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99화 (99/175)

99.

“너한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하문하십시오. 제가 아는 건 무엇이든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윤수호에게 무릎 꿇은 탄스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방금 전, 워낙 누더기가 될 때까지 맞은 탓에 제대로 된 문답을 하기 어려워 윤수가 녀석에게 포션을 주었다.

덕분에 녀석의 몰골은 비교적 깔끔해졌지만 영혼 깊숙이 새겨진 윤수호에 대한 공포는 더욱 더 커져만 갈 뿐이었다.

“네가 황해북도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컨트롤한다고 들었다. 맞느냐?”

“그렇습니다! 옛날일은 모르지만, 적어도 최근에 이 지역에서 생긴 일치고 제 귀를 거쳐 가지 않는 사건이 없습죠.”

탄스가 순순히 대답하자 윤수호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잡힌 남한 요원들의 행방도 잘 알겠구나?”

“아, 그놈들이라면 방송국 지하실에 가둬 놨습니다.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를 쥐새끼들을 엮어 내려면 녀석들이 필요하다고…….”

탄스는 갈수록 말끝을 흐렸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윤수호의 분위기를 보고 눈치를 살핀 것이다.

“죽은 사람은?”

윤수호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어,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살려서 협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목숨은 붙어 있도록 꾸준히 조취를 취해 두었습니다.”

“안내해라.”

“예!”

윤수호가 들었던 손을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탄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다. 과거의 나! 내가 어떻게 이 육체를 다시 얻었는데, 이대로 허무하게 소멸할 순 없지!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배신이 대수랴!’

방금 전, 들어 올린 저 인간의 손가락 끝에 집중된 흉흉한 기운이 발출됐으면 자신이 어떻게 됐을 지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하실로 이동하던 도중, 윤수호는 탄스의 부하들과 수시로 마주쳤다.

“어? 대장, 그 인간은 누구…….”

퍼억!

“뭐, 뭐야?”

서걱!

“이 개자식이……!”

콰앙!

마주친 놈들 모두 윤수호의 손짓 한 번에 머리가 터지고, 목이 잘리고, 벽에 처박혀 몸이 뭉개졌다.

덕분에 복도는 시뻘건 피로 물들었고, 소란을 들은 몬스터들도 빠르게 윤수호의 앞으로 집결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도 귀찮군.”

윤수호는 인벤토리에서 평범한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윤수호가 검을 놓자 허공에 둥둥 떠오른 검이 총알처럼 발사되었다.

탄스는 몸을 떨었다.

검이 눈앞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건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끝을 강하게 찔러 오는 피 냄새. 탄스는 지하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사체들이 복도를 가득 메운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꿀꺽…….

저 사체 중 하나가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게 지하실에 도착하자 마찬가지로 인질들을 감시하던 녀석들은 모두 도륙을 당한 상태였다. 다행히 인질들은 감옥 안에서 정신을 잃은 채 힘겹게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도대체 방송국 지하에 감옥이 왜 있는 거지?’

윤수호가 이런 의문을 가진 건 한눈에 봐도 감옥의 연식이 어제오늘 만들어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걱!

윤수호는 알 수 없는 의문을 뒤로 한 채 철창을 베어 내고 감옥 안으로 입장하였다.

‘상태가 심각하군.’

맥을 짚어 보지 않아도 이들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때였다면 점혈로 막힌 기의 순환을 뚫어 주고 고통을 덜어 주는 게 전부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딸깍.

윤수호는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사람 수에 맞춰 꺼내 그들에게 먹였다.

그들 중에는 모진 고문으로 불구가 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회복 포션만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꿀꺽꿀꺽…….

그렇게 엘릭서를 필사적으로 받아 마신 그들의 몸이 옅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이, 이게 대체……!”

“내, 내가 살아 있어?”

“야, 김민환!”

“창식 선배!”

엘릭서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회복한 북파팀 대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한편 이 상황에서 당황한 눈빛으로 윤수호를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으니…….

“위원장님? 위원장님께서 어떻게 이곳에……?”

“반갑습니다, 최승호 팀장님. 사진보다 실물이 더 좋으시네요.”

윤수호는 최승호와 이곳에 붙잡혀 있던 북파팀 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대신 엘릭서는 회복 포션으로 둘러댔는데 그들이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저희들 때문에 그 귀한 포션을…….”

“지금은 포션보다 여러분의 목숨이 우선이니까요. 팀장님께서 보내 주신 자료들은 저희도 확인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북파팀 대원들은 여기 있는 인원이 전부입니까?”

“아뇨, 열세 명이 빠져 있는데 그들의 행방이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잘…….”

최승호가 걱정하며 고개를 젓자 윤수호의 시선이 스윽 탄스를 향했다.

“저, 저는 분명 나달 그놈에게 최대한 살려서 생포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걸 나달 그놈이 멋대로 설치는 바람에……!”

“…….”

“죄,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십쇼!”

쿵!

윤수호의 싸늘한 시선에 탄스가 무릎을 꿇고 몇 번이나 격하게 바닥을 찧으며 용서를 구했다.

그 모습에 되레 어이가 없어진 최승호가 윤수호에게 물었다.

“대, 대체 저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저 녀석은 분명 이곳의…….”

“보기보다 삶에 대한 욕망이 많은 녀석이더군요. 쓸모도 있고요. 그래서 잠시 데리고 다니는 중입니다. 이후에도 살려 둘지 처리할지는…… 뭐, 저 녀석 하기 나름이고요.”

“곰의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윤수호는 일부러 대가리를 박고 있던 탄스가 들리도록 얘기했고 탄스는 고개를 치켜들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아 참, 그런데 혹시 그 데이터 칩을 전달해 준 사람들은 무사합니까?”

최승호가 다급하게 묻자 윤수호는 조금 처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직접 만나 보시겠습니까?”

* * *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여러분께서 와 주시지 않았다면 저희 다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방송국 회의실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최승호와 김세민의 틈을 뚫고 한 소녀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최 팀장!”

“아가씨!”

와락!

최승호는 자신에게 달려와 와락 안겨드는 미르를 번쩍 안아들며 기쁨의 해후를 만끽했다.

“무사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선화 씨는…….”

“선화는…….”

미르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도리질쳤다.

그에 최승호의 눈가에도 음영이 드리워지더니 그가 입술을 잘근 씹었지만 이내 또렷한 표정으로 미르를 위로했다.

“걱정 마십쇼, 아가씨. 선화 씨는 분명 무사할 겁니다.”

“정말?”

“그럼요. 아가씨가 여기 이렇게 계신데 놈들이 아가씨를 꿰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멋대로 해코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아가씨는 반드시 제 손으로 구해 내겠습니다.”

“최 팀장!”

이윽고 미르는 눈물을 글썽이며 최승호의 품에 폭 안겼다.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하네! 선화를…… 꼭 선화를 구해 주게! 선화가 없으면 나는…….”

“물론이죠. 그러니 걱정 말고 지금은 푹 쉬십쇼, 아가씨.”

그렇게 최승호가 미르의 등을 다독이며 그녀를 위로하자 어느새 미르가 거짓말처럼 최승호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신기하군요. 같이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 녀석이 이렇게 깊이 잠든 건 처음 봅니다.”

윤수호가 깊이 잠든 미르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하자 최승호가 그녀를 소파 한쪽에 조심스럽게 눕혀 두었다.

“그동안 누구보다 고생한 아이니까요. 이 작은 몸에 짊어진 무게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선화가 누굽니까? 전에도 미르에게서 듣긴 했지만 두 분께 상당히 특별한 존재 같던데.”

“선화는…… 아가씨의 보모이자 가족 같은 존재입니다. 피는 이어져 있지 않지만 아가씨에게는 친언니나 다름없죠. 저에게는 별거 아닌 짝사랑이고요. 하하하…….”

최승호가 겸연쩍게 웃자 윤수호가 살짝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별거 아닌 짝사랑에 목숨을 거실 생각이십니까?”

“제게는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그렇군요. 다른 분들 중에서는 귀국하실 분이 안 계십니까? 원하신다면 이대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임무는 이미 충분히 달성됐으니까요.”

윤수호의 권유에도 북파팀은 그 누구 한 명 귀환을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끝까지 돕고 싶습니다. 아니, 반드시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곳 지리는 여러분보다 저희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동행한다면 동선의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북파팀의 의지는 확고했다. 더 이상의 귀환 권유는 실례가 될 수 있었다.

“멋진 팀이군요.”

“제 자랑스러운 동료들이죠.”

최승호를 비롯한 북파팀 팀원들은 곧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현재 북한은 ‘티라노트’라는 최흉의 존재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최고 통치자인 김정언과 핵심 간부들 역시 티라노트를 피해서 러시아에 체류 중인 상황이죠. 현재 티라노트는 인간들과 환수족들을 노예처럼 부려 자신의 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르의 말에 의하면 환수족들이 순순히 놈의 명령을 따르지는 않을 거라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티라노트는 몇 개의 수용소를 나눠 반항하는 환수족과 인간들을 가둬 놓고 끔찍한 고문과 협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 수용소가 바로…….”

최승호는 지도를 펼쳐 놓고 빠르게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그가 동그라미를 치는 위치가 바로 환수족이 갇혀 있는 수용소였던 곳이다.

“이렇게 여섯 곳입니다. 물론 현재도 더 늘어나고 있는 중이고요.”

“선화라는 분도 이 여섯 곳 중 한 곳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최승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탄스.”

“예? 예, 옙!”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때까지 멀뚱멀뚱하게 구경만 하고 있던 탄스는 윤수호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량을 준비해라. 환수족을 구출해 안전한 곳으로 이송할 수 있는 차량과 의약품, 식량을 준비해 놓도록.”

“예!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탄스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김세민이 다소 우려 섞인 모습으로 윤수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위원장님, 저 녀석을 신용해도 괜찮은 겁니까? 녀석은 몬스터입니다. 혹시 배신이라도 한다면…….”

“상관없습니다.”

윤수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놈은 지금 머릿속으로 저와 티라노트라는 녀석을 열심히 저울질 하고 있을 겁니다. 그 결과 저울이 티라노트라는 녀석에게 기울어져 배신을 하더라도 녀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지도에 표시된 수용소의 위치를 전부 암기한 윤수호가 문을 나서며 선언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이내에 모든 수용소를 정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포로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서둘러 준비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하, 한 시간요?”

“위원장님!”

다급하게 윤수호를 불렀지만 그와 미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위원장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허언은 아닐 테니 우리도 서둘러 준비하죠.”

“가장 많이 필요한 건 의약품과 식량입니다. 그것들 모두 북한에서 가장 부족한 물품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되는대로 긁어모아 봐야죠.”

“서두릅시다.”

치우팀과 북파팀도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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