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왔다.
윤수호 역시 미르, 선화와 함께 북한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중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와 자신을 소개하며 윤수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전 북조선보위사령부 소속 안보실장 강찬휘 소장입네다. 만나서 반갑소, 윤수호 동지.”
“윤수호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허! 말씀은 내가 더 들었지. 그야말로 신과 같은 위용을 가지신 분이라 들었소.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고조 영광이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거두절미하고 아픈 질문을 하겠습니다. 강찬휘 소장님께서는 어째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계셨던 겁니까? 알아보니 북한에서 보위사령부 안보실장이라는 직위는 그야말로 출셋길 중에서도 보장된 고속도로라던데 아닌가요?”
“확실히 아픈 질문이구려. 내 얘기는 들었다고 하지 않았소?”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군요. 물론 거북하시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윤수호의 거절할 수 없는 권유에 강찬휘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새 출발을 목전에 둔 우리 북조선이 최고의 우방을 홀대할 수는 없디. 내래 김정언에게 반기를 들었소. 우리 집안이 북조선에서도 꽤 유복했었다는 건 알고 계시디요? 나 때문에 멸문하긴 했지만 좋은 가문에서 나고 자라 어릴 때는 나도 유럽에서 공부하고 나름 외국물 좀 먹었소. 하지만 그런 걸로 북조선의 체제에 반기를 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디.”
“그럼 대체 뭣 때문에…….”
“사람이 참을 수 없을 때는 뻔하지 않갔소? 인내심의 한계를……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살짝 넘어갔기 때문이디. 김정언의 폭정으로 나라가 궁핍해져도 내 스스로를 속이며 참을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나라는 망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오.”
강찬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재앙종이 출현하고 나서 내래 생각이 바뀌었소. 정확히는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김정언의 태도와 폭정을 보고 내 생각이 바뀐 것이오. 이러다가는 정말로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인민들이 전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강찬휘의 입가에 자조 섞인 미소가 걸렸다.
“그거이 내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오. 그래서 김정언 위원장을 찾아가 설득했소. 우리도 남조선처럼 대응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인민들이 모두 죽을 거라고. 그 말을 꺼내자마자 나는 남조선의 간첩이 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거요.”
“이런 말씀이 어울릴진 모르겠지만 용케 살아남으셨군요.”
“운이 좋았디. 내래 고문받다 사형당해 뒈질 운명이었는데 사형 직전에 남조선에서 던전이라 부르는 이형의 존재들이 나타났소. 김정언은 놀라서 러시아로 도망치고, 덕분에 나도 살아남았지만 대신 노예가 되어야 했지비. 뭐, 덕분에 이런 천금 같은 기회도 얻을 수 있었지만 말이오.”
그러자 그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여기 있는 동지들 모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정치범들이오. 그대가 남조선으로 다녀오기 전에 얘기했다 들었소. 나와 팔자가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달라고. 그런데 설마…… 내래 생각하는 그걸 할 작정은 아니디요?”
“아마 맞을 겁니다.”
“허…….”
윤수호가 씨익 웃으며 대답하자 강찬휘를 비롯한 사람들이 허탈함과 놀람이 섞인 탄성을 터트렸다.
“지금 북조선 정부에서 일하던 우리들에게 다시 정치를 맡기겠다는 말입네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허허…….”
강찬휘는 윤수호의 속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도 윤수호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들었다.
특히, 거의 혼자서 수용소를 해방시키고, 몬스터들을 전멸시킨 것도 모자라 그 무시무시한 라칸까지 혼자서 쓰러트렸다는 말에는 황당함을 넘어 공포까지 느꼈다.
만약 그 말이 반의반만 사실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북한에게 그를 통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욕심이 있었다면…… 오히려 이건 독이었다.
자신들처럼 반골의 상을 가진 성가신 녀석들이 아니라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풋내기를 꼭대기에 앉혀 놓고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이었다.
“물론 제가 북한을 지배하려고 한다면 여러분들이 가진 의문이 타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을 지배하려는 게 아닙니다. 자립하길 원하죠. 그런데 정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또한 독재를 옹호하고, 그 무서움을 모르는 이들에게 똑같은 과오를 반복시킬 생각은 더 더욱 없죠. 그래서 여러분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독재를 하지 않고 북조선을 이끌 수 있으리라 보시오?”
“당연히 처음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겁니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도 겪겠죠.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윤수호는 확신을 가지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김정언의 독재에서 미래를 찾지 못 해서 고초를 겪으신 분들입니다. 적어도 그 길을 다시 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겠죠. 이제는 국민들이 그걸 눈뜨고 지켜보지도 않을 겁니다.”
“국민이 지켜본다라……. 그게 이처럼 무서운 말인 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북한 임시 정부가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윤수호의 추천과 다른 의원들의 동의로 강찬휘가 초대 의장에 당선됐지만 의장은 2년 단위로 바뀔 예정이었다.
임시 정부가 설립되고, 꽉 막혀 있던 국가 운영이 조금씩 돌아가나 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문제는 역시나 돈이었다.
나라에 자금이 없으니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손발이 묶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당연히 북한의 임시 정부를 인정해 줄 리가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외면하고 있으니 북한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이었다.
하지만!
“제가 투자하도록 하죠.”
북한에 손을 내민 사람은 다름 아닌 윤수호였다.
윤수호는 북한의 임시 정부가 주도하는 국책 사업에 돈을 빌려주고 막대한 지분을 사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설립한 회사를 통해 아낌없이 북한의 민영 사업도 추진하였다.
현재 북한에 민영 기업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노다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윤수호가 북한을 상대로 현실 심 시티를 하다 보니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주머니도 빠르게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를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혼자서 감당하는 건 제법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윤수호는 어정쩡하게 투자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기왕 시작한 거 확실하게 해야지.’
지갑이 하나로 부족하다면 두 개로, 두 개가 부족하다면 세 개로 늘이면 된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에게는 아직 미개봉 지갑이 여덟 개나 남아 있었다.
‘지갑이나 챙기러 가 볼까?’
우연의 일치일까? 더 많은 수금을 위해 윤수호가 중국행을 떠올리고 있을 때, 왕명으로부터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 * *
“왕,지부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위원장님도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근에는 북한까지 사업을 확장하셨다지요? 감축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를 급하게 찾으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그때 들었던 목소리도 그렇고 지금 지부장님의 안색도 그렇고 평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윤수호는 시종일관 심각해 보이는 왕명의 표정을 보고 걱정을 금치 못 했다.
“그게……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터무니없는 사태요?”
“예, 그게 입으로 담기도 끔찍해서…….”
후우…….
한숨을 내쉰 왕명을 숨을 고른 뒤 차로 목을 축이고 나서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중국 신장 지역과 감숙성 사이에 우돈이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본래도 인구수가 적었던 그곳은 재앙종의 출현과 함께 사람이 떠나버린 유령 마을이었죠. 당연히 세상 누구도 그 작은 유령 마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지만…….”
“거기에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예.”
왕명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명은 윤수호에게 태블릿 PC 하나를 건넸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정보원들이 촬영한 연구소 외부 사진들이었다.
현장 근처에는 많은 수의 군인들이 무장한 채로 경계 근무를 서는 상황이었고 그들 모두가 방역복을 착용한 상태였다.
“군 기지는 아닌 것 같군요. 혹시 연구 시설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윤수호가 군인들이 입고 있던 방역복에 초점을 두고 얘기하자 왕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그쪽으로 가닥을 잡고 조사를 시작했지만 쉽지가 않더군요. 보안 자체도 특급 레벨이었고 원거리 촬영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중국 정부에서도 이곳을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군요.”
“예, 근처에서 8급종 사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해당 장소와는 거리가 4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물론 전투의 여파가 그곳까지 미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 해도 아무도 없는 폐공장을 이만한 인수의 군인들이 감시하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죠.”
윤수호는 사진들을 더 훑어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망한 비료 공장 외에 어떤 실험을 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건 매우 힘들어 보였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위원장님, 잠시 화면을 봐 주시겠습니까?”
왕명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태블릿을 조작하여 화면에 CCTV 영상을 띄웠다.
거기에는 인간과 괴물을 반쯤 섞은 듯한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 이성을 잃은 채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이건 뭐죠?”
아무리 봐도 평범한 재앙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인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 괴이한 모습에 윤수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왕명이 무겁게 대답했다.
“저희가 조사해 본바, 이 사람은 감숙성 단창시 백옥 마을에 거주 중인 병상보라는 평범한 남자였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요.”
그 밖에도 왕명은 굉장히 어렵게 촬영한 사진들을 차례대로 보여 주며 상황을 설명하였다.
“이 남자뿐만이 아닙니다. 백옥 마을 주민들 전부가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거의 대부분 감기와 같은 가벼운 기침과 열, 오한 등의 증상을 보이다 병상보처럼 반인반괴로 변했고 정부에서 파견한 공안 특무대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인터넷이나 신문 그 어디에도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았죠.”
“…….”
윤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뜬금없이 10년 전에 폐업한 비료 공장을 경비하는 군인, 그 시기에 맞물려 일어나기 시작한 괴이한 사건들, 그리고 중국 정부의 은폐까지…….
“중국 정부에서 어떤 실험을 폐업한 비료 공장에서 진행, 그 실패의 부산물이 감숙성 근처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고 중국 정부는 이를 은폐하려 한다?”
“그리고 현재 상황입니다.”
왕명이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 나타난 지도상에는 감숙성이 붉은 빛으로 점점 더 번지고 있었는데 왕명이 그 붉은 빛의 의미를 설명했다.
“붉은 빛은 최근 저희가 조사한 감숙성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감기 증상자입니다.”
“…….”
윤수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칫하면 재앙종의 출현과 버금가는 인류의 대재앙이 시작될 수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 것이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