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96화 (96/175)

96.

“위원장님이 직접 나서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가장 확실하니까요. 지금 북쪽에 많은 병력을 할애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에서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로 전쟁이 난다 하더라도 이길 자신은 충분히 있지만 귀찮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죠. 정부의 입장도 있고요.”

“참으로 현명하신 결단입니다.”

천호진은 윤수호의 결정을 적극 지지했다.

최악의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다. 그 전에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막말로 러시아나 중국과 싸운다고 윤수호가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면 확실히 한국에 대한 타국의 경계심은 지극히 높아질 터였다.

“그렇다면 수행원이 필요하겠군요. 적어도 위원장님께서 움직이실 때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수행원 말입니다.”

방대혁의 의견에 천호진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누가 있을까요?”

“음…….”

* * *

“그런 이유로 치우팀에서 지원자를 두 명 정도 뽑기로 결정했다. 혹시 지원자 있나?”

치우팀을 소집한 천호진은 윤수호와 함께 북한에서 임무를 수행할 두 명의 대원을 지원받았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올라오는 팔들.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지원하고 싶습니다!”

“서우주. 넌 인마, 러시아 출장 잡히지 않았냐?”

“러시아야 북한 갔다 오고 나서 가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는 선배야말로 조금 있으면 결혼기념일 아닙니까? 형수님이 과연 순순히 보내 주실까요?”

“괜찮아. 매 맞는 건 익숙하니까. 그보다 위원장님과 작전을 함께 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누군가는 중요한 업무를, 누군가는 가정의 평화를 두고 저울질 할 정도로 지원률은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치우팀의 팀장인 공승환마저도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렸다.

“공 팀장, 자네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 참……!”

천호진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먼저 당장 맡은 임무가 중요한 대원들을 제외시키고 남은 대원들 중에서 고민하기 시작한 천호진.

남은 대원들 모두 실력에 그다지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천호진은 전문 병과를 고려하여 두 명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선발된 두 명이 바로 김세민과 이정화였다.

“김세민 소령은 추격과 탐색 쪽에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인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정화 소령은 거점 구축과 인질 구출에 뛰어난 성적을 받은 대원이지요.”

“소령, 김세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위원장님.”

“소령, 이정화! 위원장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윤수호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수경례를 받은 윤수호는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뭐? 그래, 알았다.”

누군가의 보고를 받은 천호진은 전화를 끊고 심각한 얼굴로 윤수호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미르 양을 구출한 백골 부대가 북쪽에서 남하한 정체불명의 병력에게 습격을 받고 현재 고전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

* * *

아직 아침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어두운 DMZ의 숲을 감시하던 초소는 평소와 다름없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암……! 야, 좀 재밌는 얘기 없냐? 꼴릿한 얘기면 더 좋고.”

“이병, 한관우! 꼴릿한 얘기는 잘 모르지만 초콜릿은 있는데 좀 드시겠습니까?”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냐. 앞만 뚫어. 눈깔 돌아가는 소리 들리면 뒈진다.”

“이병! 한관우.”

그렇게 후임에게 감시를 떠맡긴 선임이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 위해 꾸벅꾸벅 졸던 그 시각, DMZ에 스며든 그림자들이 빠르고 은밀하게 초소를 향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림자들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고 은밀해서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재앙종을 감시하는 레이더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순간.

훅!

“헉……!”

서걱!

“응……?”

촤악!

검은 그림자가 초소를 덮치고, 붉은 핏물이 회색의 벽을 덧칠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군인들이 바닥에 누워 싸늘하게 식어 갔다. 식어 가는 시신을 무감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그림자들이 형상을 갖추었다.

그들은 주변이 정리되자 뒤늦게 도착한 그림자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추격대의 대장, 나달이었다.

“그 계집아이가 이곳으로 끌려왔다고?”

“그렇습니다, 대장.”

“찾아.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서 내게 데려와라. 그것만이 나와 너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

그림자들이 백골 부대 전체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백골 부대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기습 경보! 기습 경보! 현재 영내에 대기 중인 용사들은 전원 무장 후 집결할 것. 반복한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용사들은 전원 무장 후…….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무장을 마친 군인들이 침입자들을 향해서 총알을 갈기고 포탄을 쏟아부었다. 재앙종 레이더가 반응하지 않았으니 상대가 인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간인 줄 알았던 침입자들은 팔을 교차한 채, 두꺼운 털가죽과 오러로 몸을 보호하였다.

“쏴라!”

드르르르르르르르륵……!

소총뿐만 아니라 기관총의 무시무시한 화력으로도 침입자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폭발하는 화기의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왔다. 그 순간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촤악! 서걱! 으드득! 콰작!

여기저기서 피가 튀고 찢긴 살점이 난무했다. 머리가 뜯겨 나가고 조각난 내장이 허공에 흩어졌다.

일반 병사들로는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당연히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눈 먼 총알은 적들에게 닿지 않았다. 설령 운 좋게 닿는다 해도 그것뿐. 대미지를 입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침입자들이 군인들을 유린하는 가운데, 우리 군 역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대에 대기 중이던 특무대원들이 나선 것이다.

“가자!”

“놈들을 막아!”

우우웅!

하얗게 빛나는 오러를 두른 검을 들고 호기롭게 나선 특무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좇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그들의 움직임은 초인 그 자체였다. 그들이라면……! 그들이 나서 준다면 이 절망적인 상황을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한 희망은 어느 순간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푸욱!

“커헉!”

한 특무대원의 검을 간단히 피해 버린 침입자의 날카로운 손톱이 손쉽게 상대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등 뒤로 빠져나온 녀석의 손에는 아직까지도 주인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심장이 힘겹게 뛰고 있었다.

털썩…….

녀석이 가슴을 관통한 팔을 뽑자, 심장에 큰 구멍이 뚫린 대원의 주검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침입자는 마치 짐승처럼 아직도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을 단숨에 씹어 삼켰다.

“괴, 괴물……!”

아니, ‘짐승처럼’이 아니었다. 놈들은 정말로 짐승이 맞았다.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고 두 손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생김새와 꼬리는 의심할 여지없는 짐승이 맞았다.

문제는 쥐처럼 생긴 짐승 인간들조차 어지간한 특무대원들을, 말 그대로 유린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북쪽 인간들은 뼈만 남아서 고기 맛이 별로였는데 남쪽 인간들은 살결도 야들야들하고 고기도 토실토실하구나.”

“누가 아니래. 하루 빨리 남쪽 인간들도 먹어 치우고 싶구먼.”

“그러려면 하루라도 빨리 그 환수족 계집년을 가져다 대왕께 바치는 수밖에. 서둘러라. 늦으면 늦는 만큼 우리 목숨도 위험…….”

촤악!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한 명의 인간이 팔을 휘두르자 동료의 머리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툭!

쥐새끼처럼 생긴 침입자의 머리는 몸통과 분리되고 나서도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여전히 비웃음이 가득한 상태였다.

“보고 좀 한다고 후방 부대에 다녀오는 사이에 설마 이런 일이 생겼을 줄은…….”

여진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재앙종 출현 이후, 최전방 부대의 통신이 다소 불안정한 탓에 중요한 보고가 있으면 비교적 통신이 안정적인 후방 부대에 다녀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번 미르 인계 건 때문에 잠시 후방을 다녀오는 사이, 설마 이런 일이 생겼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던 것이다.

‘아니, 짐작하긴 했지. 하지만 설마 막무가내 식으로 이렇게 빨리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거지만.’

여진우는 북한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당연히 던전의 출현을 알지 못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북한군 혼자서 이런 미친 짓을 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들이 북한군과 전혀 관련 없는 제3의 병력들이란 사실이었다.

“일단은…….”

여진우의 눈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참혹한 광경이 들어왔다.

자신의 편안한 안식처였던 부대가 불에 타 오르고, 친하진 않아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던 장병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었다.

“숫자를 좀 줄여야겠지?”

팟!

여진우는 차갑게 타오르는 분노를 두 자루의 대거에 담아 빠르게 움직였다.

슉…… 촤악! 촤악!

안광을 번뜩인 여진우가 진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침입자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무대 알터 대원들을 상대로도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 주던 짐승 인간들이 여진우의 공격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190cm 장신에 2m가 넘는 매우 긴 리치를 가진 여진우의 가늘고 단련된 팔이 낭창낭창 채찍처럼 휘둘러질 때면…….

촤악! 서걱! 푸화학!

짐승 인간들조차 몇 합 받아 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게 부지기수였다.

“다들 조심해!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거리를 두지 마라! 놈에게 거리를 주면 오히려 당한다!”

“조심하면? 거리를 좁히면 결과가 달라지나?”

여진우는 적들에게 이죽거렸다.

그래, 녀석들의 말처럼 치우팀에서조차 중거리 최강을 자랑하는 자신이, 근거리에서는 꽤나 강한 특무대원들을 상대로도 고전할 만큼 병신이란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 이야기.

‘됐어! 접근했…….’

콰앙!

동료들의 희생 덕분에 가까스로 여진우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개 대가리가 폭발했다. 원인은 여진우의 팔꿈치였다.

“우리 고블린 스승님께서 그러더라고. 팔꿈치는 장식이냐고. 죽어서 국 끓여 먹으려고 놔두는 거냐고.”

엘도라드에게 목숨을 걸고 혹독한 훈련을 받은 여진우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이제는 타고난 유연성과 근섬유를 이용해서 원심력으로 팔꿈치를 휘두르는 그였기에 이제는 근접전조차도 중거리와 비견되거나 그 이상으로 무서워진 것이다.

그렇게 여진우의 등장으로 조금씩 특무대가 기세를 타기 시작하던 그 순간.

“소란이 길구나. 아직도 정리가 끝나지 않은 것이냐.”

“대, 대장!”

나달의 등장에 그때까지 싸우고 있던 짐승 인간들이 한껏 긴장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 모습에 여진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이 이들의 대장이라고. 놈을 쓰러트리면 이 개 같은 상황도 끝날 거라고…….

상황 판단을 마친 여진우는 나달을 향해서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였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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