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85화 (85/175)

85.

‘흐음…….’

공사 진행 상황도 나쁘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보육 및 간호 교사의 지원율은 예상을 몇 배나 뛰어넘어 행복한 비명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윤수호의 미간은 한껏 좁아져 있었다.

‘문제는…….’

윤수호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밑으로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길드원들이 움찔거렸다.

그렇게 쓰러진 길드원들을 지나쳐 은행 뺨치는 두꺼운 금고 앞에 선 그가 손을 뻗어 금고의 문을 잡았다.

그 순간.

으드득, 으득…… 콰직!

“아, 안 돼!”

종잇장처럼 뜯겨져 나가는 문을 보고 눈이 돌아간 길드장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내 윤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도 좋다. 그런 필사의 각오를 가지고 가진 바 모든 오러를 쥐어 짜 윤수호에게 달려들었지만…….

콰직!

윤수호는 그의 안면을 가볍게 그러쥐어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나름 특무대에서도 이름깨나 알려진 중형 길드의 길드장이었지만 윤수호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인물이었다.

지금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돈인가…….’

윤수호의 눈앞에 금고 안에 잠들어 있던 금괴 및 현물이 빛을 발했다.

* * *

윤수호가 홍룡회를 털어 손에 넣은 이익이 자그마치 12조가 넘는다.

거기에 더해 지금까지 재앙종을 사냥하고, 지금처럼 길드를 털면서 챙긴 이득까지 셈하면 무려 14조에 가까운 엄청난 자산가이지 않을 수 없었다.

14조.

말만 들으면 도저히 머릿속으로 상상이 가지 않는 금액이기도 했다.

아마 혼자서 쓰거나 가족들끼리 함께 돈을 쓴다고 해도 도박이나 보증 같은 일이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 쓸 돈이었다.

그러나 재단의 복지 사업을 막상 시작하니 이건 뭐…….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더군.”

“그야 그렇죠. 어찌 보면 형님께서 혼자 도시 하나를 굴리는 셈이 아니십니까? 정부 입장에서도 자치권을 인정해 주는 대가로 골치 아픈 문제 여럿을 해결할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될 테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부에서는 어떻게 형님한테 이렇다 할 도움 한 번 안 줄 수 있습니까? 막말로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지, 형님의 국민은 아니잖습니까! 이거 너무 괘씸……!”

“춘영아.”

“예, 형님! 가서 엎을까요? 말만 하십쇼!”

“통나무 들고 다시 들어가라. 카운트 초기화하기 전에.”

“…….”

쏴아아아아아!

한 순간,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거친 폭포수 소리만이 이들 사이를 잠깐 파고들었으나…….

윤수호의 한마디에 통나무조차 벗어 던지고 폭포수 밖으로 뛰쳐나왔던 조춘영은 다시 얌전히 통나무를 어깨에 걸쳐 메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븅신.”

“끄응……!”

이선호는 그런 조춘영에게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스쿼트를 반복했다.

물 먹은 통나무에 쏟아지는 폭포수. 그 아래에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짓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쏟아지는 물줄기가 쉴 새 없이 얼굴을 뒤덮다 보니 호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호흡법을 항상 의식해라. 잘 때도, 먹을 때도, 쌀 때도, 훈련받을 때도, 길을 걸으면서도, 실전 중에도, 심지어 정사를 나눌 때조차 자연스럽게 호흡해라. 호흡이 멈추는 건 너희들이 죽었을 때뿐이다.”

윤수호의 조언에 따라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호흡법을 되뇌며 숨을 쉬었다.

윤수호의 권유를 받아 스스로의 선택으로 특무대가 아닌, 무인의 길을 선택한 두 사람은 오러를 포기했다.

‘그때 느낀 탈력감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겠지.’

‘아마 전 재산을 몰수당해도 그만큼 허탈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모든 오러를 포기하고 이 지긋지긋한 통나무와 함께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죽는 게 낫겠다는 심정이었다.

아무리 단련되어 있다고 할지언정 일반인의 몸으로 돌아간 그들에게 수십 kg가 넘는 통나무는 감당하기 버거운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재능 있는 녀석들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성장 속도가 빨라. 그만큼 노력하는 것도 있겠지만…… 무공에 대해 타고난 재능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런 성취는 불가능하지.’

윤수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들 중에 두 사람에 맞는 부분들을 집약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무공을 두 사람에게 선물하였고 두 사람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증거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통나무 하나에 낑낑거리던 두 사람이…….

지금은 초당 수백 리터가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에서도 통나무를 걸쳐 멘 채 여섯 시간을 넘게 수련하고 있었다.

호흡법도 어느새 버릇처럼 쉬고 있었지만 아직 그걸로는 부족했다. 버릇이 아닌 일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큰 걱정은 없었다. 두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대를 넘어 아득히 높은 경지까지 성장해 줄 터였다.

“지금이야 자금에 여유가 있어서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없겠지만…… 재단이 궤도에 올라 사회적으로 이바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가 들어갈 지 알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

“그렇죠. 최근에 자은동 외에도 근처 두 개 동이 더 희망동으로 편입됐다고 들었습니다.”

이선호의 말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초 예상보다 지원자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더군. 그만큼 이 나라가 많이 망가졌다는 뜻이겠지.”

“그런 우리나라에 형님이 계시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죠. 안 그러냐, 선호야.”

조춘영의 말에 이선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거의 그 정도만 하더라도 산황시의 1/3을 형님께서 관리하시는 셈인데…… 그렇다면 지금 자금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그래서 말인데…… 외화 벌이를 좀 해 보려고. 홍룡회만 털어서 12조를 넘게 벌었으니 그런 곳 몇 곳만 더 털면 당분간 희망동을 운영하는데 자금적으로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윤수호는 일부러 두 사람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에서 평범하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인데 거기에 대답까지 하려니 숨이 차다 못해 넘어가게 생겼다.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재 국내 범죄 길드들은 형님 덕분에 거의 씨가 말라 버린 상황이니까요. 국내 대테러팀 요원들도 해외 파트로 속속 부서를 변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내에 길드의 입지가 눈에 띄게 초라해지고, 반대로 특무대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모두 윤수호가 이뤄 낸 성과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길드는 발붙일 곳이 없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남은 길드조차 자연스럽게 쇠약해져 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빌런이 되길 원하는 알터의 숫자 역시 크게 줄고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역대 그 어느 때보다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특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형님 덕분에 올해 특무대의 입대율이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고 하더군요. 그에 반해 빌런에 의한 범죄율은 역대 최저치를 찍었고요.”

“심지어 형님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동안 제법 규모가 있다 싶은 중형 길드들을 깡그리 씹어 드시지 않았냐. 이 정도면 빌런들의 씨가 마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조춘영의 말처럼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이렇다 할 범죄 길드가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어중이떠중이 일반 조폭들과 거의 다름없는…… 소규모의 잔챙이 길드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윤수호는 그들까지 신경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특무대의 역량으로도 억제가 가능한 데다 아무리 특무대의 위상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세상에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빌런들은 반드시 태어나고 길드 역시 생겨난다. 자신의 역할은 그것들이 크지 못하도록 초장에 밟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외는 사정이 다릅니다. 던전 사태가 발생하고 그렇지 않아도 위험하던 치안이 크게 무너진 곳들도 많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비슷하게 알고 있습니다. 제 동기 중에 칠레에서 장기 파견 근무를 하는 녀석이 있는데 얼마 전에 만났거든요. 칠레도 위태위태했는데 던전 사태가 일어나면서 정부가 무너지다시피 하고 나라는 지옥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강대국들조차 지금의 혼란에 나라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보다 국력이 약한 국가는 다른 나라의 도움을 목구멍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원하고 있죠.”

“우리 특무대 대원들이 최근 들어 높은 수당을 받고 해외로 파견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세계 평화.

거창하지만 단순한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정부와 특무대는 대원들의 해외 파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는 앞서 얘기했던 특무대의 전력 충원이 그 어느 때보다 매우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독일같은 강대국들조차 타국에 자국의 요원들을 파견하여 돕는 걸 힘들어하는 마당에 이 작은 한반도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말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꿈을 꾸는 것 같다니까요.”

“이것도 저것도 모두 형님이 아니셨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러니 형님은 형님이 하시고 싶은 일을 하십쇼. 저희는 전력으로 형님을 서포트할 테니까요.”

“너희들…….”

윤수호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씨익 웃는 동생들의 모습에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걱정 마십쇼. 저희는 형님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강해질 테니까. 반드시요.”

조춘영의 확신에 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들의 마음은 잘 알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 시간 더 추가하마. 오늘은 일찍 끝내고 소주라도 마시러 갈 생각이었지만 너희들의 각오가 그렇다면 나 역시 참을 수밖에.”

“…….”

조춘영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선호의 시선을 애써 피해야만 했다.

* * *

희망동의 리모델링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갈 무렵, 윤수호는 공사 관계자들과 함께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다.

“시설과 설비는 모두 서울 도심지와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복지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서울도 능가할 정도지요. 하하하하!”

“그렇군요. 대단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의 말처럼 도시는 이전에 버려졌던 폐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전혀 새롭게 탈바꿈되어 완전히 다시 태어난 상태였다.

건설사에서도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들조차 꼼꼼하게 처리한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윤수호가 감사를 담아 고개를 숙이자 건설사 대표, 허방만이 손사래를 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어이쿠! 감사라면 저희가 드려야지요! 짱짱한 대기업들 거르고 저희를 선택해 주신 분인데. 덕분에 저희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도 모두 해결하고 회사가 진 빚도 전부 갚을 수 있었습니다. 이사장님이야말로 저희들에겐 생명의 은인 같은 분이신걸요.”

허방만은 연신 허리를 숙이다 조심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예, 편하게 말씀하십쇼.”

“그게…… 이제 와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웃기지만…… 왜 저희 회사를 선택해 주신 겁니까? 짱짱한 대기업들도 분명 신청이 많이 들어왔을 텐데…….”

그에 윤수호는 따뜻한 미소를 그렸다.

“혹시 서울 진성동에 나무그늘 청소년 쉼터를 기억하십니까?”

“예? 아, 물론이죠. 저희 회사에서 지은 건물이니까요.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원장 수녀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공사 중 갑작스럽게 상승한 자재값에 돈이 부족해지신 원장 수녀님께서 전전긍긍해하실 무렵, 시공사의 대표께서 아이들을 후원하는 대신 건물을 완성시켜 주셨다고요. 그렇게 완성된 건물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의 안전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죠. 그밖에도 돈이 안 되는 일만 골라 하셨더군요.”

“그, 그게…… 사실 제가 대표될 자격이 없는 놈이긴 하죠. 그래서 직원들 월급도 툭하면 밀리고 회사도 사정이 점점 안 좋아졌으니까요. 하하하…….”

허방만이 씁쓸하게 웃으며 뒷목을 긁자 윤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허 대표님에게 이번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었던 이유는 대표님께서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셨습니다. 단순히 건물을 지으시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해 ‘집’을 짓는 분이셨으니까요. 다시 한 번 저희 집을 지어 주신 대표님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 아닙니다. 저, 저야말로……!”

허방만은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제나 돈 안 되는 일만 한다고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구박만 받았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허리를 숙여 감사를 전할 만큼 인정받은 적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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