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콜록! 콜록!
동네 구멍가게를 찾은 한 남자가 옷소매로 입을 가리며 기침을 콜록거렸다.
남자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며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 보였다. 그러자 그의 눈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게가 주인의 모습이 보이자,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대충 먹을 것을 품에 집어넣은 남자는 그 길로 가게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어이, 잠깐.”
뒤에서 꽂히는 목소리에 남자는 살짝 놀랐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가게 주인, 유직방이 사실은 전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걷는 속도를 올렸다. 그러자 깜짝 놀란 유직방이 소리쳤다.
“도둑이야!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다급하게 몽둥이까지 챙겨 뛰어간 유직방이 남자의 앞을 가로 막았다.
“어디서 쓰레기통을 뒤지다 주워 입은 옷에, 시궁창 쥐새끼 같은 냄새가 나서 수상하다 싶었지. 이 도둑놈의 새끼, 네가 훔친 거 전부 다 꺼내 놓고 무릎 꿇어. 안 그러면 내 손에 뒈진다.”
자신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서 있는 남자의 모습에 유직방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제야 유직방은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후드를 깊게 눌러써 멀리서 볼 때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남자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 새끼…… 약쟁이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기침은 끊이질 않았던 데다 다소 쌀쌀한 아침 공기에도 남자는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해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행동들까지…….
환자보다는 약쟁이를 먼저 떠올린 주인의 생각도 크게 틀린 것 같진 않았다. 문제는 중국에서 마약 문제는 이유나 신분을 막론하고 사형이라는 사실이었다.
“너 이 새끼, 여기서 딱 기다려. 지금 당장 공안에 신고…….”
공안에 신고한다는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남자의 동공이 확장되며 멈췄던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 거기 가만 안 있어?”
남자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유직방은 쥐고 있던 야구 배트를 휘두르며 그를 위협했지만 소용없었다.
턱, 부웅……! 우당탕!
남자가 유직방의 어깨를 잡아 아무렇게나 옆으로 밀쳐 버렸다.
그에 무슨 종이 인형마냥 힘없이 옆으로 날아간 유직방이 벽에 처박혀 떨어진 후, 의식을 잃었다.
남자는 쓰러진 유직방을 힐끔 쳐다본 이후 그대로 걸음을 재촉하여 거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날 오후.
“여보, 정신이 들어요?”
“그, 그 도둑놈은?”
“도망갔어요. 그러게 신고나 하고 가만히 있지, 뭐 한다고 위험하게 그런 놈 앞을 가로막아요! 죽는 줄 알았잖아요!”
유직방의 아내는 남편이 정신을 차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남편을 나무랐지만 유직방의 아쉬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런 젠장! 요새 공안 놈들이 신고한다고 재깍재깍 오는 거 봤어? 에잉, 그놈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잡아 두고 있어야…… 콜록, 콜록!”
“응? 웬 기침이에요? 감기라도 걸렸어요?”
“감기는 무슨…… 하여간 재수가 없으려니, 퉤!”
그날로부터 사흘 뒤, 유직방이 살고 있던 마을 전체에 원인 불명의 감기가 퍼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침과 식은땀 정도였지만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오한과 발열, 구토, 어지러움, 기절 등의 급격한 악화를 동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병원을 갈 수 없다니요?”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소독을 깨끗이 하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 하십시오.”
이런 촌구석 마을에 군인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유직방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총기로 무장을 한 점이나 행동거지가 군인 같아 보이긴 했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군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외부의 노출을 철저히 차단한 방역복과 자신들을 향한 군인들의 총구까지…….
도저히 정상적인 상황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현 상태를 이해하기 힘들어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지금 내 아내의 상태가 안 보입니까? 당장 병원을 가서 치료받지 않으면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요! 잔말 말고 길 틉시다, 한시가 급하니까.”
사실 유직방의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정말로 심각한 건 조수석에 앉아 있던 그의 아내였다.
원래 지병까지 앓고 있던 그의 아내는 가장 먼저 남편에게 감기가 옮았고 급속도로 상태가 안 좋아져 지금은 사경을 헤매는 지경까지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군인들의 반응은 유직방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처처처처척!
“지금 이게 무슨…….”
유직방은 자신들이 타고 있던 트럭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군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감기에 걸려서 병원 좀 가겠다는 게 총구를 들이밀면서까지 막아야 할 일이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자택에서 대기합니다. 이상 불응할 시 군법으로 대응하라는 당의 명령입니다.”
“…….”
다른 마을 주민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서둘러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들이 다수 있었다.
워낙 밀집도가 높은 데다 젊은이가 거의 없는 고령 마을이라 병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빨랐던 탓이다.
“그, 그럼 약이라도 주십시오! 이대로 죽는 걸 지켜 볼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유직방은 울면서 애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의약품은 준비가 되는대로 배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자택으로 돌아가서 대기합니다. 더 이상은 경고 없이 즉시 발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미친! 아무리 당의 명령이라도 여긴 사람이 죽어 간다고! 비켜! 우리 아버지는 병원에 가야…….”
탕!
그 순간.
단 한 발의 총성이 조용하던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군인이 쏜 한 발의 탄환이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 가려던 아들의 이마를 관통하면서 그대로 목숨을 앗아 간 것이다.
군인들의 말은 진짜였다.
더 이상의 경고 없이, 희생자를 낸 군인은 총구의 연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주민들을 겨누며 그들을 위협했다.
‘이, 이런 미친……!’
유직방은 기겁했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여, 여보. 집으로 갑시다. 봉쇄야 금방 풀릴 테니까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크르륵! 커억! 크르르르……!”
“여, 여보? 여보!”
조수석에 반쯤 죽은 사람처럼 앉아 있던 아내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짐승 같은 괴성을 흘리며 눈을 까뒤집자 유직방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이런……!”
“당장 사격해! 어서!”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한편, 그 모습을 확인한 군인들은 기겁하며 그대로 총알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트럭의 전면 유리가 박살 나며 유직방과 그의 아내의 몸에 무수한 총알들이 박혀들었다. 두 사람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나부끼며 빠르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끔찍한 격통도 잠시…… 피에 전신이 젖어들며 정신이 아득해지던 그때…….
유직방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내가 인간을 벗어나 괴물로 변해 가는 모습을…….
그 순간, 유직방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 * *
왕명의 부탁을 받아 우돈에 도착한 윤수호.
중국에서 활동하기 좋은 가우창의 모습으로 분한 윤수호가 암행복을 차려입고 밤이 오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밤이 찾아오고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폐업한 비료 공장은 아니었다. 이곳만큼은 어둠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공장이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대낮보다 밝은 빛으로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사방을 철통같이 감시하는 군인들의 숫자도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낮보다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빛이 들지 않는 구석진 곳은 야간 투시경까지 사용해가며 빈틈없이 공장을 경비했다. 정말로 개미 한 마리 들어갈 틈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윤수호가 그곳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스스스스…….
어느새 윤수호의 존재감이 극도로 희미해졌다.
윤수호는 놀랍게도 그 상태로 비료 공장의 정면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당연히 수많은 군인들이 윤수호를 목격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기는 이상 무.”
“여기도 이상 없다.”
윤수호를 발견한 군인들 모두 거짓말처럼 고개를 돌리거나 그를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선기를 이용한 편법이었다.
선기를 이용하면 주변 자연지기와 100%에 가깝게 융화될 수 있었다. 즉, 지금의 윤수호는 공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경계 태세를 강화한들 눈앞의 공기를 보고 수상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들이 보기에는 윤수호나 공기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간단히 공장 안으로 침입하는 데 성공한 윤수호는 곧장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외부는 역시나 평범한 비료 공장인가…….’
원거리 촬영으로 찍은 사진을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만 군인들이 지킨다는 것 외에 공장은 그저 폐업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공장과 차이점이 없었다.
즉, 뭔가가 있다고 한다면 지하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지하로 향하는 길은…….’
윤수호는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똑같은 방역복을 입고 있었지만 군인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윤수호는 그들이 이곳을 드나드는 과학자들일 것이라 예상하고 그들을 쫓았다.
아니나 다를까.
삑.
우우웅…….
그들은 비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향했다.
‘어림잡아 지하 20층은 되겠어.’
지하 깊숙한 곳까지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끝에 연구원들과 함께 내린 윤수호는 천천히, 그리고 세밀하게 연구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연구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지 많은 부분에서 자료와 실험을 이전한 흔적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전을 했다 하더라도 비교적 최근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윤수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실험동이었다.
‘이건…….’
급하게 폐기하느라 아직 적지 않은 실험체들이 남아 있었다.
그마저도 정리 도중이었기 때문에 윤수호는 비교적 실험동의 적나라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스윽…….
손끝으로 실험관을 스치던 윤수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실험관 안에는 기능을 다 했는지 거무죽죽한 용액 안에서 아직 열 살도 지나지 않아 보이는 듯한 아이의 시신이 썩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실험관들이 비어 있었지만 군데군데의 실험관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
윤수호는 확신했다.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건 의심할 여지없는 인체 실험이었다.
‘문제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인체 실험이었냐는 것인데…….’
그때였다.
-적색경보, 적색경보. 실험동 B구역에 긴급 상황 발생. 인근 연구자들은 B구역으로 집결 바람. 다시 한 번 알림. 실험동 B구역에…….
‘B구역?’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경고가 울리자 윤수호의 걸음도 자연스럽게 B구역으로 향했다.
B구역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분주하게 이동하는 근처 과학자들만 따라가도 쉽게 그곳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허, 대체 이게 무슨…….’
그는 그곳에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