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장채림은 견모항에게 있어 항상 꺼림칙한 존재였다.
연구소 내에서 자신 다음으로 입지가 높고, 연구 성과가 많으면서, 언제나 자신과 대립하는 껄끄러운 과학자였다.
하나 그녀가 진정으로 꺼림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게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딱 한 가지, 과학자라는 사실 이외에 공통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1701에 대한 관심이었다.
자신만큼 1701을 아끼면서 1701에 광적인 애착을 가진 존재. 적어도 견모항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연구가 끝나면 그녀가 매일같이 1701의 실험관 앞에서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본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견모항은 십중팔구 장채림이 자신의 최고 연구 성과인 그것을 가로채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그녀를 죽이고 싶어 잠을 설친 게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아마 능력이 없었다면 연구소에서 추방을 했어도 벌써 했겠지.
그런데 그녀의 능력이 아쉬워 연구소에 남겨 두었던 자신의 결정이 지금 막 후회가 되어 돌아왔다.
“장채림!”
연구동에 도착한 견모항의 눈에 1701의 실험관 앞에서 패드를 조작 중인 장채림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견모항의 외침에도 장채림은 들은 척도 않은 채 열심히 패드를 조작했다.
아니, 오히려 견모항이 도착하자 멈추기는커녕 더욱 더 다급하게 록을 해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해? 당장 저 미친년을 치워 버리라고!”
“아, 예!”
과학자들은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견모항의 지시를 따라 서둘러 장채림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다 죽을 줄 알아!”
펄럭!
장채림이 하얀 연구 가운을 벗어 던지자 어디서 구한 것인지 그녀의 상체를 둘둘 감싼 폭탄이 과학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헉!”
“자, 장 박사님! 대체 왜……?”
연구원들은 당혹스러웠다. 평소와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장채림은 패드를 조작하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견모항은 그런 장채림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을 씹어 뱉었다.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여우같은 년, 네년의 목적이 내 연구 성과임을 모를 줄 알았더냐?”
“미친 새끼, 이런 비인도적인 실험 따위로 명성을 쌓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걱정 마. 난 그저 이미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나마 하려는 것뿐이니까.”
“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거냐? 아니면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걸 생각할 상식적인 머리도 부족한가?”
견모항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를 타박했다.
그녀가 비인도적인 실험이라 매도한 이 연구소와 실험, 그리고 연구에 들어가는 모든 자금은 중국 정부에서 지원해 주고 있었다.
즉, 이 실험과 연구 자체가 중국 정부의 지시이자 명령이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 그녀의 언사는 정부를 모욕하고 부정하는 반역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정신이 나갔었지. 가족들이……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정부에 인질로 잡힌 탓에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될 연구에 손을 대고 말았으니까. 그러니까 난 절대로 못 갈 거야. 지금 내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천국에는…….”
“너…….”
“표정을 보아하니 당신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내 가족들이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는 거. 그런데도 나한테 숨기고 있었던 거야? 나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참 지독한 사람들이네. 당신도…… 정부도…….”
견모항의 표정이 더욱 크게 일그러지고 과학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들도 궁금했다.
세계적인 생물공학의 권위자이지만 동시와 동물과 환경 운동가일 정도로 생명에 대한 존중이 깊은 그녀는 과학계에서도 유명한 괴짜였다.
한데 그녀가 비인도적인 정부의 비밀 실험의 서브 치프 연구원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과학자들이 의문을 갖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정부에 가족들을 인질로 붙잡혔기 때문이라니…….
심지어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은 그 인질들마저 목숨을 잃은 듯했다.
“그래서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지? 죽은 가족이 돌아오나? 정부는 네년을 끝까지 추적해서 죽일 거다. 아니, 그 전에 내 손으로 먼저 네년을 쏴 죽이겠지만!”
광기에 가득 찬 견모항은 가까이 있던 경호원에게서 권총을 빼앗다시피 강탈해 그녀를 조준했다.
그에 장채림은 견모항을 비웃었다.
“쏠 수 있으면 쏴 봐. 대신 정확히 내 머리를 관통해야 할 거야. 잘못해서 폭탄이라도 맞는 날에는 나는 네 멱살을 잡고 지옥으로 갈 테니까.”
“이익……!”
결국 분노한 견모항은 권총을 가지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멀리서 맞출 자신이 없으니 가까이에서 그녀를 죽일 심산이었던 것이다.
결국…….
타앙!
털썩…….
한 번의 총성과 함께 장채림이 머리에서 피와 뇌수를 뿌리며 모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동료를 죽인 견모항이었지만 죄책감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걱정하는 건 오로지 1701의 안위뿐. 혹시라도 그녀가 실험체에게 해코지를 한 것은 아닌지, 그것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그렇게 패드를 확인한 견모항의 눈이 커졌다.
‘잠깐, 이 코드는……?’
폐기 코드일 줄 알고 식겁했던 견모항의 눈이 부릅뜨였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입력을 마친 코드는 다름 아닌 해방 코드였기 때문이다.
철컥, 우우웅…….
촤아악…….
이내 실험관의 문이 열리고, 관을 가득 채웠던 녹색 용액이 전부 흘러나오면서 그 안에 담겨 있던 1701의 육신이 외부로 노출되었다.
그 순간, 1701의 눈꺼풀이 열리며 공허한 그의 눈동자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 잠깐! 1701! 그대로 가만히 다시 누워! 용액은 다시 채워 주마. 여기서 도망친다면 너는 무조건 죽는다!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따라!”
견모항은 실험관에서 일어난 1701에게 다급히 명령했다.
1701은 견모항의 목소리가 들리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뚜벅뚜벅 실험관을 걸어 나오더니…….
턱.
“자, 잠깐만 1701. 이게 무슨 짓……!”
으드득!
견모항에게 다가간 1701은 그의 목을 한 손으로 쥐더니 그대로 힘을 주어 간단하게 꺾어 버렸다.
쿵!
방금 전까지만 해도 최악의 인성과 최고의 실력을 겸비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에서 한순간에 고깃덩어리로 전락해 버린 견모항의 시신이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1701은 견모항의 시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다 한마디를 툭 뱉었다.
“내 이름은 1701이 아냐.”
분명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부모님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확실한 건 자신의 이름이 1701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뭣들 합니까? 놈을 잡으세요!”
“저 실험체가 도망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란 말입니다!”
견모항의 죽음에 놀라긴 했지만 과학자들은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경호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호원들은 멋대로 행동하다 죽은 견모항이나 자기들 부하처럼 명령하는 과학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1701을 생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의 말처럼 1701이 도망치기라도 하면 자신들의 안위도 보장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실험관에서 기어 나온 녀석이다. 사정 봐주지 말고 바로 생포해. 재생력이 강한 녀석이니 오러를 아낌없이 사용해도 좋다.”
“예!”
상관의 명령에 경호원들은 무기에 오러를 피우며 땅을 박찼다. 그러자 순식간에 줄어드는 거리.
경호원들은 일단 1701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의 다리를 노려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으드득…… 콰지직!
“커헉!”
“뭐, 뭐야?”
1701이 오른팔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인간의 팔과 다르지 않았던 외형이 순식간에 증식하며 수십 가닥의 촉수로 변화했고…….
이내 달려들던 열 명 남짓한 경호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촤악, 까앙!
‘이런 미친……!’
오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형의 촉수는 전력으로 휘두른 오러 소드를 단번에 튕겨 내며 그의 몸통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아니, 한 번이라도 검을 휘둘러 본 사람들은 그나마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한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검조차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몸통이 휘감겨 완전히 구속당했으니 말이다.
“이, 이거 놔!”
“이 괴물 새끼가!”
경호원들은 발버둥 치며 오러가 깃든 검으로 열심히 촉수를 베고 또 베어 냈지만 그들의 검으로는 촉수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아니, 운 좋게 흠집을 내더라도 그 정도 흠집쯤은 생기는 것보다 빠르게 재생될 뿐이었다.
1701은 촉수에 붙잡혀 버둥거리는 경호원들을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또다시 말을 툭 내뱉었다.
“날 이렇게 만든 건 너희다.”
으드득!
“크아악!”
“커헉!”
촉수에 힘을 더하자 경호원들의 몸통이 으스러지면서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알터 중에서도 중상급에 속하는 실력자들 열댓 명이 별다른 반항도 못 해 보고 장난감처럼 부서진 것이다.
십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빼앗았지만 1701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죄책감이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차갑고 무심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남은 과학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으으으…….”
“사, 살려 줘…….”
그 광경에 과학자들 중 부들부들 떨며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는 자들도 있었고,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자들도 있었다.
1701은 물론 그들을 살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이들에게 어떤 끔찍한 실험을 당했고, 무슨 취급을 받았는지 똑똑히 보았으니까.
촤악촤악!
1701의 촉수가 다시 한 번 움직였다.
그 간단한 움직임에 과학자 몇몇의 몸뚱이가 반으로 쪼개지고, 머리가 터지고, 목이 날아가고, 사지가 뭉개졌다.
“으아악!”
“사, 사람 살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바지를 축축하게 적시는 것뿐이었다.
하나 동정은 없었다. 1701은 남은 과학자들도 모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쿨럭! 쿨럭!
우웨엑!
극심한 기침과 함께 토혈까지 하는 1701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은 엄청난 고열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오한과 발열이 몸을 번갈아 엄습하며 몸이 찢어질 것 같은 격통이 동반되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 해!’
이대로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며 그 즉시 도주를 선택한 1701.
덕분에 과학자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1701을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들지 않았다.
“사, 살았다…….”
“흐어엉!”
“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대피합시다! 언제 연구소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판국에 여기서 어물쩍거릴 겁니까?”
과학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만…….
콜록, 콜록……!
그 가운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