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쌍룡회의 하남성 송실 지부.
“가, 가까이 오지 마!”
서걱!
“살려 주세요, 제발! 저 없으면 집에 노모와 처자식 모두 굶어…….”
콰직!
“괴, 괴물이다!”
으드득!
송실의 어둠을 지배하던 쌍룡회 산하 어천 길드의 건물이 지옥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원인은 단 한 명의 침입자.
몇 분 전.
가타부타 말도 없이 길드의 입구에 나타난 침입자는 가장 먼저 그를 가로막은 대문을 부수고, 무장한 채 달려온 길드원들을 맞이했다.
콰우우우우우!
짐승처럼 구부린 손가락을 휘두르자 손가락 끝에서 날카로운 광풍이 휘몰아쳤다.
광풍은 삽시간에 몰려든 길드원들을 집어삼켰고 이내 찢어발기며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이내 수많은 현대화기까지 동원되어 불을 뿜었지만 소용없었다.
총알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든, 포탄이 무수하게 날아들든 윤수호의 살갗 하나, 머리털 하나, 옷깃 하나 상하게 하지 못했으니까.
그에 대응하여 윤수호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마치 귀찮은 파리를 내쫓는 모양처럼 손을 휘젓자 엄청난 강기가 풍압을 타고 날아가 걸리는 것은 모조리 부수고 파괴하였다.
“당장 놈을 막아!”
“우리는 쌍룡회다! 여기서 물러서는 놈들은 다 죽을 줄 알아!”
그들은 쌍룡회라는 자존심과 상부의 명령에 반은 자의, 반은 강제적으로 윤수호에게 덤벼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날파리 같은 것들. 지겹게도 몰려오는구나.”
과연 중국이라고 해야 할까? 고작 일개 지방의 지부 하나일 뿐인데 달려드는 길드원들의 숫자는 오백 명을 가볍게 넘어섰다.
한국에서는 대형 길드에서나 볼법한 전력을 여기서는 일개 지방의 지부 한 곳이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그것은 시체의 숫자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들 위로 또다시 시신이 켜켜이 쌓여 간다.
윤수호가 입고 있던 옷도 마찬가지였다.
백의의 무복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색이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등과 가슴을 장식한 붉은 용뿐이었다.
붉은 용은 피를 머금은 탓인지 오히려 처음보다 더 붉은 색이 선명해진 듯싶었다.
“너, 너는……!”
때 아닌 난리에 부리나케 뛰쳐 내려온 숭실의 지부장 안풍은 윤수호를 발견하고 기겁했다. 정확히는 그가 입고 있는 복장 때문이었다.
순백의 무복에 등과 가슴에 그려진 붉은 용의 문양.
그것은 다름 아닌 홍룡회 길드원들의 정복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미친놈이 저 옷을……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 아니라면 또 모를까. 자, 잠깐 작은 키에 왼쪽 눈의 흉터라고?’
“너, 너는 설마……!”
슉. 촤악!
안풍의 눈이 커졌다.
움직이는 기색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상대는 자신의 코앞에 서 있었고 자신의 오른팔은 허무하게 잘려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악!”
“네가 이곳의 책임자인가. 지금부터 피의 대가를 받도록 하지.”
“그, 그게 무슨……!”
그날. 숭실 지부를 비롯한 쌍룡회의 다섯 지부가 한순간에 몰락했다.
* * *
-다들 소식은 들으셨겠지요.
쌍룡회의 회주를 포함한 구회의 수장들이 위성 전화를 통해 한 자리에 모였다.
-쌍룡회가 의문의 괴한에게 기습을 당했다는 소식 말입니까? 세상에…… 대체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랍니까?
-그러게요. 아무리 쌍룡회의 문고리가 허술해도 그렇지, 이 정도로 쉽게 허점을 허용할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해당 자리에는 당연히 쌍룡회의 회주 평주홍도 참석해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남의 일처럼 함부로들 떠드시는구려. 참 속도 없는 인간들 같으니. 지금 이게 우리 쌍룡회만의 문제인 것 같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직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다른 회주들의 궁금증이 더해 갈 때쯤, 한 사람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렇듯 고명하신 분들께서 목소리나마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다들 강녕하셨는지요.
-이 목소리는…… 왕 대인? 왕 대인 아니시오?
-왕 대인이 여긴 어쩐 일이시오?
다른 회주들도 왕명을 알아본 듯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회주들 중에서 그와 거래를 트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쌍룡회 숭실 지부를 시작으로 다섯 개의 지부를 무너트린 범인 말입니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하얀 무복에 등과 가슴에는 붉은 용의 자수가 새겨져 있다고 하더군요.
-하얀 무복에 붉은 용의 자수?
-그, 그게 사실이오?
회주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설령 홍룡회의 잔당이라고 해도 숨어 다니기 급급한 판국에 대놓고 자신이 홍룡회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움직이는 미친놈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녀석은 160cm가 조금 넘는 키에 왼쪽 눈에 흉터를 가지고 있다더군요. 이쯤 되면 생각나는 인물이 없으십니까?
-서, 설마 흑천회주의 칠순 때 참극을 일으키고 홀연히 사라진 그 암살자 아니오? 그자의 이름이…….
-가우창……!
패청회의 회주가 원한을 섞인 목소리로 가우창의 이름을 씹어뱉었다. 그의 손에 유명을 달리한 자식의 얼굴이 요즘도 꿈에 나오는 탓이다.
-도대체 그놈은 어디로 사라졌다 왜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오?
-왕 대인, 아는 바가 없소?
그러자 왕명이 난색을 표했다.
-글쎄요. 저희도 현재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라 마땅히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만 숭실에서 활동 중인 제 정보원의 보고에 따르면 가우창의 목적은 단 하나…….
왕명은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였다.
-복수인 것 같습니다.
-복수?
-예, 그자는 저에게 쌍룡회 숭실 지부의 위치와 자금 보유 현황 등의 정보를 의뢰했습니다. 한마디로 숭실 지부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씹어 먹겠다는 뜻이겠죠.
-설마 그 정보를 판 건 아니겠지, 왕 대인?
-저는 정보꾼입니다. 대가를 지불하면 정보를 제공할 뿐이죠. 거기에 적도, 아군도 없다는 걸 평 회주께서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쌍룡회 회주 평주홍이 노기 섞인 목소리로 캐물었지만 왕명은 능글맞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러자 흑천회주 양자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래, 정보꾼인 자네의 입장을 탓할 생각은 없네. 우리가 정보꾼인 자네에게 궁금한 건 가우창이 지금 어디 있느냐는 것이지.
-설마 그것도 모른다고 할 셈인가?
평주홍이 노기를 담아 묻자 왕명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공교롭게도 제가 쌍룡회의 정보를 대가로 거래한 정보가 바로 가우창의 위치 정보라서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 요원이 그의 주변을 감시하고 있지요. 따라서 신용도는 확실한데……. 어느 분께서 먼저 이 정보를 구매하시겠습니까?
…….
어쩌면 약 올리는 것 같기도 한 듯 살짝 들떠 있는 왕명의 질문 아래 회주들의 침묵이 길어졌다.
* * *
“왔군.”
폐공장에서 쉬고 있던 윤수호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가만히 눈을 떴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치며 폐공장이 한 순간에 날아갔다.
“긴장을 늦추지 마! 이 정도에 뒈질 놈이 아니다.”
“나, 나온다!”
시뻘건 불길 속에서 검은 인형이 아른거린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인지, 악마의 모습인지 사람들은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인간이든 악마든 자신들이 살기 위해선 저 존재를 죽여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죽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놈을 죽여 버리란 말이다!”
이곳에 모인 쌍룡회의 전력은 약 3만 명. 쌍룡회가 본회의 전력을 제외한 지방 전력들을 모두 소집하여 이곳에 투입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숫자를 믿고 윤수호에게 겁 없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오러들이 흉흉한 빛을 뿜으며 거침없이 윤수호와의 거리를 좁혀 들었다.
‘놈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이다! 이만한 숫자를 혼자 상대하면서 지치지 않을 리 없어!’
‘놈의 힘을 빼놓기만 해도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
그러나…….
콰콰콰콰콰콰콰콰!
그들의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윤수호가 팔을 휘적거리자 수결을 타고 바람이 흘렀다. 강기를 품은 바람은 광풍이 되어 일대를 휩쓸었다.
무기에 깃든 오러건, 몸을 보호하는 오러건 강기를 품은 광풍 앞에서는 종잇장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에서의 폭발로 부서진 육편들이 흩날리자, 핏물은 장대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일장을 뻗으면 포탄보다 강력한 광풍이 뻗어 나가 일직선상에 있는 모든 적들은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렇게 수백 명의 목숨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동안, 윤수호의 팔은 휘적휘적 허공을 저었고 그럴 때마다 악몽 같은 바람이 주변을 잠식하였다.
윤수호의 모습은 마치 산책을 거닐며 여유롭게 두 팔을 휘적거릴 뿐인데……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이게 대체…….”
“아, 악마다! 놈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야!”
“아, 안 돼. 저런 놈을 어떻게 이겨…….”
“사, 살려 줘!”
3만이 2만으로, 2만이 1만으로 줄어드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만큼 공장 주변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여 갔고 흐르는 피가 강물처럼 모였다.
거기다 아직까지도 화마가 충천하는 폐공장까지…….
누가 본다면 악마의 재단이나 지옥쯤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광경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뿌리는 윤수호는 정말로 악마가 맞는 것일까?
적어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보기엔 그러했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바람이 끊임없이 휘몰아쳤다.
단순한 바람일 뿐인데 그 앞에서는 오러로 무장된 검도, 오러로 강화한 육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덤벼들면 덤벼드는 대로, 도망치면 도망치는 대로 그저 평등하게 죽음을 내려 줄 뿐이었던 것이다.
“웃기는 소리……! 놈도 결국 인간이다! 이기지 못할 리가 없어!”
오버 알터로 각성한 평주홍의 오른팔이 검에 잔뜩 오러를 압축하며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렇게 도망치는 부하들을 베어 버리며 순식간에 윤수호의 면전까지 접근한 녀석.
‘됐다! 지금이라면 놈을……!’
이대로 방심한 놈의 목을 베면 끝. 자신의 승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가 우연히 윤수호의 눈과 마주쳤다.
마치 자신을 벌레 보듯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윤수호의 눈과 말이다.
‘…….’
콰아아아아!
산산이 부서져 가는 몸뚱이와 함께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한 녀석.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윤수호는 애초에 여기 모인 녀석들을 단 한 명도 살려서 보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수를 명분으로 세웠는데 불쌍하다고 살려 보내는 건 좀 그렇지.’
결국 이 자리에 모인 쌍룡회 3만 명 중 생존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준비운동감도 안 되는 녀석들이다 보니 되레 몸이 더 찌뿌둥하네.”
모든 적들을 처리하고 가볍게 몸을 푸는데 왕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위원장님, 쌍룡회주의 본거지를 알아냈습니다. 위치를 전송해 드릴까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수금할 시간이 찾아온 모양이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