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91화 (91/175)

91.

“그래서 정말로 쌍룡회를 삼키셨다고요?”

“예, 그런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

왕명은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홀짝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하는 윤수호를 보며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들으면 동네 딱지치기에서 딱지 좀 딴 줄 알겠지만 윤수호가 집어삼킨 것은 딱지가 아니라 쌍룡회다.

하남성의 암흑을 지배하는 쌍룡회. 그들을 단 며칠 사이에 수중에 넣은 것이다.

“본디 세상이 약육강식이라지만 암흑가처럼 강자존이 철저하게 통용되는 곳도 드물죠. 그들에게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지배할 것인가, 복종할 것인가. 그걸 잘 선택할 수 있는 녀석들은 오래 살아남고 아니면 일찍 죽어 버리죠. 일반인의 몸으로 쌍룡회 회주 자리에 오를 정도면 뭐…… 오히려 당연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죠?”

“부럽네요. 그런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하실 수 있는 그 압도적인 능력이 말입니다.”

“가진 그릇이 다를 뿐이죠. 실제로 정보 면에서는 제가 왕 요원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왕 요원님의 능력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윤수호의 능력은 자신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왕명은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을 내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왕 요원님께는 저와 쌍룡회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 있으면서 쌍룡회까지 신경 쓰기는 어려우니까요.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평주홍에게 얘기는 해 두었으니 쌍룡회의 전력이나 인력이 필요하실 땐 언제든지 편하게 끌어다 사용하시면 될 겁니다.”

“누구 말씀인데 거절할까요.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왕명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장에서도 쌍룡회라는 거대 전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무력이 부족한 정보 조직 입장에서 큰 메리트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머지 팔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위원장님.”

“글쎄요. 지금 당장은 희망동의 일이 급선무고 쌍룡회의 자본만으로도 부족한 자금은 충분히 조달할 수 있어서 말이죠. 당장은 묵혀 두도록 하죠.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되니까.”

“만약 그들이 그사이에 어떤 대응책이라도 강구하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겠네요.”

윤수호는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자 왕명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군요. 제가 다른 분도 아니고 괜한 걱정을 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걱정해 준다는 건 언제라도 기분 좋은 일이니까요.”

“바로 귀국하실 예정이십니까?”

“그래야죠. 벌써부터 어머니 김치찌개 금단 현상에 손이 덜덜 떨리거든요.”

“그렇게나요?”

농담을 듣고는 피식 웃는 왕명에게 윤수호는 악수를 건넸다.

“한국에 돌아오면 연락하십쇼. 그때 제 말이 참이었는지 거짓인지 증명할 테니까.”

“안녕히 가십쇼, 위원장님. 저도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윤수호는 왔던 것처럼 돌아갈 때도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하늘을 날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 * *

윤수호가 중국에서 돌아오고 몇 주의 시간이 흐른 북녘 땅.

지금은 분단된 옛 우리의 땅에는 현재 미묘한…… 그러나 확실히 위험하고 불길한 분위기가 팽배하게 넘쳐흐르고 있었다.

“후욱, 후욱……!”

“하아, 하아……!”

스팟!

한 사내와 한 여인, 그리고 한 소녀가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며 산길을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앞서 달리는 사내의 주변에서는 풀잎 밟는 소리, 나뭇가지에 옷이 긁히는 소리 등, 온갖 잡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뒤 따르는 소녀에게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조차 나뭇잎을 스치면 소리가 나는 법인데 사내는 무슨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뒤따르는 여인의 머리 위에는 여우처럼 쫑긋한 귀가, 소녀의 머리 위로는 작은 사슴뿔이 돋아나 있었다는 것이었다.

머리띠라도 두른 것일까 싶었지만 그런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아무래도 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세요.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여우귀의 여인은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사내를 애타게 잡아끌었지만 사내는 그런 여인의 손길을 뿌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저까지 함께 간다면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 버리게 될 겁니다. 제가 여기서 놈들을 1분…… 아니, 1초라도 막아 보겠습니다. 그러니 선화 씨는 반드시 약속한 장소로 가셔서 남측 특무대에 도움을 구하세요.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승호 씨는요?”

그때였다.

저 멀리서부터 성난 인기척과 추적자들의 기분 나쁜 바람 소리가 가까워 오자 최승호는 다급하게 두 사람을 밀어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요!”

“……죄송해요! 꼭 구하러 올게요.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 계셔야 해요!”

그에 선화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소녀의 손을 꼬옥 쥐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최승호의 보폭에 맞춰 주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두 사람의 모습은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최승호는 옅은 미소를 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좋은 여자였는데 결국 데이트 한 번 못 해 보고 골로 가게 생겼네. 끄응…… 하는 수 없지. 그럼 나도 하던 일마저 해 볼까? 특근 수당은 나오려나, 이거.”

어느새 그의 눈앞에 나타난 추격자들.

전원 검은 두루마기를 깊이 눌러 쓰고 있어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사악한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산천초목을 떨게 했다.

물론 그 기운의 위협에서 최승호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덜덜 떨리는 손을 주먹 쥐며 참아 낸 그가 오러를 피워 올리며 주먹을 들었다.

“길게도 부탁 안 할게. 딱 1분만 이 형이랑 놀아 주면…….”

스걱! 깡!

그 순간, 날카로운 기운이 섬뜩하게 공간을 가로지르며 최승호의 목을 베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팔을 교차해 검기를 막아 냈다.

검기를 막아 낸 팔은 잘리진 않았지만 깊은 상흔이 남아 붉은 핏물이 많이 꽤나 많이 배어 나왔다.

그럼에도 최승호는 팔을 내리며 웃었다.

“안 되겠냐?”

“…….”

추격자들의 중심에 서 있던 존재는 그런 최승호를 지켜보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는 사냥감을 쫓아라. 이놈은 내가 처리하지.”

“예, 형님.”

추격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가자 최승호가 빠르게 움직여 그들을 막아섰다.

“어딜……!”

하지만…….

“네 상대는 나라고 분명 얘기했을 텐데?”

“……!”

최승호는 어느 순간 기척도 없이 코앞으로 접근한 존재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놈이 움직여 자신의 지척에 접근할 때까지도 놈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승호는 망설임 없이 놈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지만 추격대의 대장은 가볍게 고개만 틀어 그의 주먹을 피하더니…….

덥석.

그의 팔목을 붙잡아 남은 주먹으로 그의 전신을 무자비하게 난타하고선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커헉!”

몇 개의 아름드리나무를 부러트리며 날아간 끝에 바닥에 처박힌 최승호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과 함께 핏물이 터져 나왔다.

“끄응…….”

“재밌군.”

분명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대미지를 주었다. 그런데 최승호는 죽지 않은 것으로도 모자라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곳에 현세해서 저 정도로 강한 투지를 보여 주었던 전사는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자신들의 힘을 깨닫고 나면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거나 도망치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듣자하니 네놈은 이곳 태생도 아니라고 들었다. 그런 네놈이 이렇게 목숨 바쳐 싸우는 이유가 뭐지?”

처음으로 최승호에게 호기심이 생긴 대장이 묻자 최승호는 피식 웃으며 머리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아 냈다.

“나라고 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겠냐? 이게 내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지.”

“궁금하군. 어떻게 하면 네 녀석의 그 알량한 의지를 꺾을 수 있을지 말이야.”

퍽!

다시 한 번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거리를 좁힌 대장의 주먹이 최승호의 복부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그러자 답답한 숨과 함께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최승호를 대장이 부하에게 건네자 부하가 그를 어깨에 걸쳐 멨다.

“이 녀석을 챙겨 둬라. 뒤쫓던 녀석들은 어떻게 됐지?”

“그게 워낙 날쌘 놈들이라 잡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한심한 놈들…….”

대장은 혀를 차더니 직접 선화와 소녀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자신이라면 충분히 두 사람을 쫓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의 계획은 조금씩 틀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실패의 기미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망치기로 작정한 선화를 쫓는 건 아무리 그라도 힘들었던 것이다.

‘이건 계산 착오군. 설마 그년에게 그런 재주가 있었을 줄은…… 설마 지금까지 감춰 두고 있던 건가? 우릴 방심시키려고?’

“대장, 어떡하죠?”

“인간들의 방송을 통해 이 인간 놈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그년에게 알려 줘라. 이만한 재주를 가지고도 인간 남자를 챙기느라 궁지에 몰렸던 년이다. 분명 둘 사이가 꽤나 특별할 터. 이 녀석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냥 있지는 않겠지.”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부하들이 최승호를 이끌고 사라지자 추격대 대장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빛났다.

한편 최승호를 두고 소녀와 함께 도망친 선화는 그와 약속한 장소를 향해 필사적으로 이동하였다.

지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가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적들이었다.

“후욱, 후욱……!”

적들의 눈을 피해 한참을 돌아가려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지체된 상황.

그러나 면밀히 주위를 살피면서 은밀하게 이동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약속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됐어요. 아가씨, 이제 저들에게 도움을 구해 남쪽으로 도망칠 수 있다면 당분간 안전할 거예요.”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아가씨?”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망설이는 소녀를 바라보는 선화의 눈빛에 불안함이 맴돌았다.

“정말 나 혼자만 이렇게 도망쳐도 되는 걸까? 날 지키려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어. 그놈을 두고 나 혼자 뻔뻔하게 도망쳐도 되는 걸까, 선화?”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그 이상의 분노가 눈빛에 담기지 못해 밖으로 흘러 나왔다.

선화는 그런 소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도 소녀와 함께 그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까.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그 끔찍한 참극을 말이다.

“그러니까 도망치셔야죠. 힘을 기르셔야죠. 도움을 구하셔야죠. 아가씨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세요. 아가씨가 지금 그 마음을 풀고 싶다면…… 그건 아가씨가 도망칠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도와준 동족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바람을 이뤄 주는 것뿐이니까요.”

“……응!”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거칠게 훔친 소녀가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각오 섞인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선화가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때마침 건물에서 사람이 나왔다.

“아…….”

그에 소녀가 반색하며 뛰어가려던 순간, 선화의 낯빛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검신이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