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넌 누구지?”
유기의 경계심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훨씬 작은 키에 왼쪽 눈에 흉터가 있는 사내.
이런 특징에 자신의 창을 간단히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력자를 처음 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낭중지추라고, 이만한 강자라면 좋든 싫든 귀에 들어올 테고 당연히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유기는 오늘 윤수호를 처음 보았다. 정확히는 가우창으로 분한 윤수호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살펴보니 그들 역시 윤수호를 처음 보는 눈치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내 말 못 들었어? 다치기 싫으면 꺼지라니까. 괜히 카메라 앞에서 험한 꼴 보이지 말고.”
“카, 카메라?”
카메라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금의대와 동창대가 주변을 살펴보다 눈을 부릅떴다.
안력을 돋워서 자세히 보니 멀리서 망원 카메라로 이쪽을 촬영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니미!”
돌연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깜짝 놀란 자칼이 뭐라 뭐라 소리쳤지만 윤수호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보나마나 좋은 소리는 아닐게 뻔하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언론이 여기까지 올 리는 없을 텐데.”
“아무래도 해외 쪽 언론에서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 같습니다.”
“상관없어. 뭐가 됐든 카메라는 회수하고 기자 놈은 처리해.”
“충!”
금의대와 동창대는 부복한 후 곧장 자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젠장, 온다!”
수 km 거리 밖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몸을 날릴 때마다 그들 사이의 간격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질풍처럼 질주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물론 자칼에게는 달갑지 않았지만.
“걱정 말고 기자님은 하시던 일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방해꾼들은 제가 처리할 테니.”
“그쪽만 믿습니다. 만약 죽으면 악령이 돼서 그쪽이랑 저 녀석을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며 괴롭힐 테니까 그렇게 아시고.”
“하하하! 그것만큼은 사양하고 싶군요.”
여유롭게 앞으로 나서는 파르토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자칼은 어쩐지 그의 몸집이 태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물론 금의대와 동창대로서는 성가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저건 뭐지?”
“보아하니 기자 놈의 보디가드인 것 같군.”
“상관없어. 같이 처리한다.”
두 부대는 사납게 기세를 피워 올리며 속도를 올렸다.
이미 1701을 상대로 추한 모습을 보여 준 두 부대다. 자존심은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고 남은 것은 오기와 분노뿐이었다.
언제부터 촬영 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자신들의 추한 모습을 카메라에 찍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자는 사지가 찢겨 죽기에 마땅했다.
“살기가 등등한 녀석들이군. 하지만 이쪽도 은인에게 부탁을 받은 몸. 미안하지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그러니 알아서 도망치도록.”
파르토의 말을 금의대와 동창대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분명히 전해졌는지, 두 부대는 코웃음을 치며 그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가지각색의 오러들이 위험한 빛을 뿜으며 파르토의 몸에 작렬했다. 그 틈을 노려 남은 대원들은 동시에 자칼을 습격했다.
설령 이 합격으로 파르토를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기자의 숨통은 확실히 끊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군. 내가 그렇게 만만히 보였다니.”
“……!”
파르토는 방어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서 있었을 뿐이었다.
입고 있던 정장은 넝마가 되었지만 그 아래로 드러난 구릿빛의 근육 갑옷은 흠집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러가 깨지거나 손바닥이 찢어져 무기를 놓치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들의 계획이 성공했냐 하면 그것조차 아니었다.
쿠구구구궁!
“뭐, 뭐야?”
“땅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땅을 밟고 일어선다. 그런데 주변 일대의 땅이 흔들리니 제대로 중심을 잡고 서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자칼이 있는 곳 주변은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평온했다. 덕분에 자칼은 그 상황을 남김없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푸푸푸푸푹!
“조심해!”
“땅이 솟구친…….”
“크아아악!”
그 순간, 고슴도치마냥 땅속에서 바위가 뾰족하게 솟아오르며 적들의 몸통을 관통했다.
반사 신경이 좋은 녀석들은 다행히 화를 피할 수 있었지만 경악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이것이 파르토의 술법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수호 공의 도움으로 환골탈태를 한 이후에는 술법도 크게 늘었군.’
물론 선화나 다른 도술가들처럼 전문적으로 도술을 수련한 이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
그러나 전사인 아닌 파르토가 이 정도로 술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파르토는 술법보다 지금처럼 몸을 움직이는 게 훨씬 편했지만.
“홀리…….”
맨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오러를 깨부수고, 올곧게 휘두른 주먹으로 적들의 몸뚱이를 박살 내는 파르토의 전투는 투박하지만 그렇기에 박력이 넘쳐흘렀다.
파르토의 전투에서 회피라는 단어는 없었다.
맞고, 견디고, 부순다. 그 세 가지를 철저히 지키면서 적들을 빠르게 분쇄했다.
“이런 미친…….”
“천장!”
남궁귀와 학선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유기를 쳐다보았다.
고작 기자 한 명에 보디가드 한 명이다. 사실 처리하라고 보낸 대원들도 너무 과하다 싶었는데 과하기는커녕 가서 학살을 당하고 있었으니 황당할 수밖에…….
“가시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유기의 허락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손도 못 써보고 전멸당하게 생겼으니까.
두 사람마저 떠나자 홀로 윤수호를 마주한 유기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 너희 둘 정도의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아직까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숨어 있었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을 텐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천장. 중요한 건 네가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했다는 거지.”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군.”
윤수호는 피식 웃더니 그를 향해 가볍게 걸어갔다.
딱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보폭이었다.
“내 걸음을 멈추면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가 주겠다 약속하지. 어때, 쉽지?”
가상의 가우창을 연기하는 윤수호의 모습은 실로 오만함의 끝이었지만 문제는 오만함이 아닌 그가 가진 능력이었다.
“후우…….”
숨을 고른 유기의 창두에 다시 한 번 폭풍이 압축되었다. 이번에는 방금 전에 다급히 압축했던 것과 달리 더 작고 섬세했다.
그러나 작다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위력은 방금 전 그것의 두 배는 더 강했으니까.
이윽고 소리도, 그림자도 없이 창끝이 사라졌다. 그리고 윤수호가 파리를 쫓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충격파가 두 사람의 옆쪽에서 터져 나왔다.
“후, 후퇴하라!”
“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충격파에 휩쓸린 전차와 장갑차, 헬기 등이 종잇장처럼 찢겨 날아가고, 땅거죽이 증발하며 군인들이 사라졌다.
군인들을 빠르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자신들을 폭풍우 앞에 선 개미에 불과했다.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윤수호가 옆으로 튕겨 낸 오러 폭풍의 여력 때문이었다.
단순히 창에서 흘러넘친 위력만으로도 수십 대의 전차들이 박살 나고 수백 명의 군인들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윤수호의 걸음은 멈추질 않는다.
유기는 창을 뻗었던 것보다 빠르게 회수했다. 그의 어깨가 사라지고, 손이 사라지고, 창끝이 사라졌다.
대신 눈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창의 그림자들이 벌 떼처럼 윤수호를 덮쳤다.
피식.
윤수호는 쏟아져 들어오는 창의 그림자들을 한 손으로 털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털어 낼 때마다 흘러넘치는 여력에 주변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흠칫!
막아 낼 재간 없이 속수무책으로 거리를 좁혀들자 유기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너만 재미 보고 빠지겠다고?”
“……!”
윤수호가 그를 향해 왼손을 뻗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손바닥 안으로 엄청난 기세의 흡인력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마치 작은 블랙홀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청난 인력에 유기는 땅에 다리까지 박아 넣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콰드득! 콰직!
결국 땅거죽까지 뜯겨 나가며 유기가 그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윤수호는 왼손을 말아 쥐어 빨려 들어오던 유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유기는 다급하게 창대로 그의 주먹을 막았지만…….
쩌엉!
“큭!”
넓게 터져 나오는 충격파와 함께 빛살처럼 뒤로 튕겨져 날아가는 유기.
파앗!
윤수호는 그런 유기를 쫓아 몸을 날렸다. 유기는 쇄도해 들어오는 윤수호를 상대로 자신의 전력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하아아압!”
유기의 입에서 광포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기합에 응하듯 그의 몸에서 폭발하듯이 솟구친 기세가 얼기설기 얽혀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가며 유기를 휘감았다.
곧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용이 살기를 흩뿌리며 유기의 창끝을 따라 움직였다.
윤수호가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게 네 전력이냐?”
“구룡창법. 이 창으로 쓰러트리지 못한 적은 없었다. 너 또한 그럴 것이다.”
“재미있겠네. 어디 한번 해 봐.”
까드득, 까득!
손가락을 풀며 주먹을 움켜쥔 윤수호와 유기가 이윽고 부딪혔다.
두 사람의 대결은 그야말로 경천동지라는 말이 정확히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한순간에 수없이 많은 공방이 오가고, 수많은 충격파와 굉음이 터져 나오며 평원을 뒤흔들었다.
쿠구구구구구……!
두 사람이 부딪힐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땅거죽이 부서지며 하늘로 솟구치다 스러졌다.
하늘은 흘러넘치는 거력을 견디다 못해 뇌성벽력을 토해 내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미친…….”
그 모습을 멀리서 촬영하고 있던 자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은 미국의 톱텐이 얼마나 강한지 그 편린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유기는 미국의 톱텐도 인정한 강자였다.
때문에 윤수호가 유기를 쓰러트리겠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광경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동수…… 아니, 가우창이 조금씩 압도하고 있다!’
윤수호의 주먹은 단순한 주먹이 아니었다.
주먹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그 끝에서 폭풍이 터져 나왔고, 대기가 찢기며, 대지가 부서졌다.
그것은 더 이상 주먹이 아닌 자연재해였다. 윤수호는 그런 위험한 것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가진 게 있으면 이참에 몽땅 털어놔 보라고. 톱텐이라 칭송받는 녀석들의 실력이 고작 이 정도라면 너무 섭섭하잖아. 안 그래?”
“크윽……!”
윤수호의 조롱에도 유기는 분노를 씹어 삼키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자신의 구룡창법은 한 마리 용의 머리만으로도 능히 작은 나라의 군대를 멸망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창법조차 윤수호의 주먹 앞에선 맥을 못 추었다.
시정잡배마냥 거칠고 단순하게 휘두르는 주먹에 용의 머리가 박살 나고 그 충격이 골수까지 뒤흔들었다.
“우웩……!”
결국 하나, 둘 부서지던 용 머리 아홉 개가 전부 박살 나버리자 내상을 견디지 못 한 유기가 바닥에 꿇어앉아 피를 토했다.
윤수호는 유기의 앞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더니 그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끝이야?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건가? 아쉽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지.”
“무, 무슨……?”
“말했잖아. 보내 줄 때 곱게 가라고. 안 그럼 후회할 거라고. 그럼 안녕.”
콰아앙!
윤수호가 마지막으로 휘두른 주먹 끝에서 거대한 폭풍이 터져 나왔다.
문제는 유기가 더 이상 그것을 막아 낼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중국의 톱텐 천장 유기는 비명 한 번 질러 보지 못 하고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