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94화 (94/175)

94.

한창 희망동 농경지 개척 사업에 집중하고 있던 윤수호가 오랜만에 특무대 총사령부를 방문했다.

천호진의 직접적인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총사령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위원장님, 희망동 복지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 곧바로 장소를 이동했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특무대 부속 병원에서도 VVIP들이나 그에 준하는 인물들이 사용하는 비밀 병동이었다.

이곳은 극히 소수의 허가받은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만큼 윤수호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의료진과 경호팀 외에 별다른 사람을 만나 볼 수 없었다.

“이곳입니다.”

“저 아이는…….”

윤수호는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다.

하얀 침대에 누워 최첨단 의료 기기의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는 한눈에 봐도 평범한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머리 위에 돋아나 있는 사슴뿔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머리에 사슴 같은 뿔이 있군요.”

“MRI 촬영 결과, 놀랍게도 저 뿔은 장식이 아니라 실제 소녀의 뿔이었습니다. 또한 겉모습은 인간과도 비슷하지만 내장 구조나 근육, 골격 등에서 상당 부분 다른 차이점이 발견되었지요.”

“새로운 형태의 재앙종일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글쎄요. 지금으로선 확답하기 어렵지만 재앙종과도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심장에 재앙종의 핵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 물질을 가지고 있더군요.”

“에너지 물질요?”

“예, 지금까지 저희가 수집한 그 어떤 재앙종의 핵과도 성질이 전혀 다른 미지의 물질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소녀의 정체는 의문투성이란 뜻이었다.

“저 아이를 어디서 발견한 겁니까?”

“치우팀 여진우 소령이 최전방에서 근무 중 DMZ에서 소란이 난 것을 감지하고 출동해 구출했다는 모양입니다.”

“소란요?”

“예, 여 소령의 보고에 따르면 소녀는 네 명의 추적자들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그 추적자들의 정체 역시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여 소령이 샘플로 가져온 시신이 있는데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호진은 그와 함께 추적조원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로 이동하여 시신을 확인하였다.

인간과 짐승이 교묘하게 융합한 것 같은 시신의 모습에 윤수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혹시 이 시신에 대해 아시는 정보라도 있으십니까?”

천호진은 윤수호가 시신을 보고 바로 반응을 보이자 기대감을 가졌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제가 알고 있는 코볼트라는 인외종 몬스터와 생김새가 매우 흡사하군요.”

“코볼트요?”

“예, 사람과 개를 반쯤 섞어 놓은 듯한 몬스터인데 이것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코볼트는 훨씬 덩치가 작았습니다.”

일반적인 코볼트의 신체가 10~13세 아이의 덩치 정도라면 누워있는 시신의 체격은 성인에 필적했다.

그만큼 육체의 강도도 훨씬 뛰어나서 윤수호가 보기에 만약 놈이 살아 움직였다면 최소한 코볼트의 열 배 이상의 전투력을 가졌을 거라 확신했다.

“만약 위원장님의 말씀처럼 재앙종이 아니라 몬스터라고 하는 던전에서 발생한 재액이라고 한다면 그 소녀도…….”

천호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만약 소녀의 정체가 몬스터라고 한다면 치료보다는 말살을 택하는 게 정답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가 이 녀석들에게 쫓기고 있었다고 하셨죠?”

“여 소령의 보고로는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확답할 수 있는 게 없군요. 적어도 저 아이가 일어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시 병실 앞으로 이동한 윤수호는 이번엔 직접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입장했다.

‘이건…….’

그 순간, 너무 미약해서 병실 밖에선 느낄 수 없었던 기운이 윤수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기운의 출처는 소녀였다. 너무나도 미약해서 지금 당장 후하고 불면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피어올랐지만 그 기운은 분명 윤수호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게 윤수호가 소녀에게 다가간 순간.

“……!”

때마침 어슴푸레 눈을 뜬 소녀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환경을 확인하고는 눈을 부릅뜨며 날뛰기 시작했다.

와장창 우당탕!

“뭐, 뭐야?”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취제를 투입할까요?”

꽂혀 있던 링거와 산소 호흡기, 심박 측정기 등, 몸에 붙은 모든 것을 우악스럽게 잡아 뗀 미르가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구석으로 달려갔다.

“크르르르……!”

어느새 모여든 의사들과 무장한 특무대원들을 보며 짐승처럼 경계하는 미르. 그 모습이 누가 보기에도 잔뜩 겁에 질린 듯하여 쉽게 접근하기도, 달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때였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가능하면 저 친구와 저, 둘만 남고 싶군요.”

“위원장님?”

“부탁드리죠.”

윤수호의 정중한 부탁에 천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을 비롯하여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물렸다.

저 소녀가 윤수호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사실 윤수호가 해결할 수 없는 해코지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별반 큰 도움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자리에는 윤수호와 미르, 단둘만 남게 되었다.

물론 둘만 남았다고 해서 미르의 경계심이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다가오면 물어뜯어 버리겠다는 의지를 아직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윤수호도 섣불리 미르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더 효과적인 것을 보여 주었다.

우우웅…….

윤수호의 몸에서 신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평소 그가 사용하는 내공이나 자연지기가 아닌, 전혀 다른 성질의 기운이었다.

윤수호는 이 세상에 돌아와서 딱 한 번 이 기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바로 8급 재앙종의 갈비뼈를 손질할 때 천부강기를 일으키며 운용했던 기운이 바로 이 기운이었던 것이다.

그의 몸에서 신묘하고 영험한 기운이 흘러 주변을 가득 채우자 그때까지 잔뜩 날이 서 있던 미르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그러더니 경악에 물든 미르는 윤수호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라 외쳤다.

“어떻게 인간이 그 기운을 다룰 수 있는 것이냐?”

“보아하니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는 아닌 것 같군.”

윤수호는 기운을 갈무리한 뒤 소녀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어떻게 인간인 네가 그 기운을 다루는 것이냐? 어서 설명하지 못할까!”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앙칼지게 덤벼드는 미르의 모습에 윤수호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나보다 순도는 떨어지지만 네 몸에서 피어오르는 그 기운은 의심할 여지없이 선기(仙氣)가 확실하다. 그런데다 머리에 기묘한 뿔까지 달려 있고…… 너, 뭐 하는 녀석이야?”

“나, 나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길 꺼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미르.

그런 미르의 모습을 윤수호는 충분히 이해했다.

‘쫓기던 와중에 구사일생으로 발견되었다고 했으니 아직 의심이 가득할 수밖에. 하는 수 없지.’

“그럼 내 소개부터 먼저 하지. 나는 천부공의 36대 계승자, 윤수호라고 한다.”

“처, 천부공? 지금 천부공이라고 했어?”

“호오, 천부공에 대해 아는 모양이지?”

“그야 당연하지! 하지만 말도 안 돼……! 천부공은 이미 오래전에 실전됐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선계에서조차 전설로만 전해진다고……!”

혼란스러워하는 미르의 혼잣말 속에서 윤수호는 몇 가지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환수족? 그게 너희 종족의 이름이야? 실전되었다는 건 이 세상에도 천부공이 존재했다는 뜻인가?”

“응? 천부공을 알면서 환수족은 모른다고? 게다가 이 세상에도 천부공이 존재했다니? 그게 무슨……?”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서로에게 증폭되어 가는 호기심과 의문에 윤수호는 마침 한쪽에 준비되어 있던 의자를 허공섭물로 당기며 미르에게 제안했다.

“아무래도 서로에게 알아야 할 정보들이 많은 것 같은데, 편하게 얘기할 생각은 없어?”

“…….”

미르는 말없이 걸어와 침대에 앉더니, 자신의 돌발 행동 때문에 엉망이 된 침구를 묵묵히 정돈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윤수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

“뭐, 뭐 하는 짓이냐?”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쪽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나한테 조카가 둘이 있거든? 한 명은 여자애고 한 명은 남자앤데, 남자애가 너 만했을 때도 이렇게 귀여웠을까 싶네.”

“나, 난 환수족의 나이로 쉰 살이 넘었다! 애 취급하지 마라!”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환수족의 나이로 쉰 살이면 인간 나이로도 많이 먹은 건가?”

“…….”

미르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으니 뚱한 얼굴로 묵언을 고수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윤수호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그나저나 아까 질문을 찬찬히 이어서 하자면 환수족이 정확히 뭐지?”

“보면 볼수록 신기하군. 천부공을 알면서 환수족을 모른다니…… 하여튼 모른다고 하니 가르쳐 주지. 환수족은 선족이 살아가는 선계(仙界)와 인간이 살아가는 인계(人界) 사이에 존재하는 환계(幻界)의 주민들이다.”

“환수족들은 전부 너처럼 머리에 뿔이 돋아나 있는 건가?”

“이 모습은 너희 인간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둔갑한 모습일 뿐, 진짜 우리의 모습은 따로 있느니라.”

“진짜 모습? 혹시 보여 줄 수 있을까?”

“뭐,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러기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선기가 너무 부족하구나. 선기만 충분했다면 이런 상처 따위 금방…….”

덥석.

그 순간, 분해하는 미르의 손을 덥석 잡은 윤수호.

“가, 갑자기 뭐 하는……!”

우우웅!

미르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지만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윤수호의 몸에서 흘러나온 선기가 자신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이건……!’

미르는 순식간에 황홀경에 빠졌다. 이처럼 순도 높은 선기는 환계에서도 접하기 힘든 탓이다.

‘아니, 이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순도의 선기는 선계에서조차 접하기 힘들다. 대체 이자는……!’

순도 높은 선기를 흡수한 미르의 부상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윤수호 또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선기를 흡수하자마자 이렇게 빨리 회복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이 정도면 거의 재생인데?”

“그야 당연하지. 선기를 접할 기회가 없는 인간과 달리, 우리 환수족들은 선계와 맞닿은 환계의 주민들이다. 그만큼 선기에 대한 적응과 흡수율은 인간들과 차원이 다르니라. 보답이라고 하긴 뭣 하지만 그대가 궁금해하는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하지.”

침대에서 일어난 미르의 몸이 옅은 빛으로 물들자 잠시 후, 둔갑을 벗어 던진 소녀의 본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검신이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