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14화 (114/175)

114.

“저기 있다!”

“잡아!”

1701은 자신을 쫓아오는 군인들을 피해 무작정 도망쳤다.

어째서 도망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실험관 속에서는 그토록 갈구하던 죽음인데…….

막상 도망쳐 나온 세상은 지옥과 다름없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삶을 원하고 있었다.

“잡았다, 이 새끼!”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투항해라. 저항해 봤자 괴로워지는 건 너뿐이니까.”

1701의 행동을 읽고 한발 빠르게 골목을 막아서는 군인들이 포위망을 점점 좁혀 들어갔다.

1701은 잠깐 주춤하더니 이내 정면을 노려보며 군인들에게 질문을 씹어 뱉었다.

“몇 가지만 물어보자.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 준다면 순순히 잡혀 줄 테니까.”

“뭐야, 이 괴물 새끼가 지금 우리랑 협상을 하겠다는 거야, 지금?”

군인들의 조롱을 무시하며 1701은 질문을 이어 나갔다.

“내 이름은 뭐지? 내 가족은? 가족들은 어디 있지?”

“너 같은 괴물의 이름이나 가족 따위 알 게 뭐야. 얌전히 닥치고 있어라, 아프게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협상이 결렬되자 1701의 반응은 빨랐다.

슉!

1701이 오른팔을 뻗자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던 그것은 순식간에 나무 덩굴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적을 향해 쭉 뻗어 나갔다.

“조심해! 잡히면 성가셔진다!”

“이쯤이야……!”

공안 특무대 소속 군인들은 무기에 오러를 불어 넣으며 덩굴에 대응했다.

정면에 위치한 그들은 오로지 덩굴의 대응에만 집중하였고 대신, 뒤에서 접근하던 군인들이 1701을 습격하였다.

“잡았……!”

“안 돼!”

푸푸푸푸푹!

1701을 구속한 줄 알았던 군인의 몸뚱이에 바람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의 몸에서 난데없이 솟아난 가시들 때문이었다.

“이런 미친 괴물 새끼가……!”

동료의 죽음을 보고 눈이 돌아간 군인들이 1701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의 몸은 이내 쪼개지고, 으깨지고, 부서지고, 터지면서 더 이상 인간의 형체를 유지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으드득…… 으득!

놀랍게도 1701은 죽은 군인들의 시신을 흡수하더니 자신의 육체를 재생성하였다.

군인들의 공격에 손상되었던 육신이 순식간에 회복한 것도 모자라 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을 때 손을 덮고 있던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오러였다.

1701은 군인들의 시체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오러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으드득!

1701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과거에는 자신도 사람이었던 시절이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안다. 자신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살고 싶은 마음은 진짜였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가족들이 누군지, 친구가 누군지, 기억을 되찾고 싶은 마음도 진짜였다.

무엇보다…….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을 그냥 두고 죽을 수는 없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감정, 군인들을 흡수할 때마다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자아를 유지하게 해 주는 복수심이 남아 있었다.

군인들은 얘기했다.

너 따위는 상상도 못 할 높은 곳에서 너를 창조하였다고. 그러니 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순순히 명령을 따르라고.

1701은 다짐했다. 설령 자신의 기억을 되찾지 못 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창조한 놈들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쿨럭! 쿨럭!”

그렇게 추격자들을 말끔히 처리한 1701은 또 다시 기침을 터트리며 조용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 * *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발포한다!”

“집합 명령이 떨어졌을 텐데 여기서 뭐 하는 중이지?”

“소속과 신분을 밝혀라!”

군인들이 총구를 들이대며 점점 가까워오자 자칼과 실비아는 이도 저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릴 뿐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이 때…….’

꿀꺽…….

자칼은 마른침을 삼키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실비아는 거의 울상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상대방이 남자라고 해도 실비아의 능력을 사용하려면 적당한 장소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운이 다 한 것일까? 자칼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점점 선명해지던 그 순간!

후두두둑…….

“뭐, 뭐야?”

“제가 말씀드린 적 있죠? 돌아가신 할머니가 제 수호천사가 되어 주셨다고. 이번에도 분명 할머니께서 저를 지켜 주신 거라고요! 틀림없어요!”

자칼은 호들갑을 떨며 안겨오는 실비아를 억지로 떼어 놓고는 쓰러진 군인들을 확인하였다.

실비아의 말을 믿는 건 아니었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건 분명했다.

방금 전까지도 멀쩡했던 군인들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게, 귀신의 소행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유령의 소행이든 악마의 소행이든 상관없어. 우리는 챙길 것만 챙겨서 이곳을 뜬다!”

때마침 다운로드가 끝난 데이터 칩을 수거하여 비품실 밖으로 뛰쳐나온 두 사람.

비상경보가 울리면서 엘리베이터의 작동이 멈춘 탓에 비상계단을 통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비상계단 앞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군인들이 깔려 물 샐 틈 없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당연히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던 자칼의 얼굴 역시 크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저길 조용히 지나가려면 내가 유령이 되는 수밖에 없겠는데?’

그런데…….

콰아앙!

돌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무형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비상계단 앞에 모여 있던 군인들을 모두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마워요. 할머니! 산소에 더 자주 찾아뵐게요! 물론 자칼 씨도 함께요!”

“개소리 그만하고 얼른 와!”

자칼과 실비아는 미친 듯이 비상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침입자들이 저기 있다!”

“비상계단으로 병력 지원 바란다!”

20층이 넘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느라 죽을 맛이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지원 병력들이 꾸준하게 비상계단으로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두 사람에게 접근한 군인들은 대부분 원인 모를 폭발에 휘말려 계단 아래로 떨어지거나 그 자리에서 정실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쏟아지는 총알 세례도 두 사람의 눈앞에서 허무하게 튕겨나갈 뿐, 옷 끝조차 스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수호천사는 총알도 대신 막아 주는 건가?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자칼은 달리는 호흡과 아득해지는 정신에 당장이라도 멈춰 서서 쉬고 싶었지만 끝내 지상까지 탈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거기까지다, 쥐새끼들.”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즉시 머리통을 날려 주지.”

무전을 받은 비료 공장의 전 병력이 두 사람을 포위한 채 총구와 검 끝을 겨누었다.

그 숫자만 자그마치 천명!

그중 일부가 가진 총을 한 발씩만 쏴도 두 사람은 벌집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척!

“야, 이 미친! 너 지금 뭐 해?”

자칼은 이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한 발을 내딛는 실비아를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실비아는 자칼의 말을 무시하고는 오히려 턱을 당당하게 들고 군인들에게 소리쳐 경고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할머니한테 걸리면 너희 같은 녀석들은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니까.”

“…….”

자칼은 눈을 감고 조용히 머릿속으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이곳에 실비아를 데려온 자신의 판단을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미친놈들, 가서 생포…….”

촤악!

“응?”

기분 탓이었을까? 날카로운 바람이 분 것 같은 섬뜩한 감각에 이 자리의 책임자가 눈을 부릅뜨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착각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던 병사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앞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

바람이 분다. 쉬지 않고 분다. 그치지 않고 부는 칼바람은 날카롭게 군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끄아아악!”

“커억!”

“허억……!”

방패도 막아도, 검으로 막아도, 엄폐물 뒤에 숨어도, 죽은 동료의 시체 밑으로 파고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바람은 평등하게 죽음을 가져왔다.

“으아아! 도대체 어디 있냐고!”

“나오란 말이다!”

군인들은 미쳐서 허공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거나 총을 쏘기도 하였다.

그 탓에 애꿎은 동료들이 희생당하기도 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정신머리가 남아 있지는 않았다.

결국 간부들의 명령도 어기고 도주를 택하는 군인들이 늘어갔지만 의미는 없었다.

도망치든, 남든, 그들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순식간에 비료 공장이 피와 비명으로 물들었고 주변이 잘려 나간 시체와 내장 조각들로 즐비했다.

군인들로 삼엄했던 비료 공장이 지옥도로 변하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

“엣헴!”

자칼은 ‘이거 봐라, 병신아. 내 말이 맞지?’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실비아를 뒤로 한 채 앞으로 어이없는 걸음을 걸어 나갔다.

어째서 자신들만 무사한 것인지, 왜 이 기이한 현상이 자신들을 지켜 주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비아.”

“네?”

“너희 할머니 좀 쩌는 듯.”

모로 가도 뉴욕으로 가면 그만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자신들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여 살아 나왔다.

이제 케이스에 고이 챙겨 둔 이 데이터 칩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눈부신 미래와 돈방석이…….

“응?”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자칼은 실비아의 질문을 무시한 채 다급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어…….”

“그러니까 뭐가요?”

“케이스가 없다고!”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방금 전까지 가지고 계셨잖아요?”

실비아 역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자칼의 말처럼 데이터 칩이 보관된 케이스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설마 도망치는 와중에 떨어트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자칼이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왜요? 어디다 두고 왔는지 생각났어요?”

자칼은 와락 얼굴을 구기며 실바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설마 너희 할머니가 가져간 건 아니겠지?”

“그게 무슨 개소리예요! 할머니가 그걸 왜 가져가요, 이 멍청아!”

실비아가 자칼의 손을 잡아 억지로 풀자 자칼은 멍한 표정으로 품을 뒤지다가 주머니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부스럭.

‘부스럭?’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의 정체는 쪽지였다.

“그건 또 뭐예요?”

“주소네?”

“네? 주소요? 도대체 누가 그걸……?”

자칼은 쪽지를 구기며 인상을 크게 일그러트렸다.

“누구긴 누구야, 우릴 지켜 준 수호천사이시자 도둑놈의 새끼지!”

“아, 같이 가요!”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자칼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번 사건 이상의 맛있는 냄새가 쪽지에서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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