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15화 (115/175)

115.

“다녀오셨습니까, 위원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곳에서도 꽤나 중요한 인물 같아 보이기에 데려왔습니다. 별도로 방 하나만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윤수호는 왕명이 마련해 준 방의 침대에 장채림을 눕혀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강기막을 펼쳐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걸 사전에 방지하였다.

그 이후에 윤수호는 왕명에게 자신이 구한 자료들을 모두 건네주었다.

“그런데 위원장님의 표정이 어쩐지 밝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가서 재미있는 친구들을 만났거든요.”

“재미있는 친구들요?”

윤수호는 자칼과 실비아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두 사람을 찍은 사진을 확인한 왕명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지부장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미국 뉴랜드 포스트의 기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뉴랜드 포스트 역시 저명한 언론사 중 한 곳이지만 아무래도 그곳의 명물이라 하면 자칼을 빼놓을 수가 없거든요.”

“자칼?”

“본명은 클링턴 웨스터우드입니다. 하지만 돈이 되는 사건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자칼이죠. 돈이 되는 사건이라면 유명인의 치정 싸움부터 전쟁터까지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별종입니다. 다만…….”

왕명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취재 방식이 워낙 거칠고 불법적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데다 입까지 험해서 동료 기자들이나 정보원들 사이에는 능력만큼이나 악명으로 유명한 기자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우돈의 비밀 실험장 냄새를 맡았다니…… 과연, 냄새를 잘 맡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네요.”

그는 케이스를 가리키며 윤수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케이스는 무엇입니까?”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더군요. 비품실에서 뭔가를 하던 것 같은데…… 설마 그런 곳에 서버가 있을 줄은 저도 상상을 못 했습니다.”

“아…… 대충 예상이 가는군요. 잘됐습니다. 비하인드 서버는 좀처럼 찾기가 힘든 편인데, 역시 자칼의 코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네요.”

“비하인드 서버라면…….”

왕명은 케이스를 자리에서 열면서 대답을 이어 나갔다.

“말 그대로 숨겨진 서버입니다. 메인 서버에 유효한 연구 자료나 성공한 실험 데이터 등을 기록하고 저장한다면 비하인드 서버에는 보통 실패, 오류 등을 저장하곤 하죠. 물론 메인 서버에도 실패나 오류 등의 데이터를 기록하긴 하지만…….”

“비하인드 서버는 공개되면 안 되는 기록들을 저장해 놓는다는 뜻이겠군요.”

“바로 그렇죠. 쉽게 설명하자면 오답 노트라고나 할까요? 표면적으로 드러나선 안 되지만 같은 실수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료들이라 폐기하지 않고 일부러 감춰 두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이런 비하인드 서버들은 보통 상상하기 힘든 곳에 서버실을 숨겨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비하인드 서버에서 탈취한 정보들은 어떤 의미로는 메인 서버에서 해킹한 정보들보다…….”

“파급력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케이스를 개봉한 왕명은 그 안에 들어 있던 데이터 칩을 꺼내 윤수호가 수집한 자료들과 함께 자료 분석관에게 정보들을 넘겨주었다.

“정보 분석이 끝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잘됐군요. 저도 살펴봐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윤수호는 장채림을 찾았다.

장채림은 처음 봤을 때처럼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윤수호는 소지품 창에서 최상급 포션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먹였다.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간 포션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복부를 관통한 부상을 깔끔하게 치료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채림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역시 바이러스 때문인가…….’

바이러스가 체내에 남아 지속적으로 그녀를 공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최상급 포션의 효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바이러스라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하는 수 없지.’

윤수호는 결정을 내렸다. 아깝긴 하지만 장채림이 이번 일에서 중요한 키 카드를 쥐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수호는 소지품 창에서 이제 열 병도 남지 않은 엘릭서 중 한 병을 꺼내 그녀의 입에 흘려 넣었다.

우우웅…….

그 순간, 신묘한 보랏빛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빛은 1분 정도 이어졌다. 그리고 빛이 아지랑이로 화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채림의 눈꺼풀이 들썩거렸다.

“으응…….”

옅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뜬 장채림이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의식이 완전히 회복된 것인지 눈을 부릅뜨며 몸을 일으키더니 주변을 훑어보았다.

“의식이 드시나요?”

“당신은……?”

“안심하십쇼. 당신은 안전합니다. 적어도 당신이 갇혀 있던 그곳보다는 말이죠.”

윤수호와 눈이 마주친 장채림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공간도, 눈앞의 남자도 온통 처음 보는 것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긴장이 들면서 경계심을 가진 장채림을 조금 뒤로 물러났다.

“우돈 비밀 연구소에서 당신을 구출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특별 취급을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럴 만해 보이더군요. 당신의 동료로 보이는 연구자들은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괴물로 변해 가는데 당신만 멀쩡해 보였으니까요.”

“당신은 누구죠?”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가우창이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편하게 가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현재 윤수호는 가우창의 모습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가우창이라고 소개했다.

“혹시 정부 소속이신가요?”

“그랬다면 장 박사님을 이런 식으로 뵙는 일도 없었겠죠. 정부는 장 박사님의 위치를 모릅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일단 정부 소속이 아니라는 말과 그의 말처럼 정부 소속의 인물이 자신을 그곳에서 구출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장채림은 윤수호의 말을 어느 정도 믿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정체 대부분이 수수께끼인 것도 사실이었다.

“제 정체는 차차 알아 가면 될 일이고……. 급한 문제는 따로 있지 않나요? 이를테면 현재 정부가 필사적으로 감추려 하는 바이러스라든가…….”

“그, 그러고 보니 제가 어떻게……?”

장채림은 그제야 자신의 몸을 보고 경악했다. 분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어야 할 자신의 몸이 마치 씻은 듯 나았기 때문이다.

“그건 제가 더 궁금하군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감염됐을 터인 박사님이 어째서 혼자만 변화하지 않고 멀쩡하셨던 건지 말이죠.”

“…….”

장채림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떨구더니 과거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돈 비밀 연구소의 목적은 개조 인간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개조 인간?”

“네. 정확히는 병사로 쓸 수 있는 개조 인간을 제작하는 것이었죠. 다름 아닌 재앙종과 인간의 유전자 융합을 통해서요.”

“…….”

연구소의 내부를 직접 살펴봤던 윤수호는 그녀의 말을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 자신도 대충 그렇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던 차였으니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하게 만드는 게 당에서 내려온 저희의 임무였어요. 거부권은 처음부터 없었죠. 저 역시 가족들을 인질로 잡히면서 연구를 시작했으니까요.”

“가족분들은…….”

장채림은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저었다.

“유감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장채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연구는 매 순간이 고비였고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성과는 꾸준히 나타났어요. 연구의 책임자였던 견모항 그자는 정신 나간 과학자였지만 그 이상으로 능력이 뛰어난 과학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실험이 진행되던 도중 큰 문제가 발생했어요. 실험체들로부터 원인 불명의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시작한 거죠.”

“그게 혹시 우돈을 중심으로 창궐한 바이러스인가요?”

“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로 위협적인 바이러스가 아니었어요. 전염된다 해도 고작 해 봤자 감기 증상에 몸에 수포가 생기는 정도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연구한 결과,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저는 견모항에게 얘기했죠. 지금 당장 실험을 중단하고 백신을 연구해야 한다고.”

“견모항이 듣지 않았겠군요.”

장채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제가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라도 자신의 연구를 가로챌 거라는 망상에 빠져 있는 미치광이였죠. 그래서 제 의견도 단순한 질투 정도로 치부하더군요. 아무리 증거를 보여 줘도 믿지 않았죠. 결국 저는 혼자서 백신을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바이러스를 조금씩 제 몸에 투입하고, 개발한 백신을 제 몸에 실험했죠.”

“그래서 바이러스가 장 박사님의 몸을 침식하지 못했던 거군요.”

“네, 하지만 완벽히 항체가 형성된 건 아니었어요.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슈퍼 백신을 개발하려면 더 강하고 바이러스의 성질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항체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뒤로 완성된 백신을 견모항 몰래 조금씩 실험체들에게 투여했어요. 물론 대부분이 실패했죠. 하지만……!”

“성공 사례가 있나요?”

윤수호의 질문에 장채림은 살짝 기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성공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 준 개체가 있었어요. 그때까지 연구소에서 가장 실험 성과가 우수했던 1701이라는 개체였죠. 천천히 관찰한 결과, 바이러스가 진화하는 만큼 녀석이 가지고 있는 항체도 진화하더군요. 물론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에 비해 항체의 진화는 더디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봤어요. 하지만 1701이 견모항의 통제 하에 있는 한, 그 이상의 연구는 도저히 불가능했죠. 게다가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라면…….”

“던전의 출현으로 중국의 특무 공안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죠. 심지어 공식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국민들을 속였지만 톱텐 중 한 명인 유기까지 타격을 입었어요. 그 일로 정부는 개조 인간들의 병사화를 서둘렀고, 그때까지 최고의 완성본이던 1701은 개조 병사의 양산화를 위해 연구소를 옮기로 결정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즈음, 공교롭게도 연구소 주변에 8급 재앙종이 출현하였다.

“저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1701과 함께 연구소를 탈출할 생각이었어요. 1701만 없으면 개조 인간들이 생산되는 일도, 또 그를 통해 백신을 완성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요.”

“개조 인간을 저지하고 싶었다면 1701을 제거해도 됐던 거 아닙니까? 오히려 그 편이 박사님께는 더 쉬웠을 거 같은데 안 그런가요?”

윤수호의 타당한 의문에 장채림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제 와서 뻔뻔하게 이게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그를 구해 주고 싶었습니다. 실험체로 죽어 나간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막지 못한 만큼…… 그에게라도 대신 자유를 선물해 주고 싶었죠.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 추악한 잘못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

윤수호는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 원하지 않는 연구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그 죄책감이 얼마나 크고 무거울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녀는 설령 협박으로 시작한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크게 통감했고 괴로워했다. 그 결과, 그녀는 단 한 명의 목숨이라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구하려 했다.

“1701은? 그는 어떻게 됐나요?”

“…….”

윤수호는 그녀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난 이후 현재까지 벌어진 상황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아…….”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장채림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꽈악!

그녀는 후회와 한탄이 가득 젖은 얼굴로 윤수호의 옷자락을 꼬옥 붙들며 울부짖었다.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자들의 음모를 꼭 막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더 큰 희생을 당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기 전에 제발……!”

윤수호는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 제가 여기 있는 겁니다.”

검신이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