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21화 (121/175)

121.

스위스의 제약 회사, 포르슈.

제약 강국 스위스에서 14위라는 어중간한 위치를 가지고 있던 이 회사는, 2000년대 이후 이렇다 할 특허도, 기술 개발도 성공하지 못한 채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던 회사였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할 선원들은 없다.

모두가 포르슈의 주식을 매도하며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한 이곳을 사들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윤수호였다.

전염병 사태가 발발하고, 왕명으로부터 이 사태가 어렵지 않게 전 세계적 팬데믹 사태로 커질 거란 전망을 접한 윤수호는 여러 정보망을 거쳐 포르슈라는 제약 회사를 구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윤수호의 결정이 달콤한 과실이 되어 돌아왔다.

장채림이 연구하여 완성한 백신과 치료제가 포르슈의 제약 공장에서 양산 절차를 밟아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던 백신들은 시장에서 빠르게 사라져 갔지만…….

그에 반해서 포르슈에서 생산하는 포르슈 백신과 치료제는 그 효과가 빠르게 입증되며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 엄마……?”

“아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가족을, 연인을, 친구를 알아보고 사람들은 회복한 사람들을 부둥켜안으며 오열했다.

변이를 일으키지 않은 사람들은 증상 회복이 더 빠른 편이었다.

이렇게 전 세계가 포르슈 백신으로 안정을 되찾는 가운데, 윤수호는 장채림과 만나 차를 마셨다.

“박사님께서 만드신 백신과 치료제가 현재 전 세계의 동아줄이 되고 있다더군요. 그런데도 표정은 꽤나 어두우십니다.”

“애초에 잡을 필요가 없었던 동아줄이었으니까요.”

장채림은 후회와 죄책감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비단 장 박사님의 잘못만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제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죠. 어쨌거나 제겐 이번 일을 수습해야만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그 의무를 다 했으니 마땅한 죗값을 치러야죠.”

“…….”

윤수호는 장채림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결심을 굳힌 그녀의 얼굴을 보면 쉽게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죗값을 치르실 생각이시죠?”

“네? 그야…….”

“단순히 중국 정부에 자수한다는 건 죗값을 치르는 게 아닙니다. 그냥 도망치는 거죠. 죗값을 치른다는 건 속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사죄가 당연히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죠.”

“…….”

윤수호의 말에 장채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사형을 당하든, 무기징역을 당하든 장채림은 중국 정부에 자진 신고해서 죗값을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

그래야지만 자신의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으니까.

윤수호는 그런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본 것 같았다. 창피했다. 실은 속죄보다 이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도망치는 게 먼저였다는 사실을 들킨 것만 같아서…….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다면 사람들에게 죗값을 갚으세요. 1701에게 죄를 지었다면 1701에게 사죄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건 감옥이나 사형장에서 해 주는 게 아니라 오롯이 박사님의 의지와 고통이 따라야 하고요.”

“저는…….”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어쨌거나 박사님과 저는 한 배를 탄 사이니까요.”

“…….”

그렇게 생각이 깊어 보이는 장채림을 뒤로하고 윤수호는 자리를 옮겼다.

그가 자리를 옮긴 곳은 실험실이었다.

거기서 그는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실험체 1701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어떡할 생각이야?”

“…….”

“듣고 있는 거 다 아니까 대답해.”

그의 말에 1701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1701은 윤수호와 처음 만났을 때 보여 주었던 광기 어린 붉은 눈동자 대신 평범한 사람의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냥 죽여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그럼.”

쒜엑!

윤수호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들어 1701의 머리에 꽂아 넣었다.

콰아앙!

“무, 무슨 일이야?”

“폭발이라도 일어났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연구실이 흔들리고, 굉음이 터지자 연구자들 및 경호원들이 빠르게 연구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완전히 박살난 침대와 망가진 바닥, 그 옆에 굴러 떨어진 1701과 윤수호의 모습을 번갈아 살펴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별일 아니니까 가서 일 보세요.”

“아, 네…….”

이 연구소의 오너는 누가 뭐래도 윤수호다. 오너의 축객령이 떨어지자 연구원들과 경호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돌렸다.

그들이 나가자 윤수호는 시선을 돌려 1701을 쳐다보더니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죽고 싶은 거 아니었나?”

“그, 그렇다고 그렇게 인정사정도 없이 주먹을 휘둘러도 되는 겁니까?”

“죽고 싶다면서? 그래서 죽여 주려고 했는데 뭐 문제라도 있어?”

“적어도 왜 죽고 싶은 건지 사정은 좀 물어봐 주시죠!”

“뒈지고 싶다는 놈이 퍽이나 당당하네.”

윤수호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네가 누구보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건 잘 알았으니까 바른대로 말해. 이제 정말로 뭘 하고 싶은 건지.”

“……일단 제가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제가 누군지도 모른 채 죽는 건 싫으니까요.”

그런 1701에게 윤수호는 말없이 가져온 종이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보면 알아.”

1701은 윤수호에게 종이를 건네받아 읽어 보았다.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던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어때, 마음에 드냐, 여동진?”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1701…… 아니, 여동진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의 시선은 한곳에서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내 흘러내린 눈물이 뚝뚝 떨어져 서류를 적셨다.

-여인하(부) : 사망

-마춘국(모) : 사망

“네 부모님은 너를 납치한 공안 손에 돌아가셨다더군. 그리고 이건 네 집 근처에 부모님이 묻힌 무덤이다. 유골은 끝내 찾지 못했기에 두 분의 유품을 찾아 묻어 드렸다.”

윤수호가 무덤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걸 순순히 줘도 되는 겁니까? 제가 몰래 여길 빠져나가서 찾아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찾아가라고 주는 거야. 갈 때 위장 잘하고. 만약 부모님을 만나 뵙고도 할 일이 생각나지 않으면 날 찾아와라. 날 찾는 방법은 그 쪽지 뒤에 적혀 있으니까 참고하고.”

여동진은 환자복에서 윤수호가 건네준 옷으로 갈아입은 뒤 그를 지나쳐 연구실을 나서려 했다.

그 순간.

“혹시라도 혼자서 정부를 상대로 복수니, 뭐니 멍청한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 나라는 위험한 나라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 목숨은 훨씬 소중하고 가치 있으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윤수호의 당부에 잠깐 멈칫했던 여동진이 이내 조용히 연구소를 떠났다.

* * *

“그 친구는 잘 갔습니까?”

“예, 보내 준다고 하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더군요.”

“크크큭! 어지간히도 진저리가 났나 보네요. 아니면 그만큼 부모님이 그리웠든가…….”

윤수호는 왕명과 만나 차를 나누었다.

“보아하니 자칼 그 친구도 떠났나 보군요.”

“지금이 쇠뿔을 뺄 타이밍이니까요. 제 전용기를 태워 미국으로 보내줬으니 늦어도 이번 주 안으로는 세계가 들썩일 겁니다. 그때는 중국도 모르쇠로 일관하기가 힘들겠죠.”

“전 세계가 중국을 상대로 피해 보상 소송을 걸 수도 있을까요?”

“보통 원인 불명의 팬데믹 같은 경우는 설령 발생지가 뚜렷하다고 해도 소송을 걸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바이러스나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이번 팬데믹 사태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위적인 실험을 통해 발생한 사고였다고 밝혀진다면…….”

왕명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현 정권은 2년 뒤에 있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게 되겠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현 사회주의 체제를 뒤흔들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요.”

“듣자 하니 중국 인민들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매우 심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겠죠. 전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대도시 두 곳을 안전 도시 정책이라는 미명 아래에 완전 봉쇄를 시켰으니까요. 그 광경은 정말로 끔찍하더군요.”

뉴스를 통해 세간에 공개된 봉쇄 도시의 모습을 떠올린 왕명이 고개를 저었다.

텅 빈 도시와 검역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정부의 감시관들.

열린 창문을 통해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도시 사람들.

병원은커녕 약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급사한 환자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가족들까지…….

그런 상황에서 자칼이 이번 극비 문서들을 공개해 버린다면 중국 정부는 국내외로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럼 이건 그때쯤에 맞춰서 다크 웹에 슬쩍 흘리도록 하죠.”

“동영상 말씀이십니까?”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한 동영상이란 바로 유기와 자신의 전투를 담은 동영상이었다.

“다크 웹을 통해 흘리게 되면 알 만한 사람들은 전부 알게 될 겁니다. 특히 중국 정부와 십회에서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테죠. 물론 중국 정부는 영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영상의 존재를 그들이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니까요.”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말을 받는 왕명에게 윤수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남궁귀와 학선을 통해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정부였지만 그 영상의 실체까지는 아직 모르고 있을 터.

그런데 영상의 존재를 중국 정부에서 알게 된다? 중국 정부는 당연히 영상을 감추려 할 것이다.

윤수호는 바로 그것이 목적이었다.

“현재 십회는 중국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에서 유기가 쓰러지는 영상을 애써 감추려 하는 걸 알게 된다? 그건 오히려 영상이 진짜라고 그들에게 증명해 주는 꼴밖에 되지 않죠.”

“정부가 무시한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겠군요. 어차피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면 영상이 진짜라는 사실 정도야 손쉽게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어느 쪽이든 위원장님께서…… 아니, 가우창 선생님께서 십회를 손아귀에 넣는 건 변함이 없다는 뜻인가요?”

“예상만큼 쉽게 풀린다면 저도 한시름 놓겠습니다만…….”

“설령 그들이 단체로 미쳐서 손잡고 위원장님께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 역시 바라던 바가 아니겠습니까? 이참에 필요 없는 잡초들을 전부 솎아 내시고 쓸 만한 녀석들로 교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왕명은 기분 좋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실제로 이번 백신 개발을 통해 윤수호가 벌어들인 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다.

아마 실제 재산이 공개된다면 세계의 부호 순위가 단숨에 뒤집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도 윤수호는 당초 계획했던 십회의 접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통장이야 많을수록 좋은 법이죠.”

“그런가요? 하하하!”

윤수호에게 십회는 그저 편하게 돈을 뽑아 쓸 수 있는 통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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