변화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벽에 부딪혔을 때 골수까지 뒤흔들었던 끔찍한 충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서, 설마…….”

“눈치챈 모양이네. 그런데 말이야…….”

선화는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접근했다.

그 순간.

콰드득…… 콰득!

“……!”

조세프와 세르게이의 발밑에서 땅을 뚫고 가시 덩굴이 기어올라 두 사람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가시 덩굴은 굶주린 뱀처럼 다리부터 휘감으며 천천히 몸 위로 올라왔던 것이다.

가시가 피부를 뚫고 들어갈 때마다 마치 불에 달군 칼로 쑤시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 이게 정말로 환상이란 말인가?’

“이게 무슨 일입네까?”

그때였다.

소란 때문에 잠에서 깬 강찬휘가 서둘러 마당으로 뛰어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미르와 선화가 아무 행동도 안 하는데 두 침입자는 몸을 벌벌 떨며 게거품을 물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사람을 보낸 모양이네, 강 의장.”

“러시아라면…….”

강찬휘의 표정이 굳어졌다.

김정언과 볼기예프가 움직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지 못한 탓이다.

만약 미르와 선화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신과 가족들은 꼼짝없이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했을 터였다.

강찬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르 공주님께서 자신들을 믿으라 말씀하셨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생각도 못 했습네다.”

“사실 선술 결계 자체가 설치하는 게 까다롭지 한 번 설치해 놓으면 여러모로 유용한 법이니라. 게다가 내 곁에는 이제 환수족 제일 도사라고 할 수 있는 선화가 있으니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에헴~!”

선화는 미르가 콧대를 세우며 자랑하는 모습에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일이야 선화가 다 하고 미르는 그럴듯하게 폼만 잡은 것이 전부였지만 원래 공주의 역할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듣자 하니 여기 말고 다른 의원들의 저택에도 불청객들이 찾아온 모양이더구나.”

“그렇소? 의원들은 무사하답네까?”

“당연히. 나의 전사들이 지키고 있는데 호락호락 뚫릴까 봐?”

“참으로 다행이오. 그런데…….”

강찬휘는 고통을 못 이기고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진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저들은 어찌할 생각이시오?”

“일단 심문해 봐야지. 걱정 말게. 선화라면 크게 힘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백을 받아 낼 수 있으니. 다만 저들은 도구일 뿐일세. 아마 큰 정보는 기대하기 어려울 게야.”

“알겠소. 하면 이들의 처분은 미르 공주님께 맡기겠습네다. 그리고 내래 이번 일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것으로 의원들과 상의를 하겠소.”

“나도 그게 좋을 것 같네. 그 편이 저들에게 조금이나마 혼란을 줄 수 있을 테니.”

미르의 말에 강찬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미르도 두 눈을 반짝이며 다급하게 선화를 재촉했다.

“자, 그럼 우리도 빨리 이놈들에게 알아낼 것들을 알아내고 수호 공을 찾아가자꾸나!”

“수호 공이요? 정보야 전화로 연락해도 얼마든지…….”

“그런 불순한 기계 따위는 믿을 수 없느니라! 도청이라도 당하려면 어쩌려고? 이런 중요한 사안은 당연히 만나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제는 거의 울먹이며 부탁하는 수준이 되어 버리자 선화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은근히 말했다.

“그냥 수호 공이 보고 싶어서 찾아가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그, 그럴 리가 있느냐? 임시라고는 해도 나는 북쪽 땅의 여왕이 되었다. 사적인 감정으로 누굴 만나러 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암!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공무이니라! 공무!”

“어련하시려고요.”

“진짜이니라! 히잉…….”

더 이상 놀렸다간 울 것 같았기에 선화는 장난을 멈추고 두 사람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다른 전사들이 생포해 온 침입자들도 마찬가지로 최면을 걸어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알아낸 뒤 미르와 함께 남한으로 향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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