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윤수호는 개장 전부터 입구에 바글바글 몰려 있는 군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군요.”
“사전에 인터넷과 유명 BJ들의 개인 방송, 연예인들의 SNS, 너튜브 등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취했습니다.”
“게다가 개장 전에 유명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 및 방송도 크게 한몫한 것 같고요. 무엇보다 요 근래 눈에 띌만한 새로운 어트랙션이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힘든 세상일수록 소소한 행복이 더 중요한 법이긴 하죠.”
윤수호는 비서진들의 대답에 대꾸하며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럼 저도 소소한 행복을 즐기러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하하하!”
빠직!
사과가 이토록 밉살맞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웃으며 사라지는 윤수호의 모습에 비서진들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잘 놀다 오십쇼, 이사장님. 저희는 곧바로 업무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개장하면 민원 신고가 해일처럼 밀려들 겁니다. 민원 센터와 보안 요원들의 동향에 대해서는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예. 실장님!”
* * *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아니, 뭐 딱히 억울한 건 아니고…….”
주막에 도착해서 고기를 준비하던 윤수호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동생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오빠는 마당쇠 복장도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싶어서.”
‘이거, 칭찬인가?’
“너도 잘 어울리네. 누가 보면 네가 여기 주모인 줄 알겠다.”
“내가 엄마 닮아서 한복발을 잘 받긴 하지.”
윤수아는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자신의 한복을 자랑했다.
사실 윤수호가 바탕이 하얀 모시 소재의 마당쇠 복장을 한 것처럼 윤수아도 단색의 특색 없는 한복으로 맞춰 입었다.
종업원들의 한복이 너무 도드라지면 찾아온 손님들의 멋이 죽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애들은?”
윤수아가 아까 전부터 보이지 않던 남매의 행방을 묻자 윤수호가 고기를 지게에 실으며 답했다.
“아직 영업시간까지 좀 남아서 친구들이랑 같이 돌다오라고 했어.”
“친구들이라면…… 성하랑 수현이?”
“어. 일손 돕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쫓아내느라 진땀 좀 뺐지.”
“그거야 잘한 일이긴 한데…….”
윤수아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굳이 멀리 보지 않아도 지금 당장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잡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럼 이건 누가 다 하고? 설마…….”
“오랜만입니다, 수아 씨!”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어머!”
윤수아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두 사람을 반겼다.
“이 팀장님! 조 팀장님!”
주막을 찾아온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이선호와 조춘영이었다.
윤수호와 마찬가지로 마당쇠 같은 복장을 입고 있던 두 사람은 윤수아가 반겨 주자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아시잖습니까. 저희 특무대 제대해서 이제는 팀장 아니라는 거. 그냥 편하게 불러 주십쇼.”
“아, 그러네요. 오빠 밑에서 수련하고 계신다더니 요새는 좀 어때요? 오빠가 되게 엄하게 가르치죠?”
“어휴, 그걸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아주 죽을 맛……이라고 하는 놈들은 다 때려잡아야죠. 하루하루가 생기 넘치고 살아가는 보람이 아주 남다릅니다. 이게 다 형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눈치 없이 솔직하게 대답하려던 조춘영은 윤수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말을 바꾸며 위기를 모면했다.
“근데 두 분 뭔가…….”
두 사람을 훑어보던 윤수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옷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두 사람의 몸이 예전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빠에게 무공을 배운 덕분일까? 기질은 다르지만 일정 경지를 초월한 듯 고강한 기세가 두 사람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수아 씨? 무슨 문제라도…….”
“그쯤 떠들었으면 그만 일 시작하자. 이러다 해 떨어지고 손님 받을라.”
“아, 예. 형님!”
이선호와 조춘영은 빠르게 달려와 짐을 나르고 식재료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공깃돌처럼 번쩍번쩍 들어 옮기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 기중기 그 자체였다.
파파파파파파팟!
보글보글…….
오혜연은 마당에서 불을 지펴 국밥에 사용할 국물을 끓였다.
육수 자체는 이미 한 번 우려낸 것을 가져와 가마솥에 채운 것이기 때문에 뜨겁게 끓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사이, 그녀는 갖가지 채소들과 고기를 다듬어 밑반찬을 준비했다.
각종 양념이 손질된 채소 위에 버무려져 고소한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니 아침을 먹고 왔음에도 허기가 밀려 올 정도였다.
“수아야, 만두 준비하자.”
“어!”
밑반찬까지 준비를 마친 오혜연은 윤수아와 함께 만두를 빚었다. 만두소와 만두피는 지난 밤 육수와 함께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 것을 사용했다.
“어, 박 팀장님?”
“안녕하세요! 위원장님의 초대를 받고 놀러 왔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한 손 거들어도 될까요?”
“어휴, 놀러 오신 분께서 일은 무슨…….”
“괜찮아요. 저 만두 빚는 거 좋아하거든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은근슬쩍 자리를 만들어 주는 윤수아의 모습에 박여진은 씨익 웃더니 자리를 깔고 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비큐 준비까지 마친 윤수호 일행과 부재료를 구입해 온 강탁준까지 한 자리에 모여 만두를 빚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 뿐.
* * *
“응? 이게 무슨 냄새야?”
“냄새 미쳤는데?”
“저기다!”
점심시간이 되자 슬슬 허기를 느낀 사람들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가네주막’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은 주막에서 풍겨져 나오는 허기를 자극하는 냄새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했다.
“손님들 입장하십니다!”
“어서 옵쇼!”
“안으로 모실까요? 아니면 밖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서빙 담당은 은지연, 임수현, 은지한, 그리고 박여진이 도맡았다.
“여기는 아이돌 연습생을 알바로 쓰나 봐?”
“무슨 인방 BJ나 촬영 같은 거 아냐?”
“한 명은 연습생치곤 나이가 좀 많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주얼은 나쁘지 않은데?”
네 사람 모두 비주얼이 뛰어났기 때문에 주막을 찾는 손님들 모두 꽤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찾아온 손님들 중에는 이게 무슨 방송이냐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사이, 권성하는 원하는 손님들에 한해서 무료로 캐리커처를 그려 주었다.
“다 됐습니다. 여기…….”
“어머, 그림 되게 귀엽다~!”
“엄마, 소연이랑 그림이랑 닮았어?”
“우리 소연이랑 똑같이 귀엽게 생겼네.”
빠른 드로잉에 비해 대상의 특징을 콕 집어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을 가려주는 그의 캐리커처는 SNS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가족들, 연인들을 가리지 않고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다.
“바비큐 주문 들어왔습니다!”
주문이 들어오자 윤수호는 미리 익혀 두었던 통돼지 바비큐를 마당 한가운데로 가져와 설치했다.
그리고 손바닥 위로 삼매진화를 일으키더니…….
화르르르륵!
그대로 불길을 익어 가던 돼지 위로 쏟아 부었다.
아래에서 솟구치고,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불꽃의 박력에 손님들은 눈을 빛내며 그 순간을 핸드폰으로 열심히 촬영하였다.
오죽했으면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했을까?
치이익……!
이윽고 불길이 꺼지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노릇노릇하게 구운 바비큐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꿀꺽…….
“우리도 바비큐 시킬까?”
“아직도 안 시켰어?”
불 쇼 이후에는 칼 쇼였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통돼지를 그 자리에서 식칼 하나로 빠르게 해체하는 모습은, 직관하면서도 믿기 힘든 엄청난 기술이었다.
당연히 바비큐 주문이 쇄도하는 건 물론이고 주막을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도 어느새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1번 야외 좌상에 바비큐 소짜 하나 나갑니다!”
“2번 객실 좌상에 바비큐 대짜 둘이요!”
서빙팀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주방에서도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여기 설렁탕 특 두 개랑 콩나물 국밥 하나 있어요.”
“설렁탕 소짜 세 개랑 만두국 두 개도 추가요!”
어느 순간부터 밀려드는 주문에 오혜연과 윤수아의 손발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주방을 누비는 두 사람의 모습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발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에는 구슬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금세 밑반찬들이 준비되고, 토렴을 마친 국밥들이 쟁반에 담겨 손님들 앞으로 도착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와, 고기 양 봐. 미쳤나 봐.”
“미친…… 고기가 너무 많아서 숟가락이 안 들어가.”
손님들은 먼저 뚝배기 위로 소복하게 쌓인 고기의 양에 한 번 놀라고, 걸쭉하게 혀에 감겼다가 뜨끈하게 위장을 채워 주는 국물 맛에 두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 국밥이 부담스러워 콩나물 국밥을 주문한 손님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물 되게 깔끔하다.”
“그러게. 만두랑 같이 먹으니까 존맛인데?”
사람들은 배가 불러도 수저를 쉽게 놓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아쉬움이 역력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살펴가세요.”
계산을 맡은 윤지석은 빠르게 쌓여가는 돈 통을 보고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돈 통에 쌓여 가는 건 엽전이었지만 일과가 끝나면 실제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었기에 진짜 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윤지석이 흐뭇한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수호 엄마가 열심히 노력하더니…… 그래도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 같구나.’
함께한 세월만 40년이 넘었다.
지금쯤 주방에서 바쁘고 힘들다며 욕을 한 바가지 쏟아 내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눈에 훤했지만, 그만큼 속으로 좋아할 걸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질풍노도와 같았던 점심시간이 끝나고 은지연은 주막 입구에 휴식 중이라는 팻말을 걸었다.
“으아아…… 끝났다!”
“아직 저녁 장사 남았다.”
평상 위에 지쳐 널브러진 조춘영에게 윤수호가 팩트를 박아 넣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형님, 저희 그냥 무공 수련하러 가면 안 될까요?”
사실 점심 장사 중반 즈음에 바비큐가 생각보다 일찍 동이 나면서 장사가 생각 이상으로 잘됐던 탓에 그릇 부족이 심각해졌다.
그에 윤수호 일행은 곧장 주막 뒤에 위치한 수도가로 이동하여 설거지에 투입되었지만.
“잠깐! 삼촌은 남아서 서빙 좀 도와주세요.”
“우, 우리는?”
“수호 삼촌만 있으면 충분해요. 설거지 부탁드려요, 삼촌들!”
설거지를 하러 가는 윤수호를 붙잡아 서빙을 부탁하는 은지연의 모습에 조춘영과 이선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번호가 안 된다면 사진이라도…….”
윤수호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가져오자 얼굴을 붉히는 여자 손님들. 그녀들 중에는 윤수호에게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사진을 부탁하는 손님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무공 대성해서 겁나 강해지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무공이 문제 같냐? 닥치고 설거지나 하자.”
싸우지도 않았는데 패배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렇게 이선호와 조춘영은 마음 속 눈물을 훔친 후, 쓸쓸히 수돗가에서 줄지 않는 설거지와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아이고 죽겠네.”
마침내 문을 열고 주방에서 나온 오혜연과 윤수아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마 이들 중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사람이 있다면 단연 두 사람을 꼽을 수 있겠지.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지구를 구하고 돌아온 영화 속 주인공의 한 장면 같았다.
“수고 많으셨어요, 어머니.”
오혜연은 윤수호가 건네준 냉녹차 한 잔을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
“수고는 무슨, 고생은 너희들이 다 했지. 밥장사하시는 분들 고생에 비하면 나는 뭐 한 것도 아니다?”
오혜연은 쑥스러운 듯 장난스럽게 툴툴거렸지만 모두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특히 윤수호는 더욱더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곳에 돌아와서 처음 본 어머니의 모습…….
병마와 두려움에 홀로 맞서 싸우며 아버지를 지키시던 그 외롭고 아픈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
그 작지만 소중한 성취감이 오혜연을 누구보다 당당하고 큰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자자, 고생들이 많지만 저녁 장사도 함께 힘내 봅시다. 기껏 돈 쓰고 시간 써서 찾아와 주신 소중한 손님들을 홀대할 수는 없잖아요. 아자, 아자!”
“그런데 어머니 이거 하기 싫어하시던 거…….”
“아자, 아자! 화이팅!”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