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17화 (117/175)

117.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로 설명이 필요한가?”

“오늘 아침 뉴스를 봤다. 정부에서는 새로운 타입의 재앙종이 뿌린 바이러스라고 공사를 치더군. 병신 새끼들, 조금만 조사해 보면 탄로 날 구라나 치고 말이야. 그런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이 나라에서는 그 병신 같은 구라가 통한다는 거야. 아무도 의심을 안 하거든.”

윤수호의 질문에 자칼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이제 바이러스는 중국 전역을 넘어 해외에서도 조금씩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재앙종이나 던전의 출현 못지않은 끔찍한 대재앙이 되겠지.”

“그래서, 보아하니 그쪽은 나를 아는 모양인데 나는 그쪽 정체를 하나도 모르거든. 그쪽은 어째서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당신의 능력이라면 오히려 중국 정부 측에 붙어먹는 게 훨씬 입지가 편할 텐데. 혹시 반정부 세력은 아니겠지?”

“멋대로 생각해. 다만 이번 사태는 나한테도 꽤나 재미없는 일이거든. 이번 일이 심각해질수록 내 손해도 막심해져서 말이야.”

“그런가? 하긴, 십회도 어찌 보면 장사꾼인데 물건을 팔 손님이 남아나질 않으면 쫄딱 망하는 거야 시간문제겠지.”

정부쪽도, 반정부 쪽도 아니면서 이번 사태를 발 빠르게 눈치채고 개입할 수 있는 권력과 능력을 가진 존재.

자칼은 윤수호를 십회 관계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십회의 어느 길드 소속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거야 차근차근 알아 가면 될 문제.

정말로 급한 문제는 손을 잡아도 뒤탈이 없는 상대냐는 것이었다.

윤수호는 차로 입술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정리하자면 네 목적은 중국 정부의 극비 실험을 독점 폭로. 기자로서 돈과 명예를 싹 쓸어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맞아. 심플하면서 더럽게 어려운 일이지. 그쪽은? 고객 구제가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설마 봉사활동이 취미인 다크 히어로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나도 슬슬 판을 키워 볼까 생각 중이라서 말이야.”

“판?”

자칼이 의문을 드러내자 윤수호가 가볍게 미소를 그렸다.

“이번 사태의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중국 정부의 입지는 어떻게 될까?”

“그야 쓰레기통으로 처박히겠지.”

“그게 내가 원하는 바거든. 정부의 입지가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나한테는 유리해진다는 거지.”

그 말에 자칼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쉽지는 않을걸. 아무리 증거를 제시하고 압박한다고 해도 중국 정부가 그 사실을 인정할 것 같아? 모함이고 조작된 증거라면서 전면 부정하면 그만이지. 도덕적으로는 개새끼들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중국은 그래도 돼. 왜냐하면 그럴 힘이 있으니까. 그걸 모를 만큼 어리숙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 거라 생각해?”

“그야 당연히 힘이지. 나의 위대한 조국, 퍽킹 아메리카도 그렇고 이 냄새나는 중국 놈들도 그렇고 힘없으면 진즉에 몰매 맞고 뒤졌을 새끼들이니까.”

“그럼 간단하네.”

“간단해?”

“힘이 배짱의 근원이라면 그 힘을 철저히 짓밟아 주면 그만이지.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전부 지켜보는 가운데 말이야.”

윤수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 할 자칼이 아니다. 그가 정색하며 윤수호를 향해 다소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중국을 대표하는 힘의 상징이 누군 줄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천장 유기. 중국에 존재하는 톱텐 중 한 명이라지?”

“나도 쓸데없는 오지랖은 사양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어지간하면 그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아. 톱텐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그들은 인간이 아니야. 아니, 괴물이라는 말로도 그들을 수식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 물론 그쪽도 터무니없는 괴물 같아 보이긴 하지만…….”

자칼은 손을 저었다.

“그래도 포기해. 혼자서 중국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괴물이 아니라면.”

톱텐은 국력이다.

세간에서 떠들어대는 얘기였지만 틀린 말이라고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톱텐을 실제로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강함을 추상적으로 그리며 경외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그 끝 모를 강함에 바닥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자칼은 후자였다.

취재차 맛보기라고는 해도 미국의 톱텐을 만나 그가 가진 강함의 편린을 보았고, 톱텐이라는 존재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말릴 거야, 부추길 거야? 하나만 하지?”

“누가 봐도 말리고 있는 사람처럼 안 보여?”

“그럴 생각이라면 입가에 미소부터 지우든가.”

“크흠!”

자칼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에 윤수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안 물어봤네. 내 이름이야 소개 안 해도 잘 알고 있을 테고. 그쪽은?”

“가우창, 날 아는 사람들은 가 선생이라고 부르지.”

“그래, 가 선생.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내가 뭘 해 줬으면 하는 거지?”

자칼의 질문에 윤수호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나와 유기의 싸움, 그 싸움의 독점 중계권을 주지.”

“……!”

자칼은 눈을 부릅떴지만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유기가 이번 일에 나설 거라는 보장은?”

“그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번 일이 중국 정부에 있어서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인지 말이야.”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다. 이런 위험한 전염병에 국가 최고 전력을 노출시킨다고? 중국 정부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우리 측에 비밀 연구소 고위 관계자가 있다. 그자의 말에 따르면 새로 선임된 연구소장은 백신과 면역력 개발에 뛰어난 과학자라고 하더군. 아마 이 사태의 책임을 지기 위해 선발된 인재겠지. 그자의 능력이라면 지금쯤 완전한 백신은 아니더라도 면역력을 증폭시키는 면역제 정도는 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더군.”

윤수호의 대답에 자칼은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저었다.

“확신이 아닌 추정이잖아.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내 목숨을 걸 순 없지.”

“그러는 선배도 그놈의 개코에 항상 목숨을 거시잖아요. 선배의 개코는 확실한 미래인가요?”

“넌 좀 닥치고 있어.”

실비아는 옆에서 입을 삐죽이며 구시렁댔다. 윤수호는 그 모습에 피식 웃더니 가지고 온 케이스를 그에게 돌려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이걸 그냥 돌려준다고?”

“말했잖아. 네가 그걸 터트려 주는 게 내 입장에선 이득이라고. 그리고 내 제안에 생각 있으면 여기로 연락해. 목숨값은 후하게 쳐줄 테니까.”

윤수호는 연락처 하나를 테이블에 남겨 두고 그렇게 떠났다.

그가 떠나고 자칼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쪽지를 들어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

“선배, 진짜로 생각이 있는 건 아니죠?”

“실비아, 너라면 어때? 오늘 처음 본 새끼가 한 말에 네 목숨을 걸 수 있겠냐?”

“엥? 왜 제 목숨을 걸어요? 전 죽어도 싫어요. 선배 목숨이니까 선배가 결정하세요. 근데…….”

“근데 뭐?”

“선배, 혹시 돈 냄새 맡고 포기한 적 있어요?”

실비아의 순수한 질문에 자칼은 사악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 * *

다음 날.

“세상에…… 정부 직속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퀄리티구먼.”

“네 자리는 저쪽이다.”

“칫, 누가 보면 내가 그쪽 손바닥 위에서 노는 줄 알겠어.”

자칼은 어김없이 윤수호에게 연락을 했고 윤수호는 그에게 주소 하나를 알려 주었다.

자칼이 조용히 도착한 그곳은 폐업한 상가의 지하실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정부 직속의 정보기관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장비나 인재 면에서 모두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다.

자칼은 정면 대형 스크롤에 실시간으로 갱신중인 상황판을 잠시 지켜보더니 단숨에 현재 상황을 눈치챘다.

“보아하니 꼬리잡기 중인가 봐?”

“중국 정부에서 수색 인원을 열 배로 늘렸더군. 그쪽에서 열심히 찾아 주는데 이쪽이 굳이 번거롭게 나설 필요는 없지.”

“꼬리가 잡혔습니다.”

그때였다. 중국 측 수색대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요원이 이상을 감지하자 곧바로 보고하자 왕명이 다급하게 물었다.

“위치는?”

“내몽골자치구 하난 평원입니다. 좌표는…….”

네비게이션으로 정확한 위치 정보를 전달받은 윤수호는 몸을 돌려 상황실을 나섰다.

“따라와.”

“자, 잠깐만! 선생!”

자칼은 다급하게 윤수호를 따라 나서며 물었다.

“설마 정말로 나 혼자 선생을 따라다니며 촬영하란 말은 아니겠지? 선생은 괴물일지 몰라도 난 평범한 사람이라고. 그저 성격 좀 고약하고 다혈질인 사람 말이야. 내가 거기서 몇 분…… 아니, 몇 초나 버틸 것 같아?”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뒤나 봐.”

“뒤?

윤수호의 말에 고개를 돌린 자칼이 경기를 일으키며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헉! 뭐, 뭐야?”

자칼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금발 곱슬에 적갈색 피부, 무엇보다 자신의 족히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듯한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검은 슈트를 멀끔하게 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자칼은 이 큰 덩치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다.

아니, 윤수호가 알려 주지 않았다면 아마 오랫동안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 했을 터였다.

“대체 언제부터…….”

“네가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쭉 따라다녔는데, 몰랐어?”

“처음 뵙겠습니다, 자칼 씨. 이번에 자칼 씨의 경호를 담당하게 된 파르토라고 합니다.”

눈이 마주친 파르토는 사람 좋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파르토가 허락하지 않는 한 한 네가 어이없이 비명횡사를 할 일은 없을 거다. 네가 죽으려고 지랄 발광을 하더라도 말이지.”

“그것 참…… 든든하네. 그런데 여기서 내몽골자치구까지는 비행기를 타고도 시간이 제법 걸릴 텐데 어떻게 이동할 생각이야?”

“이렇게.”

“응……?”

그 순간, 윤수호는 자칼을 한쪽 어깨에 걸쳐 메더니 하늘로 빛살처럼 날아올랐다.

파르토 역시 곤충의 날개를 꺼내며 빠르게 윤수호의 뒤를 따라잡았지만 자칼은 그의 날개를 볼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안면을 강타하는 폭풍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명을 지르다 기절하고, 깨서 또 비명을 지르다 기절하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세 사람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야라 그런지 모래 먼지가 제법 심하네. 그래도 탁 트인 시야는 제법 기분 좋군.”

“지금 한가하게 경치나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양껏 토하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자칼이 말했다.

아직 어질어질한 정신에도 눈으로 보일 정도로 하난 평원의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그 증거로 지평선 가까이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리고 있는 수많은 전차들과 장갑차, 그리고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전투 헬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난 줄 알겠네.”

“선생, 설마 저길 혼자서 뛰어들 생각은 아니지? 어디서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치? 제발 그렇다고 말해!”

씨익~!

“……젠장.”

윤수호는 말없이 미소를 그리며 몸을 날렸고 자칼은 참담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카메라를 준비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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