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같은 시각.
중국 신장 지역과 감숙성의 경계, 우돈이라는 마을의 폐병원에서 묘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1701의 상태는?”
“여전히 순조롭습니다. 역대 샘플들 중에서도 면역 수치, 반응, 세포 활성도, 변이 안정성 등에서 가장 높은 안정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군.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지 마. 그러다가 갑자기 돌발 변이가 일어났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꼼꼼하게 체크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보고하고.”
“예, 박사님.”
연구원들에게 꼼꼼하게 지시를 내린 박사, 견모항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최근 갑자기 진행된 연구 진도에 맞춰 일주일 가까이 잠을 못 잤더니 가끔은 걸으면서도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러다 쓰러지면 누구도 이 연구를 책임질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하려는 것이다.
그는 방으로 향하면서 슬쩍 연구동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마치 비커에 가득 찬 알코올에 담긴 개구리처럼 수많은 실험체들이 정신을 잃은 채 둥둥 떠 있었다.
문제는 그 실험체들이 전부 인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웨엥웨엥!
-실험체 2794 이상 발생. 실험체 2794 이상 발생.
그때였다.
갑자기 경보가 울리더니 2794라는 번호표가 적힌 실험관 하나가 급하게 열렸다.
푸화학!
그 안에 담겨 있던 녹색의 용액들은 전부 쏟아져 나왔으며 당연히 용액에 담겨 있던 남자도 덩달아 밖으로 쓰러졌다.
문제는 그 후였다.
덜덜덜덜……!
실험관 안에서는 죽은 시체처럼 가만히 있던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 이후부터는 간질 환자처럼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입에서 거품을 게워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장 마취제랑 안정제 투입해!”
“틀렸습니다! 세포 변이가 멈추질 않습니다!”
의사들이 다급히 특수 마취제와 안정제를 투입했지만 소용없었다.
남자의 발작은 더욱 심해졌고 이내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며 갈라진 피부 틈으로 핏물 섞인 진물이 흘러나왔다.
“전원 물러서!”
결국 연구원들은 실패를 직감하고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들이 물러선 자리를 군인들이 대신했다.
다만 군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군인들은 총구를 남자에게 겨누며 언제든지 사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특무공안은 뽑아든 무기에서 오러를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크아아아아아!”
사내의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눈이 뒤집히며 그의 몸에서 갑작스러운 이변이 발생했다.
사람의 피부를 뚫고 나온 것은 두꺼운 이형의 가죽이었으며 170cm가 안 됐던 그의 육체가 단숨에 2m를 넘어선 것이다.
빼빼 말랐던 체형은 어디가고 근육이 붙은 그의 몸뚱이는 바위보다 단단해 보였다. 날카로운 발톱은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연구소 바닥이 긁혀 나갈 정도였다.
무엇보다 인간들을 증오하는 붉은 눈동자는 그야말로 재앙종의 그것이었다.
그랬다.
남자는 순식간에 재앙종으로 변모한 것이다.
“군은 연구원들의 보호를, 폐기물은 우리가 처리한다.”
이 자리의 책임자로 보이는 특무공안의 팀장이 지시를 내리자 군인들도 익숙하게 연구원들을 피난 유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재앙종의 상태도 꽤나 이상해 보였다.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혹은 자신이 인간인지, 재앙종인지 구별조차 불가능한 것인지 뭐가 됐든 혼란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팀장과 그를 따르는 특무공안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죽여라.”
푹푹푹! 서걱! 콰드득!
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팀원들의 검이 재앙종이 된 남자의 몸통을 찌르고, 팔다리를 베었다.
쿵…….
그 사이, 마무리로 팀장이 그의 목을 치자 재앙종으로 변한 남자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래도 요즘은 폐기물 처리가 쉬운 편이네요. 예전에는 변이하자마자 날뛰는 바람에 귀찮기 짝이 없었는데.”
“그만큼 이성을 유지하는 비율과 시간이 늘어났다는 뜻이겠지. 당의 목표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견모항은 특무공안들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흥! 당의 목적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번 연구만 성공하면 나는 알터 이외에 새로운 형태로 인간을 초월시킨 최초의 과학자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겠지. 지금의 어리석은 인간들이 신(神)이라 떠받드는 그 존재처럼……!’
연구의 완성이 가까워질수록 견모항의 광기도 조금씩 커져만 갔다.
그러나 이 연구의 총괄 책임자인 견모항도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연구의 키 카드이자 절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거라 확신했던 실험체 번호 1701의 눈꺼풀이 조금씩 움찔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 * *
“제법 괜찮은 곳에서 사는군.”
가우창의 모습으로 쌍룡회주 평주홍의 비밀 저택을 찾아온 윤수호.
하남성에서도 험준하기로 소문난 매룡산 깊숙한 곳에 숨겨진 평주호의 사택은 위성으로도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이 근처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기에 허락받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오면 일단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 불청객이 특히나 요즘 핫한 홍룡회의 무복을 갖춰 입고 단신에다가 왼쪽 눈에 흉터가 있는 사내라면 더 더욱 말이다.
-생각을 바꾸셨다고요?
“예, 생각해 보니 적금을 그냥 깨는 건 좀 아쉽겠더라고요. 묵혀 두고 이자만 뽑아먹는 게 더 낫지 싶어서요.”
-과연 쌍룡회주가 쉽게 굴복할까요? 죽었으면 죽었지 입장 상 누군가에게 쉽게 굴복할 성격은 아니던데…….
“그건 걱정 마세요. 그런 놈들에 관해서는 제가 더 전문가니까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그럼 일이 끝나는 대로 연락…….
뚝!
왕명과의 무선통화가 강제로 끊긴 이유는 전파방해 구역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기서부터는 누구의 도움도 구할 수 없고 연락도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윤수호는 오히려 입꼬리 한쪽을 뒤틀어 웃으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급할 것은 없었다. 복수자면 복수자답게 상대방이 느낄 공포와 불안을 그저 음미하면 그만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외길을 따라 양옆으로 조성된 우거진 수림 사이로 수많은 인기척들이 자리를 잡는 게 느껴졌다.
‘제법이네.’
살기를 지우고 조용히 접근하는 기색이 제법 혹독한 훈련을 거친 티가 역력했다.
그 순간.
팟!
그야말로 전광석화. 순식간에 양옆에서 튀어나온 자객들이 윤수호의 사방을 에워싸며 덮쳐들었다.
그 숫자만 무려 일백!
게다가 평범한 알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그들의 몸놀림은 특무대의 팀장급과 비교해도 결코 꿇리지 않았다.
멀었던 거리가 순식간에 지워지고, 자객들의 날붙이가 윤수호의 몸을 관통한다.
아니, 관통하는 듯 보였다.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걸리적거린다. 비켜.”
마치 파리를 내쫓듯 팔을 휘적였다. 팔의 궤적을 따라 바람이 인다. 바람은 강기를 휘감고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퍼져나간 바람은 이윽고 폭풍이 되어 사방을 휘감았다.
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폭풍이 될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그 이론을 지금 윤수호는 스스로의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단순한 손짓 한 번에 일렁인 바람이 폭풍이 되어 백여 명이 넘는 자객들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비명도 없었고 한탄도 없었다. 그런 것들을 내지를 시간에 몸이 분쇄되기 더 바빴다.
쏟아져 내리는 피와 육편들을 뒤로한 채 윤수호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무릉도원이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평주홍의 사택에 도착할 때까지 그와 같은 기습을 셀 수조차 없었다.
덕분에 그가 지나온 길은 피와 시체로 가득했지만 윤수호의 옷은 처음처럼 깨끗했다.
“학습 능력이 없는 녀석들인가? 아니면,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가?”
윤수호는 눈앞에 모여 있는 10만의 병력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이야말로 쌍룡회의 전력이었던 것이다.
“뭐, 처음부터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윤수호가 그 많은 목숨을 취하고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손을 까드득 거리며 풀자 10만의 병력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등장하였다.
쌍룡회주 평주홍이었다.
“네놈……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평주홍은 형용할 수 없는 울분을 담아 윤수호에게 소리쳤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홍룡회의 멸망을 부추긴 것도 모자라 홍룡회가 멸망했을 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홍룡회의 복수를 하겠다고? 대체 네놈의 목적이 무엇이냔 말이다!”
발악에 가까운 평주홍의 외침에 윤수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대륙의 암흑을 지배하는 일각의 군주께서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그, 그게 무슨……?”
그 순간!
콰우우우우우!
쿠르릉…… 콰쾅!
윤수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터져 나왔다. 단순히 기세를 뿜어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광포한 폭풍 같은 기세는 흡사 용처럼 윤수호의 주변을 휘감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그 탓에 먹구름이 드리우며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하늘이 뇌성벽력으로 고통에 찬 신음을 대신했다.
“허억……!”
“대, 대체 무슨…….”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그 인간을 초월한 신위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자 거기 모인 10만 명의 얼굴이 똑같이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물들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이곳에 모인지도 이미 망각해 버린 듯했다.
“중요한 건 내 정체가 아니야. 너희들의 선택이지. 홍룡회는 내 뜻에 반하는 선택을 했다. 고로 멸망했다. 너희들의 선택은 무엇이냐? 멸망이냐? 굴복이냐?”
우우우우웅……!
윤수호는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오른손에 압축하여 우편에 존재하던 봉우리를 향해 쏘아 보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크윽……!”
압축된 기탄이 봉우리와 충돌하며 폭발하자 눈부신 빛이 봉우리를 하나를 통째로 집어 삼켰다.
10만의 길드원들은 터져 나오는 후폭풍과 충격파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자세를 낮추고 기운을 끌어 올려야만 했다.
그렇게 충격파가 사라지고 빛이 사그라들자 그곳에 더 이상 봉우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멸망을 원한다면 저것처럼 깨끗하게 지워 줄 수도 있다. 선택은 네 몫이다, 평주홍.”
“아아…….”
털썩…….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린 평주홍은 무릎을 꿇고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윤수호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경외심만이 가득했다. 더 이상 그의 진의도, 정체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따져 묻기엔 자신들이 눈앞의 존재에 비해 너무나도 처량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이란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우리는 그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손오공이었구나…….’
강자존.
이들의 세상에서 약자는 복종하고 강자는 취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눈앞에 항거할 마음조차 밟아 버리는 절대 강자가 출현했으니 자신들의 선택은 한 가지뿐이었다.
굴복. 그리고 복종…….
모든 것을 버리고 신과 같은 대적자에게 덤벼들 마음도, 그럴 이유도, 그럴 대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저희들을 가엽게 여겨 주신다면 대인께서…… 아니, 주군께서 하시는 모든 명령을 목숨 걸어 받들겠나이다.”
그 자리에 모인 10만의 길드원들 중, 누구 하나 평주홍을 탓하는 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모두가 수긍했다.
만약 거기서 평주홍이 미처 공격이라도 지시했다면 그의 목부터 땄을 지도 모른다.
신이나 다름없는 대적자의 목을 따느니 평주홍의 목을 따 윤수호의 분노를 달래는 게 더 쉬울 테니까.
그만큼 이들은 윤수호에게 차원이 다른 힘의 격차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녀석들이야말로 압도적인 힘과 두려움 앞에서는 쉽게 굴복하는 법이지.’
윤수호는 그렇게 돈줄이 마를 일 없는 든든한 통장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