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83화 (83/175)

83.

문파를 설립하기에 앞서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문파의 설립과도 연관된 중요한 사항이란 다름 아닌 아이들의 거취 문제였다.

“여기는 어떨까요? 사방이 산지인 분지 지역이라 입구만 잘 지키면 비교적 외부로부터 안전할 것 같은데…….”

“게이트나 던전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까. 만약 도시 내부에서 발생한다면 오히려 좁은 입구 때문에 대피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여긴요? 교통이 편리해서 비교적 물자의 운반이나 사람들의 운송도 쉬울 것 같은데.”

“나쁘지 않군. 일단 보류해 두도록 하지.”

윤수호는 박여진을 주축으로 정보팀 팀원들과 함께 여러 지역을 살펴보고 있었다.

현재 그들이 살펴보고 있는 지역은 윤수호가 이전에 구출했던 아이들을 돌보고 키울 수 있는 바로 그 지역들이었다.

윤수호는 황철 길드와 관련 조직을 치면서 대략 1만 명의 아이들을 구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만 살게 하기 위해서 윤수호가 따로 지역을 알아보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한시름 놨네요. 위원장님께서 직접 세우신 재단을 통해 현재 사회에서 소외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위원장님.”

“왜?”

“정말로 사람 맞으세요?”

박여진은 윤수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고 윤수호는 그녀의 시선이 살짝 불편했는지 미간을 좁히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니, 그렇잖아요. 국가에서도 여유가 없어서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문제를 사비까지 털어 도와주는 개인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성자나 성인이죠.”

윤수호는 얼마 전 복지 재단 하나를 설립했다.

재단의 목적은 사회에서 자립하기 힘든 약자들을 구제하고 도와주는 것.

그것은 비단 버림받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노인들과 장애인, 그밖에 피치 못할 사정을 때문에 사회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재단이었던 것이다.

“난 박 팀장이 그런 얘길 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사회의 정의나 질서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저?”

“남들보다 오지랖이 조금 넓고, 돈이 조금 많은 평범한 시민일 뿐이지.”

윤수호의 대답에 박여진은 피식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두 번만 평범했다간 세상도 구원하시겠네요.”

“뭐, 기회가 된다면?”

“아무튼 지역 선정이나 도시 재건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위원장님의 자금이 뒷받침해 준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인력이에요.”

박여진은 심각한 얼굴로 자료를 확인하며 말했다.

“구출한 아이들 중 최선을 다해서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는 아이들을 추려 귀가를 도왔지만 구출한 아이들 중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불과 5%도 안 됐어요. 심지어 그중에서 절반 이상의 부모들이 일주일 안으로 양육 책임을 포기했고요.”

윤수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품만큼 따뜻하고 소중한 곳은 없다. 그런데 부모에게서 두 번이나 버림받은 아이들의 심정이 어땠을 지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윤수호는 그런 아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졌다.

“그사이에 SNS를 통해서 재단의 보호를 신청한 아이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무려 2만 명에 육박해요. 게다가 가족의 도움 없이 방치된 노인들과 장애인들까지 그 수를 더 하면 현재 추산되는 인원만 5만 명을 넘어서죠. 이 숫자는 앞으로도 당연히 증가될 추세고요.”

박여진이 무거운 표정으로 윤수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케어할 인력을 서둘러 구하지 않으면 재단은 뿌리부터 휘청거릴 거예요.”

박여진의 걱정에 윤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까.”

* * *

며칠 후 저녁.

“오랜만에 뵙습니다, 강 실장님.”

“지도 참으로 반갑구먼유. 그동안 잘 지내셨쥬?”

윤수호는 오랜만에 재회한 강탁준과 악수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강탁준은 하흥시 보호 센터에서 윤수아와 같이 일하던 직장 동료로 힘들고 위험한 순간에도 언제나 윤수아를 지켜 주었던 든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수, 수아 씨도 잘 지내셨쥬?”

“하아……. 그 사이에 삐쩍 마른 거 봐.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제때제때 챙겨 드셔야죠, 탁준 씨. 그러다 골병이라도 들면 어쩌시려고…….”

“밥이야 남들보다 배는 먹었구먼유! 걱정하지 마셔유. 이래봬도 마른 근육이니까. 보실래유?”

이제는 호칭까지 자연스럽게 부르며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더욱 더 완숙해져 이제 부부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내조는 그쯤하고 들어가자고. 가족들 기다린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서자 현관에서부터 마중 나온 가족들이 강탁준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랜만이에요, 강 서방.”

“하하하!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하네.”

“어휴, 저야말로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구먼유.”

부모님과 인사할 때도 긴장했지만 특히 은지연, 은지한 남매와 인사를 나눌 때는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것을 넘어 멈추는 줄 알았다.

“안녕하세요. 은지연입니다. 그런데 엄마에게 듣던 것보다 훨씬 훈남이시네요?”

“동생 은지한입니다. 어머니께 말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가 없는 사이에 어머니를 돌봐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동안 강탁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어왔던 아이들은 진심을 담아 강탁준을 환영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새아빠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한편 아이들을 처음 보는 강탁준은 잔뜩 긴장했는지 흐르는 식은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반, 반가워유. 강탁준이라고 해유. 수아 씨한테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다는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서도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로 이쁜 아가씨에 잘 생긴 도련님이시네유. 아이고, 근데 주책맞게 땀이…….”

“괜찮아요?”

“괘, 괜찮아유! 참말로 괜찮구먼유!”

긴장한 탓에 폭발한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황급히 훔쳐내는 강탁준. 그 모습이 걱정 되었는지 윤수아가 자신의 손수건을 가져와 땀을 닦아 주었다.

“하하하! 애들 앞이라고 오늘따라 유난히 긴장하는 것 같구먼.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들 갑시다.”

“마침 딱 밥도 다 됐으니까 들어가서 식사합시다. 여러분.”

‘하아…… 오늘은 긴장 안 하고 똑바로 인사하나 했는데…….’

윤지석과 오혜연을 따라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입장한 강탁준은 첫인상부터 망한 것 같아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 강탁준의 긴장감도 많이 풀렸다.

“아, 그거 내가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 둔 계란말이!”

“반찬에 주인이 어디 있어.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지. ‘아끼똥’ 모르냐?”

평소처럼 별 거 아닌 반찬 하나에도 진심으로 투닥거리는 아이들.

“너희! 자꾸 버릇없이 밥상머리에서 그럴 거야?”

“하하하! 왜 그러니, 떠들썩하니 보기 좋구먼. 자고로 사람이 밥 먹는 자리는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있어야지. 안 그런가요? 강 서방.”

“강 서방, 밥 한 그릇 더 먹을래요?”

“예, 옙! 그럼 딱 한 그릇만 더…….”

부족한 밥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혜연.

“어? 갈비찜이 떨어졌네. 잠깐만요 더 가져올게요. 그런데 음식은 입에 맞아요?”

“무, 물론이쥬!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밥상은 우리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이후로 처음이구먼유.”

“그것 참 다행이네요.”

기쁘게 웃으며 부족한 갈비찜을 가지러 가는 윤수아.

“이런, 강 서방 잔이 빈 줄도 몰랐네. 한 잔 받을래요?”

“아, 아니어유! 제가 먼저 따라 드려야지유!”

술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잔을 채워 주는 윤지석까지…….

강탁준은 어느덧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유수호는 말없이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그릴 뿐이었다.

* * *

식사가 끝나고 후식을 즐기며 가족들끼리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특히 새아빠가 될 지도 모르는 강탁준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히 조카들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밤이 깊어지자 아이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방으로 올라갔고, 부모님도 안방으로 들어가자 윤수호와 강탁준은 윤수호의 서재에서 따로 자리를 가졌다.

“고생하셨습니다. 편치 않은 자리였을 텐데. 그래도 덕분에 가족들은 진심으로 즐거워하더군요. 강 실장님같이 좋은 분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건 아니니까요.”

윤수호의 솔직한 감사에 강탁준이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어유! 지도 참말로 즐겁고 행복했구먼유. 수아 씨에게는 그렇게 말 했지만 사실 요 근래 너무 바빠서 끼니다운 끼니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맛있고 따뜻한 밥상이 참으로 감사했어유. 가족분들도 저를 진짜 가족처럼 대하고 아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유.”

“이봐, 이봐.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제대로 챙겨 먹긴 개뿔…….”

“수, 수아 씨!”

때마침 차를 가지고 서재로 들어온 윤수아가 강탁준의 말을 듣고 도끼눈을 뜨더니 오히려 윤수호를 은근히 째려보았다.

“하여간 어디 사는 누군가께서 사람을 얼마나 독하게 부려먹었으면 제대로 끼니 때울 시간이 없었을까? 진짜 얼굴 좀 보고 싶네.”

“수아 씨, 제발…….”

자신과 동생 사이에 껴서 안절부절못하는 강탁준의 모습에 윤수호는 피식 실소를 그렸다.

자신의 말이라면 돌이 금이라고 해도 믿고 따르는 동생이었지만 유독 강탁준과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 참…… 마누라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냐. 아무튼 그래. 네 남편 독하게 부려먹은 악덕 고용주라 미안하다. 다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서 부담이 되더라도 강 실장님에게 이번 일을 부탁드린 거야. 나에게도, 이 나라에도 말이지.”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윤수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탁준에게 무리가 되는 줄 알면서도 그를 말리지 못한 게 아닌가?

“그래도 전국에 있는 모든 쉼터와 보호소를 돌면서 인력을 모집하는 건 너무하잖아.”

“그러는 너도 서울에서 몇천 명이 넘는 복지 지원사들을 대상으로 선별하고 교육하는 걸 다 하고 있잖아?”

“그거야 난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에 강탁준이 윤수아의 어깨를 다독이며 미소를 그렸다.

“지도 마찬가지구먼유. 위원장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했으면 절대로 불가능했어유. 모집과 선별이야 제가 담당한 게 맞지만 그밖에 다른 모든 일들은 지원팀이 보조를 해 줬기에 가능했어유. 그러니 위원장님을 너무 원망하지 말어유. 지두 일을 하는 내내 참말로 보람차고 즐거웠구먼유.”

“하여간 탁준 씨는 사람이 너무 좋은 것도 탈이에요. 조금은 불평불만도 해야지…….”

“수아 씨만 하것어유~”

“…….”

이제는 대놓고 꽁냥거리는 예비 부부.

처음에는 서로 마음을 아는데 남들 눈치를 왜 그렇게 살필까 답답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그때가 그리워지는 윤수호였다.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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