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회, 회주님! 이것 좀 급하게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쌍룡회의 회주, 평주홍은 수하들과 회의를 하다 느닷없이 태블릿 PC를 들고 뛰어 들어온 부하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부하를 크게 질책하지 않은 이유는 평소에 이런 버릇없는 짓을 할 녀석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일각을 다투는 상황이라는 뜻이겠지.
“동영상?”
평주홍은 그가 넘겨 준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곧 눈을 의심했다.
“이건…….”
단 두 사람의 싸움으로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렸다. 서로가 격돌할 때마다 대기가 찢어져 비명을 지르고, 폭풍이 대지를 할퀴기도 하였다.
국가 간의 전쟁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이 단 두 사람의 손에서 일어나는 광경은 실로 눈을 의심케 했다.
“설마 가짜 영상은 아니겠지?”
“어느 안전이라고 가짜를 올리겠습니까. 열 명 이상의 영상 전문가들에게 분석을 의뢰한 결과, 영상은 진짜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둘은 누구이길래…….”
한쪽은 충분히 예상이 되었다.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용 형상의 오러를 휘두르는 창수. 이쪽 세계에서 그 괴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천장 유기와 비등하게…… 아니, 시종일관 우세를 점하고 있는 반대쪽 괴물의 정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의문의 해답은 동영상 말미에 드러났다.
놀랍게도 무릎을 꿇고 패배한 쪽은 다름 아닌 천장 유기였다.
중국의 최고 전력, 톱텐이 패배했다?
그것만으로도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뉴스였는데 정작 그를 압도적으로 몰아붙인 인물의 정체는 평주홍을 더욱 경악으로 물들였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자 확대를 통해 드러난 상대의 체구는 160cm의 키에 왼쪽 눈에 흉터를 가진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예, 아무래도 유기를 쓰러트린 상대가 가우창…… 아니, 주군인 듯싶습니다.”
“영상의 출처는?”
“‘충격, 천장 유기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다크 웹에서 은밀하게 떠돌고 있던 영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가짜 영상일 거란 생각에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영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던 터라 저희도 일단 영상의 감정을 의뢰해 보았는데, 이게 진짜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한 번 영상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고, 너희는 정부에 손을 써서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특히 유기의 상태에 관해서 무슨 수를 써서든 알아내야 할 것이다!”
평주홍의 명령에 간부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였다.
“회주님! 주군께서 오셨습니다!”
“뭐?”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윤수호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평주홍은 눈을 부릅뜨더니 서둘러 채비를 갖추고 뛰어 나갔다.
그러자 부하의 말처럼 이제 막 정문을 지나고 있던 윤수호를 발견하곤 빠르게 뛰어가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주군.”
“오랜만이야, 평 회주.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죽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수가 훤하네?”
“이게 전부 주군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이 아닐는지요. 안으로 드시지요. 모시겠습니다.”
“아 참, 이건 선물.”
“감사히 받겠습니다.”
윤수호가 건네준 전통주를 감사히 받아 측근에게 건넨 평주홍이 그를 직접 대회의실의 상석으로 안내했다.
“그나저나 오자마자 분위기가 소란스럽긴 하네. 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그, 그것이……!”
감춰 봤자 소용없을 거라 생각한 평주홍은 차라리 이참에 진실을 물어보았다.
“실은 주군께서 찾아오시기 전에 이와 같은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어 진위 여부를 확인 중에 있었습니다.”
“아, 이거?”
윤수호는 평주홍이 건네준 태블릿 PC의 영상을 보더니 간단하게 대답했다.
“벌써 이게 이렇게 빨리 퍼졌나? 인터넷이란 참으로 무섭구먼.”
“그, 그렇다면 설마 이 영상의 내용이?”
“맞아. 천장 유기는 내 손으로 처리했다. 내 사업에 앞으로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쓸데없이 걸리적거리기 전에 미리 치워 뒀지.”
“하면 이 영상도 일부러 촬영하신 것입니까?”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나머지 십회 놈들도 슬슬 발아래에 둘까 하는데……. 어린 녀석들과 매번 드잡이하는 것도 사실 귀찮은 일이거든. 그래서 눈치 있는 녀석들은 그대로 써먹고 눈치 없는 녀석들은 이번 기회에 솎아 내려고 한다. 아, 평주홍.”
“예, 주군…….”
“너는 얼마나 살아남을 것 같으냐?”
“…….”
윤수호가 술잔을 기울인 뒤 기분 좋게 미소를 그리며 묻는 질문에 평주홍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쌍룡회가 영상을 확인했다는 건 나머지 팔회도 어느 정도 영상을 확인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평주홍, 십회의 회주들을 전부 한자리에 소집해라. 만약 참석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나에 대한 불복으로 간주하겠다는 말도 잊지 말고.”
“존명!”
평주홍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는 곧장 회주들 간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전멸한 홍룡회를 제외한 나머지 십회 회주 전원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 * *
소집령 당일.
아침 일찍부터 쌍룡회의 본거지가 위치한 매룡산을 찾은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만약 중국 길드에 몸담고 있는 길드원이 이 광경을 봤다면 아마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십회의 회주들이 속속들이 매룡산에 도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 방 회주께서도 오셨소?”
“그러는 이 회주께서도 안 오실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여기는 어쩐 일이시오?”
패청회의 방소륜과 문평회의 이잔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매룡산의 계단을 올랐다.
“나야 평 회주의 의중이 궁금해서 찾아와 봤지요. 방 회주도 영상은 보셨으니 이곳을 찾아온 게 아니오?”
“천장이 목숨을 잃은 그 영상 말이오? 보고도 믿기지가 않더이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천장을 쓰러트린 괴물이 쌍룡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오?”
“이 회주도 나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겠소?”
두 사람은 그 뒤로 말없이 계단을 올라 쌍룡회의 본거지에 도착하였다.
“오랜만이오, 두 분.”
“평 회주.”
“오랜만에 보니 퍽 반갑구려.”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한 평주홍이 두 사람을 귀빈실로 안내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약속한 시간이 찾아오자 윤수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가우창 선생님 드십니다.”
윤수호가 입장한다는 말에 먼저 평주홍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됐으니까 다들 편하게 자리에 앉아.”
그를 따라 다른 회주들도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평주홍처럼 포권을 취하지는 않았다.
이내 윤수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회주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의 모습은 동영상에서 확인했던 유기를 쓰러트린 괴물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보기엔 어떠하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 눈에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양자간은 작은 속삭임으로 자신의 오른팔인 전성에게 윤수호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러자 윤수호를 슬쩍 살피던 전성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양자간은 과연 이게 희대의 사기극이 될지, 아니면 정말로 새로운 기회가 될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한편 윤수호 역시 좌중을 슬쩍 훑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설마…… 이게 다야?”
참석한 회주는 평주홍의 쌍룡회를 비롯하여 흑천회, 패청회, 문평회, 팔극회의 회주들이 전부였다.
즉, 다섯 회주가 이 자리에 참석하고 네 곳은 불참했다는 뜻이었다.
“송구합니다, 주군……. 분명 주군의 뜻은 전했으나 아직도 주군을 불신하는 자들이 남아 있는 듯하옵니다.”
회주들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는 평주홍의 대답에 퍽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십회의 회주가 어떤 자리인가?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의 주석에게도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는 중국 뒷세계의 정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다른 회주들도 모여 있는 자리에서 쌍룡회의 회주가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론에 앞서 한 가지만 질문해도 되겠소?”
“방 회주! 언행을 조심하시게!”
방소륜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구하자 그의 말투를 지적하는 평주홍이었지만 윤수호는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상관없어. 얘기해.”
“가우창은 이 자리에 있는 흑천회 양자간 회주의 칠순에서 혈겁을 자행한 범인이라 알고 있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맞소?”
그 말에 윤수호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그 혈겁 속에는 우리 문평회의 후계자인 내 아들도 있었소.”
“그러니까, 그게 무슨 문제라도?”
“…….”
그 순간, 모두의 이목이 방소륜에게 집중되었다.
자식을…… 후계자를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에 반해 자식의 목숨을 앗아 간 원수의 태도는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명백한 도발이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아버지의 도리를 떠나 회주로서의 체면도 땅에 떨어지게 된다.
목숨을 걸더라도 여기서는 검을 뽑아야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했는데…….
“……아무것도 아니오.”
팔걸이에 턱을 괴고 자신을 쳐다보는 윤수호의 눈을 마주한 순간, 방소륜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는 설령 윤수호가 불구대천의 원수라 해도 참는 것이 정답이라고.
“감이 좋은 친구네. 마음에 들어. 문평회라고 했나? 기억해 두지. 그런데…….”
윤수호가 흑천회주의 뒤쪽에 서 있던 전성을 슬쩍 쳐다보았다.
“넌 뭔데 아까부터 자꾸 나를 힐끔거리냐, 부담스럽게?”
쿠구구구구구구구……!
“……!”
쿵!
“커헉……!”
순간, 전성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피를 토하며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입뿐만이 아니었다.
두 눈과 코, 귀에서도 점점 피가 흘러나오며 숨조차 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전성은 공포에 질렸다. 지독한 훈련을 통해서 두려움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를 아직 만나지 못한 것뿐이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공포와 고통이 육체를 지배하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마치 사자 앞에 선 쥐새끼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공포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수밖에 없었다.
“전 가야!”
양자간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소용없었다.
전성을 짓누르는 태산 같은 기세는 오로지 전성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을 짓누르던 거대한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쿨럭, 쿨럭!”
“한 번만 더 나를 힐끔거리면 그때는 먼저 눈깔부터 뽑고 시작한다.”
좌중은 경악했다.
양자간의 검, 전성이 오버 알터를 넘어서 퍼펙트 오러까지 이룬 최상위 능력자임을 이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능력자를 고작 눈으로 제압해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동영상의 내용이 진짜라는 사실을…….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