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우리가 먹죠, 북한.”
“……예?”
두서없이 날아든 핵폭탄 같은 한마디에 선우진과 천호진이 멍한 얼굴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윤수호의 돌발 발언에 사람들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그러자 윤수호는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정리하여 입을 열었다.
“물론 지금 당장 통일을 하자는 건 아닙니다. 국내의 사정도 문제가 있고, 지금 당장 통일을 하게 된다면 근대의 서독과 동독의 통일, 그 이상의 여파가 발생할 수도 있겠죠.”
서독과 동독이 하나의 독일로 통일하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통일 비용이 발생하였다. 심지어 지금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마찰을 빚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남북한은 통일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환수족을 제외하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윤수호의 발언이 무척이나 파격적이었다.
“갈라졌던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위원장님께서도 모르시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말씀을 꺼내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선우진의 질문에 윤수호는 자신이 직접 북한에 가서 보고 겪은 모든 상황들을 그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북한 정권은 사실상 완전히 몰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는 붕괴했고, 관료들은 도망쳤으며, 군인들조차 와해되어 사실상 국가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땅이 되었죠. 하지만 북한을 점령한 몬스터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은 분명 러시아로 망명한 김정언에게도 전해질 겁니다.”
“김정언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십중팔구는요. 김정언의 가치는 북한뿐입니다. 그 자신이 북한 정권을 틀어잡지 않고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심지어 그 가치에 목숨이 걸려 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윤수호의 의견에 선우진은 고개를 주억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김정언의 대한 가치와 판단도 그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건…….
“그렇다 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힘들 겁니다. 당장 우리 정부가 나선다고 하면 중국와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이건 위원장님이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윤수호는 다급히 첨언하는 선우진의 말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국가간 분쟁에 무력이 개입되는 상황…… 즉,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죠. 최후에서 또 최후의 순간까지도요. 물론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초래된다면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지만, 그 전에 분쟁을 피할 최선의 방책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우진은 기분 좋게 미소를 그렸다.
세상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졌으면서 그 힘의 무게와 위험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
윤수호가 그런 사람이었기에 일국의 대통령인 자신도 윤수호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 생각해 두신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천호진의 질문에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남한 정부가 개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표면상이든 암묵적이든, 남한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게 된다면 저들에게 괜한 구실을 챙겨 주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하면 북한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겠군요.”
“예,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북한에는 그 어떤 정권에도 속하지 않은 막강한 조력자들이 있습니다.”
윤수호의 시선이 미르에게 돌아가자 미르가 헛기침을 하며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안심하시게! 우리가 북쪽의 인간들을 도울 테니. 사실 우리 역시 강제로 인계에 떨어져 오갈 곳이 없는 처지니라. 그런 와중에 북쪽의 인간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들을 지키는 데 손을 보태는 일이라면 기꺼이 한 손이든 열 손이든 보태도록 하지.”
“환수족이 북한을 돕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음!”
깜짝 놀라 되묻는 선우진에게 미르가 자신감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선우진이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듣자 하니 환수족은 환계의 부서진 균열을 통해서 인계로 떨어졌다 들었습니다. 하면 나왔던 균열을 통해서 돌아갈 수는 없는 겁니까?”
“그것이…… 균열의 발생은 우리 역시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만약 균열이 발생한 곳을 찾는다면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그것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지.”
“위험이라면……?”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자 미르는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균열을 문에 비유했을 때, 문이 열리자마자 양쪽에 있던 사람이 문 반대쪽으로 지나가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야 물론 충돌하겠지요.”
“그게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라면?”
“…….”
선우진과 천호진은 대답할 수 없었다. 미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차원을 이동하는 속도가 빛의 속도라는 뜻은 아니지만 인지를 초월할 만큼 매우 빠른 속도인 것은 확실하다. 그 결과, 과거에도 많은 이들이 충돌 때문에 차원 사이에서 소멸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다만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 속도가 소멸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게지.”
미르는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계에서 하계…… 즉, 환계에서 인계로 떨어지는 환수족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 후에 인계에서 환계로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네.”
“듣자 하니 마치 지하철 같습니다. 지하철도 승차보다 하차가 먼저이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렇다면 인계로 소환되길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이 이동한 균열을 통해 다시 돌아가면 되는 게 아닙니까?”
선우진의 질문에 미르는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그리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많은 환수족이 자신이 나온 균열을 통해 인계를 관광하고 돌아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요 근래 발생하는 이상 균열은 다르다. 애초에 균열 자체는 지금 발생하는 이상 균열처럼 블랙홀 같은 흡인력이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반대로 한 번 소환되고 난 이후에는 역으로 돌아가는 게 매우 힘들기 때문이지.”
“저희도 그랬어요. 저희가 빠져 나온 균열을 통해 돌아가 보려 했지만 빨아들이는 인력에 버금가는 척력이 저희를 밀어내더군요.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그 척력을 이겨 내고 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예요.”
미르의 뒷말을 선화가 첨언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즉, 균열의 발생을 탐지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설령 발견한다고 해도 돌아가는 것 역시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하네. 그러니 균열을 안정적으로 탐색할 방법과 발견한 균열을 통해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거점이 필요하네. 그게 지금의 북쪽 땅인 것이고.”
“혹시 여기까지도 이미 얘기가 오간 상황이었습니까?”
선우진은 윤수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에 윤수호가 싱긋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찾아온 기회는 놓치지 말자는 주의라서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굳이 미룰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괜한 설레발이었을까요?”
선우진은 마주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아닙니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환수족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생긴 것도 모자라 통일의 기틀까지 마련하신 위원장님의 결단은 저조차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간절했으니까요. 이들도, 그리고 북한 사람들도.”
“…….”
선우진도 천호진도 윤수호가 말한 간절함이 무엇인지 가슴깊이 와 닿았다.
현재의 대한민국.
북한보다 아득히 발전된 문명과 인재, 인프라를 구축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매일매일을 재앙종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끔찍한 현실.
그런데 북한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을 지켜 줄 사람들도, 무기도, 힘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작 자신들을 지켜줘야 할 사람들은 아득바득 끝까지 착취만 하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그저 죽고, 밟히고, 잃고, 빼앗기는 것이 당연한 인생.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겠지.
“북한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당연한 진리에 눈을 뜬 거죠. 그들은 더 이상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지가 있어도 힘이 없으면 반쪽짜리에 불과하죠. 저는 그들을 도와줄 생각입니다. 적어도 스스로 일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때까지는요.”
“그렇군요.”
만약 북한이 윤수호의 도움으로 달라져 성장할 수 있다면…… 그렇게 자립에 성공한 북한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면…….
지금은 공상에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선우진은 심장이 벅차올랐다.
통일 대한민국이 손에 넣을 무한한 가능성.
그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했다.
* * *
처음 의식을 되찾은 뒤로 남자가 의식을 되찾는 경우는 더욱 더 빈번해졌다.
사실 1701의 육체 의식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마치 관조하는 것처럼 주변을 인식할 뿐.
그렇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자신의 육체가 꽤나 많은 실험에 이용된다는 것이었다.
“팔꿈치 절단.”
“재생까지 걸리는 시간 기록 측정합니다.”
과학자들은 마치 썩은 생선의 대가리라도 자르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남자의 신체를 하나씩 절단했다.
남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건 영혼이었으며, 육체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자도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었다.
잘린 팔꿈치에서 새로운 팔이 돋아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재생 능력이었다.
팔꿈치뿐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사지는 어디가 잘려도 마치 도마뱀의 꼬리처럼 원래의 형태로 재생했다.
온갖 독극물도 해를 입힐 수 없었으며 강한 산성에도 육체는 끄떡없이 버텨 냈다.
그렇게 갖가지 실험이 끝나면 마치 용도를 다 한 옷을 벗어 옷장 속에 걸어 두는 것처럼 실험관 속에 갇혀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죽음이라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남자의 영혼은 그저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한데 그러던 와중에 신기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험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연구실을 찾아온 누군가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는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탐욕에 가득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늙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한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다른 과학자들과 복장이 비슷한 것으로 봐서는 같은 과학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다른 과학자들에게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연민? 동정?
그게 뭐가 됐든 그녀는 한참 동안 자신을 지켜보다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콰앙! 쿠구구구구구……!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연구소 근처에서 8급 재앙종이 출몰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뭐? 8급?”
8급 재앙종의 출현 소식에 과학자들은 혼비백산했다. 8급 재앙종이라면 연구소의 방어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장 중요한 연구 자료들만 챙겨서 이동한다!”
“실험체들은 어떻게 할까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필요 없는 것들은 여기서 폐기 처분하고 성과가 있는 녀석들만 따로 구분해서 이송해! 어서!”
“알겠습니다!”
연구소장 견모항은 빠르게 지시를 내리면서도 가장 먼저 1701을 떠올렸다.
“실험체 1701은?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1701은 무조건 챙겨야 한다!”
“1701이라면 장채림 박사님께서 바로 살펴보러 가셨습니다.”
“뭐? 장채림이?”
그 순간, 견모항의 등줄기에 섬뜩한 불길함이 타고 올랐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