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02화 (102/175)

102.

파르토의 환골탈태는 기분좋은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부분 둔갑을 해제, 곤충의 날개로 하늘을 비행한 파르토는 빠르게 다른 수용소에 도착하여 하늘에게 떨어져 내렸다.

쿵!

“뭐, 뭐야?”

“적이다!”

마치 운석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물체에 땅이 울리고 먼지 구름이 높게 치솟았다.

“마침 잘됐어. 죄수들 괴롭히는 것도 살짝 질리던 차였으니까.”

간수들과 보초들은 적의 출현에 되레 반가워하며 먼지 구름 안쪽으로 투창을 던졌다.

쒜엑!

몬스터가 던진 투창은 포탄처럼 날아가 순식간에 먼지 구름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위력은 능히 장갑차 두세 대를 가뿐하게 관통할 정도였으나…….

콰앙!

투창이 폭발함과 동시에 충격파가 터지며 피어오르던 먼지구름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은 놀라웠다.

“무슨 덩치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아무래도 둔갑한 환수족 같군.”

“다들 경계심 늦추지 마라. 이곳에 혼자 쳐들어 온 걸 보면 어지간히 멍청하거나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이…….”

그 순간.

팟!

파르토의 모습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파르토가 전력을 다해 움직여도 간수들이나 보초들이 그의 움직임을 놓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눈썰미가 좋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간수도, 보초도, 그 어떤 몬스터들도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쩌어엉!

고막을 터트릴 기세로 터져 나온 충격파만이 그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원인은 간단했다. 파르토가 적을 향해 돌진해서, 그대로 몸통을 때려 박은 것뿐이다.

단지 그것만으로 대상이 되었던 간수 하나가 완전히 분쇄되어 하늘에서 떨어졌다. 후두둑 쏟아지는 핏물 속에서 1cm이상 크기를 가진 육편 하나가 존재하질 않았던 것이다.

‘신기하군. 아직 전속력을 낸 것도 아닌데…….’

고작 가볍게 몸이나 풀 요량으로 움직였을 뿐인데 환골탈태 이전의 최고 속도를 몇 배나 뛰어넘어 버렸다.

단점이었던 스피드가 이 정도로 진화했는데 자신의 강점이었던 내구력과 파워는 도대체 얼마나 늘어났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반격을 시작한다.”

몸속에서 폭발할 듯이 용솟음치는 기운에 파르토는 씨익 미소를 그렸다.

* * *

원산 수용소의 파르토처럼 각 수용소에는 전사들이 모진 노동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았다.

노예로 써먹기에 좋은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탓에 죽이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뭉쳐 놓자니 골치가 아플 것 같아서 일부러 나누어 수용한 것이다.

그것이 윤수호와 미르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우우우웅……!

“축하한다. 풍태술.”

“이 모든 것이 공주님과 천부의 후계자님 덕분입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파르토처럼 환골탈태를 마친 환수족의 전사를 미르가 축하해 주었다.

“수호 공에게 선기를 나눠 받는 건 똑같은데 어찌 전사들만 환골탈태를 경험하는 것인지……. 그것 참 신기하구나.”

지금까지 여러 수용소를 해방하면서 전사들은 곧잘 환골탈태를 경험한 반면, 환수족의 주민들은 단 한 명도 환골탈태를 한 사람이 없었다.

그 부분을 미르가 신기해하자 윤수호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여 그녀에게 대답해 주었다.

“아마도 선기의 적응 정도에 따른 차이겠지. 선천적으로 선기의 적응률이 높은 것도 있지만 노력과 훈련을 통해 선기의 적응률이 매우 높아진 게 아닐까? 그러던 와중에 부족한 선기가 채워져서 환골탈태까지 이르는 거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때문에 모든 전사들이 환골탈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감내했다 해도 선천적으로 선기의 적응률이 낮은 경우, 부상만 회복되고 환골탈태에는 이르지 못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미르는 정말로 윤수호란 인간이 신기했다.

‘본디 인간의 선기 적응률은 0%에 가깝다. 그런데 어떻게 수호 공은 인간이면서 천부의 후계자가 될 정도로 선기에 높은 적응률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신기하구나.’

미르는 이러한 자신의 의문을 조용히 접어 두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골탈태를 마친 전사들은 즉시 전력이 될 수 있었고, 덕분에 수용소 해방 계획은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 선화가 없다! 설마 벌써 잘못된 건 아니겠지?”

미르가 겁에 질려 허둥거리자 윤수호가 미르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선화 씨가 수용소에 없는 건 아마도 그녀가 너와 각별한 사이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겠지. 아마 네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그녀를 데려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네 위치를 파악할 때까지 그녀를 살려 둘 가능성이 높겠지. 그녀는 입이 가벼운가?”

“아니, 선화는 누구보다 입이 무거운 전사다. 아마 죽어도 내가 있는 곳을 얘기 하지 않을 게야…….”

미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도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모진 고초를 당하고 있을 선화가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수용소 그 어디에도 없다면 그녀가 갇혀 있을 곳은 단 한 곳뿐이지.”

“위원장님!”

때마침 도착한 김세민과 이정화가 윤수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말씀하신 식량과 의료품을 모두 확보했습니다.”

“각 수용소마다 비상 통신망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통해서 다른 수용소에서도 어느 정도의 식량과 의료품을 확보하긴 했지만…….”

“양이 턱없이 부족한건가요.”

윤수호의 말에 두 사람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버텨 봤자 이틀. 그 이상은 사망자가 급속도로 불어날 겁니다.”

“일단 운송수단은 준비해 뒀지만 환수족을 전부 이송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북한 주민들까지 챙길 여력은 없을 것 같습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상황 판단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지시를 내렸다.

“그렇다면 속전속결로 상황을 정리하는 수밖에요. 두 분은 저를 따라와 주세요. 두 분께서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

윤수호는 각 수용소마다 환골탈태한 환수족 전사들을 배치하였다. 혹시 모를 적의 역습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당장 수용소를 탈출하는 것은 논외였다. 역설적이게도 현재는 수용소보다 외적의 침공에 효율적으로 방비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지옥 같았던 수용소가, 이제는 그들이 지켜야 할 거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선화를 구해 다오. 수호 공, 부탁한다.”

“그래,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눈물까지 흘리며 진심으로 부탁하는 미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윤수호는 두 사람과 함께 평양으로 출발했다.

* * *

평양 최고위원장 관저.

과거에는 북한 독재 정권의 상징이 기거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던전을 탈출하여 가장 먼저 발을 디딘 북한 땅을 순식간에 손에 넣은 몬스터들의 우두머리.

라칸.

사자와 인간을 베이스로 수많은 짐승들을 섞은 것 같은 라칸은 무료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것은 알몸으로 싸우고 있는 두 남자였다.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은 형제지간으로 두 사람 모두 결혼했고 가족이 있었다.

두 형제는 마을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우애가 남달랐는데, 지금 그 형제들이 서로의 피를 주먹에 묻혀 가며 죽일 듯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원인은 하나였다.

“하암~ 좀 더 화끈하게 싸워 봐라, 이것들아. 앞으로 5분 안에 결판내지 않으면 너희 둘 가족 모두 내 저녁 식사가 될 줄 알아.”

라칸의 협박에 두 형제는 눈을 부릅뜨더니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니, 주먹뿐만이 아니었다. 물어뜯기도 하고, 할퀴기도 하고, 급소도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등, 그야말로 철천지원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안달이 난 것이다.

“크하하하! 그래그래, 그렇게 싸워야 재미가 좀 있지.”

“저희가 준비한 여흥이 마음에 드시옵니까, 왕이시여.”

“썩 나쁘지 않구나. 인간 사냥도 질리던 판국이었는데 이런 여흥을 준비하다니, 아주 좋아.”

라칸은 점점 죽어가는 두 형제를 보며 잔인하게 미소를 그렸다. 문득 그의 시선이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철창에 갇힌 두 형제의 가족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리며 통곡하고 있을 뿐이었다.

츄릅~

그런 사람들의 절망이 라칸의 식욕을 자극했는지 입맛을 다시며 빨리 한쪽이 죽기를 고대했다.

‘아니, 이기든 지든 둘의 가족을 다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기껏 이겼는데도 눈앞에서 자신의 가족이 산 채로 뜯어 먹히는 꼴을 보는 인간의 몰골도 제법 볼 만하겠지. 역시 이 몸이야. 하여간 머리가 너무 좋아도 탈이라니까.’

그렇게 사악한 계획을 세우며 스스로 자화자찬하고 있던 그때!

“왕이시여! 큰일 났습니다!”

라칸이 눈살을 찌푸렸다.

부하 하나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달려와 외치는 바람에 흥이 깨져 버린 탓이다.

“무슨 일이냐. 별거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네놈 머리통부터 으깨 줄 것이야.”

“환수족과 인간들이 노역하던 수용소가 전부 누군가에게 점거당했습니다!”

“뭐, 뭐라고?”

라칸은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 군데도 아니고 전부? 확실히 알아보고 고하는 게 맞느냐?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여 있다면 네놈의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전부 사실이옵니다! 왕이시여, 다급히 군을 파견하시어 적들을 토벌하시는 것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라칸의 표정은 가면 갈수록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이 땅에 이 몸에게 대적할 만한 병사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늘…… 어디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 이제야 기어 나왔는지 면상이 궁금하구나. 군사들을 준비하라! 이 몸께서 직접 놈들의 수장을 봐야겠다.”

그렇게 명령을 내린 라칸이 갇혀 있는 인간들을 보며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식욕을 발산했다.

“그 전에 배부터 좀 채우고. 전투에 임해야 하니 속을 든든히 채워 둬야지.”

그 순간!

“크, 큰일 났습니다! 왕이시여!”

빠직!

이번에는 다른 부하 한 놈이 인기척도 없이 덜컥 뛰쳐 들어와 소리치는 바람에 라칸의 이마에 새로운 혈관이 도드라졌다.

“이번엔 또 뭔데? 뭐, 놈들이 직접 여길 쳐들어오기라도 했데?”

“그, 그러하옵니다, 왕이시여! 어찌 알고 계셨나이까?”

“…….”

라칸은 농담처럼 해 본 말이 사실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자신의 궁전을 지어야 할 수용소를 습격한 것만으로도 만 번은 찢어 죽여야 할 중죄인데 그것도 모자라 이곳까지 쳐들어왔다고?

“좋다. 어떤 정신 나간 미친놈인지 이 몸께서 직접 확인해 보고 놈을 산 채로 씹어 먹어…….”

그 순간.

쿠구구궁…….

지진이 일어나면서 궁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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