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00화 (100/175)

100.

북한 강원도 원산에 위치한 원산 수용소.

“빨리빨리 움직여!”

“굶어 뒈지고 싶은 놈들이 잔꾀를 부리는구나.”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 살려 두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르고, 감히 요령을 피워?”

촤악! 촤악!

“끄윽!”

지금 당장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노인이 돌 지게를 지고 힘겹게 걷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나 간수들의 눈에 노인의 모습은 일하기 싫어 요령을 피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죄수들의 상태 따위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죽 채찍이 노인의 몸을 세차게 휘갈기자 살점이 채찍에 묻어나며 피가 낭자하게 되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

멀찍이서 돌을 싣고 오다 그 모습을 확인한 노인의 아들이 돌 지게도 내팽개치고 서둘러 달려와 노인을 감싸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남들이 보기엔 가슴 짠한 효심일지 몰라도 간수들에겐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달려온 아들마저 일하기 싫어 요령을 피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새끼 봐라?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오냐, 너희 같은 놈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아주 제대로 본때를 보여 주도록 하지.”

가죽 채찍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짐승 인간 수인이 잔인한 미소를 그리며 채찍을 들어 올렸다.

부자는 자신들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덥석!

“그쯤 하지. 이들 모두 한계다. 더 이상 죽어 나가면 남은 사람들도 제대로 일할 수 없다는 걸 모를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닐 텐데?”

일단 크다.

보통 사람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간수의 팔목을 붙잡았다.

‘무슨 손아귀의 힘이……!’

간수는 녀석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팔은 마치 돌덩이에 박힌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간수의 성질을 더욱 자극했다.

“네놈도 이 인간들을 따라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4096번.”

4096번.

남자의 가슴팍에 달려 있는 죄수의 번호였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간수에게 대꾸했다.

“4096번이 아니다. 환수족 전사 파르토다.”

“흥! 전사는 무슨……! 죄수 주제에 아직 정신 교육이 덜 된 모양이구나.”

소동이 일어나자 근처에 있던 간수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또 이 녀석이야?”

“힘 하나는 기가 막혀서 죽이기 아까웠는데……. 이 정도로 말을 안 들으면 방법이 없으려나?”

“하는 수 없지. 녀석도 같이 폐기 처분 하자고.”

나는 대화를 보아하니 간수들은 파르토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 좋은 쪽으로…….

그들이 폐기 처분을 운운하며 몸에서 살기를 일으켰지만 파르토는 덤덤히 싸울 준비를 취하며 뒤에 쓰러져 있던 부자에게 경고했다.

“아버지를 데리고 도망쳐라. 여기 있다가는 같이 죽을 테니.”

“고, 고맙습니다!”

“어딜……!”

촤악!

도망치려는 부자에게 채찍이 매섭게 떨어지자 파르토는 주먹을 휘둘러 손등으로 채찍을 후려갈겼다.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이 미친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결국 간수들의 공격이 파르토에게 집중되자 파르토는 자연지기를 끌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철썩!

이윽고 바위도 부수는 채찍이 파르토에게 적중했지만 파르토의 몸은 피가 조금 튀었을지언정 크게 상하지 않았다.

“몸뚱이 하나는 자신 있는 모양이구나.”

“그럼 이건 어떠냐!”

촤촤촤촤촤촤촤촤촤!

세 명의 간수들은 쉬지 않고 채찍을 휘둘렀다.

어떻게 채찍이 꼬이지 않고 소나기처럼 파르토의 몸으로 쏟아질 수 있는 것인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크윽!”

파르토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잔뜩 웅크려 채찍을 막아 냈다. 자신에게는 쏟아지는 채찍을 일일이 피할 수 있는 반사 신경이나 스피드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우워어어어어!”

파르토가 괴성과 함께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내달렸다. 쏟아지는 채찍 세례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그저 묵묵히 적을 향해 몸을 날렸던 것이다.

“멍청한 놈, 그렇게 저돌적으로 달려들면 누가 맞아 준대?”

대상이 된 간수가 파르토의 돌진을 비웃으며 타이밍에 맞춰 옆으로 몸을 날렸다.

눈속임 없이 미련하게 앞으로 돌진하는 녀석의 몸통 박치기 따위 맞아 주는 놈이 얼간이인…….

콰앙!

“커헉!”

돌진에 당한 간수가 피를 토하며 뒤로 한없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어, 어떻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타이밍에 맞춰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몸을 틀어 자신을 따라잡은 것인지…….

결국 그는 풀리지 않은 숙제를 끌어안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간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장실 창문으로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던 간수장, 하심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주먹이 제법이야. 제대로 맞으면 나라도 꽤나 위험하겠어.

당한 간수는 몸통 박치기인 줄 알았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몸통 박치기를 완벽하게 피했다. 그러자 파르토가 다급하게 녀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게 운 좋게 제대로 얻어걸린 것이고 그대로 날아가 기절했다.

얻어맞은 간수는 설마 그 위력이 주먹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탓에 돌진에 당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뭐, 더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그래선 간수들의 체면이 안 살겠지.”

주변에는 이미 많은 죄수들이 모여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쉽군. 저만한 일꾼은 흔치 않은데 말이지.”

파르토는 제법 쓸 만한 일꾼이라 작은 소란 정도는 그냥 눈감아 주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여기서 파르토가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앞으로 이런 귀찮은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될 테니까.

여기서 희망의 싹을 밟아 놓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끄덕.

간수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하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흩어져 있던 간수들이 서서히 파르토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이미 세 명의 간수들을 상대하며 파르토의 몸은 상당한 대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한 명을 겨우 쓰러트리자 이제는 열댓 명이 넘는 간수들이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게 보였다.

파르토는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하며 자세를 낮췄다. 여전히 그의 투지는 살아 있었고 절대로 굴복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하심이 그를 봐줬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파르토!”

“안 된다, 라스가! 너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그치만 파르토가…… 파르토가 죽는다고요!”

파르토를 원래 알고 있었던 환수족들이나, 이곳에서 알게 된 인간들 모두 파르토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과장 좀 보태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파르토의 도움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네가 가서 뭘 할 수 있겠니? 가 봤자 개죽음만 당할 뿐이야!”

“어차피 파르토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은 목숨이야. 그날, 무너지는 바위더미에서 파르토가 날 지켜 주지 않았다면 어차피 죽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지킬 거야!”

“라스가! 라스가!”

라스가라는 이름의 소녀는 결국 아빠의 손도 뿌리치고 파르토의 앞으로 달려가 그의 앞을 막았다.

그런데…….

“어?”

“어?”

라스가뿐만이 아니었다. 비쩍 곯은 인간 소년 역시 라스가와 함께 파르토의 앞을 지켰다. 당연히 서로는 처음 본 사이였기에 의논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상대 역시 파르토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젠장! 우리도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비!”

“뭐하네? 날래 움직이라!”

“파르토를 지켜라!”

“여기서 끔찍한 노역만 하다 죽느니 나도 파르토처럼 싸우다 죽겠어!”

결국 작고 연약한 소년, 소녀의 용기는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의 심장을 뜨겁게 자극했다.

그들은 연장을 다부지게 꼬나쥐고 파르토의 앞으로 몰려들었다.

“하, 이것 참……. 벌레들이 주제도 모르고…….”

“어떻게 할까요, 소장님.”

“전부 정리해. 죄수들이야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좋은 교훈을 배웠어. 한번 이빨을 들이민 개는 빨리 살처분해야 한다는 걸 말이야.”

하심은 망설임 없이 죄수들의 몰살을 명령했다. 그에 간수들은 잔인한 미소와 함께 채찍이 나닌, 제대로 된 무기로 바꿔 들며 한곳으로 집결했다.

“잘됐네. 괴롭혀 죽이는 것도 재미있지만 누가 뭐래도 역시 학살이 제일 재밌지.”

“누가 더 많이 죽이는지 내기할래?”

“좋지. 크크큭!”

간수들은 다가올 살육의 기쁨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사람들은 조금씩 두려움이 용기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맞섰다.

“더 이상 누군가의 개로 사는 건 넌더리가나디.”

“우리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겠다는데 뭐가 죄이간!”

“간나 새끼들, 하나도 겁 안난다기래! 날래 들어오라우!”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을 지켜 주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 파르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게 무슨 짓들인가. 어서 도망쳐라. 이러면 다 죽는다.”

그러자 라스가가 파르토를 돌아보며 씨익 미소를 그렸다.

“걱정 마세요. 이제는 우리가 당신을 지켜 줄 테니까.”

“…….”

파르토는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상황은 무척이나 절망적이었다.

파르토는 이들이 죽지 않길 바랐지만 그런 미래는 존재하지 않겠지. 결국 그가 남은 힘을 모두 끌어 올려 앞으로 나서려던 순간!

“좋은 사람들이군. 아직 이 땅에도 희망은 남아 있다는 뜻인가.”

“……!”

파르토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수용소에 저런 죄수가 있었던가? 아니, 입고 있는 옷 자체가 자신들 같은 죄수의 복장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뭐야, 저 자식은?”

“꼬라지를 보아하니 이곳 인간은 아닌데?”

“여기가 어딘 줄도 모르고 제 발로 기어들어 온 건가? 멍청한 놈. 크크큭!”

죄수도, 간수도, 모두가 새롭게 등장한 남자에 대해 불안과 조롱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남자…… 윤수호가 검결지를 들어올렸다.

“웃음소리가 거슬린다.”

촤아악!

“생긴 게 마음에 안 드는군.”

푸화학!

“그냥 죽어라.”

콰콰콰콰!

…….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외부인이 손가락 몇 번 휘두르자 자신들에게는 악마와 같았던 간수들이 무참하게 도륙 난 것이다.

반격은커녕, 반응조차 못해 보고 수십 마리의 간수들이 오체분시 되어 목숨을 잃었다. 윤수호의 검기 앞에서는 도망치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하심 역시 똑똑히 지켜보았다.

‘도,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팟!

“허억!”

갑자기 코앞에 나타난 윤수호의 모습에 하심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윤수호는 볼썽사납게 주저앉은 하심을 무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유 없이 남을 죽이는 것도 썩 나쁘지 않군. 안 그래?”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하심이 적의를 품고 윤수호를 공격하려던 순간.

푸화학!

“크악!”

날렵하게 무기를 빼 들던 하심의 오른팔이 날아가면서 차례대로 사지가 분해되었다.

“사, 살려…….”

콰직!

결국 터져 버린 하심의 머리를 끝으로 원산 수용소는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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