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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돌아왔다-123화 (123/175)

123.

“그렇다면 정말로 천장 유기가 죽은 것이 맞습니까?”

회주들의 말투가 달라졌다. 윤수호를 인정하자 문득 영상에서 유기를 압도하던 그의 모습에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이다.

“맞아. 그러니까 중국 정부도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겠지. 난 그걸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다.”

“두고 볼 생각이 없다는 말씀은…….”

“너희가 가진 것을 전부 내게 바쳐라. 그럼 내가 이 나라를 너희에게 주지.”

“……!”

실로 오만하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요구에 평주홍을 제외한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우리더러 가 선생에게 복종하란 말입니까?”

“그건데. 내 말이 그렇게 어려웠나?”

“그게 아니라…….”

어떤 미친놈이 평생을 바쳐 일궈 낸 길드를 넙죽 달란다고 주겠는가?

‘아, 있구나. 그 미친놈이…….’

회주들의 시선이 평주홍에게 향했다.

“그렇군.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으니 고민이 되는 것도 납득은 가. 그렇다면 너희들이 충분히 욕심낼 만한 선물을 보여 주도록 하지.”

“선물?”

“내일 아침,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이도록.”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윤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습을 감추었다.

* * *

그날 저녁.

“응?”

“저건 뭐지?”

멸마회의 본거지를 지키던 경비들은 자신들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오는 침입자를 발견하고는 눈을 의심했다.

“오늘 방문 약속은?”

“내려온 공지가 없는데?”

“일단 정지!”

“움직이면 발포한다!”

경비 몇은 침입자를 향해 총을 겨누고, 몇은 무기에 오러를 피워 올리며 윤수호를 제지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윤수호가 들은 척도 않은 채 여전히 걸음을 옮기자 결국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콰우우우우우!

윤수호가 갈고리처럼 구부린 손가락을 휘두르자 강기의 폭풍이 거칠게 휘몰아치며 전방을 집어 삼켰다.

총알은 물론이고 경비들과 대문까지 단숨에 박살 내 버린 윤수호는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소란을 듣고 멸문회의 전력들이 우르르 뛰쳐나와 윤수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무기에는 형형색색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수천 명에 달하는 능력자들은 능히 작은 도시 정도는 단숨에 멸망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앙!

윤수호의 주먹 앞에서는 그저 부서져 나가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육편 하나 남김없이 권풍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녀석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끄아아아아아악!”

“파, 팔이……!”

“내 다리!”

권풍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녀석들은 팔다리가 찢겨 나가거나 몸통의 반절이 사라진 상태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처참한 부상자들의 비명과 땅을 적시는 핏물, 뒤덮은 시선들의 모습에 살아남은 길드원들이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도망가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쫓아가서 죽이기 귀찮으니까.”

까드득, 까득!

주먹을 풀던 윤수호가 다시 두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폭풍과 벼락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력을 다해 오러를 휘둘러도 무기와 함께 육신이 부서질 뿐이었고, 건물 뒤에 몸을 숨겨도 건물과 함께 날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마회가 사라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와 같은 일이 밤사이에 세 번이나 더 일어났다.

* * *

“회주님! 급히 확인하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아침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찾아온 부하의 간청에 흑룡회주 양자간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하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길래 꼭두새벽부터 소란이더냐?”

“방금 전 멸마회가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뭐, 뭐라고?”

몰려오던 잠도 쫓아 버리는 충격적인 소식에 양자간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부하가 가져온 소식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멸마회뿐만이 아닙니다. 암뢰회와, 무적회, 그리고 수라회까지 지난밤 사이에 전멸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그게 사실이냐?”

“수십 번을 더 확인한 사실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 순간, 양자간이 흠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날 아침. 회주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소식은 들으셨소?”

“멸마회, 수라회, 무적회, 암뢰회의 전멸에 대해서라면 나도 들었소. 공교롭게도 딱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길드들이더군.”

“이게 과연 우연이겠소?”

“…….”

회주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 와중에 방소륜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설마 어제 가 선생이 얘기했던 선물이란 것이 혹시……?”

“다들 모여 있었네? 마침 잘됐군.”

때마침 윤수호와 평주홍이 등장하며 자리에 착석하자 회주들을 말을 삼키며 윤수호의 모습을 살폈다.

얼굴에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눈매는 살아 있었으며 피부도 탄력이 넘쳐흘렀다.

도저히 밤을 새워 가며 십회의 네 문파를 정리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평 회주, 여기 아침상 좀 준비해 주고.”

“예, 주군.”

“그런데 나 없는 동안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고 있었길래 내가 들어오자마자 화들짝 놀라? 혹시 내 뒷담이라도 깠다든가?”

윤수호가 은근히 물어오며 피식 실소를 터트리자 회주들이 다급히 부정했다.

“그, 그게 아니라 새벽 일찍 기묘한 소식을 접해서 말입니다.”

“기묘한 소식?”

“그게…… 지난밤에 멸마회, 수라회, 무적회, 암뢰회 네 곳이 누군가에 의해 전멸했다고…….”

“그래? 역시 십회의 회주들답네. 소식이 빨라. 이래서야 깜짝 선물을 준비한 의미가 없잖아.”

“까, 깜짝 선물?”

윤수호는 거나하게 차려진 밥상에서 밥을 한 큰술 떠 입안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어제 예고했지? 선물 기대하라고. 멸마회와 수라회, 그리고 무적회와 암뢰회는 전멸했다. 참고로 멸마회의 영역은 나의 충견, 평 회주에게 일임할까 하는데, 어때? 자신 있어?”

쿵!

“쌍룡회의 회주, 평주홍! 앞으로도 견마지로를 다해 앞으로도 주군께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합니다!”

관절이 부서지도록 무릎을 꿇은 평주홍이 머리에 피가 나도록 땅에 이마를 박았다.

고작 관절 좀 다치고 머리 좀 깨지는 걸로 멸마회의 모든 이권을 삼킬 수 있다면 그야말로 거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회주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다.

그런 회주들을 스윽 훑어본 윤수호가 묘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남은 곳은 수라회와 무적회, 그리고 암뢰회인데…… 이걸 누구한테 맡기면 좋을까?”

“흑천회가 가 선생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패청회가 가 선생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문평회가 가 선생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팔극회가 가 선생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윤수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주들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경쟁적으로 충성을 맹세했다.

이로써 십회…… 아니, 이제는 절반으로 줄어 오회가 된 중국의 대형 길드들이 모두 윤수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 * *

윤수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살아남은 문파들은 멸망한 문파들의 이권을 그야말로 구렁이 쥐새끼 삼키듯 순식간에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먼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동영상의 존재는 이제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중국 공안 특무대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감을 심심찮게 드러내고 있었다.////

“에이, 말이 되냐? 당연히 조작이지.”

“조작된 영상을 정부에서 은폐하려 한다고?”

“조작이니까 쓸데없는 분란을 조장하지 않으려고 은폐하는 거잖아.”

“우리 형이 영상 전문가인데 분석을 의뢰했더니 진짜라고 뜨더라.”

“형이 사기꾼인거 아니야?”

“뭐? 너 이 새끼가……!”

“다 떠나서 요새 천장의 소식을 들어 본 사람 있어?”

“그 사람이야 원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 기밀이잖아. 그렇게 쉽게 알 수 있겠냐?”

사람들 사이에서도 영상의 진위 여부와 천장의 생존설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 영상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조금씩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신의 씨앗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성장하겠지.

어쨌거나 천장의 빈자리는 그만큼 더 많은 인원수의 대원들이 투입되어야만 했고 그 여파로 십회의 이권 다툼에는 더 이상 관여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중국의 뒷세계를 장악한 오회는 이제 이름을 오성회(五星會)라 바꾸고 중국의 새로운 실세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배후에는 윤수호가 있었다.

그들이 중국 내에서 벌어들이든 모든 자금들의 일부는 고스란히 윤수호의 자금이 되었다.

일부라고 해도 중국 전역에 유통되는 검은 돈의 일부다. 그 액수는 1분, 1초 단위로도 족히 어마어마한 액수를 자랑했다.

“대충 여기서 할 일도 끝난 것 같군.”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마친 윤수호는 본 모습으로 돌아와 서해의 하늘을 시원하게 가로질렀다.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한국에 도착해서도 윤수호는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이사장님, 그동안 밀린 서류들의 결재 부탁드립니다.”

턱!

“이, 이걸 전부 말입니까?”

“네. 시급을 요하는 서류들만 간추렸으니만큼 되도록 오늘 안으로 부탁드려요.”

싱긋 웃으며 서류의 산을 쌓아주고 떠나는 비서의 뒷모습에서 윤수호는 오랜만에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안들은 비서실에서 처리가 가능했지만 아무래도 윤수호의 재가가 있지 않고서는 추진할 수 없는 사업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지. 오늘 저녁은 무조건 집에서 먹는다!’

그러한 각오를 가지고 어떤 의미로는 십회를 정리하는 것보다 더 힘든 서류와의 전투를 시작한 윤수호.

그의 눈과 손이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태산처럼 쌓여 있던 서류 더미들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류들을 검토해 본바, 역시 대부분의 문제는 재정이었다.

만약 윤수호가 포르슈 제약과 오성회를 손에 넣지 않았다면 조금 빠듯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 희망동의 재정 문제 정도는 윤수호의 포켓 머니로도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덕분에 북한에 대한 투자 계획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고.

그때였다.

‘응? 이건…….’

서류를 빠르게 확인하고 결재하던 윤수호의 손이 어떤 서류를 보고 멈춰선 것이다.

[한옥 마을 테마 파크 이벤트 기획안.]

최근 한옥 마을에는 마을에 콘셉트에 맞춰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테마 파크를 건설 중이었고 이제 공사도 막바지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기획안에는 이벤트에 필요한 재정과 이벤트 내용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중 윤수호의 이목을 잡아 끈 것은 다름 아닌…….

[주막 : 필요 인원 3~5명. 40대 이상의 한식 조리 자격증을 보유한 조리사 필수.]

주막 이벤트였다.

“이거…… 재미있겠는데?”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어머니 오혜연을 떠올린 윤수호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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